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62
260화. α (9)
-허어, 맙소사.
전쟁이라니.
베타성과의 대규모 전투를 벌인지 얼마나 지났다고 기어이 하찮은 땅따먹기가 또 시작?
녹색의 마도학자는 새 전쟁이 벌어진 고향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생물이 이렇게 멍청할 수 있느냐고.
지금 살아 있는 마법사들은 백이면 백. 대전쟁을 겪었던 세대인데.
이것들이 정녕 평화의 소중함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나.
-믿기가 힘드네.
게다가 이번 전쟁의 초석이 된 피해자는 이쪽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다.
-그나저나 동쪽 하층의 대부호라면 설마 그?
-맞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학자이지요.
-피는 주황색이고. 뚱뚱한?
-풍채가 좋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뭐, 본인도 생전에 비대함을 신경 쓰진 않았으니 상관은 없으려나…….
베타성인을 모조리 찢어발긴 전무후무의 마도사에게, 감히 몸조심하라는 걱정을 쏟아냈던 유일한 동향인.
-영웅님이야 신경 쓰지 않지만, 지난주에는 우리 국가의 유구한 명절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랬겠지.
-그 풍채 좋으신 학술당원은 오래간만에 본가에 방문한다고 심해로 향했었는데. 이때 변고에 휘말린 모양입니다. 아쉬워졌지요.
방에 모인 두 명의 마법사들은 한동안 의견을 나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 주황색 부자는 물론 나보단 전투 능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방어 마법만은 괜찮지 않았나?
-아무렴요. 아마 그쪽 가문이 [간첩 산호]의 수호를 뛰어넘는 장벽을 처음으로 만든… 그런 집안이었을 겁니다. 예전에 그렇게 들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죽었지?
-이야기가 좀 긴데 일단 설명해보겠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바로 이 자리에서 정하도록 하고요.
원래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결계 마법의 전문가를 불러 주변 보호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학술당의 책임자는 조금 순서를 바꿨다.
이곳에는 대전쟁의 영웅이 있으니. 제정신이 박힌 적이라면 쉽게 침범하지 않을 터.
***
다시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
초록색 피.
긴 다리.
그리고 붉은 원형의 홀수 눈.
이하의 특징을 가진 해양 생물이 행성 내란을 알아차린 것은 사실 난리가 상당히 진행된 뒤의 일이었다.
-보안을 철저히 한 탓에 오히려 전령이 오는 게 늦어져 버렸군.
학술당은 위치상으로도, 그리고 성향상으로도 상당히 폐쇄적인 공동체였으니까.
이 특성은 대전쟁을 거친 이후도 그대로였다.
굳이 귀족 계층이 아니더라도. 영혼을 깎아가며 연구한 소중한 자료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어느 학자든 같은 법.
-이럴 줄 알았으면 뭔가 기별용 마법을 따로 만들어둘 걸 그랬나.
학술당에 소속된 자들은 보통 바깥 물정에 어둡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국가 명절 따위를 지키겠다고 외출한 그 주황색 인물이 특이한 경우였다.
게다가 이쪽은 대전쟁 당시. 가만히 있으면 알파우리 문명이 모두 무너질 판이라 어쩔 수 없이 전선에 나섰던 것뿐.
사실 성향을 따져보면 호전적 태도와도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어차피 그 작자는 이미 죽은 뒤인데. 복수 같은 걸 하겠다고 이곳에서 나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윽고 흐르는 비정한 계산.
알파우리 행성은 나름대로 상냥함이 넘쳐흐르는 이 중기 시대마저도 장례 문화를 홀대했는데, 하물며 당대에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던 인물이 시체를 위해 일어나긴 어려웠다.
-‘비효율적이야. 나가서 조치할 거였으면 차라리 그 주황색이 죽기 전에 했었어야지.’
수많은 마도학자가 모인 만큼. 생각해보면 이런 시기에 학술당보다 안전한 장소는 달리 없었다.
그래서 이 녹색 남자는 결정한다.
이곳에서 함부로 나가지 말고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자고.
-흠.
대전쟁 때에는 괴물처럼 생긴 외부인이 상대라 종 학살도 제법 거리낌 없이 일으켰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
˙ 베타성인 – 나쁘다
˙ 알파우리인 –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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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지배자들은 지난 대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양성소의 마도사들에게 이런 내용을 세뇌했다.
한데 이 자리의 녹색 영웅은 그 교육 과정을 모두 거친 세대니까.
원래 성격이란 건 평생 가진 않는다. 자아도취가 심한 소년기 때야 모를까. 나이가 한풀 꺾이니 그는 이제 슬슬 동족 학살에 관한 회의감도 조금씩은 들었다. 따라서.
-‘동향인이 죽은 건 아깝게 됐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서 국가 마찰에 끼어드는 건 왠지 내키지 않아. 어차피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병사짓은 지긋지긋하다.
그는 중립의 지위를 고수하며 동족 간의 전쟁 행위를 한동안 깊게 고찰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양성소에서 배웠던 모국의 역사 기록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에이, 뭐. 그래. 이 나라에 전문 기사만 몇 명인데. 설마 이런 변방의 학자들까지 동원당할 만큼 다툼이 커지기야 하겠어? 진짜 군인들 선에서 금방 진화되겠지!
물론 이 알파우리인의 염원과 달리.
학술당은 아주 순식간에 사태에 휘말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
쾅-!
어디에선가부터, 지구의 불꽃놀이를 닮은 화려한 폭발이 일어난다.
수중에서 고온의 열이 발생한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건조한 껍질 안에 마법사의 염원을 담아 넣고, 이를 수류탄이나 선물상자 따위처럼 갑자기 개봉하면 생각보다 쉽게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방금 눈앞에서 알파우리인이 하나 터졌다.
뜨거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느덧 동족의 혈액이 들어찼고.
새빨간.
스트론튬이 활활 탈 때의 빛깔을 닮은 뿌연 액체가, 바닷속에 퍼져 나갈 때쯤에는 드디어 천천히 정신이 돌아온다.
마도학자들이 모여있는 자리. 첫 마디를 꺼낸 건 어느 녹색의 젊은이였다.
-이런 개 미친.
지금 상황이 이런데 욕이 안 나오게 생겼나.
일단 이 의문의 수중 폭발 사건을 설명하기 전.
한 가지 단어를 먼저 언급하겠다.
[한국마탑].사실 어떤 외계인은 지구에 와서 그 단어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대략 ‘마법+탑’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나오는데.
알파우리에도 마침 딱 그런 방식의 합성어가 있었기에.
마도 탑.
마찬가지로 줄이면 마탑.
알파우리에서의 마탑이란 서에스더의 소유 회사와 상당히 다른 의미의 집단이었다.
쉽게 말해 무장 폭도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학술당 사람들은 지식을 탐구할 때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데, 그것들은 당최 도덕과 윤리를 신경 쓰지 않아서 말이다.
-베타성의 이동 마법을 해석하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이 깊은 구릉까지 바로 도착한 거지?
-전령의 말과 달라!
-기껏해야 국경지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다며!
-정말 의문이군요.
-그리고 설마하니,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결계를 파훼하려 들 줄이야.
웅성웅성.
각양각색의 해양 생물들이 서로 떠든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어째서 마도학자들이 당황했는가를 설명하겠다.
-……몇 명이나 이렇게 당한 거지?
이웃 국가의 마도 탑 일원들은 강한 힘을 갖기 위해 대대적인 마법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표적은 바로 이 북반구 국가. C▒l▒▒s가 선정됐다. 그들의 나라는 이 세계에서 3위 안으로 손꼽히는 마도 강국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 마도 탑의 간악한 무리는 남의 나라 귀족을 죽여 순식간에 세상을 전란의 갈림길에 세워놓더니.
-대체 몇 명이나 더.
고향의 안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국경지로 향하고 있는 강대국의 기사들을 회피하고 제일 비옥한 금고로 바로 달려왔다.
적들의 유일한 목적은 학술당을 집어삼키는 일이었다 이거다.
한데 이 지식의 전당은 30시간 전에도 언급됐듯이 제법 폐쇄적이었다. 다른 말로는 경비가 삼엄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이 마탑 것들이 적국의 결계를 뚫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 아는가?
-아아.
-가여운 것…….
-어떻게 이 작고 여린 신입 술사들에게…….
처음으로 등장한, 세뇌 마법의 발현이다.
이곳의 결계는 미리 인증을 받은 학술당원이라면 언제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는데.
그 인증 체계는 매우 보안성이 높았으니 마도 탑은 무리하게 직접 결계를 뚫기보단 사람을 쓰기로 해서.
그래. 사람을 썼다.
올해 봄.
이곳의 정원으로 발 들였던 햇병아리 마법사들을 교묘하게 세뇌해 바깥으로 빼내고. 그들의 몸속에 폭탄을 삽입해 다시 학술당 안으로 보냈다.
그 뒤에는 터트렸다. 많이. 그들의 세뇌에 당한 총 25명의 새내기를 모조리. 전부.
여태까지는 세상에 이토록 강력한 정신 조종이 없었기에. 충격 내성만 높았던 학술당의 장벽이 제 역할을 못 한 상황.
-ㅈ…….
심장이 터진 어린 술사가 울림통을 움직인다.
-죄송합니다…….
이곳은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인 장소인 만큼. 세뇌가 더 이어지지 못하게 바로 주변에 마력 차단의 벽을 새로 올렸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대처가 늦었다.
-연구……. 다들 많이 도와주셨는데…….
결계의 핵심인 코어 부근에서 신입 마도사들이 모두 터졌으니. 곧 동력을 잃은 마법이 붕괴할 터.
쩌적, 투둑.
녹색의 누군가가 고개를 들었다.
저 먼 상층. 결계의 부스러기들이 물 흐름에 따라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아직 아무것도 완성해내지 못했는데…….
방벽이 사라지면 그때부턴 전면전의 시작이다.
바로 위치를 잡고 적에게 대항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마도사들은 좀처럼 헤엄을 치지 못했다.
온갖 치료사들이 달라붙었으나. 결국 마지막 세뇌 피해자가 사망했으니까.
-…….
방금 죽은 알파우리인은 전쟁 영웅보다 무려 1살이 어렸던 학술당의 막내다.
-그래.
이내 흐르는 것은 마도사의 담담한 목소리.
-생각해보니. 그 주황색 나리도 밖에선 이렇게 타계(他界)했었겠구나.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속에선 망설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베타성의 적군에게 겨눴던 마법을 과연 같은 알파우리인에게 돌려도 괜찮은 것인가.
어린 날에 만났던 학장은 정말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을까.
뭔가 더 좋은 해결 방법이 있진 않았나. 이제는 마법도 완전히 익혔겠다, 까짓거 무시하고 도망치면 충분히 위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서 굳이 나서서 피를 봐야 하나.
-생기 하나 없이 초라하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드디어 그가 태도를 바꿨다.
오냐. 역시 피를 봐야만 속이 시원하겠다.
평화를 깨버린 저 멍청한 적국 놈들을 깡그리 잡아 족쳐야 감히 촉수 뻗고 잘 수가 있겠다.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건 척 봐도 해선 안 될 일인 것 같긴 한데. 뭐 인제 와서 윤리 같은 게 상관이 있나?
-결계가 깨집니다!
-대마법사님들을 불러오시오. 당장!
-전서구는!?
-이 오라질 것들. 어찌 술사란 것들이 폼도 없이 마도구를 주렁주렁 달고……!
이 길이 옳지 못한 방향이면 어차피 언젠가 누군가가 알아서 멈춰 세우려 들 거다. 힘으로.
만약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이쪽이 평생 죽을 때까지 지고한 지위를 유지한다면…….
-‘더더욱. 고민할 필요가 없겠고.’
파차차차차창──!
곧이어 들려오는 장벽의 비명.
언젠가의 과거처럼 먼 상층으로부터 적들이 침범한다.
이에 학자들은 일사불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시퍼런 물 안으로 스멀스멀 검은 액체가 번진다.
-하하! 어떠냐. 이런 굴속에서 학문만 골몰하던 모범생들은 정신을 못 차리겠지?
깔깔깔.
접경 국가에서 온 이단아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주변 해류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몇 년간의 평화 시기 동안 몰래 개발해낸 신종 마법.
정신 조종.
마도 탑의 일원들은 빈민들을 납치해 그간 온갖 뇌 연구를 진행했으니. 이 우월한 마법 하나로 학술당의 마도사들을 가뿐히 짓눌렀다.
먼 과거에 감전 마법이 시대를 평정해버렸듯이, 강력한 신종 술식이 탄생하면 대응법이 나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힘겨루기도 이제 끝이다. 네놈들 지식을 모조리 흡수해 우리 마도 탑이 친히 수역 통일을 해주마!
게다가 그들은 대마법사의 개체 수도 이 국가를 가볍게 앞섰다.
학술당 내의 대마법사 인정자는 은퇴자를 포함해도 고작 여섯.
하지만 이들의 출신지는 세계열강 구도에서도 당당히 1, 2위를 다투는 한 수 위의 마도 국가라 가용 병력이 훨씬 많았다.
이 침공을 성공하기 위해 몰래 정치인들과 거래해서, 타국의 대마법사까지 빌려 왔으니 그 수는 무려 열둘.
최상위 마도사의 수가 딱 2배 정도 차이 나던 상황.
-아악!
-으으악!
-뭐, 뭐야. 이게 갑자기 왜…….
그때였다.
마도 탑의 연구자들이 갑자기 탈것에서 추락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진즉 비장의 공예품을 꽂아 넣어 완전한 정신 침범의 요람으로 만들어뒀거늘.
-아래쪽. 아래쪽이다!
거대 생물이 깊은 물 안에서 눈을 든다.
그것은 끊임없이 달려드는 마도 탑의 정신 공격을 숨 쉬듯이 무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마력벽 같은 걸로 서로 공간이 차단된 상태도 아니라서, 분명 마법 자체는 적의 몸에 닿고 있을 텐데.
-…녹색에, 붉은 눈? ▒▒이군! 저것이 대전쟁을 끝낸 그 심해인이야!
마도 탑의 적들은 소문의 전쟁신을 마주치자 일제히 큰 소리를 냈다. 호전적이고 악랄했다.
하지만 유명인을 만난 그들은 이 행운에 어마어마한 대가를 내게 된다.
-네놈 뇌 속엔 대체 어떤 보물이 들어있을지 궁금하구나!
다시 말하지만.
그 술사는 현재 지구 나이로 약 20대.
그리고 추가로 설명하자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마법사로 인정받은 것도 마찬가지로 약관(弱冠)이라 부를 젊은 시절의 일이라.
재난이다.
지금 이 연도는 그 녹색 마법사의 전성기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