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43
141화. 가고시마 드래곤 레이드 (4)
최악의 재앙이라는 S급 게이트 공략에 거리낌 없이 와준 각성자.
그런데 그 남자가 다름 아닌 프리랜서 헌터였다고?
‘한국의 길드들이 제대로 대접을 안 해준 게 아닐까?’
‘하지만 자기가 길드를 직접 세우지 않은 이유는 뭐지?’
‘설마 조국 자체에 불만이 있어서?’
‘그래. 사지나 다름없는 S급 게이트를 선뜻 협력하러 왔는데, 우리나라에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해!’
눈을 깜빡일 정도의 짧은 시간.
일본의 사냥꾼들은 소리 없이 의견을 모았다.
‘이 공략이 끝나자마자 붙잡는다!’
‘바로 정부에 연락해서 영주권 준비를.’
‘한국인들은 뭘 좋아하더라……!’
그들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본 맹수와도 같았다.
***
1시간 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던전 공략에 나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은 괴물의 수만 늘어날 테니.
‘일본 헌터 업계는 레이드라는 단어를 보편적으로 쓰는구나.’
쾅! 화르르륵.
곧이어 이토 헌터가 만든 불길이 적을 휘감았다.
던전의 독 웅덩이마저도 순식간에 끓여버리는 화력. 일본의 헌터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용에게 끊임없이 스킬을 쏟아냈다.
내리치는 번개, 적을 내장째로 도려내 버리는 고압의 바람.
일본에서는 S급끼리 어떻게 협력 하나 했는데, 사실 방식 자체는 단순했다.
그들은 서로 영향을 받지 않게 최대한 거리를 벌린 뒤, 중앙의 몬스터에게 스킬을 퍼부어 순간 화력으로 승부를 보았으니까.
‘저 헌터가 제일 눈에 띄네. 그래도 역시 1위는 1위인가.’
이토가 땅에 손을 짚자, 드래곤의 발치에 커다란 원이 생겨났고.
그리고 이 원은 점차 내부가 붉게 차오르기 시작하여…….
‘와, 여기까지 뜨거워.’
쿠르르르르.
아래에서 맹렬한 불길이 치솟는다. 이토가 발동한 스킬은 마치 거대한 영물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밝게 빛나는 화염이 지나간 자리는 단백질이 타는 불쾌한 냄새, 그리고 수포로 부글부글 끓어오른 용의 흉측한 피부만을 남을 뿐이라.
“────!”
그때.
쩌정, 갑자기 유리가 깨지는 듯한 높은 울림이 공기에 들어찼다.
“윽!”
“끄으.”
이는 용종의 특수 기술인 [피어]다.
그리고 효과는 보다시피, 제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높은 확률로 마비를 일으키지.
모리타케 이토 헌터가 방금의 피어로 행동불능 상태에 빠졌다.
‘웬만한 하급 헌터는 피어만으로도 심장마비겠네.’
드래곤의 힘과 단단함은 정말이지 상상 초월이더라고.
S급의 드래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꼬리를 휘둘러 연속 공격에 나섰는데.
그 꼬리치기 한 방에 지구인들이 어떤 꼴이 됐는지 아는가?
나는 드래곤의 꼬리 비늘에 갈려 피부가 붉게 벗겨진 헌터들을 보며 혀를 찼다.
‘이거 사람 안 죽고 끝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곧이어, 마비에서 풀려난 이토가 스킬을 써 빈사 상태의 용을 마무리 지었으니.
“헉, 헉, 허억!”
“포션, 포션!”
“힐러들은 여기로 와줘!”
나는 픽시의 번역기에서 들려오는 AI 음성을 귀로 쫓았다.
그런데 잠깐, 저들은 저 개고생 중인데 나는 뭐가 이리 평화롭냐고?
‘보스는 언제 만나나.’
어쩔 수 없다. 이쪽은 드래곤의 콧바람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연약한 몸이니까.
나는 일본에 오기 전부터 일선에 절대 나서지 않겠다 선언한 상태였다.
정확히는, 던전의 우두머리가 등장하면 온 기량을 쏟아부어 [바인딩]을 쓸 생각이니 그때까지는 힘을 아껴야 한다는 핑계를 댔거든.
그런데 나는 둘째치고 이 사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네.
“강창호 헌터.”
나는 내 뒤에 서 있는 S급에게 한마디 했다.
“헌터님 실력 정도면 좀 도와줘도 되지 않아요?”
하지만 강창호는 일말의 흥미도 없는 목소리를 낼 뿐이라.
“이미 다 이야기된 일이잖아.”
뭐, 보다시피 이 S급은 오로지 자신의 제물을 보호하러 온 상태.
강창호 또한 입국 전부터 자신은 드래곤과 딱히 싸울 생각이 없다고, 그러니 이쪽은 보상이고 뭐고 그냥 없는 셈 치라고 일본에 밝히긴 했었는데…….
“S급 게이트에 도전한다고 해서 재밌는 관람을 할 줄 알았더니, 쓴다는 게 고작 [바인딩]이었을 줄은.”
그는 내가 쓴 스킬을 본 이후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그로선 김이 빠질 만도 하다. 바인딩은 전형적인 하급 스킬. 따라서 스킬석의 매물쯤이야 시장에 항상 널려있으니까.
‘스킬석이라 가격이야 비싸긴 할 텐데, 그래도 향상심으로 빼앗을 정도의 가치는 아니야.’
그럼 할 것도 없겠다 심심하면 가서 애들이나 좀 도와줄 것이지.
나는 전투가 끝난 폐허를 살폈다.
“끄으, 으으으.”
일본의 헌터들은 차마 졸개에게 당했다 말하기 힘든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외적인 상처는 힐러의 재생 마법이나 회복약에 닿으면 금방 복구되겠지만…….
“아아아악!”
문제는 독룡들이 사용하는 포이즌 브레스.
이곳의 적들은 S급이라는 이름값에 맞게 실로 무시무시한 독성을 품고 있었다.
일단 해독제로 어찌저찌 버티고는 있다만, 몇몇 헌터는 벌써 호흡곤란을 호소하기 시작했군.
‘독룡이라.’
아마 보스에게 도착하기 전에 5명 정도는 의식불명이 될 거다.
하지만 우리는 공략대의 수가 줄어도 끊임없이 전진해야만 했다. 중도에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간, 애써 줄여놓은 적의 수가 다시 늘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우두머리가 있는 곳까지 몇 마리나 남았지?’
나는 눈을 감고 남은 적의 수를 가늠했다.
그리고 이때.
-쿠궁, 쿵, 쿵…….
저 멀리, 공동 너머에서 네발짐승의 무거운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제길, 다른 드래곤이 꼬였어.”
하지만 도망치긴 애매하다. 아직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헌터가 많아 분명 뒤처지는 사람이 나올 것이기에.
“다들 일어나. 무기에 이물질이 묻었다면 당장 닦아내!”
모리타케 이토는 적이 접근하자 거친 목소리로 헌터들을 통솔했다.
그 후에 이어진 것은, 아까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최상급들의 전투 현장.
‘어우, 눈부셔.’
불과 독.
천둥과 울부짖음.
그리고 스킬이 지나갈 때마다 훅훅 뒤바뀌는 던전의 지형까지.
나는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그들이 싸우는 현장에서 80m는 떨어져 있었는데.
어째 싸움터에서 심상치 않은 모습이 보였다.
“헉, 어윽…….”
어떤 헌터가 행동을 멈추고 자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언뜻 보면 청소년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인 남자.
‘뭐 하는 거지?’
자신을 이오리라고 소개했던 S급이다. 잠시 지켜보니 그 일본 헌터는 가슴을 부여잡은 상태로 바닥에 이내 무릎을 꿇었다.
‘독기를 너무 들이켜서 뭔가 발작이라도 온 건가?’
왠지 불안하군.
다른 동료들은 드래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고, 하필 저놈이 쓰러진 위치가 딱 드래곤의 머리가 놓인 방향인데.
-촤아아아아악!
내 이럴 줄 알았다.
슬슬 발동 시기가 됐다고는 생각했는데 저 파충류가 진짜로 포이즌 브레스를 쏴버렸다.
쾅!
이제 공략대도 경험이 쌓여서, 용의 입이 벌어진 틈을 타 온갖 마법을 갈겼기에 동시에 용의 목숨도 끝장났지만.
“이오리!”
“헉.”
“젠장!”
이들은 드래곤의 윗머리가 떨어져 나갈 때가 되어서야 동료의 상황을 알아챘다.
이오리는 드래곤 브레스에 휘말려 저 먼 독 웅덩이에 처박혔다.
이대로 두면 실신한 헌터가 웅덩이 아래까지 잠길 터.
“누, 누가 스킬로 좀……!”
일본의 각성자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해 허둥지둥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에서 그나마 평화롭게 사람을 건질 능력은 바람 계열이었는데, 아쉽게도 웅덩이에 빠진 양반이 그 대기술사였거든.
그러니 이건 물리적으로 해결해야지.
“어?”
풍덩.
나는 드래곤 브레스가 시작된 순간부터 앞으로 달려가 웅덩이에 입수했다.
그리고 전생의 경험을 살려 우수한 헤엄 실력으로 빠진 헌터를 건져왔다. 그걸로 끝인 일이었다.
‘간만에 수영했네.’
자, 그럼 지구인들에게 동료를 구해줘서 고맙단 인사를 들을 차례인데…….
‘어라.’
눈에 들어간 액체를 닦다 보니 이제야 상대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쪽이 이런 반응을 하는 이유란.
“독 웅덩이를 맨몸으로……?”
그러고 보니 독 내성이 있단 소리를 안 했었나.
‘잠깐, 생각해보면 굳이 이 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제 잇속을 챙기는 것 하나는 빠른 마법사. 곧바로 육체에 사소한 조작을 가했으니.
스르르륵.
털썩.
나는 맹독에 당한 여타 S급들처럼 피부에서 핏기를 뺀 뒤 기절한 척했다.
“꺄아아악!”
“히, 힐러들. 당장 이쪽으로 와!”
“해독 포션 어딨어!”
그런데 이것도 오래는 못할 짓이더라.
해독제가 코로 들어온 건 둘째치고, 어느 향상심 소유자가 날 차갑게 내려다봤거든.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나는 바르게 누운 상태로 눈만 떠 그를 만류했다.
그렇게 강창호를 한참 말리다 보니, 어느덧 이오리 헌터도 치료를 마치고 의식을 되찾았다.
***
-아니, 창호 씨, 그러지 마시고 제 말부터 들어보십시다. 저도 S급이라 여기에 잠깐 빠져도 죽진 않는데 지금 무슨 생각…….
“이오리, 괜찮아?”
“정신이 들어?”
일본의 한 헌터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 순간에도 한국인들은 시끄럽게 대화하는 중인데, 자신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고장 났구나.’
이오리가 착용하고 있던 이어셋을 바닥에 던졌다.
아무래도 드래곤과 싸우다 잠깐 혼절했던 것 같은데.
“기려 씨에게 인사해둬. 저 사람이 도와준 거야.”
이때, 이오리는 자신이 의식이 잃은 동안 있었던 일을 알게 되고 바로 한국의 헌터에게 향했다.
“절 건지려고 독 웅덩이에 빠지셨다고요?”
상대의 번역기는 멀쩡하니 제 말을 듣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터.
“미,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드리고요.”
이를 들은 김기려는 무어라 말하기 시작하는데, 옆에 있던 길드원이 이를 대신 해석해주었다.
“그렇게 감사하면 레이드나 열심히 하래. 네가 화력의 주축이라 구한 거라는데?”
“네?”
땅에 누워 있는 남자는 그 뒤로도 몇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가 보기에는 네가 없으면 클리어가 어려울 것 같았대.”
“어…….”
“방금은 보스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서 이겨보라고 했어.”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김기려라는 헌터의 생김새는 마치 날이 바짝 선 식칼 같다.
그러니 쓸모가 있어 살려줬다는 무정한 말도 어찌 보면 당연히 느껴지건만.
중얼중얼.
이오리는 상대의 마지막 문장을 전해 듣고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스까지 도달하면 그땐 내가 이기게 해줄게.
이 싸움 끝에는 반드시 승리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듣고 싶었던 최고의 격려였으니.
김기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크롸롸롸롸롸!
제왕의 거처를 지키고 있던 졸병을 해치우고, 마침내 이곳의 주인을 조우했을 무렵.
금발의 파견자는 이전에도 보였던 바인딩을 시전하여 보스를 완전히 고정해버렸다.
주둥이도, 목도, 강인한 손도, 창공을 가르는 날개도.
모조리 빛의 실에 얽혀 근육 하나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으니. 붙잡힌 용에게 남은 운명은 하나뿐.
-끼잉?
콰과과과광.
이윽고 포화하는 헌터들의 스킬.
그렇게 그들은 김기려의 바인딩 덕에 보스를 손쉽게 쓰러트렸다.
재앙이라 불리던 최악의 게이트를, 정말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에 공략해버린 것이다.
“된… 거야?”
“추, 출구. 출구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은 0건!
물론 공략자의 절반 이상이 회복이 불가능한 중상자가 된 상황이지만, 그걸 참작해도 이건 정말 역사에 남을 기록이 아닌가?
“으악! 깼어, 우리가 정말 깼다고!”
“이토 씨, 해냈어요!”
“와아아아!”
구석에 서 있던 강창호는 어째 예상했던 것보다 몬스터가 너무 약했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런 말에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곧이어, 재앙을 물리친 영웅들에게 노고의 대가가 하사되기 시작했으니.
‘보스 퇴치 보상!’
드래곤 처치에 기여한 상위 헌터 5인의 옆으로 발광하는 구체가 내려왔다.
‘제발 폐! 제발 폐!’
기려는 두 손을 모으고 다급히 기도하기 시작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
결국 마지막까지 용의 장기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망할!’
절망하는 김기려.
그리고 이 순간, 일본의 랭킹 1위인 이토의 곁으로는 웬 화려한 대검이 내려오는데…….
“……!”
누군가가 혼자 실패했을 뿐이지.
사실 이번 공략은 성과가 좋았다.
헌터가 하나도 죽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게이트에서 주어진 보상마저 훌륭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오리, 여기에 와서 감정 스킬을 써봐.”
그 성과가 너무 ‘좋았던’ 것이 화근이라.
이토는 주어진 대검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봤다. 굳이 분석계 스킬을 써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마력을 각성한 자라면 누구라도 눈치챌 것이었으니.
[???] [등급 : ??] [설명 : ??]인류의 감정 기술로는 감히 편린조차 헤아릴 수 없는 이계의 재보라.
“감정… 불가?”
이는 하와이의 S급 게이트에서조차도 드롭되지 않았던 극한의 희귀 서열.
“레, 레전더리급이라고?”
레전더리 아이템의 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