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59
157화. 함께하다, 한신 (2)
“김기려 헌터!”
아이템 경매소 앞.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3시간가량을 마도구 구경에 소모했던 나는 집으로 향하던 중 낯선 목소리를 마주했다.
액면가가 대략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의문의 남성.
목소리에서부터 눈치챘지만 역시나 초면인 사람인데.
“흠?”
어디에선가 헐레벌떡 뛰어온 그 사람은 다급히 자기소개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신 길드의 조상오라고 합니다.”
한신….
한신?
“휴, 제보대로 아직 경매소에 계셔서 다행이네요. 아, 일단 다름이 아니라! 김 헌터님께서 지난주에 저희 길드 제안을 거절하셨었다고 전해 들었는데요. 이건 기억나시죠?”
조상오라는 인물의 설명이 이어지자 그제야 한신이라는 단어의 출처가 떠올랐다.
세밀한 데까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대충 정리하면 정하성을 영입하려고 노력했던 길드였지.
한데 그런 곳의 인사가 갑자기 난 왜 불러세우셨을까.
“개인적으로 저는 헌터님의 결정이 아쉽습니다. 그때 A급은 너무 약해서 안 된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이유로 까셨다길래…….”
“…….”
“솔직히 제가 실력 하나는 정말 자신 있거든요. 그러니, 실례가 아니라면 저에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실 수 없을까요?”
“기회?”
“헌터답게 게이트 공략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잠시 찾아뵌 겁니다.”
역시 썩 환영할 주제는 아니었다. 이 헌터는 지금 형성되지도 않을 일터에 고용해달라고 비는 셈이었으니.
“죄송합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어려워요.”
팀은 짤 생각도 없는데 정하성의 돈만 착취하고 있던 것이 들키면, 이쪽은 언젠가 서울 저잣거리에 효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달라는 그의 부탁을 완고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끝날 거였으면 저쪽도 사람을 이렇게 찾아오진 않았을 터.
“잠시만요. 김기려 헌터님! 저는 민간 기업에서 마수해체사 자격도 1급으로 취득했거든요. 그래서 보조 역할도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차림새가 저런 걸 보면 방금까지 게이트에 있다가 나온 걸까?
상대는 주황색으로 빛나는 갑주를 차려입은 채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걸음마다 들리는 철그렁대는 갑주 소음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열정 페이로 일하겠단 건데 이것조차 안 되나요?”
“그건…….”
“정말 A급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는 건가요? 절대?
솔직히 말하면 한신은 내가 갑자기 끼어든 것만 아니었어도 하성과 무난히 계약했을 테니, 그로서는 좀 억울할 법도 하지.
어쩌면 영웅의 동료가 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
그는 영예를 누릴 기회를 코앞에서 놓쳤기에 더욱 포기를 못 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더 말을 섞어봐야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조상오라는 사람은 이 행동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길을 앞질러가 이곳의 정문에 선다.
정확히는, 나의 앞을 가로막기 위하여.
“또 사람을 무시……! 아니, 저기요.”
이어진 건 조상오의 원색적 도발이었다.
“만약 내가 당신보다 낫다면 어쩔 거예요?”
“….”
“김기려 헌터. 제가, 막 가벼운 마음으로 실력에 자신 있다고 말한 게 아니에요.”
“….”
“똑같은 게이트를 두고 1:1로 누가 더 빨리 공략하는지 내기하면 이길 거란 생각도 있다고요. S급인 댁을 상대로.”
이런 소리를 듣고도 내 실력에 관심이 안 드시나?
조상오는 상당히 큰 목소리로 본인의 직업적 능력을 자랑했는데, 확실히 이렇게까지 나오면 제법 흥미가 일긴 했다.
‘A급이 S급을 공략 속도에서 이길 거라고? 각성 계열이 대체 뭐길래?’
그러나 이 생각은 차마 밖으로 드러낼 수 없다.
상대가 얼마나 훌륭한 헌터이건 간에, 돈벌이용 허위 계약에 불순물을 끼워 넣을 필요는 없는 법.
‘이름이 조상오랬지? 무슨 스킬을 쓰는 사람인지는 집에 가서 슬쩍 검색해보자…….’
나는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조상오는 무시로 일관하는 내 태도를 보고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아, 진짜. 등급만 믿고 더럽게 뻗대네.”
단지 대화를 피하고 싶었을 뿐. 상대를 이렇게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기요. 혹시 질까 봐 후달려요?”
“….”
“낡은 말해서 미안한데. 솔직히 좀 웃기네요. A급은 뭐, 같은 각성자도 아니라는 양 막 대하더니. 막상 길고 짧은 거 대보자니 아주 입을 꾹 닫잖아.”
비난의 강도는 점차 높아졌다.
“하긴 세이렌 때부터 알아봤어. 보니까 김기려 당신도 딱 그런 거지? 자기가 쉽게 잡을 수 있는, 상성에 맞는 던전만 편식하는 헌터.”
“….”
“그런 주제에 S급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니 좋으십니까? 예?”
아무리 봐도 초면인 사이에 주고받기에는 과하게 무례한 문장들.
그런데 조상오가 시정잡배처럼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아마 그는 자존심을 긁어서라도 S급을 판에 앉히길 원하는 것일 터.
‘도발 작전인가.’
하지만 이를 어쩌나.
김기려의 몸으로 들어온 것도 어언 몇 개월. 이쯤이면 나도 F급으로 사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버려서…….
“무시만 하지 말고 대답 좀 해봐! 너 사실 속성이 안 맞으면 던전 하나도 제대로 못 도는 거 아냐? 어?”
약자라는 소리는 이제 비난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야 사실이거든.
‘오냐~ 이 몸이 바로 그 밑바닥 허접이다.’
나는 조상오의 욕설을 가볍게 한 귀로 흘렸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면 좀 곤란하다.
험한 어조로 소리치던 조상오는 내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길을 돌아나가려 하니 순간 말을 멈췄고.
곧이어 자신의 팔에 짙은 마력을 흘리기 시작했으니.
‘잠깐, 마력?’
예전 같았으면 이변을 눈치챈 이 순간 뭔가 대처에 나섰겠으나, 방금 이야기했던 대로 나는 김기려라는 육신에 갇힌 불우한 마법사였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조상오가 모은 마력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대기 중으로 터져 나오기에 이른다.
피이익!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가 울렸다고 생각될 무렵. 고요한 허공에 갑작스레 들어찬 돌풍.
이는 조상오가 자신의 장비를 꺼내 들 때 생긴 풍압이다.
눈으로도 좇기 힘든 속도로 도끼를 뽑아, 그것의 날을 내 목까지 가져다 대다니.
도로에 버려져 있던 갖은 쓰레기들이 거친 기류를 이기지 못하고 저 뒤까지 부서질 듯 나뒹군다.
상대가 한 일이라고는 단지 무기를 꺼낸 것뿐이거늘. 어떻게 이런 궤멸적인 여파가.
“……!”
그런데 그 행동으로 생긴 변화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조상오는 그냥 반응만 보려 했던 건지. 실제로는 공격하지 않고 도끼날을 내 목젖의 10cm 앞쯤에서 우뚝 멈췄는데.
-툭, 주르륵…….
A급 헌터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가속도는 이 비루한 몸뚱어리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만다.
나는 목이 베였다.
저 도끼날에서 터져 나온 돌풍과 미세 마력만으로도 피부가 갈라져 혈액이 줄줄 샜다.
혈액이…….
“S급이 베였다고?”
“사람을 쳤어?”
나와 조상오는 동시에 놀란다.
하지만 어느 부분을 보고 경악했는지가 극명히 다르다. 저 A급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만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허, 어? 아니, 마력을 억누르고 다니네 뭐네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어어, 이건 대체 무슨 경우…….”
텁.
나는 당황하는 조상오를 뒤로하고 피가 스며 나오는 목을 부여잡는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이곳은 던전 아이템 경매소의 인근 도로.
가뜩이나 오가는 헌터가 많아 육체 수복을 시도하기가 애매한데…….
“가만, 당신 혹시 밑천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거 아니야? 보니까 반응 속도부터가 느려터졌는데?”
회복 마법의 존재를 숨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였다.
나는 실실대는 조상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 외쳤다.
“지금 그딴 걸 말할 때예요? 아니, 갑자기 무기를 꺼내다니. 이게 무슨 짓…….”
“아, 그럼 나중에 고소라도 하시든가요.”
하지만 그 헌터는 뻔뻔한 기세로 내 말을 끊어버렸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 하찮은 A급이 툭툭 쳐봤자 우리 대단한 S급님이 흠집이나 날까 싶었는데.”
흘끗. 조상오는 목을 손으로 짚고 있는 내 모습을 흘겨보며 헛웃음을 터트린다.
“김기려 헌터, 하나만 물읍시다. 만약 여기에서 내가 S급을 뒤지게 패서 중환자실이라도 보내면.”
“뭐?”
“솔직히 감방에서 좀 썩다 나와도 이득이 아닐까?”
천외천의 존재로 숭배받는 각성자를 쓰러트린 A급 헌터라.
그래.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니만큼 세상이 떠들썩해질 것 같긴 하다. 도덕적인 부분에선 질타받더라도 모두가 그의 실력 하나는 확실히 인정하겠지.
상위 계급으로의 하극상은 응당 그런 효과를 남길 일이다.
‘제기랄.’
하지만 이번은 여러모로 경우가 잘못됐지.
이쪽은 F급에 불과한 마력을 약물로 뻥튀기시켜 등록한, 허세 덩어리일 뿐인데!
“뭐야, 무슨 일이야?”
“싸움 났나 봐.”
웅성웅성.
그 사이, 어느덧 주변을 지나던 헌터들도 자리에 멈춰 서서 이쪽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조상오 헌터……. 이번 실수는 제가 봐드릴 테니까 이쯤 하시죠.”
나는 목격자들을 가리키며 진짜 큰 문제가 되기 전에 멈추라 설득했지만, 조상오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어? 어어, 뭐 볼 거면 보라고 합시다. 어차피 중환자실은 농담이고, 난 그냥 여기서 댁의 거품만 살짝 걷어낼 거거든.”
그리고 이 망설임 없는 목소리로 말미암아, 나는 눈앞의 인물이 대화로 설득되지 않을 종자임을 인지했다.
애당초 날붙이를 꺼내 들이미는 것은 어지간한 강단이 없으면 할 수 없을 행동이지.
사이코패스면 모를까.
‘…맞나?’
어쨌든, 저 헌터는 S급이라는 존재에게 참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가만 보면 왜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도 얼추 감이 잡혔다.
몸에 두른 갑주부터 귀에 착용한 사소한 액세서리까지.
무려 에픽급이 2종. 혹은 이에 상응하는 고성능의 아이템을 도배하고 있었기에 그는 같은 A급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일 터다.
확실하다. 조상오의 장비는 나조차도 탐이 날 정도다.
하지만 이 지구의 술사가 뭔가를 간과하고 있군.
‘죄다 무식하게 마법의 위력을 끌어올려 주는 장비뿐……!’
어떤 마도구든, 저렇게 한 능력에 특화하게 맞추면 어느 부분에서 큰 구멍이 나기 마련이거늘.
“거품?”
잠시 뒤. 나는 깊은 심호흡과 함께 짧은 문장을 중얼거렸다.
“거품이 어디에 꼈는지 한번 볼까?”
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발언이다.
이건 그냥 혹시 몰라 시간을 끈 거고, 사실 나는 아까 쟤가 목격자들을 확인한답시고 뒤를 돌아봤을 때부터 호주머니의 그걸 쓴 상태라.
[깜짝상자!] [등급 : 유니크] [설명 : 주변 일대에 강한 [기절] 효과를 줍니다.]참고로 이 업계는 기절 내성 장비를 착용하고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애초에 그런 마법을 쓰는 몬스터가 몹시 드물며, [깜짝상자!]의 효과는 기절 저항 반지 한둘로 막힐 게 아니었으니까.
다른 [깜짝상자!] 소유자들은 이걸 사실상 동귀어진의 수로 사용한다는데 저놈이 이 상황을 어떻게 예측했겠나.
“하, 새끼. 말하는 꼴이……. 억.”
풀썩!
약 2초 뒤. 생각했던 대로 조상오는 하던 말조차 마치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졌다.
확률의 농간조차 없는 간결한 결말이었다.
장비빨만 믿고 설치다가 큰코다치는 꼴이 마치 언젠가의 나 같기도 하군.
“흠.”
하지만 아무튼간에.
일단 명성에 눈이 먼 미친 하이에나는 무사히 대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작은 문제가 뒤따랐다.
“으어?”
“헉!”
철퍼덕-!
마도구의 효과 범위가 은근히 넓어서 인근의 구경꾼들까지 덤으로 기절해버렸거든.
“이런.”
세어보니 바닥에 쓰러진 피해자가 얼추 다섯.
이것이 상해죄의 조건에 들지 않아야 할 텐데. 아마 자기방어로 정상참작이 되겠지?
…되는 거지? 한국의 법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