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7
135화. 성장 (2)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가장 깊은 곳]의 공략을 속행했다.
던전의 2층은 몬스터의 숫자만 좀 늘었을 뿐 적의 구성 자체는 같았기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지.
“아악!”
“앞으로 붙어, 빨리!”
그런데 다음 날 도착한 3층.
이 던전의 중심부에서 그들은 다시 없을 위기를 맞이했다.
[붉은 강령술사] [등급 : A] [설명 : 어둠 속성의 네임드 몬스터. 물리 공격 약내성의 구울을 졸개로 지속 소환.]썩어 문드러진 육신을 지닌 이 몬스터는 정해진 공략법이 아니면 쓰러트릴 수 없다.
마치 유령인 양. 그 몸을 베어봤자 몇 번이고 재생하니.
“죄, 죄소……. 죄송해요…….”
“사과할 때가 아니야. 집중해!”
붉은 강령술사의 공략법은 인근에 숨겨진 영혼함을 파괴하는 것.
그런데 여기에서 신입이 대형 사고를 쳤다.
높은 바위에 있던 영혼함이 그녀가 쓴 스킬에 맞아 깊은 호수로 떨어져 버렸으니까.
‘내, 내구도가 약한 물건이라길래 한 번에 부술 수 있을 줄 알았어.’
풍덩.
끝 모를 물속으로 가라앉은 영혼함.
‘그, 그러지 말걸. 아아아, 바인딩으로 일단 상자를 확실히 끌어와야 했는데……!’
그들은 호수에 떨어진 영혼함을 바로 건지려 시도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돼버린 것이다.
“%&@#!@%~!”
호수 너머에서 붉은 강령술사의 괴이한 주문이 흘렀다.
이는 몬스터가 새로운 부하를 만들어 내는 소리였는데, 그걸 들은 팀장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외쳤다.
“막내야! 빨리 위로 기어 올라가.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 지원 불러!”
하지만 몬스터는 그것마저도 용납지 않는다.
이윽고, 강령술사가 불러낸 새로운 구울들이 꿈틀꿈틀 벽에서 기어 나왔으니까.
“완전히 둘러싸였어…….”
일이 더럽게 꼬였다.
호수에 빠진 영혼함을 찾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됐는데, 그사이에 몬스터가 부하를 만드는 스킬을 4연속으로 발동해버릴 줄은.
“쯧, 평소에는 저 패턴을 자주 쓰지도 않더니만. 왜 오늘만 난리야!”
화르륵.
석궁을 든 여자는 불을 피우는 마도구를 던져 적을 일부 제거했다.
하지만 도무지 숫자가 줄어들 기색이 없었다.
우글우글 몰린 몬스터로 퇴로는 진즉 막힌 상황. 이렇게 포위되면 이제 전방과 후방도 의미가 없어지는데.
“윽!”
대열이 무너진다. 헌터들이 동요한다.
이는 공략대가 붕괴하려는 징조이건만.
“…면…….”
소곤소곤.
이 팀의 탱커 역할을 하는 어느 각성자만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짧은 문장을 되뇌었다.
“이럴 때 형님이라면.”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윤승은 마음의 준비를 끝냈는지 뒤쪽의 팀원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정면으로 길을 뚫고 갑시다!”
“뭐라고?”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이대로 보스 방까지 쭉 달려요. 그리고 우두머리를 최대한 빨리 죽여서 던전을 나가요!”
지금 스피드런을 하자는 소리인가?
블루 게이트에서 잡졸을 생략하고 대장을 치는 행위.
이는 업계에서 스피드런이라는 용어로 불리나, 사실 진짜로 시도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미친.”
우두머리로 향하는 길목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으니, 이들을 줄줄이 끌어다가 보스전에 임하면…….
단기 결전을 내지 않는 이상 100% 전멸일 텐데.
“여기에서 지상까지 올라가는 건 너무 멀잖아요!”
“하긴, 우리가 먼저 뛰다 지치겠네.”
“보스에게 도착하면 잡몹들은 제가 최대한 늦춰볼게요. 어서!”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순발력.
팀의 대표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
“셋을 센 뒤에 나와 안윤승이 길을 뚫는다. 나머지는 이 악물고 뛰어!”
하나, 둘, 셋.
이 신호에 맞춰 상급 헌터들의 각성 스킬이 작렬했다.
그리고 윤승은 이 틈에 팀원들의 몸에 방어 계열 버프 스킬을 걸었다.
‘피부가 아니라 안쪽부터 천천히. 피부가 아니라 안쪽부터 천천히……!’
스톤스킨.
김기려의 조언을 거쳐 일반적인 스톤스킨의 몇 배 위력을 지니게 된 바로 그 마법이다.
-윤승아, 기술명이 스톤스킨이라고 마력을 겉에 바르면 쓰냐.
-그럼요?
-사람의 몸을 혈관부터 채워나간다는 느낌으로 써봐. 자, 네 마력이 혈액 역할인 거야.
만약 김기려였다면.
맞아. 그라면 애당초 이런 위기가 생기지 않게 모든 변수를 조정했으리라. 하지만 자신은 그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다못해 자신 같은 존재는 뼈를 깎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터.
“하아.”
깊은 심호흡 뒤.
안윤승은 마력을 두른 방패를 앞세워 정면으로 돌진했다.
쾅! 그의 푸른 마력에 썩어가는 몬스터들이 부러지고 찢겨나간다.
그 혈육 너머로, 길이 뚫렸다.
***
우웅…….
“하하.”
한 A급 헌터가 손에 들고 있던 석궁을 떨어트리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하하.”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은 비단 그녀만의 일이 아니었다.
뒤이어 지팡이를 든 남자와 젊은 힐러도 하나둘 땅에 드러누웠으니까.
“이걸 깨네.”
옆에서 윙윙대는 통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목숨을 건 도박에 성공했다.
마수들의 대장을 죽이고 붕괴하는 던전에서 탈출한 것이다.
“진짜 까딱하면 요단강 건넜겠구먼…….”
게다가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바로 어느 헌터의 활약.
“야, 안윤승!”
“네?”
보스룸까지 따라온 괴물들의 진입을 혼자서 무려 4분 58초나 막아낸 데다가, 마나가 바닥 치는 상황에서도 틈틈이 전형에 참가해 우두머리의 토벌을 돕다니…….
척!
팀의 리더는 말없이 엄지를 치들었다.
이번 공략의 MVP는 누가 봐도 안윤승이었다.
아니, 이건 거의 죽은 파티를 저 헌터가 멱살 잡고 끌고 간 셈이지. 그만큼 안윤승의 기여가 대단했으니까.
‘허 참, 경력이 고작 1년 차밖에 안 되는 녀석이 대체 어떻게 저런 기량을 내는 거야?’
팀장은 떨어트렸던 석궁을 주우며 한숨 돌리는데, 이때 한쪽에서 물기 어린 목소리가 흘렀다.
“여, 여러분. 죄송했습니다.”
신입 길드원의 목소리다.
“정말로 너무 죄송합…. 흑, 흡.”
신입은 자신의 실수 하나로 모두가 전멸할 뻔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울기 시작했다.
팀장은 이를 진정시키려 했다.
물론 영혼함을 성급히 건든 건 나중에 확실히 짚긴 해야겠지만, 이번 일로 너무 큰 상처를 받는 건 좋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천천히 상대방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신입의 곁에 있던 다른 팀원이 먼저 침묵을 깨버려서.
“괜찮습니다.”
안윤승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혀 사과하실 게 아니에요. 헌터님이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요. 뭘!”
그런데, 말투는 부드러워도 왠지 단어 선택이 영 꺼림칙했다.
“당연한 일이요?”
그녀는 자신이 신입이니까 실수할 걸 예측하신 거냐 물었지만, 안윤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정했다.
“사실 제가 이 정규 3팀에 들어오기 전에 재활 삼아 여러 사람과 일해봤는데. 처음에는 다들 왜 저런 실수를 할까 하고 짜증도 냈었지만, 이제는 깨달음을 얻어서요.”
피어싱을 한 남성은 두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이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지.
“이 세상의 헌터는 2종류로 나뉘어요. 김기려와 김기려가 아닌 것들로.”
턱. 안윤승은 신입을 붙들고 빠른 어투로 중얼거린다.
“형님에 비하면 다른 헌터들은 어리숙한 게 당연하지.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예, 예?”
“그러니 기죽지 마세요! 우리는 김기려 헌터가 아니니까 가끔 바보 같은 실수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죠?”
“예에?”
“그냥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잖아요?”
분명 초점은 명확한데 왜 사람 눈깔이 이렇게 무섭지?
윤승의 행동에 네오의 신입은 주춤거리는데, 이때 공략대의 팀장이 그녀를 슬그머니 구출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거 피곤해서 그래.”
“아.”
“예전에는 이럴 때 담배 잠깐 피우고 말더니, 갑자기 금연하기 시작한 뒤로는 스트레스받으면 저러더라.”
그 말을 들은 신입은 홀로 다짐했다.
아, 금단현상이라는 게 저렇게 끔찍하구나. 나는 절대로 흡연을 시작하지 말아야지.
***
윤승은 지금까지 김기려와 자주 동행했었다.
이상 변이 게이트.
화염박쥐.
황금향.
그 외 기타 등등…….
김기려가 싸우는 모습을 항상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깨너머로 이것 하나는 확실히 배웠지.
‘평정심.’
김기려는 마물 앞에서 큰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는 건 헌터에게 있어서 상당한 강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불을 뿜고 하늘을 나는 미지의 존재와 싸워야 했기에.
“이럴 때 형님이라면.”
안윤승의 급격한 실력 상승은 어찌 보면 이런 마음가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럴 때 김기려라면.
그는 흔들리려 할 때마다 이 문장을 중얼거리며 평정심을 굳게 유지했으니까.
“대박! A급 레드 게이트인데 고작 14분 만에 클리어? 얘들아, 혹시 이거 길드 신기록 아닌…….”
안윤승은 자신의 우상에 다가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리기까지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젠장, 이게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목표 설정이 좀 잘못된 상태라.
“기려 형이라면 보스를 상대할 때 좀 더 깔끔한 방법을 쓰셨을 거야!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오늘도 잔실수를 3개나……!”
“쟤 또 왜 저래요?”
“놔둬.”
어느 A급 헌터는 김기려를 과대평가하였고, 머릿속의 허상은 그를 끊임없이 내달리게 하였다.
마치 황새가 뱁새를 따라간답시고 가랑이를 찢은 듯한 모순적인 상황.
‘나는 다른 헌터들과 달리 형님이 시간까지 내서 가르쳐주셨으니 더 잘해야 해!’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모 F급과 달리, 적어도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으니.
“다들 먼저 퇴근하세요! 전 게이트에 남아서 스킬 연습을 하고 가야겠어요.”
“끝나고 삼겹살 먹으려 했는데…….”
“죄송합니다, 선배님!”
안윤승은 나날이 좋은 술사가 되어갔고, 실력이 늘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명성도 얻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헌터리뷰’라는 프로그램의 총괄을 맡은 김○○ PD입니다. 안윤승 A급 헌터님께 출연 제안을 드리려…….]대형 길드의 라이징 스타.
시청률을 높이는 데에는 이만큼 좋은 인물도 달리 없을 터.
안윤승은 방송 제안은 너무 거절만 해도 안 좋게 비친다는 실장의 조언에 따라 몇 개의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물론 김기려에게 미리 주의를 받은 사항은 반드시 지켜냈지.
‘형님이 자기가 스킬을 어떻게 교정해줬는지는 절대 퍼트리지 말라셨어. 아, 그리고 골렘의 공략법도.’
…그 부분만 철저한 게 문제였지만.
***
공항.
수하물을 받은 기려는 절차를 마치고 입국자용 게이트로 빠져나왔다.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비행기에 있느라 10시간이 넘도록 휴대폰을 이용하지 못했으니, 잠깐 인터넷 정도는 확인해볼까.
‘보자. 오늘의 날씨가…….’
톡톡.
기려는 적당한 곳에 캐리어를 세워놓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A급 각성자 안윤승 ‘헌터리뷰’ 출연] [“강함의 비결? 김기려를 보고 배워라” 떠오르는 신성 인터뷰] [안윤승 헌터의 A급 게이트 스피드런 클리어. 그런데 그는 MC들의 칭찬에 고개를 가로젓고 어느 사냥꾼에게 비하면 자신이 아직 한참 부족할 뿐이라…….] [상위 3%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인물]톡.
그리고 기려는 사이트의 첫 화면을 보자마자 도로 화면을 껐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가 떠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쪽이 창립일 기념 파티에 다녀온 사이. 한국은 누군가의 인터뷰로 뜨거워진 상태였거든.
“…….”
안윤승은 최근 헌터 업계가 제법 주목하는 인물이었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우수한 실력을 거머쥐었기에.
그런데 그런 이가 남을 콕 집어 무한한 존경심을 표한다?
당연히 상대의 평가도 같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A급이 저렇게 깍듯이 고개 숙일 정도면, 대체 김기려는 얼마나 대단한 거냐며 다들 쑥덕댔으니까.
“아니.”
찰싹.
모 외계인은 제 촉수…가 아니라, 오른쪽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난 이번에 가만히 있었는데.”
조용히 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