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175
173화. 최씨 자매 (2)
대한민국은 던전 쇼크 이후 한 국가와 강력한 수교를 맺고 있다. 그 대상은 바로 싱가포르다.
이 세상에는 한때 [얼음 궁전]이라는 광활하고 번거로운 게이트가 번창했었는데.
그것의 출현처는 딱 싱가포르와 한국으로 한정됐고.
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서로 교류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협력 의식이 생긴 지라.
한국과 싱가포르는 이전부터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확실히 [얼음 궁전]을 계기로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친밀성이 어느 정도냐면.
서로의 나라에 처치 곤란인 게이트가 생길 때 급히 사냥꾼을 보내줄 정도는 됐지.
양국의 헌터 파견 제도.
가장 유명한 예시는 정하성의 [백인탑] 공략.
그리고 다음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최진이라는 인물의 용 사냥이었다. 싱가포르는 이전부터 용종이 자주 출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용 사냥꾼이라.’
춘천에 사무실을 둔 ‘믿음’ 길드의 간판 인력. 최진.
서울 북부 탈환전에서 활약한 1세대라느니. 용을 제일 많이 잡아본 사람이라느니.
하여간 그 헌터를 향한 소문은 참 다양하고 화려했으나, 그 어떤 것도 이 문장만큼 흥미를 자극하진 못했다.
[하위 90% 눈물의 각성자…….하루아침에 ‘A급’으로 환골탈태한 사연? 정성일보 : 20XX-12-22]
몇 년 전의 어느 기사로 알 수 있듯, 그녀는 ‘태생 등급이 바뀐’ 최초의 사례였으니까.
‘오호라.’
나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각성자를 주시했다.
귀를 완전히 드러내는 세련된 스타일의 숏 커트. 턱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
그리고 리자드맨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의복을 목 끝까지 꽁꽁 싸맨 여성.
작금의 사안들로 미루어 봤을 때. 아마 상대는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이거나 혹은 단순한 게으름뱅이일 확률이 높다.
돈도 잘 버는 A급 헌터가 오래된 상처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건 귀찮음 말고는 딱히 짚이는 사유가 없으며. 그렇게 추측하면 체모가 짧은 것도 어느 정도는 비슷한 결로 해석되니.
“누나! 여기요. 여기!”
옆에 있던 안윤승은 상대를 발견하자 손까지 번쩍 들어 반겼는데.
그렇다. 오늘은 요 A급의 힘을 좀 빌렸다.
언젠가의 대화에서 슬쩍 나온 이야기다만, 사실 여기 계신 안 헌터님은 저쪽의 드래곤 슬레이어랑 사촌지간이거든.
‘핏줄이 좋네. 가문에서 우수한 술사가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
그 여자는 로퍼의 굽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가까워진 각성자를 향해 정중히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최진 헌터님.”
그러자 최진이라는 사람이 두어 발짝을 남기고 근처에서 멈췄다.
‘흐음.’
그나저나 이게 바로 [용의 심장]이 적용된 모습인가?
나는 눈앞에 있는 인물의 상태를 훑었다. 확실히 상대의 심장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마력이 날뛰고 있었다.
‘이건 용 사냥꾼이라기보단…….’
반인반룡.
나는 그 여자를 보며 어느 단어를 연상했는데, 그때 시야 가장자리로 불쑥 새로운 그림자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최진의 머리카락을 뺏어다 붙이기라도 했는지 아주 긴 생머리의 각성자.
예리한 송곳니가 인상적인 그 인물은 거의 최진에게 매달리다시피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 상태로 얼굴만 빼꼼 비쳐 말했다.
“저는 최진희예요!”
“최진이에요…. 라고? 두 분 이름이 같아요?”
“아니요. 최. 진. 희. 라고요.”
자식들 이름을 왜 이렇게 헷갈리게 지어놨담.
아무튼 둘이 외모도 비스름하고, 같은 최 씨이니. 저 여자는 아마 인터넷에서 말한 그 각성자이리라.
‘동생 쪽이군.’
최진이 자매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니.
나는 상대방의 소개를 듣고 뒤늦게 육신의 성명을 밝혔다.
“네. 최진희 씨.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김기려입니다.”
그런데 내가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밀자 갑자기 진희라는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으깬 석류 같은 빨간색 눈.
그러고 보니 지구인의 홍채에서 저런 색깔이 나타날 수 있던가?
“뭐예요?!”
턱. 곧이어 진희는 내 손목을 붙잡고 외쳤다.
“왜 이렇게 맛있어 보여요? 허, 진짜 맛있겠다……. 대박, 딱 한 입만 마셔봐도 돼요?”
“어, 네?”
“세상에. 오빠, 피가 엄청나게 맛깔스러워 보여요!”
“지금 무슨…….”
“진희야! 그만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할 무렵. 최진 헌터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제지한다.
동생을 내게서 떼어낸 것이다.
“초면인 분에게 실례잖아. 저번에 그렇게 혼나고 벌써 잊었어?”
“아니…….”
“왜 그래. 진짜!”
최진은 자매의 돌발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인데, 그걸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니 곧 안윤승이 상황 설명에 들어갔다.
“혀, 형님. 죄송합니다. 진희 헌터는 아무래도 각성 능력이 그렇다 보니까 흡혈 욕구가 좀 있대요. 근데 위험할 정도는 절대 아니고…….”
“각성 능력?”
“모르셨어요?”
날 선 치아와 붉은 눈.
나는 외계인이라 이 정도 외관 차이는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알고 보니 저것이 그녀의 고유 능력이었던 모양이다.
“진희 누나는 변양계 각성자예요. 늑대인간처럼 모습이 2가지인 느낌?”
“아하.”
“실제로는 저렇게 뱀파이어를 똑 닮았지만요.”
여기도 변신술이 있긴 있었군.
나는 공상 속의 존재를 모방하는 술사가 있다는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웬걸. 상대를 관찰하려고 시선을 고정하자마자 맞은편에서 살기가 스멀스멀 흘러와서.
‘어라?’
최진 헌터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동생을 잠깐 쳐다본 게 저렇게 도끼눈을 뜰 일은 아니지 않나?
“김기려 헌터, 잠시 실례했습니다. 어쨌든 오늘은 저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하셨죠.”
나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눈초리에 쫄아서 숨도 조용히 쉬고 있었는데, 그렇게 만든 고요함 너머로 돌연 소음이 흘렀다.
-삐리리리~ 띠리리링.
최진의 스마트 워치에서 들리는 알람 소리였다.
“아이, 씨.”
길드의 연락인가?
“분명 제대로 확인하라고 했는데 왜 또 이걸로 사람을 오라 가라…….”
최진은 제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미간을 와락 구긴다.
그리고 그 후에는 우리에게 회삿일이 생겼다며, 잠깐 자리를 비워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안윤승. 나 올 때까지 네 누나 잘 챙기고 있어. 절대 혼자 두지 마. 알겠어?”
“네!”
최진은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그 잠깐 사이에 이쪽을 또 째려본 건 덤이다.
참 아리송하지. 나는 저 헌터가 왜 저리 적대적인지 도통 모르겠거든.
‘그냥 성질머리가 더러운 건가?’
뭐, 하지만 이런 이유 없는 기 싸움쯤이야 알파우리에선 일상이었으니.
자리에 남은 우리는 최진이 올 때까지 근처 라운지에서 음료나 마시기로 했다.
참고로 여긴 믿음 길드 1층 로비다.
그리고 지구에는 아주 좋은 문화가 하나 있지. 이만한 규모의 길드는 대부분 건물 내에 자판기가 있다는 거.
***
이윽고 도착한 휴게실.
-달그락, 달그락. 덜컹!
기려는 자판기에서 제 몫의 사이다를 뽑고, 다음으로는 안윤승이 마실 설탕커피의 버튼을 누른다.
“아뿔싸!”
“왜?”
그런데 구매한 커피가 종이컵에 채 담기기도 전에 안윤승이 갑자기 외쳤다.
“역시 휴대폰을 차 안에 두고 내렸나 봐요.”
“그래?”
“형님, 죄송하지만 주차장에 잠깐만 다녀와도 될까요?”
“뭘 그런 걸 다 허락을 맡으려고 그래. 다녀와.”
주루루룩.
윤승이 방을 떠난 사이, 기려는 자판기에서 나온 커피를 회수하고 자리로 가 앉았다.
원형 테이블에는 얇은 생머리를 한 최진희가 미리 앉아 있는 상태였다.
“흠.”
졸지에 남의 친척과 독대하게 된 상황.
어색한 공기 속에서 상대는 빈손을 꼼질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니 기려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체를 이형으로 변화시키고 고정하는 행위는 술식이 꽤 복잡한데. 어떻게 이런 포유류가 그런 마법을 자연적으로 타고날 수가…….’
천잰가?
기려는 상대의 재능을 높게 샀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로 상념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저기!”
일단 운부터 떼고 한참 동안 말을 고르는 진희. 무슨 이유로 저렇게까지 망설이나 했더니만.
“제가 오늘 점심을 안 먹었어요.”
“네?”
“그래서 힘들어서 그런데요. 딱 한 번만 피 마셔보면 안 될까요?”
“피?”
“배가 고픈데. 진짜로.”
꼴깍.
각성자의 탈을 쓴 현대의 흡혈귀는 이제 상대를 보며 군침까지 질질 흘렸다.
‘혹시 나한테서 뭔 냄새라도 나나?’
타인이 대뜸 식료품 취급을 해오는데 신경 쓰이는 건 당연지사.
기려는 뒤늦게 팔을 들어 제 몸에서 무슨 향이 나는가 확인했는데, 역시 이렇다 할 특징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다. 같이 온 윤승에게는 저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서 왜 이쪽의 피만 요구하는지.
“혹시 안윤승은 가족이라 입을 안 대는 거예요?”
“네?”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기려는 이 김에 궁금증이나 해소하기로 했다.
“아까부터 자꾸 제 피가 맛있을 거라고 하시는데 대체 기준이 뭔가 해서…….”
그가 질문하니 변신술사는 곧 답한다.
“몰라요.”
좀 당황스러운 답변이었지만.
“근데 그냥 맛있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요. 일단 안윤승은 엄청 별로.”
“별로구나…….”
“언니 말로는 내가 등급이 높은 걸 좋아하는 것 같대요. 하지만 저번엔 B급이 더 맛있던데?”
그 여자는 고개를 모로 떨군다.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튼, 오빠 피는 확실히 맛있을 거예요.”
썩 기쁜 평가는 아닌데.
그녀는 얼마 안 가 새무룩한 얼굴로 꿍얼거렸다.
“아, 근데 진짜 한 모금만 먹으면 안 되나? 하여간 그 무서운 아저씨 때문에 뭐야. 이제 언니가 맨날 혼내.”
거의 혼잣말이었지만 그래도 이 거리에선 다 들리지.
“무서운 아저씨?”
기려는 자판기에서 뽑았던 캔 음료를 마시려 하는데, 뒤이어 흘러나온 이름 탓에 행동이 일순 멈췄다.
“창호라는 각성자요.”
변신술사는 이어서 말한다.
“옛날에 그 사람을 만났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먹음직스런 느낌이 났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팔을 물었고.”
“설마.”
“엄청나게 맞았어요.”
그럼 그렇지.
그 작자는 자신에게 이를 드러낸 헌터를 가만둘 성격은 아니다.
“그리고 오빠도 창호랑 똑같아요!”
하지만 대화가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다.
“똑같아?”
“똑같이 못 참겠어요.”
“어, 혹시나 하고 묻는 건데 정하성이나 에스더에게서도 비슷한 기분이 드나요?”
“정하성? 살짝요. 그리고 뒤에 말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는데.”
최진의 추측처럼 등급과 관계가 있던 건 아닌가.
각성치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을 정하성이 살짝인 것에 반해, S급 하위에 머무는 강창호가 후한 평가를 받은 상황.
종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원래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다 저런 법이니 뭐.
기려는 그 흡혈동물의 취향에 대해서 고민해보다 곧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래. 사람이 먹고 싶은 건 먹고 살아야지.’
아까부터 느껴지는 저 애절한 시선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최진희 헌터, 잠깐 지갑 좀 보여주시겠어요?”
이어진 건 다소 뜬금없는 요구.
상대방은 기려의 말에 어영부영 지갑을 꺼냈는데, 그 가죽 속에는 노란색의 지폐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약 15만 원 상당의 현금.
“어디 보자, 그 현금 저한테 다 주면 피 한 모금 줄게요.”
“네?”
“이게 어찌 보면 밥 제공인데, 그럼 밥값을 내야지.”
복원술에 뛰어난 그는 잃은 혈액쯤이야 금세 채울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득을 볼 기회를 굳이 마다하진 않았다.
번 돈을 족족 마도구에 꼴아박아서 그런가. 요즘 들어선 정말 점심값도 아껴야 할 판이기도 하고.
‘난 저걸로 소고기나 사 먹을까.’
기려는 이왕 동정심을 베푸는 김에 소소한 대가를 받기로 했다.
물론 최진희 쪽은 이 제안을 몹시 기뻐하며 받아들인다. 솔직히 15만 원쯤은 B급 헌터에게 있어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규모라.
“진짜? 진짜로 마셔도 돼요?”
벌떡!
최진희는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걸 본 김기려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뚝의 소매를 걷는다.
굶주린 이를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하는 마법사. 여기까지만 보면 참 훈훈한 광경인데…….
“일단 힘껏 물어봐요. 내가 지금 방어력 조절이 좀 힘든 상태라.”
참고로 한국은 혈액관리법 제3조에 의거하여 혈액 매매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여긴 외계인이라 그런 법률을 잘 모르고.
“흐악,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국가는 매혈이 불법. 위반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그걸 짚어줄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