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39
137화. 안티팬은 팬인가?
김기려의 초연함은 헌터 혐오 단체의 입장에선 이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이 아저씨 팔심이 세군…….’
하지만 이 상황은, 사실 상대의 생각을 조금만 훔쳐보아도 바로 해석할 수 있다.
‘F급의 완력으로는 낑낑대며 뿌리쳐야 할 정도로.’
잠시 뒤.
기려는 두 눈을 굳게 감고 흐르려는 눈물을 참았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설마 한국의 4번째 S급이 등급을 조작한 사기꾼이며. 지금은 일반인에게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것을…….
***
F급 각성자와 일반인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요술의 사용 여부다.
즉, 신체를 강화하는 계열로 각성하지 않은 이상 의외로 F급은 일반인과 근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진 않는다는 것.
그러니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에게 잘못 걸렸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젠장.’
이것이 최하급 헌터의 말로다.
나는 자해공갈단에게 멱살이 잡혀 졸지에 도망도 못 치게 됐다.
‘어떻게 이런 비참한 일이…….’
물론 강화된 방어 반지를 지니고 있어 딱히 몸이 상할 일은 없겠다만.
그래도 대마도사의 자존심이란 게 있지. 이런 일을 겪으면 나도 가슴은 아프다고.
“이것 좀 놔주세요.”
나는 설움을 삼키며 그들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내가 한마디 하니 눈앞의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슬그머니 옷깃을 놓는다.
“무, 무슨 생각이야?”
“예?”
“아니, 돈을 주기 싫으면 그, 그냥 가면 될 일을, 왜 여기에 꾸역꾸역 버티면서…….”
공갈범은 뭔가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솔직히 이건 진실을 밝히기도 어려웠다.
이쪽은 단지 최약체의 각성자라 저항할 수 없었던 거거든.
“음.”
그래서 나는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전에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았다.
“아까 당신은 정말로 팔을 다친 거라고 했었죠?”
“뭐요?”
“흠, 그런데 자해공갈을 하려고 뼈에 금을 낸 상태인데, 여기에 나 같은 S급이 멱살을 뿌리치려고 힘을 줬다간…….”
똑!
나는 굽힌 검지를 첫째 손가락으로 짓눌러 딱딱거리는 관절 소리를 내보였다.
달리 덧붙이는 문장은 없었지만, 이 정도 손짓이면 저들도 충분히 알아들을 터.
‘이, 일단은 연약한 일반인이 부서질까 봐 S급으로서 참아줬다는 설정으로 밀고 나가자.’
필사의 허세!
나는 등급 위조자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운 좋게 먹혀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으리라.
저 3명이 동시에 달려들기라도 하면 내 본 실력이 순식간에 드러나니까.
‘제기랄.’
이래서 [깜짝상자!]를 항상 챙겨 다녀야 했던 건데.
나는 안전의식이 부족했음을 한탄하며 뒤쪽 길을 흘겼다. 원래는 이대로 발에 불이 나게 달려 도망칠 생각이었다.
-……어?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골목 너머에서 외마디 소리가 울리더라고.
-삼촌!
이 자리에 있던 인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기껏해야 김기려의 반 토막쯤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신장의 인간.
“우와! 진짜 그 삼촌 맞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이는 어느 대마법사가 환생 첫날에 만났던 새끼 지구인이 아닌가.
“음? 너는 그…….”
“도율아! 엄마가 그렇게 뛰면 다친댔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군.
뒤늦게 고개를 들어보니 골목 너머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성인 여성도 한 명 보였다.
그렇다면 목격자도 나타났겠다, 자해공갈단 쪽이 어떻게 반응했겠는가.
-타다다닥!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곧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같은 비각성자 앞에서까지 어깃장을 놓을 용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
내가 답을 하지 않으니 아이가 재차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내가 사실 안녕한 상황이 아니었단다.
“헉, 헉…. 아, 안녕하세요! 김기려 헌터님…. 이시죠?”
나는 도망친 범죄자들의 등을 보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아이의 엄마가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그런데 방금은 무슨…. 일이셨는지……. 혹시 경찰 불러야 하나요?”
구겨진 차림새와 뜯겨 나간 단추.
내 몰골이 심상치 않으니 그녀는 눈치를 보며 질문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지.
‘S급 헌터가 일반인에게 멱살 잡혔다는 걸 무슨 수로 밝히겠냐…….’
그래서 나는 등장한 행인에게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이때, 어른들 사이에 끼어있던 아이가 내 바짓가랑이를 덥석 잡고 말했다.
“엄마, 그러고 보니 삼촌한테 ‘고마워’ 안 해?”
그러자 젊은 여성이 웃으며 설명을 덧붙인다.
“참. 그, 김기려 헌터님. 언젠가 만나 뵈면 꼭 드리고 싶은 말이었는데……. 일전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네?”
“경찰분께 들었는데, 저희 애를 헌터님께서 구해주신 적이 있다고…….”
비기너 킬러 사건을 말하는 건가.
하긴 아이를 도와주려고 하긴 했지. 동시에 마법을 못 쓰는 게 밝혀져서 다 망했었지만.
“그날 이후로 도율이가 TV에서 헌터님 얼굴만 보면 방방 뛰어요. 막, 자기 도와준 형 나왔다고요.”
“절 알아보던가요?”
“그럼요. 아무리 애여도 그런 건 다 기억하죠.”
어린 지구인의 모친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아무튼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애가 이렇게 무사한 건 다 헌터님 덕분이에요.”
그 뒤로 여자 쪽은 그날 이후 아이를 절대 혼자 돌아다니게 두지 않는다며.
하여간 마수들 때문에 애를 키우기도 겁난다고 무어라 말을 이었지만, 딱히 궁금한 주제가 아니었다.
“엄마, 근데 이 삼촌 내 아이스크림 뺏어 먹었다?”
“이 보답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삼촌이 내 아이스크림 먹었다니까.”
나는 재잘대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툭 말했다.
“보답은 필요 없어요.”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쪽은 이미 약속된 대가를 받았거든.
“너, 이름이 도율이야?”
“네. 김도율이요!”
잠깐 사이에 키가 큰 것 같네.
나는 작은 생명의 변화를 잠시 관찰하다, 덕담을 남기며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모처럼 살았으니 앞으로 건강히 지내. 공부 열심히 하고.”
그런데, 이쪽이 이동할 것처럼 몸을 트니 도율의 보호자가 나를 허겁지겁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네?”
“아, 그게. 그……. 제가 준비한 게 없는데, 그래도 마침 장을 보고 오는 길이라.”
부스럭부스럭.
그녀는 이윽고 자신의 장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인다. 유리병에 든 유기농 감귤 주스였다.
“자, 작지만, 이거라도 받아주셔요.”
그녀는 주스 병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구해줘서 고맙다.
자신은 헌터님을 항상 응원하고 있을 테니 부디 매일 잘 지내시라.
“이게 비타민 C가 정말 많은 건데……. 요즘 감기도 다시 유행한다니까 몸에 좋을 거예요. 어, 그런데 혹시 각성자분들은 감기…. 안 걸리시나요?”
워낙 긴장한 상태라 목소리가 달달 떨려서 반쯤 못 알아들었다만, 그래도 마음만은 충분히 전해지지.
“각성자도 병은 걸려요.”
자해공갈단을 만났을 적만 해도 지구인에 대한 분노가 극도로 치솟았거늘.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은혜를 잊지 않는 태도는 역시 좋다.
이 작은 선물 덕분에, 나는 훗날 잃어버린 힘을 복구하더라도 지구인을 다 쓸어버리진 말자고 내심 생각했다.
…아직은 말이다.
***
타다다닥.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먼 길목까지 도망쳐 나온 시위대는 한동안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에이씨, 거기서 애새끼가 초를 칠 건 뭐람.”
그들은 S급의 폭행을 유도한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분해 씨근덕댔지만, 단 한 명은 반응이 좀 달랐지.
“어차피 그 애가 안 왔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것 같은데요…….”
고급 카메라를 든 마른 남자가 뛰어나온 3명을 떨떠름히 훑었다.
그는 무언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다들 보셨잖아요. 김기려 헌터는 그런 짓을 당해도 당신들이 다칠까 봐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던 거.”
이 장년층은 S급이 일반인을 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몰래 먼 곳에 자리 잡았던 제3의 인물이었다.
‘왜 물러나지 않나 했더니, 저 사람의 금 간 팔이 잘못될까 봐 그렇게 미동도 않고 참아준 거였다니.’
그런데 방금의 일을 겪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누가 봐도 부조리한 시비였는데, 김기려는 그런 상황에서마저도 일반인을 기꺼이 보호하려 들었으니까.
‘성격이 외모랑은 딴판이네.’
그는 평소에 헌터란 것들을 극렬히 싫어했지만, 역시 이번만은 다른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야, 아까는 우리가 너무 약하게 나가서 그런거고, 더 독하게 몰아붙이면 분명 저것도 본색을 드러내!”
하지만 실행범들은 여전히 당당했지.
그들은 단지 수단이 나빴던 거라며, 다음엔 사냥꾼에게 알코올이라도 한 바가지 끼얹어보자고 모의 작당을 하기 시작했기에.
“저 사람한테 또 그럴 거면 난 빼줘요!”
“뭐? 왜?”
“아니, 몇 번을 해도 결과가 똑같을 게 뻔한데 뭣 하러 그런담. 바보들도 아니고.”
카메라맨은 질린 듯이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말에 홀려 이딴 곳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잠깐, 자네가 없으면 촬영은 누가 해!”
“아, 채팅방에서 또 다른 놈 정모로 부르시든가요. 암튼 난 됐어요.”
그가 미련 없이 떠나버리자 남은 시위자들은 있는 대로 표정을 구겼다.
그러나 아직도 의욕은 꺼지지 않았다. 특히, 모함을 위해 스스로 팔까지 부러트렸던 이 사람은 노련한 경력마저 있었으니.
“자, 다들 걱정 말고 다음 날짜부터 잡읍시다.”
“괜찮을까요? 우리 얼굴을 기억했을 텐데.”
“아이, 괜찮아. 괜찮아.”
헌터 혐오 단체의 회장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다들 알잖아? 나는 그 정하성한테도 합의금을 받아본 사람이야.”
“던전 브레이크 수습 때죠?”
“그렇지. 불로 난리가 난 곳을 뛰쳐들어가서 드러누워 보기까지 했는데, 이런 담력으로 내가 뭔들 못하겠어?”
탁탁.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당신들은 걱정 말고 김기려의 동태나 잘 살펴놔. 오늘처럼 어딜 자주 다니는지 미리미리 봐두란 말이야.”
그런데 이때.
여태 조용히 있던 누군가가 불쑥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그것보단 다른 헌터를 노리는 게 낫지 않나?”
대화에 끼어든 것은 굉장히 낮은 목소리다.
“김기려 말고, 시비를 걸면 반응을 잘해줄 것 같은 S급도 있잖아.”
“아, 혹시 강창호?”
단체장은 그 말을 듣자 어깨를 으쓱한다.
“그 양반은 저번에 말했듯이 집이 너무 엄한 데 있잖아. 경비가 빡빡해서 안 돼.”
“그럼 김기려는 이런 곳에 산다는 이유로 노렸단 거야?”
그런데 어째 앞에 있는 동료들의 반응이 묘하다.
갑자기 입을 떡 벌리질 않나. 귀신이라도 본 듯이 어떤 방향을 멍하니 올려다보질 않나.
‘잠깐, 그런데 내가 방금……. 누구랑 이야기한 거지?’
휙.
단체장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재빨리 뒤쪽을 확인했는데. 곧이어 충격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풍채가 좋은 자신마저도 왜소하게 만드는 체격의 소유자.
“우악!”
강창호가 그곳에 떡하니 서 있었으니. 이에 남자는 놀라 뒷걸음쳤다.
“아니! 이 동네는 대체 S급이란 것들이 왜 이리 기척을 안 내고 다니는……!”
원래라면 최상급의 각성자가 주변에 있기만 해도 신체적 반응이 와야 했거늘.
이제 보니 강창호의 오른손에는 손가락마다 빠짐없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즉, 그는 아이템으로 마력을 한껏 억누르고 여기까지 접근했던 것이고.
“김기려 흉내를 내봤는데 난 C급 정도가 한계네.”
용의 눈을 지닌 헌터는 허리춤의 힙색에서 붉은 물약을 꺼내며 어느 골목을 쳐다봤다.
김기려의 원룸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나저나 입국했다길래 잠깐 확인하러 왔더니. 설마 그런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을 줄은.”
지나치게 착한 것인지.
괴상한 취미라도 있는 건지.
이것도 아니라면 혹시…….
“흠.”
강창호는 무언가 생각하며 약병의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이 순간에도 헌터 혐오 단체원들은 방금의 당찬 태도가 거짓말인 것처럼 굳어있었는데, 그 침묵도 오래가진 못했지.
S급은 곧 눈앞에 선 이들에게 충고했기에.
“남을 스토킹하면 못 쓰지.”
으적!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에는, 코의 뼈와 살점이 주먹에 뭉개지는 질척거림만이 뇌리에 전해져왔다.
.
.
.
쏴아아.
일본의 가고시마현.
서부의 노란 모래사장 위로 익숙한 형태의 통로가 떠올랐다.
푸른 빛을 발하는 미지의 게이트. 던전의 발생이다.
한적한 바닷가에 자리 잡은 게이트는 아직 인간들에게 발견되지 않아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았건만.
-그르르르르…….
그 게이트의 안에선 끊임없이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르르…….
대지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숨결.
용의 울음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