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15
213화. 에고 소드 (4)
김기려와 정하성은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들은 던전에 입장할 때와 비슷하게 옷매무새에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회복약을 겉에 발라 어영부영 만든 꼬락서니.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경비의 추궁은 피할 수 있었다.
하성은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백미늘장]으로 상한 상의를 가린 채 털레털레 걸어 나갔다.
“아 참.”
하지만 배웅을 해준 협회 직원들과 헤어진 그때.
기려가 귀가하려던 하성을 붙잡고 잠시 대화를 이었다.
“하성아. 그런데 넌 대체 새벽 4시에 던전을 왜 왔던 거야?”
“예?”
“혹시 요즘도 막 일 안 하면 죽겠고 그래? 또 요양할 때 된 거 아니냐?”
물론 돌아온 반응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떨떠름함이었지만.
“지금 그런 질문을 저보다 먼저 와계셨던 분이 하시는 겁니까……?”
하성은 진지하게 당황했다.
동시에 그동안 자신이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였었는가를 단번에 이해하기도 했다.
이렇게 역지사지를 당하기 전까지는 왠지 감이 오지 않았거늘. 새벽바람에 공략하러 다니는 헌터는…….
그래. 확실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꽤 이상해 보인다. 거기에 정말로 건강이 염려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원래 이럴 예정이 아니었고, 단지 눈이 일찍 뜨여 어쩔 수 없이 나온 것뿐인데.
“음.”
김기려 헌터는 아예 계획한 것처럼 그 던전에 눌러앉아 있지 않았나……?
상대가 작정하고 출근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구세주는 마치 그 던전 안에 몇 시간은 있었던 것처럼, 퀴퀴한 동굴 냄새를 휘감고 나타났었으니까.
‘던전 도는 기계라…….’
김기려 헌터는 대화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이를 본 하성은 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등허리가 서늘해질 정도의 괴리감을 느꼈다.
비스트의 습격.
그리고 교전 끝에 적을 살해했다는 이 자극적인 사건들을 모두 겪고도 평정심을 유지한다고.
이게 과연 사람이 맞나?
기계라는 차가운 이명은 저런 사냥꾼에게야말로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
하성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홀로 감상을 정리했는데. 이때 문제의 금발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손이 아직도 벌벌 떨리네. 어휴, 무서워……. 오늘은 집에 가자마자 문단속 잘하고 이불에서 나오지 말아야지.’
이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기려는 겁을 잔뜩 먹어 표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태였다.
솔직히 지구인을 죽였다는 것은 제 손으로 많은 생명을 거둬온 대마도사의 입장에서 썩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신성나무의 [수호] 효과를 찢어 가를 듯이 달려들던 브루클린.
위압적인 S급 헌터의 마력.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던 느린 팔다리.
확실히 방금의 상황은 한 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지금까지도 굳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지만.
“…예전엔 죄송했습니다.”
“음?”
이것이 제삼자에게는 냉혈한과 같은 면모로 비치는 상황.
돌려받은 [일몰의 검]을 홀더에 고정하던 하성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김기려 헌터님께 의무 하나도 지키지 못하냐느니. 왜 그리 사람이 이기적이냐느니 하고 질타한 적이 있었는데.”
“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로 주제넘은 말들이었네요.”
“그건…….”
“기려 헌터님은 이런 새벽 시간에도 공략을 다니는, 그런 분이셨는데.”
세이렌. 가고시마. 그리고 오늘의 사건까지.
국민의 영웅은 제 옆에 서 있는 사냥꾼이 그간 해결해 왔던 일들을 찬찬히 곱씹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뉘우침이 묻어나오기도 하는 나름 복잡한 미소였다.
“요즘 헌터님 덕분에 제가 한결 마음 편하게 지내는 건 아십니까?”
정하성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청년의 얼굴은 어느덧 드리웠던 그림자가 물러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김 헌터님은 게이트 공략 점수가 대체로 낮으시죠. 하지만 헌터 관련 일은 새벽부터 시작하시는 걸 보니…….”
“어?”
“역시 평소에는 국가 같은 곳에서 시키는 다른 중요한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나 봐요.”
기려는 어째서인지 입을 꾹 닫고 침묵을 지킨다.
“왜 항상 저를 그렇게 걱정해 주셨는지 알 것 같네요. 새벽에 다른 헌터를 마주치니 확실히 많은 생각이 듭니다.”
“…….”
“김 헌터님이야말로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정하성은 상대방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그럼 그렇다는 듯이, 알아서 말을 이었고.
“아무튼, 오늘은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항상 감사드립니다.”
하성은 기려 덕분에 구사일생했다며 몇 번이고 확실하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데.
그는 은연중에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을 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했다고는 하나 어떻게 최상급 포션을 쓰고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 있었는지.
이래서야 노하우를 전달받는 수업이 모두 끝나고도 저 사람과 팀이 되는 건 무리인 게 아닐지.
“하하…….”
그렇게 말하는 하성은 치솟는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정작 스승의 반응은 덤덤하기만 하다.
이 화염술사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진 건 아니었으니까.
외계의 대마법사는 오늘의 일을 교훈 삼아 제자의 작은 약점을 직접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돌아온 주말.
기려는 이번 수업에선 평소와 다른 연습을 해보자며.
네가 대인전에서 그렇게 약한 줄은 몰랐다고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서 왔는데.
“네?”
대마법사가 준비한 약점 극복법이란 바로 사람을 태우는 연습이었다.
자신이 보기엔 네가 동포를 해치지 못하는 심약한 성품이라 패배했던 것 같으니.
앞으로는 각성자와의 결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능력 사용의 거부감을 줄여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 훈련에서 표적 역할을 할 것은 당연히 어느 삼백안 남성의 몸뚱어리.
“이젠 하다 하다 아예 김기려 헌터님을 향해 능력을 쓰라고요.”
그 말을 들은 하성은 반쯤 창백해진 얼굴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언제나처럼 수업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 뭐, 다음에도 비스트 같은 미친 인간이 달려들면 멀뚱히 처맞고 있겠단 거야?”
기려는 이참에 하성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확실히 가르쳐 두고 싶었으니.
“저기, 죄송하지만 역시 김기려 헌터님은 이런 일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모르시는 것 같……!”
“알아.”
“예?”
“이제는 나도 다 알고 시키는 건데?”
그렇게 정하성은 강사의 협박을 못 이겨 매우 거친 방법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게 되었고.
외계 생물은 사람을 태울 수 있게 된 화염술사의 모습을 보며 흡족한 칭찬을 보냈다.
다소 뒤틀린 형태지만, 어쨌든 이것도 그 나름의 제자 챙기기였다.
***
월요일이 돌아왔다.
“으음.”
남들은 출근하기 바쁜 시간. 나는 갓 만든 소박한 집밥을 소반 위로 올리며 이른 점심 식사 준비를 마쳤다.
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쪽은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한 상태.
강창호가 일어나기 전에 사건을 수습했기 때문에 추궁도 당하지 않았고.
던전 리셋 시간인 6시 30분에 맞춰 전투의 증거 또한 말끔히 인멸됐을 테니 걱정하던 문제는 모두 잘 넘어갔다.
이제부터는 괜한 사고에 휘말리지 않게 안정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어째 나는 뭘 얻으려고 노력하면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물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차피 폐를 획득한 이상 앞으로는 남는 게 시간이니까.
시체를 어떻게 구할지는 앞으로 좀 더 고민해 봐도 되겠지.
그렇게 나는 집에 틀어박혀 계약자를 속일 더미 제작을 속행하기로 했다.
[속보입니다.]돌아온 음력 8일.
정확히는, 브루클린이 사망한 지 약 24시간이 지난 날.
이때쯤에는 켜둔 휴대전화에서 [모방 도시]의 클리어를 알리는 속보가 흘러나왔지만, 솔직히 별 감상이 들진 않았고.
[……모방 도시는 특정 함정을 파훼하면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그래. 고작해야 C급 던전인데 지구인들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공략이 안 될 리가 없지.’
그 던전은 ‘전이’라는 특수한 탈출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우두머리가 죽으면 던전 안의 공략자 모두를 바깥으로 강제 송환하는. 요컨대 [백인탑]이라는 모 게이트에서만 선보였던 전송을 일으켰다 등등.
아나운서는 게이트의 무사 공략을 축하하며 갖은 정보를 쏟아냈지만, 결국 어디에서도 비스트의 행방만은 언급되지 않았다.
‘브루클린 모건이라.’
하지만.
‘흠.’
아무리 당장 조용하다고 해도, 이 세계에는 틀림없이 브루클린의 사망을 아는 자가 있다.
‘정보를 감추고 있는 건가…….’
왜냐하면, 브루클린 모건의 몸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기사의 맹약]이 걸려 있었으니까.
‘술식이 특징적인 형태라 집중해서 보면 일반 저주와 구분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아이템은 계약 당사자가 죽을 시 이를 상대에게 알리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니.
미국의 S급 헌터와 굳게 약속했던 인물.
그 인물만은 브루클린이 사망했다는 사실과 그 여자의 사망 시각을 정확히 알 수밖에 없다.
이미 게이트는 리셋도 거쳤고, 공략마저 완료된 상태라 물증이 남진 않았을 거로 생각하지만…….
“으음.”
나는 눈을 굴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살인죄의 꼬리가 잡혀봤자, 몸을 갈아탈 예정인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고.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곧 이 문제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맛있는 식사를 한 뒤 힘내서 연구나 열심히 이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참고로 오늘의 메뉴는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팔팔 끓인 된장찌개다.
최근 들어서 알게 된 건데 이 몸뚱어리도 그나마 쓸만한 기능이 있었거든.
우리 기려가 의외로 찌개를 끓이는 솜씨가 꽤 괜찮지 뭐냐.
***
브루클린 사망 1일 차.
【#A new chat room】
[P : 메시지 확인했습니다.] [靑春 : 맙소사! 모건을 잃다니!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이 멍청이이이이 :(] [靑春 : 역시 그 바보 같은 놀음을 진즉 멈췄어야 했는데] [SPECTRUM : 뭐 나라고 이리 될 줄 알았나? 모건이 비스트라는 건 우리도 최근 알게 된 사실이야. 그 미친 여자가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그런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어. 게다가 너희들도 처음엔 안 말렸잖아. 그게 각성자를 알아서 죽이고 다닌다는 걸 들었을 때는 오히려 잘됐다고 부추긴 주제에.] [333 : 걱정되네요.] [333 : 그러게 처음부터 목줄을 튼튼히 걸었으면 좋았잖아요. 당신의 허가가 없으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도록 똑똑히 교육해뒀다면 이런 사고도 없었을 거예요.] [SPECTRUM : LMAO (울면서 웃는 이모티콘)] [SPECTRUM : 그런 협상을 강행했다가 S급 헌터가 폭발하면 나 혼자 뒤집어쓰고 말이지.] [SPECTRUM : 난 그 여자에게 추가 계약으로 손대지 말아야 할 인물 제한까지 안전히 걸어뒀어.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보험은 다 들었다고.] [SPECTRUM : 하여튼 돈 발라서 턱걸이로 들어온 자식이 말은 많아.] [P : 진정하시고.] [靑春 : 친구들,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시한이 꽤 가까운데 정말 모건 없이도 되겠어?] [SPECTRUM : 걱정 마. 난 아직 둘이나 더 있으니까.] [靑春 : 그런데 모건은 도대체 왜 죽은 건지…] [SPECTRUM : 죽기 전에 브루클린이 본인의 신분으로 모방 도시에 입장한 것까지는 감시로 확인했는데. 솔직히 거기엔 S급을 죽게 할 만한 요소가 없었으니 사람에게 살해당한 게 틀림없어. 문제는 그*빌어먹을*게이트의 입장자 명단에 치명적인 누락이 있다는 거고.] [靑春 : 입장 시간. 그리고 퇴장 시간.] [SPECTRUM : f**k 하룻밤 만에 그곳에 들어갔다 나온 S급 헌터의 수가 너무도 많아! 그래도 내 생각엔, 일단 2명 이상이 함께 입장한 중국과 한국 중에서 하나인 것 같긴 하지만.] [靑春 : 맞아! 설마하니 모건 같은 헌터를 1:1로 쳐 죽이는 괴물이 세상에 존재하겠어?] [P : 위험한 발언이군요.] [P : 게다가 50% 확률로 범인이 한국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불안해지는데.] [333 : 확실히.] [SPECTRUM : Mr.P, 그런데 설마하지만 이런 일로 내 권리가 박탈당하는 건 아니겠지?] [P : 음…] [P : 네.] [SPECTRUM : 그래. 그럼 브루클린이 공략 중이던 EX급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P : 방치하면 알아서 물러납니다. 어차피 그 게이트의 보상은 의미도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은 당신의 일에 집중하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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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 차.
“후루룩.”
비스트가 처리된 지 며칠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충격적인 속보입니다.]미국은 자신들의 가장 유명한 헌터가 자취를 감췄다는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요즘은 좀처럼 정보 통제가 쉽지 않은 시대.
그래서 스펙트럼 길드는 얼마 안 가 한계를 느끼고 브루클린 모건의 실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야 마는데.
이런 혼란한 시기에 모 외계인은 방구석에서 생각 없이 밥이나 먹는 중이었다.
자기 육체가 찌개류 조리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의 여러 음식을 직접 시도해 보고 있었으니까.
“아니, 이거 진짜 맛있네. 지금이라도 헌터 때려치우고 백반집이나 차릴까?”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S급 헌터를 쳐죽인 주제에 소름 끼칠 정도로 일상을 잘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48시간가량이 더 지난 시점.
정확히는 브루클린 모건의 실종설로 인한 열기가 채 가라앉기 전쯤.
식사를 진행 중이던 대마법사의 시선은 우연히 새로 뜬 인터넷 기사를 발견하게 되는데.
[中, 국제 토너먼트 개최 논의로 논란…….]‘마법을 허용하는 시합이라고?’
동아시아의 한 국가는 혼란의 시기를 틈타 모종의 국제 행사를 계획하여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