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0
228화. Low Self-Esteem
진화한 장기들이 신물질에 적응하느라 높은 불안정성이 발생하는 각성 초기를 제외하면, 결코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던 헌터의 태생 마나.
[15.97]그런데 이 F급 헌터의 몸뚱어리는 어떻게 된 게 마나의 최대치가 계속 슬금슬금 오른다.
12. 14. 그리고 15.
너무 미세한 양이라 육체를 차지한 마법사조차도 그만 눈치채지 못한 상승치.
하지만 뭐 아무튼.
이걸로 얻고자 하는 증거는 모두 얻었으니까…….
“아무 문제 없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측정을 마친 검사자는 협회 직원에게 인사를 남기고 길을 나섰다.
***
몇 시간 뒤.
나는 언제나처럼 김기려의 원룸에 틀어박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집안 분위기가 평소와 한결 달랐다.
최근 들어선 신체 교환술을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틈만 나면 온갖 종이를 펼쳐놓고 연구에 몰두하곤 했는데.
이제는 보풀이 일어난 이불 위에 누워 아무런 행동도 하고 있지를 않으니.
“흠…….”
시체 폭발 사건. 계약자의 증언.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얻은 정보들을 종합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이 육체의 마력치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창호가 나를 보자마자 미칠듯한 관심을 보였던 거다.
해석하자면 이는 무려 지구상에 전혀 전례가 없던, 한계가 명확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각성자가 떡하니 나타난 꼴이었으니.
지구에선 따로 시동하지 않아도 항상 효력이 발동되는 태생 마법을 패시브 스킬(Passive Skill)이라고 부른다.
더불어 이러한 패시브 스킬은 [향상심]으로 충분히 갈취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
김기려의 특징이 원시적인 주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유전적인 정보에 따른 제법 물리적인 재능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능력을 얻어낼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한다면 도박 정도는 해봐도 될 터.
‘추측건대, [향상심]은 아마 마법을 빼앗는다는 개념보단 카피하는 방향의 기술일 것 같긴 하다마는…….’
드디어 강창호의 행동이 이해된다.
술자의 태생적 한계를 돌파하게 해주는 초희귀 스킬 보유자(추정)가 대뜸 등장했는데 마법사로서 이걸 어떻게 참겠나.
‘나의 실패가 아니었다니.’
쓰레기라고 멸시했던 시체가 사실은 C급 헌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급품으로 밝혀진 상황.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전혀 없기는 힘들고. 결국 원시종인 만큼 이 환생체도 마지막에는 어떤 벽에 부딪히겠지만.
아무튼 김기려가 특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지구에서 ‘가장 마력이 높은 시체에 깃들 것’이라는 그 환생 마법의 전제에 문제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이 금발 청년의 최후 성장 지점은 S급 헌터쯤으로 밝혀져도 정말로 딱히 이상하지 않다.
‘희소식이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특이점이 있는 걸 알게 된 것까지는 참 좋은데, 이 몸의 잠재력을 대체 무슨 수로 개화해야 하나?
‘흠.’
나는 전생에서 쌓은 마도학 지식을 활용해 그간 많은 시련을 타개해 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아무런 수단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몸에 무슨 개조를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영혼의 어마어마한 무게 차이 때문에 이제부터는 우연히 최상급 각성자의 시체를 얻지 않는 이상 신체 교환은 꿈꿀 수도 없다.
폐활량은 이미 정상적인 수준으로 복구했는데 여전히 마력은 F급 언저리에서 기어 다니는 이 몸뚱어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요원하다는 뜻이다.
일단 데이터상으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는 양상이 보이긴 했다마는.
‘한 해당 약 2.025Aw의 증가폭.’
성장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대충 암산해도 김기려가 C급을 달성하는 것보다 세기가 바뀌는 게 더 빠를 지경인데 이걸 생으로 기다리라고?
‘어.’
그것도 이쪽은 9년 뒤에 산 제물로 쓰이겠다는 계약을 한 상태인데?
‘어어.’
이 환생체의 성능을 전부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아무리 고민해 봐도 머리에 당최 짚이는 게 없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노력도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지만 지구인과 마도학적으로 발달한 알파우리인의 영혼은 근본적으로 격 차이를 가져 애매한 단위의 그릇은 절대 활용할 수가 없다.
아니, 설마 싶지만 사실 S급 헌터의 육체도 제대로 내 압력을 견뎌낼지가 미지수다.
용의 폐.
적당한 각성자의 시체.
여태까지는 그것들만 구하면 힘을 되찾으리라 예상하여 희망을 품고 그렇게 열심히 움직였는데.
일을 했는데…….
‘잠깐만, 그럼 앞으로는 좋아질 기약도 없이 꼼짝없이 이 몸에 갇혀 살아야 하는 거야?’
갑자기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환생 마법이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결론은 무시무시한 양날의 검이기도 했으니까.
어쩌면 1년에 마력이 2씩 오르는 이 그릇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점차 가슴 속에서 고개를 치드는 생소한 기분.
‘어? 이세계에서 새로 태어난 내가 이제부터는 진짜 F급?’
여름.
보통 그것은 햇빛의 양이 늘어나는 계절인 만큼 활력 증가 등 이로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거늘.
나는 환생하고 나서 처음으로 걷잡을 수 없는 침울함에 휩싸였다.
급성 우울증이 시작된 것이다.
***
내가 F급이라니.
아무리 기초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들. 평생을 이딴 허접 화력으로 살아가야 한다니.
글썽글썽.
한 외계 생물은 누선에서 흘러나오려는 슬픔의 물증을 간신히 삼키고 식사에 집중했다.
참고로 오늘의 메뉴는 솥밥이다.
‘그리고 나는 X밥이고…….’
파들파들.
몸을 건강한 상태로 만들면 정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모처럼 비싼 식당을 찾아온 건데.
미식을 즐기는 와중에도 이렇게까지 기분이 무력하고 답답할 줄이야.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한참을 달려왔으나 결국 모든 게 물거품이 됐으니, 아무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
‘염병할. 생각해 보니 이거 정말 웃을 일이 아니군. 그러고 보니 몸을 갈아타겠단 심산으로 벌여놓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어흐흑.
강자인 척 허세 부릴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서 성실히 돈을 벌었다면 이 지경까진 안 왔을 텐데.
‘큰일 났다.’
S급 헌터로 대범히 낙인찍힌 탓에 이제는 섣불리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려 어딘가에 숨어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살점을 덧붙여 외모를 영구적으로 바꾸는 개조…….
물론 아직 이런 꼼수가 남아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 몸이 가진 희귀 특성.
마력의 흔들거림.
기실 이쪽에는 그걸 24시간 내내 숨길 방도가 없었으니.
‘마나 유출을 통제하는 상태는 숨을 참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서 F급 헌터 따위가 오래 하면 그냥 죽는다고.’
수많은 더미를 깔아놓는다 해도 이 특징이 [용의 눈]에 포착되는 날에는 어차피 다 끝이었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마력량이면 보조 기구를 잔뜩 모아봤자 S급을 상대로는 맥없이 얻어터질 텐데.’
맙소사.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미래가 없는데 역시 그냥 일찍이 폭죽놀이나 하는 게 깔끔할 것 같기도 하고…….
기려는 무의식적으로 제 목에 걸린 [파이로맨서 네크리스]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좌석의 맞은편에서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흡연 기간이 매우 짧아서인지 김기려에 비하면 제법 맑은 음색을 지닌 성대.
화자는 안윤승이다.
“응.”
이 식당은 테이블 수가 적어서 1인 손님을 기피하는 관계로, 외계인은 음식 주문용으로 저 지구인을 데려왔던 거였는데 말이다.
“그, 여, 여기 솥밥 진짜로 맛있네요. 음, 물론 형님께서 사주시니까 막 두 배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래. 많이 먹어라.”
“그런데 실례지만 혹시 최근에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식사하던 안윤승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돌연 질문했다.
나름대로 속을 감추겠다고 얼굴 근육을 중립으로 고정해 뒀는데.
상대가 너무 변화 없이 무표정만 지으니 윤승은 이것을 도리어 위화감으로 느낀 것이다.
“안 좋은 일?”
그러나 여기에서 외계인이 어떻게 진실을 밝히겠는가.
“딱히 없어.”
사실 네 앞에 앉아 있는 S급 헌터는 각성치를 조작한 부정 등록자이며, 할 줄 아는 짓거리라고는 도구빨을 내세우는 것뿐인 먼지와 같은 존재다.
…라고 이 자리에서 술술 불 수도 없는 일.
기려는 대충 거짓말을 둘러대고 근처의 반찬을 집어 올렸다.
‘이상하다. 그래도 뭔가… 뭔가 분명 평소랑 다르신데….’
하지만 크나큰 충격으로 안 그래도 뒤떨어지던 신체 능력이 더욱 퇴보했으니.
뒤이은 힘없는 젓가락질로 인해 더욱 불거져만 가는 의혹.
‘으음.’
김기려의 갑작스러운 컨디션 하락을 목격한 윤승은 고요히 생각했다.
눈앞의 사냥꾼은 일단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적어도 ‘초인’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는 된다고 평가했다.
그야 이쪽은 아쿠아리움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목격자이고.
그렇기에 사건 당사자란 지위로 경찰에게서 여러 정보를 전해 들었으니까.
‘그 외국인들은 엄청나게 센 정신 스킬을 가진 각성자라고 했었지…….’
해외의 히트맨들이 걸어대는 상태 이상에 피해를 보긴커녕, 도리어 역으로 적을 꺾어버린 괴물.
동정심을 자극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어대던 알라이의 발작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그런 압도적인 전투를 목격하면 당연히 깨달을 수밖에.
어느 금발의 사냥꾼은 정신적으로 완전에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S등급의 헌터답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고 윤승은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사냥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저 철인조차도 결국 근본을 따져보면 피와 감정이 흐르는 사람이니. 가끔은 피로나 스트레스 같은 것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 않을까?
‘으으으, 설마 형님의 눈에도 그 영상이 들어가 버린 건가……!’
더군다나 기려는 사주팔자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지 그야말로 풍파가 끊이질 않는 인생이었다.
아쿠아리움 안에서 갑자기 해외의 히트맨을 만나질 않나.
이놈의 Y튜브는 옳게 쓰면 재미와 정보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유용 매체지만.
꼭 조회 수에 눈이 먼 몇몇이 새로운 분란을 만들어 골칫덩어리를 자청하곤 한다.
〔보육원 출신의 ‘위기 아동’ → S급 헌터로의 환골탈태〕
아직도 그 섬네일만 떠올리면 속이 끓는다.
정성일보의 모 기자가 악에 받쳐 작성했던 헌터의 사삿일 폭로 기사.
누군가가 적절한 조치라도 했는지 다행히 해당 기사 자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갔지만.
〔헌터부 기자의 만행 (김기려 가정사)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소식이 빠른 호사가들은 고작 잠깐 노출됐던 그 기사를 득달같이 캡처하여 최근 새로운 영상을 만든 상태였다.
이 때문에 김기려의 배경이 인터넷상에서 다시 화젯거리가 된 것이다.
고아라는 사실 하나를 두고 우수수 몰려든 동정, 업신여김, 야유, 배척, 관심.
제삼자도 이렇게 불쾌하고 화가 나는데, 개인정보가 유출된 당사자는 심정이 오죽할까?
‘관심에 미친 것들.’
통탄스럽다.
-통화로도 말했었지만, 내가 살면서 이런 곳을 와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아쿠아리움에서 저 S급 헌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알게 됐을 때쯤에는, 더욱 가슴 한편이 알알하게 아팠다.
저렇게 강하고, 의협심 넘치며, 속이 좋은 사람이 어째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탁.
안윤승은 잠시 식사를 멈추고 고민에 빠졌다.
‘내가 뭔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우선.
한국의 네 번째 S급 헌터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만은 자명했다.
금발의 헌터는 지금도 솥밥을 깨작거리며 기운이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그러나 본인이 먼저 괜찮다고 발언한 이상, 괜히 꼬치꼬치 원인을 캐물었다가는 도리어 긁어 부스럼이 생길 터다.
‘자꾸 눈치 보며 기분 같은 걸 물어봤다간, 인터넷에 돈 그 기사 영상을 알고 있다는 티가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를 어쩐다.
윤승은 가능만 하다면 존경하는 윗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인물의 근심을 덜 수만 있다면 그깟 금은보화가 아까울까?
하지만 저 사냥꾼은 물질적인 것에는 좀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금욕주의자이니-안윤승의 생각입니다.- 돈 따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터.
윤승은 어떻게 해야 김기려에게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버섯 하나 안 남기고 다 비웠네. 한 그릇 더 시켜줄까?”
“아, 아뇨!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완전 배부릅니다! 진짜로!”
“그래? 그럼 슬슬 일어날까?”
“넵!”
그리고 이로부터 딱 37시간 뒤의 일이었다.
안윤승이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게 된 일이 서울에서 벌어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