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8
136화. 위선도 선이라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을 충분히 둘러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타본 걸로 만족이지.
모처럼 이 행성만의 문물을 경험했으니.
그런데 내가 이번 해외 여행으로 무엇을 깨달았는지 아는가?
바로 집이 최고란 거다.
집 밖을 잘못 나갔다가 불곰처럼 생긴 S급에게 와인 잔 강속구를 맛보고 왔는데 아무렴 향수병이 안 생기겠나.
“망할.”
그러니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잠깐 은둔 생활에 돌입했다.
물론 집에서 무얼 할지도 이미 정해놨지.
내가 깃들어있는 그릇은 부족한 점이 넘쳐나 자잘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 가니까.
[1.3.43 변경 사항]●소화 기작 추가
간만의 개조다.
나는 틀어박혀 있는 동안 환생체를 살짝 고쳤다.
그런데 잠깐, 여기에서 소화 능력은 왜 나오냐고?
‘이제 안심이네.’
이건 보기보다 중요한 기능이다.
생물이 만들어 내는 독은 대개 단백질의 변형이니.
몸속에 침투한 외래물질을 순식간에 분해하는 능력!
이는 곧 하나의 결과로 이어진다.
“생물독 내성.”
그래. 나는 오늘부로 보다 완벽한 ‘독 내성’을 습득했다.
독극물에 노출되면 몸에 해가 되기 전에 그것을 안전한 구조로 무독화하는 술식을 몸에 박은 것이다.
지구에서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닌데, 상대적으로 독의 위험이 컸던 내 행성에선 이게 나름 필수 안전장치였거든.
물론 이 기작은 대사 기능을 한계까지 굴리는 만큼 가동마다 어마어마한 열량을 소모하지만…….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개조를 마친 나는 머리를 식힐 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검색결과 : 0건]하지만 오늘도 바라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용의 장기는커녕, 최근에는 용의 둥지 자체가 발생하지 않은 건가.”
지금까지는 돈으로 폐를 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이면 슬슬 다른 방안을 생각해둘 필요도 있겠지.
‘하긴, 용의 폐가 운 좋게 출현해도 습득자가 그걸 무조건 판다는 보장이 없고…….’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 뇌를 쓰고 있으니 갑자기 엉뚱한 게 떠오르더라.
‘아.’
그러고 보니 나 헌터증 재발급해야 하는데?
‘까먹고 있었네.’
이전부터 쓰던 신분증은 F급이라는 표기가 된 상태.
따라서 나는 정보를 정정한 새 헌터증을 발급하러 협회에 들르기로 했다.
‘분명 신청 방법이 온라인이랑……. 협회에 직접 방문으로 2가지였지.’
나가기 싫지만, 별수 없다.
홈페이지 회원가입은 외계인에게 너무 어려운 과제였으니까.
나는 주섬주섬 외출할 준비를 했다.
날이 따뜻하니, 오늘은 정장 재킷을 걸치지 않고 대충 셔츠와 조끼만 갖춰 입었다.
.
.
-챙 챙 챙.
-둥…. 두두둥…….
이상한 일이군.
원래 도시라는 게 소란스러운 곳이긴 하다만, 저번 주에는 바깥이 이렇게까지 시끄럽진 않았는데.
“악기 소리……?”
갸우뚱.
밖으로 나온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알파우리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이나, 그래도 소리를 들으니 김기려의 뇌가 결괏값을 도출했다.
꽹과리와 북.
아무래도 근처에서 지구인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나 보다.
‘오.’
나는 무슨 행사길래 이렇게 시끌벅적한가 싶어 소리에 관심을 뒀다.
============
협 회 도
공 범 인 가?
헌터 업계 규탄한다!
각성자를 규제하라!
============
한데, 이어서 헌터 협회의 건물에 도착하니 정문에 이런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둥, 두두둥. 둥둥.
나는 그들의 손에 쥐어진 북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이거 축제가 아니라 시위였잖아…….
***
요즘은 영화에서나 보던 초능력 영웅이 실존하는 시대다.
던전 쇼크 이후, 세계 곳곳에 헌터라는 이능자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한데, 실제로는 그 이능자들이 언제나 시민의 편인 것은 아니었지.
[20대 헌터의 충격적 일탈…. 노인에게 폭언·폭행까지] [심각한 수준의 도덕적 해이] [50대 가장 김 모 씨, 던전 브레이크 수습 현장에 휘말려 전신 마비…(더 보기)]이처럼 선악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쥐어진 칼자루는 실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으니.
오늘날은 정말이지 각성자로 인한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국가는 헌터 규제를 강화하라! 강화하라!”
협회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치고 있는 이 남성은 얼마 전 한 헌터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것도 술값을 깎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이 사건의 결과가 어땠는지 아는가?
이쪽은 얼굴 뼈가 내려앉고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폭행을 당했거늘.
그를 이렇게 만든 여자는 아직도 멀쩡히 일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잡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협회는 결국 헌터의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으니까.
“버스 운전사도 사람을 치면 잘리고, 하물며 의사도 잘못을 저지르면 면허가 정지되는데, 이 국가에서 헌터는 신이라도 된답니까? 왜 그들을 계속 밥 벌어먹게 해주는 겁니까!”
“옳소, 옳소!”
“처벌을 강화하라!”
협회 정문에 모여 있는 이들은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확성기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일반적인 시위대보다 좀 거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헌터 새끼들은 알아보기 쉽게 목 띠를 두르고 다녀야 해!”
“각성자도 [기사의 맹약]인가 뭔가를 쓰면 통제할 수 있다며. 적어도 위험한 상급은 그걸 의무화해서 정부 말을 듣게 해놔야 하는 거 아냐?”
다시 설명하겠다.
이들은 ‘헌터 혐오 단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각성자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원의 맹수와 같아 사회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파 집단이었다.
“헌터들은 어린 나이에 돈을 만지니까 싸가지가 없어!”
자신들을 향한 욕설을 고래고래 뱉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길을 지나는 헌터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주변을 비켜 갔다.
하지만 이때.
새로이 나타난 거물 때문에 시위대는 더욱 목청을 높이기 시작하여.
“어?”
“회장님, 저기, 저기!”
멀리서 어떤 염색 머리의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그 남자는 시위대의 소리를 좇듯 이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저 날카로운 눈매는 한 번 보면 좀처럼 잊기 힘든 인상이지.
‘김기려다!’
헌터 업계의 정점에 있는 각성자.
이들은 길에 나타난 기려를 보고 큰 소리로 질문을 쏟아냈다.
“게이트는 안 들어가고 여기에서 뭐 하슈?”
“어제도 근처에서 던전이 터졌던데 일을 똑바로 하는 겁니까?”
“너, 너 이놈아. 학창시절에 친구들 패고 다녔다며? 근데 부끄럽지도 않으냐?”
하지만 상대방은 대꾸하지 않고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히잉…. 지구인 무서워….’
기려의 입장에선 웬 인간들이 단체로 화를 내길래 겁먹고 도망친 거다.
그 F급은 자칫하면 일반인에게도 질 수 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왔다.
한데, 싸움을 피하려고 택했던 이 행동은 도리어 시위자들을 자극하게 되어서.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참나. 아예 대답을 안 하네.”
“그래. 우리처럼 각성도 못한 것들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 이거지?”
부들부들.
김기려가 사라지자, 시위자들은 목소리를 낮춰 뜻 모를 소리를 쑥덕댔다.
저렇게 안하무인인 성격을 지닌 헌터라면 분명 ‘그 작전’도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저 헌터를 대상으로 결행하자고.
***
음…….
한동안은 결계를 쳐둔 집에서 은둔이나 할까 했더니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되는구만.
이 방은 면적이 좁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엉망이 되니까.
“으악!”
어느 목요일.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페트병 뚜껑을 밟은 걸 계기로 쓰레기를 정리하기로 했다.
플라스틱을 버리러 나간 것이다.
‘귀찮아.’
그리고 쓰레기를 놓은 뒤에는 골목을 건너 집으로 향했는데…….
웬걸. 오늘은 자주 쓰는 지름길에 못 보던 사람이 서 있었다.
‘여기에 누가 있는 건 처음 보네.’
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도 그러려니 했지.
이 지름길은 살짝 좁긴 하다만, 그래도 2명이 함께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거든.
‘집에 가면 뭐 먹지?’
나는 몸을 왼쪽으로 살짝 틀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빠져나오려 했었다.
“끄아아아악!”
그런데 골목을 다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옆에서 괴성이 터져 나오더라.
“아니, 뭔…….”
“아이고, 내 팔! 내 팔!”
나는 얼이 빠진 얼굴로 상대를 내려다봤다.
하도 가운데에서 안 비켜주길래 옆을 비집고 나온 것이건만, 골목에서 만난 남자는 나와 옷깃이 스치자마자 풀썩 쓰러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차에라도 치인 듯이 말이다.
“뭐야?”
게다가 당혹스러운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이고, 애들아! 저기, 저 사람이 나를…….”
몇 초가 지나자 골목 맞은편에서 갑자기 두 사람이 바쁘게 달려왔다.
그들이 오자 쓰러진 남자는 울먹이며 말했지.
아무리 자기가 덩치가 크다 해도 어떻게 길을 지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밀칠 수가 있느냐며.
게다가 얼마나 세게 밀쳤으면 팔이 부러진 것처럼 이렇게 아픈 거냐며…….
“뭐라고요?”
“아! 이 사람 헌터 아냐? TV에서 본 것 같은데.”
“맞네. 각성자가 사람 친 거네!”
에라이.
이제는 모르는 척해주기도 힘들구만. 비로소 내가 뭘 당한 것인지 이해가 된다.
‘자해공갈!’
그리고 내가 이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쓰러진 남자가 교본 같은 협박 문구를 내뱉었다.
“쓰읍, 아야야. 아니, S급이나 되면서 아직도 제 힘이 어느 정돈지 분별을 못 해?”
“허.”
“이거 어쩔 거예요. 나는 운전으로 벌어먹어서 팔이 상하면 일도 못하는데!”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일을 못하는 만큼 보상이라도 하란 거냐.
“장난해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지만, 눈앞의 일당은 뻔뻔한 태도로 나올 뿐이었다.
“사람을 쳐놓고 뭐? 장난해? 당신이야말로 장난하십니까?”
“당신이 사람 치는 거 우리가 다 봤어. 이거 신고할 거야!”
“……내가 그쪽을 밀었다는 증거가 어딨는데?”
한데 이런 발언까지 돌아올 줄은 몰랐군.
“증거? 헌터님, 주변 좀 보시죠?”
“……?”
“여기는 주차된 차도 CCTV도 없어요.”
“…….”
“근데 여기 계신 아저씨는 확실히 팔을 다쳤고, 우리 쪽은 당장 목격자가 둘이나 되는데?”
저들은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었다. 적어도 누울 자리는 봐가며 다리를 뻗었으니.
“아구구구.”
쓰러졌던 남자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더니, 건들건들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억울하냐? 억울하냐고.”
가까이 다가와 눈을 찌를 듯 삿대질하는 남성.
“근데 네가 억울하면 뭐 어찌할 거야. 각성해서 편하게 돈 벌고 있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시선을 내리니 상대의 빈정거리는 표정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S급이 번 돈은 어디에 흥청망청 썼길래 이런 후미진 곳을 다 사나 몰라.”
“…….”
“으휴, 하여간 머리는 멍청해서는~”
.
.
.
S급 헌터란 곧 각성자의 대표다.
설령 그것이 나타난 지 몇 개월도 안 된 헌터라 한들. 어쨌든 S급이라는 이름이 달리면 단숨에 지명도가 발생했으니.
헌터 혐오 단체는 저 S급의 폭행을 유도해 여론을 조성할 생각이었다.
‘CCTV가 없다는 걸 알려줬으니 저기도 슬슬 폭발하겠지?’
S급에게 일부러 맞으려 들다니.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미친 짓이지만, 이쪽은 제 한 몸을 불살라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계산한 상황.
“네깟 게 각성자면 다야? 그런데 그거 아냐? 너희는 우리 같은 일반인 건들면 사회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거야, 인마.”
덥석!
시위대의 단체장은 불시에 기려의 멱살까지 틀어쥐어 강도 높은 시비를 걸어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
“뭐야, 이 새끼. 지금 우리 무시하냐? 사람을 무, 무시하는 거냐고!”
일단 김기려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이어진 행동들.
그는 온갖 인신공격을 들어도, 심지어 고급 셔츠의 단추가 뚝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도 정말이지 눈 하나 깜짝 않았으니…….
“이것 좀 놔주세요.”
이윽고 김기려는 제 멱살을 잡은 이에게 전했다.
할 말을 다 했으면 이제 자신을 놓으라고.
갑자기 송연함이 들었다. S급이면 이대로 몸을 뒤로 빼기만 해도 힘으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터인데.
‘반응을 안 해주는 건 그렇다 쳐도,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는 건 대체 왜……?’
멱살이 잡힌 그는 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가?
그리고 왜 우리를 저렇게 골똘히 지켜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