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9
237화. 폭식 사태
1시 13분이라.
안윤승이 이야기한 던전 클리어 예상 시각은 정확히 오후 1시였다.
그렇지만 엽사들이 상대하는 것은 살아 있는 괴물들이니 예상치 못한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
13분 정도의 오차는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여유를 두고 연락을 기다려 보기로 하며 휴대전화의 착신음 볼륨을 몇 단계 올렸다.
그 뒤에는 지구의 기계를 다시 호주머니로 집어넣었다.
***
서울의 한 블루 게이트.
높이 5미터가량의 거대한 통로 앞으로 지구인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슴팍에 ‘NEO SISTERS’라는 글귀가 적힌 명찰을 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반인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이곳의 북쪽으로 휙 쏠린다.
-또각, 또각, 또각.
곧이어 그들의 반고리관으로,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것처럼 날이 선 정장화 밑창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미친!”
현장에 등장한 인물은 얼굴을 보이고 몇 초 만에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첫 마디를 내질렀다.
한국인들이 으레 문장의 머리말로 사용하는 단어.
그리고 얕은 수위의 비속어.
“도대체 뭔…….”
“김기려 헌터님!”
그는 짜증을 표현하기 위해 재차 욕설을 읊조리려 했는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로 인해 그 과정이 잠시 가로막혔다.
“안윤승은 어떻게 됐어요?! 아직도 못 나왔습니까?”
하지만 욕을 멈췄다고 감정이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그렇다.
이곳은 다름 아닌 네오 시스터즈의 정규 3팀이 들어간 블루 게이트의 앞이었고.
저 푸른색의 괴물 둥지는 일으켜선 안 될 재앙을 개시해 버렸으니까.
‘망할!’
1시 20분.
1시 30분.
그리고 1시 45분이 되어도 안윤승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자, 김기려는 우선 식당 예약을 취소하고 바로 네오 시스터즈 측으로 연락을 돌렸는데.
그는 이 과정으로 충격적인 소식을 알게 됐다.
안윤승 팀이 들어간 게이트에서 이상 변이 현상이 관찰됐다는 소식이었다.
‘어떻게 하필이면!’
그런데 하급의 게이트도 아니고 무려 A급 던전에서 변이가 터졌는데 이게 어떻게 예삿일이겠나.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미확인된 게이트] [설명 : 게이트 정보가 없습니다.] [등급 : S]픽시의 분석기로 측정한 결과 저 게이트의 현재 등급은 A급의 기준 범위를 넘은 최상 난이도.
S급.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큰일이 났다.
“아, 안윤승 헌터님이 계신 3팀은……. 아직 던전 안에 있는데…….”
“도대체 이 사태가 언제부터 시작된 거예요? 담당자 나와봐요.”
“저, 저희가 확인한 건 오후 1시 19분경의 시점이었습니다! 이 던전은 저희 네오 쪽에 특히 공략 데이터가 많아서. 펴, 평균 공략 시간이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턱.
김기려는 반쯤 뜀걸음으로 걸어와 문제의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설마 원래부터 이렇게 컸나? 하여간 흘러나오는 마력이 장난이 아니군.’
지금, 이 순간에도 윙윙거리는 우울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괴물의 소굴.
네오 시스터즈 측의 인사들은 안윤승의 지인인 S급 헌터의 등장에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며 상황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당혹스럽기로는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면 냉혈한 소리 듣기 딱 좋다는 걸 알지만.
솔직히 다른 것들은 다 죽어 나가더라도 안윤승이 기심체의 먹이가 되는 건 좀…….
‘이런.’
그 지구인이 없으면 이제 자신과 밥은 누가 같이 먹어 주고, 인터넷에 악의적인 거짓이 나돌 때는 증거를 또 누가 수집해 준단 말인가?
‘제기랄. 이 운도 안 좋은 박복한 것.’
어느 약질의 금발이 지금까지 무사히 생존한 데에는, 안윤승의 덕이 절대 적지 않았다.
그 A급 방어계 헌터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훌륭한 성품이었기에.
그는 자신을 구해준 모 S급을 향해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 편리한 경향은 이후로도 어지간한 부정적인 사건을 거치는 게 아니면 결코 변하지 않았을 터다.
‘개고생들을 하며 겨우 만들어둔 내 지구의 지인이……!’
기려는 눈앞의 거대한 게이트를 보며 생각했다.
[이상 변이].멀쩡히 돌아가던 던전의 내부 구조가 급변하고, 등급이 요동치는 그 현상은 어찌하여 일어나는가.
대마법사 출신인 이 남자는 이미 그 변이 현상의 설명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기심체가 본인들이 깔아놓은 먹이 상자를 뜯어고치는 일은 알파우리에서도 물론 일어났었고.
드문 빈도수.
어지간하면 난도가 상승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점.
그리고 그 외의 각종 특징을 보았을 때.
아마 지구의 이상 변이도 과거의 재난과 동일한 사유일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으으으…….’
시나리오 게이트 발생 당시.
외계의 학자는 이를 ‘괴식’가의 횡포에 비유하였던가.
같은 맥락으로 이번 현상을 해석하자면, 이상 변이는 사실 ‘폭식’하는 성향의 기심체 탓에 벌어지는 사태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허기 문제다.
‘야 이 기심체 돼지 같은 새끼들아!’
사람도.
점심을 먹을 때쯤에 오늘은 이 정도만 먹어야겠다고 밥을 펐으면서, 막상 먹다 보니 그것의 양이 부족해 다시 밥솥을 여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 어, 원래는 약간의 고통과 비명만 먹으려 했는데, 막상 펼치고 나니 위장이 허하네. 상자를 강하게 바꾸어 이것들을 죽이기도 해야겠네. 」
기심체 또한 이런 메커니즘으로 먹이 상자의 구조를 수정하곤 했다.
그들은 F급으로 설정된 흰토끼 몬스터를 A급의 강함으로 무턱대고 올리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니. 던전의 급이 바뀌며 구조와 출몰 마수가 대규모로 변경되는 일이 잦은 것이고.
한 대마법사는 그 종족에 대고 언제나 식탐이 많다는 등의 멸시를 쏟아내나, 사실 기심체 내부에는 폭식증을 지닌 개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어쩌면, 그래서 지구에서도 이렇게 이상 변이의 확률이 낮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확률이라는 건 결국 본인이 걸리면 100%나 다름없지 않나?
지금은 A급 게이트의 상향 변이가 일어나, 안윤승의 팀 외에도 대한민국 자체가 위험에 빠져버린 상황.
‘한국의 첫 S급 던전이 이딴 방식으로 등장하게 될 줄이야.’
일단 협회에 연락을 넣었으니, 곧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더욱 모이긴 할 테지만 말이다.
슥.
네오 시스터즈 측의 상급자, 이청룡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라도 한 건지 분석기를 들고 팔을 게이트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이에 김기려도 자신의 오른팔을 통로 안으로 넣는다.
지구인의 손은 전생에 쓰던 촉수에 비하면 감각이 둔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폐를 고친 지금이라면 여러 가지를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하…….’
외계의 대마법사는 제 마른 손끝을 문질러 비비며 던전의 대기에 집중했다.
그러자 서서히, 그의 신경 안으로 모종의 결괏값이 흘러들어왔고.
‘어?’
그 순간이었다.
금발의 남자는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옆에 있던 이청룡을 뒤로 밀쳐냈다.
“잠깐! 게이트에서 당장 멀리 떨어져요!”
“헉!”
“입구에 몹……!”
하지만 그는 뱉던 문장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휘리릭.
직후, 푸르게 빛나는 통로의 안쪽에서.
마치 짐승의 속살로 엮은 밧줄처럼 불쾌한 적색을 발하는 기관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으니.
“으아악!”
“김 헌터님!”
“텐타클! 저거 텐타클 아니야?!”
“악!”
김기려의 눈가를 찌부러트릴 듯이 옭아맨 의문의 선들은 이윽고 붙잡은 적을 힘주어 당겼다.
그것의 괴력은 70kg이 넘는 성인 남성을 단숨에 둥지로 삼켜버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
“씨팔!”
어지간하면 질 낮은 표현을 줄여보려고 했는데 하여간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군.
휘릭!
눈꺼풀 위로 뭔가 닿았다는 감상이 들었을 무렵에는 이미 몸뚱어리가 통째로 던전 안으로 삼켜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이성을 잃지 않고 즉시 대처에 나섰다.
이 촉수들이 붙잡고 있는 건 기껏해야 육체의 머리나 목 부분뿐. 그마저도 피해자가 재빨리 팔을 들어 올려 경동맥을 조르는 최대 피해도 가볍게 피했으니까.
‘꼴에 이딴 것도 촉수라고……!’
스릉-!
나는 오른쪽 팔로 목에 걸린 붉은 줄을 최대한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는 아이템 박스의 [히드라]를 꺼내 상대의 몸통을 힘껏 내리갈겼다.
2, 3초 사이에 완성한 근력 강화 술식. 동시에 [히드라]를 향한 번개 같은 체내 마력의 전도.
푸슉!
새빨간 피부의 적이 이어서 휘청하며 물러난다.
“김기려 헌터님!”
“야, 야. 저거 잡아. 빨리!”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다음으로 맹독에 기댄 추접하고 긴 격전을 벌였을 테지만 말이다.
다행히 게이트 바깥에는 네오 시스터즈에서 보낸 상급 각성자가 몇 명 서 있었기에, 따로 기다릴 필요도 없이 상황은 금세 완만히 정리됐다.
“괘, 괜찮으세요?”
암요. 괜찮죠.
신성나무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F급 헌터의 두개골이 스노글로브 속 반짝이처럼 산산조각이 났겠지만 어쨌든 간에.
“후.”
나는 히드라의 날 끝이 입장한 헌터들에게 향하지 않도록 검을 고쳐잡고 생각했다.
아까는 워낙 갑작스러워서 몰랐는데, 이거 다시 보니…….
“A급 몬스터예요.”
“예?”
“이 촉수 괴물은 마력치가 A급이라고요.”
나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긴, [모방 도시] 때도 그랬지만 분석기에 찍혀 나오는 결과는 맹신하면 안 되긴 하지.”
“아!”
“여기도 여타 던전들처럼 다양한 등급의 몬스터가 혼재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전부 다 S급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인가?”
이걸 들은 네오 시스터즈의 길드원 하나는 희망찬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지만.
“어, 어쩌면 던전의 마력 밀도만 높고 실제로 S급이 없을 확률은요? 그런 던전도 종종 있잖아요!”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만, 제가 가진 색적 스킬로 보니 S급 몬스터는 100% 있긴 있는 상태인데요…….”
네오 시스터즈의 각성자들이 다시 절망에 찬 표정을 지었을 때쯤.
나는 이 던전의 벽을 손으로 훑으며 잠시 고찰했다.
‘폭식 성향자가 펼친 상자……. 그렇다면 여기도 주시가 붙어 있을 확률은…….’
원래는 마음의 준비를 한참은 더 하고 들어올 생각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차라리 잘됐다.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이곳에 입장하려 했으면, 우선 기사의 맹약 절차에 따라 누군가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데.
최근의 일을 생각해 보면 이번은 S급 게이트로의 입장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강창호의 무력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 건 아쉽지만, 지금은 실랑이 따위를 할 시간이 없군.’
나는 판단을 마치고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밖에 나가서 전달해 주세요. 저는 지원이 올 때까지 미리 던전 안에서 함정 뚫고 있을 테니까. 당장 S급들 되는 대로 다 불러오라고.”
“예?”
“하, 함정? 이 변이 던전 설마 함정도 있어요?”
“느낌상으로는 아마 꽤 많이요.”
이쪽이 끄덕임과 함께 답하니 길드원 중 하나가 근심이 가득 찬 목소리를 낸다.
“혼자서 길을 미리 뚫어놓으시겠다니. 그건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알아요. 그런데 조난자 구조 같은 건 보통 시간 싸움이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던전에 들어온 이상 S급 헌터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 더 좋은데, 입구에 멀뚱히 서 있을 바에는…….”
내가 입장 당시의 난리로 흐트러졌던 소맷자락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을 때쯤.
네오 시스터즈의 인사들이 순간적으로 의문을 표했다.
던전에 들어온 이상 나가지 않는 게 더 낫다니?
하지만 이쪽이 추가로 설명하자 그들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왜 남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어요? 이 던전, 지금 폭발 위험도가 엄청나게 높은 상태라고요.”
“헉!”
“아!”
이상 변이가 벌어지면 보통 던전 내의 몬스터 개체수도 무작위로 변동되어 버린다.
그런데 만약 이번에 운으로 정해진 괴물 밀도가 ‘이미 폭발 조건을 넘긴 상태’기라도 한다면?
‘안윤승의 팀이 전멸하자마자 즉시 브레이크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다들 이해했겠지.
나는 새파란 얼굴로 굳어 있는 지구인들에게 말했다.
여기에 서 있으면 언제 다른 괴물이 리젠 될지 모르니, S급의 적 앞에서 견딜 자신 없으면 댁들은 어서 나가라.
물론 나도 최대한 교전을 피해서 목숨 부지를 하고 있을 테니. 아무튼 밖에서 사람도 좀 빨리 불러와라.
“예, 옙!”
“아… 알겠습니다!”
이에 던전에 들어왔던 지구인들이 일제히 입구로 역행해 나간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살피다가, 각성자들의 마력이 완전히 멀어졌을 때쯤에서야 등을 돌렸다.
‘하…….’
일단.
방금 둘러댄 말의 반 할이 거짓말인데, 지구인들이 순순히 나가줘서 참 다행이군.
‘왜냐하면 이 변이 던전, 개체수만은 운 좋게 적게 설정된 상태거든.’
나는 모종의 문장을 떠올리고 눈을 굴렸다.
아까 이청룡 실장이라는 사람을 따라서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을 때 알게 된 건데, 이 던전은 불행 중 다행으로 적이 매우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었다.
F급조차도 감각만 잘 세우면 전투를 능히 피하며 전진할 수 있을 정도로.
‘리소스가 부족하기라도 했나.’
하지만 그 공백을 메꾸기라도 하려는 듯 내부엔 각종 위협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조난자들이 있는 중후반 지점에 일 초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이를 우선 해제하여야 한다.
따라서 내가 방금 원시의 술사들을 모두 내쫓은 것이다. 지금부터는 고등 마법을 아예 난사할 작정이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누구나 눈치채겠지만.
안윤승 팀의 현재 생존 상황은…….
“그러고 보니 팀이 다 해서 다섯이랬나.”
나는 감각의 끄트머리에 걸려든 생명체들의 마력을 되짚으며 생각했다.
‘진짜 윤승이 저건 나한테 등쳐 먹히는 걸 오히려 감사히 여겨야 해.’
하여간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협잡꾼이 어딨나?
돈줄이 함부로 죽지 않게 몸소 관리까지 해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