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
21화. 각성 재검사
그들에게 있어서 다행인 건. 그나마 이 김기려가 적대적으로 나오진 않았다는 것.
“방금 분석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헌터가 주고 간 물질을 감정했고, 정보가 진짜일 확률이 높대요.”
“그래?”
“우리 길드에 이런 걸 선뜻 넘겨주다니!”
이건 분명 호의 표시다.
역시 S급 헌터인 당신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며 비서가 밝은 기색을 보이자 에스더가 싸늘히 냉소했다.
“뻔히 약한 것들이 알랑댈 때나 귀엽지. 이건 오히려 무서운데.”
이내 짧은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그 김기려라는 사람 헌협 프로필 좀 뽑아와.”
“알겠습니다.”
“아이템을 썼든 뭘 했든 내 스킬이 전혀 먹히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서에스더는 의자에 푹 몸을 기대앉아 한숨을 쉰다.
“뭐 하는 인간인지 앞으로 좀 봐야겠어.”
통유리로 된 대표실의 창가에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완성한 자신만의 풍경이건만, 에스더는 요즘 들어 이 공든 탑이 언제고 무너질 사상누각으로 느껴졌다.
***
한편.
서울시 구로구 한국마탑 본사 앞.
“역시 형님은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그동안 아무도 통과하지 못한 마탑 길드의 미로를 단번에 해결하신 데다, 에스더 헌터에게 직접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으시다니! 감정 스킬이 있으셨군요!”
“…….”
“하지만 진짜 대단한 점은 그 많은 돈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단 거죠. 저도 아직 억 단위를 보면 흔들리는데, 형님은 오히려 돈 따위로 자길 움직이려 하냐며 단호하게……!”
“여기 잠깐 있어 봐.”
“어? 어디 가세요?”
그는 이번 교섭에서 느낀 게 많은 모양이다.
안윤승은 건물을 나오자마자 참았던 말을 기관총처럼 늘어놓았지만, 아쉽게도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곧장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생수를 샀다.
그리고 맑은 물을 입 안에 부어 넣어 입에 남은 커피 향을 몇 번이고 희석했다.
“크아아아악. 퉤!”
앞으로 커피라는 단어를 잘 기억해두자.
이 거지 같은 음료를 두 번 마셨다간 혀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
“휴, 이제 좀 살겠네.”
응급처치를 마친 뒤.
나는 안윤승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길바닥에 멀뚱히 서 있던 윤승은 내가 돌아오니 반색했다.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아직 3시밖에 안 됐으니 게이트에서 일 보실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
그나저나 참 편리한 지구인이란 말이지.
대신 한국마탑과 접촉해준 것도 고마운데, 안윤승은 같이 온 김에 게이트 일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래서 한국에 흥부와 놀부라는 전래동화가 있나 보다. 은혜를 베풀어두면 나쁠 게 없다.
“저, 기려 형.”
“응?”
“그런데 아까 에스더 헌터에게 넘긴 물건이, 형 혼자서 알고 계시던 거라고 하셨는데….”
날씨가 덥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안윤승의 말을 경청했다.
“저도 지금까지 그런 물질은 들은 적이 없거든요. 화염 박쥐의 불꽃을 단번에 꺼버리거나, 건물을 튼튼하게 해주는 그런 거요.”
“내가 얼마 전에 새로 찾은 거니까.”
“그런 신물질 발견이 어떤 가치인지……. 아시는 거죠?”
당연히 알지. 이 미개한 원시 술사 놈아.
“그런데 아이템 정보를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굳이 마탑에 넘겼다는 건. 그으……. 혹시 헌터 협회를, 싫어하시나요……?”
나는 그가 한 말을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안윤승이 오해를 한 것 같다. 이번 거래는 확실히 꽤 손해를 본 게 맞지만.
내 의도는 따로 있었으니까.
“아니. 협회에는 아무 감정 없는데.”
“그렇죠? 휴.”
안윤승은 내 대답에 눈에 띄게 안심하다, 이어진 말을 듣고 번쩍 놀랐다.
“이건 그냥 에스더 헌터에게 잘 보이려 했던 거야.”
“예?”
윤승은 덜컥거리는 보도블록을 잘못 밟아 크게 휘청거렸다.
평소에는 저런 일이 없는데, 아마 당황했다는 증거 같다.
“워, 워낙 건조한 이미지셔서 당연히 그런 곳에도 관심 없으실 줄 알았는데.”
“그런 곳이라니?”
“에스더 같은 분이 이상형이세요?”
이번엔 무슨 착각을 했는지 알겠다.
이 자식 상상력이 풍부한데? 좋은 마법사가 되겠군.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나는 얼빠진 표정의 안윤승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구인 특유의 부정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그리고 이내 모든 비밀을 밝혔다.
“윤승아, 내 말 잘 들어. 이건 너한테 해주는 충고야.”
“아, 넵!”
“앞으로 저주 속성의 헌터를 만나면 무조건 친절히 대해.”
“네?”
“그편이 너에게 좋을 거야.”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직 저주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지.
하지만 저주를 잘 쓰는 술사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알고 나면 다들 행동이 바뀔 것이다.
“예. 기려 형. 그럴게요.”
저주술사.
이들은 예외 없이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자신이 당한 일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누군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화나게 하면, 이 일을 매초 되새김질하며 저주의 연료로 쓴다는 특징이 있었다.
‘한 마디로, 뒤끝이 좀 길어.’
그래서 내 고향에선 저주술사를 친절히 대하라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아무리 약한 마법사라도, 괜히 무시하면 일이 꼬이니까.
‘흠, 하필 S급 헌터 중에 저주술사가 있을 줄은. 내 고향에서도 수가 많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들의 성격을 두려워하며 괜히 피할 필요는 없었다.
‘에스더라. 내가 앞으로 저 사람을 또 만날 일이 있을까?’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자신이 입은 은혜도 절대 잊지 않거든.
***
이튿날.
나는 윤승의 도움으로 무사히 재료를 채취했다.
D급 게이트의 요정형 마수에서 얻은 날개. 이건 잘 말려서 갈아야 하니 창가에 두고.
‘좋아, 순조롭군.’
가장 귀찮은 한국마탑 게이트를 미리 해결해서 그런지. 나머지 재료는 비교적 쉽게 모이고 있었다.
“큭큭큭, 내가 마법만 쓸 수 있게 되면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도 끝이다.”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데까지 앞으로 한 발짝.
나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슬슬 오늘의 영양분을 공급할 시간이었다.
-딩동, 딩동.
그런데 이건 또 뭐야?
-딩동, 딩동.
밥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돌연 찬물이 끼얹어진다.
누군가가 김기려의 집에 방문했다.
“설마 가족?”
김기려의 생전 지인이면 좀 복잡해지는데.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계란을 냉장고로 돌려놓고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 도착하자 다시 몇 초 뒤. 똑같은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딩동, 딩동.
“예, 가요.”
찰그락.
혹시 모르니 체인을 걸고,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앞에 보이는 것은…….
“안녕하십니까, 김기려 씨. 헌협에서 나왔습니다.”
검은 가죽 지갑.
활짝 펼친 지갑 사이로 투박한 디자인의 카드가 보였다.
[각성공무원증] [선우 연] [소속 : 조사과]“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선우연 헌터.
그 여자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열린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웬걸. 손님이 한 명이 아니다.
선우연의 곁에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이 세 명이나 더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와주셨으면 하는데요, 선생님.”
김기려의 직업은 교사가 아닌데, 한국에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왜 이리 자주 쓰는지.
‘에이씨, 배고파 죽겠구먼. 귀찮게 뭐야.’
오후 2시에 밥을 먹으려 한 내 잘못인가?
나는 선우연의 방문이 영 성가셨으나, 밖으로 나오라는 말에 순순히 현관문 체인을 풀었다.
공공기관 사람을 무시하면 일이 더 귀찮아질 테니 말이다.
“갑작스레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이번 사안의 경우 미리 통지하지 않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규정이라.”
문을 활짝 열고 나오자, 선우연은 내 등 뒤의 방 풍경을 보고 움찔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정식으로 방문 목적을 알리겠습니다.”
“아아, 네.”
“김기려 씨 앞으로 부정 각성 등록 의심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음?”
“이에 따른 헌터 협회의 조사 결과 김기려 씨가 등급을 속인 불량등록자로 의심되어…….”
“뭐라고요?”
“금일 각성 재검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헌터 협회까지 동행 바랍니다.”
“지금 당장이요?”
“연행되기 싫으시면요.”
이거 아무래도 오늘은 점심 먹기 틀린 것 같은데.
***
선우연.
긴 생머리가 특징인 딱딱한 말투의 여성.
이 지구인이 왜 이제야 김기려의 앞에 나타났는지 설명하려면,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 헌터는 거짓말을 한 게 틀림없어. 비기너 킬러의 멱을 따놓고 자기가 F급이라니!’
김기려가 막 환생했을 당시.
선우연은 이 시기부터 상대의 등급 조작을 의심하고 있었다.
비기너 킬러 사건에서 보인 김기려의 대처가 도저히 F급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검원에서 김기려와 헤어진 후.
‘정말 각성 검사 결과는 F급이네. 아이템을 써서 수치를 숨겼나?’
선우연은 협회로 돌아가 뒤늦게 그 남자의 기록을 조회해봤다.
각성치 12, 검사일은 불과 1년 전.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밑바닥 각성자의 기록이지만 문제는 그 아래의 시트.
헌터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무조건 협회에 입장 신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게이트 입장 허가 기록은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남는다.
한데, 김기려가 가지고 있던 기록은 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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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순▽]20XX.06.28 – F급 게이트 입장 허가
– – – – 이 하 여 백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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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입장 기록이 1건? 헌터로 일한 경력이 그게 다라고?”
점차 짙어지는 의문.
고작 F급 게이트나 한 번 들어가 본 게 다인 인물이 백주에 만난 괴물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다니. 말이 되나?
‘등급을 속여서 등록한 각성자는 위험해! 자기보다 약한 헌터들 사이에 섞여서 무슨 일을 할지…….’
하지만 작은 문제가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그를 재조사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선우연은 협회 내에서 별 권한이 없는 일개 직원.
자신이 의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애꿎은 헌터를 잡아 올 수는 없었다.
“하아.”
게다가 선우연은 스스로도 갈등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기려가 나쁜 짓을 하는 걸 직접 본 것도 아니지 않나.
어디까지나 심증뿐인데, 과연 내게 그 사람을 추궁할 권리가 있을까?
“으음…….”
결국 선우연은 갈팡질팡하다 소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매뉴얼대로 김기려 헌터에 대한 의심 신고를 해두고, 이 일을 묻어둔 것이다.
당연히 선우연의 신고 1건 만으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기려는 왜 난데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감사 판정이 떨어졌는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선우연이 이 기사를 읽게 된 것은 말이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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