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8
46화. 헌터 범죄
안윤승은 머뭇거리며 지시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두 걸음 더!”
“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여기요?”
“어어, 그래.”
투명인간의 방향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한발 늦었다.
“그대로 직진 태클!”
A급의 신체 능력은 눈으로 보고 대처할 수준이 아니니까.
이 직후.
쇼핑 센터의 로비에는 둔탁한 소음이 울렸다.
퍽!
“헉! 팔에 뭐가 걸렸……!”
“으억!”
충격과 동시에 은신이 풀린다.
투명인간의 정체도, 그가 훔쳐 왔던 쇼핑몰의 아이템도 모조리 밝혀진 순간이었다.
“어, 이, 이거.”
안윤승은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물건들을 보고 안색을 굳혔다.
투명화한 각성자.
그 각성자의 품에서 발견된 다량의 아이템.
이 정도면 상황을 모르는 게 바보지.
“도둑이야!”
“히이익!”
은신술사가 체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헌터 마켓의 경비원들이 소란을 듣고 일제히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란이 잦아든 후.
“역시 형님이십니다! 경찰도 잡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던 범죄자를 한눈에 알아채시다니!”
안윤승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격찬을 쏟아낸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인마, 이건 알아채지 못한 쪽이 문제야.’
투명인간 도둑.
얼마나 대단하신 괴도인가 했더니 사실 별것도 아닌 술사였잖아.
“그런데 이 쇼핑센터에는 마력 검출기도 있는데, 어떻게 몰래 들어온 걸까요?”
“입구만 설치되어있지 건물 전체를 감시하는 게 아니잖아.”
“아.”
“창문이든 뭐든 타고 들어왔겠지.”
다행히 도난 피해는 크진 않았다고 한다.
애당초 이 쇼핑몰은 고가 제품은 창고에 따로 보관하고, 손님에게 카탈로그만 보여주니까.
“다 둘러봤는데 살만한 물건이 없네. 안윤승, 그냥 가자. 오늘은 안내해준 보답으로 밥 산다.”
피곤한 하루였다.
나는 이만 마도구 구경을 마치려 했다.
“어.”
그런데, 1층 후문으로 향하던 도중 어떤 가판대에 눈길을 빼앗겨버렸다.
이렇게 펼쳐놓고 파는 물건은 보통 저렴하던데.
“왜 그러세요?”
나는 그곳에 올려진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반사경] [효과 : E급 이하의 공격에 한해, 빛 속성 마법을 시전자에게 되돌림.]“이거 하나 주세요!”
그리고 나는 그 거울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옆에서 안윤승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보였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미개한 지구인들이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싼값에 내놓은 매물!’
그래. 이런 예도 있구나.
이 마도구는 조금만 손보면 놀라운 능력을 갖추게 될 텐데.
‘좋은 걸 건졌어! 남은 돈으로는 필요한 도구를 몇 개 더 갖춰서, 이걸 고쳐야지!’
밖에 괜히 나왔다는 발언은 취소해야겠다.
이쪽은 드디어 몸을 지킬 무기를 하나 더 구비하게 됐고, 집에 가기 전에 들렀던 중식당도 만족스러웠으니까.
‘맛있군!’
큰 수확을 얻은 하루였다.
마도구와 탕수육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잠자리에 들쯤이 되자 도둑 일 따위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
삑.
어두운 방 안.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던 남자가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너무 빨리 잡혔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는 한 마디를 더 꺼냈다.
“마력 검출기를 통과했다길래 이제 이 지겨운 관찰도 끝나나 했더니만.”
그가 소파 옆을 돌아본다.
그곳에선 웬 깡마른 여자가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걸린 거지? 저 안윤승이라는 놈이 그렇게 눈썰미가 좋아?”
“아, 아니요.”
“아니면 뭐?”
“안윤승 헌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들켰었어요.”
까만 매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이 눈에 띈다.
꿇어앉아 있던 인물은 검지로 TV를 가리켰다.
“저기, 금발 쪽이요.”
그 말대로, 뉴스의 자료화면에 머리카락을 염색한 남자가 섞여 있었다.
“저 사람이 먼저 투명화를 눈치채고, 안윤승에게 방향을 지시했었…. 어요.”
중얼거리는 여성은 영양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며칠은 굶은 듯이 초췌하고 남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각성자에게 들킨 건 맞네.”
소파에 앉아 있는 인물은 그런 증언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손질이 잘된 갈색 애즈펌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의문의 남성.
곧이어 그의 실체가 드러났다.
“준태 형님! 물건 가져왔습니다.”
“거기 쌓아놔~”
문신을 한 거한들이 어두운 창고로 하나둘 들어온다.
그들은 ‘준태’라는 젊은 남성에게 허리를 숙이며 깍듯이 대했는데.
이로써 추측할 수 있듯이, ‘준태’는 어떤 단체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었다.
“야, 상자 위에 포장은 그냥 뜯어버려. 어차피 있다가 바로 중개인한테 넘길 거니까.”
준태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의 정체는 바로 불법 무등록 각성자. 표나길이었다.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커팅] 스킬을 각성한 이 헌터는 현재, 자신과 같은 무등록자들을 모아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었지.
아이템의 암거래는 물론이요.
게이트 날치기. 상습 강도.
그리고 돈만 쥐여준다면 살인까지.
“장비에 기스 나면 뒤진다?”
무등록 각성자.
이 얼마나 편한 지위인가.
“옙! 형님!”
“나중에 하나씩 다 확인할 거야~”
표나길은 각성 후,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았다.
자신은 정식으로 각성치를 검사한다면 A급은 거뜬히 찍을 강자였으니까.
처음에는 돈이 갖고 싶어서 강도질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 넘치는 힘을 써보니, 금품을 빼앗는 것쯤은 코웃음이 날 정도로 쉬웠고.
이내 표나길은 법이라는 테두리 탓에 그간 해볼 수 없었던 짓들을 시작했다.
사람을 해치고, 사람을 죽였다.
내키는 대로 힘을 휘두르니 그야말로 짜릿했다.
이 범죄 집단은.
또한 이곳에 속한 불법 무등록자들은, 대개 그런 전능함에 취해있는 인간들이었다.
“아차,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하지만 옛말에,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그들은 현재 모종의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아아, 그래. 투명화를 알아본 각성자가 있다는 말까지 했었지?”
수사 기관에 잡히지 않으려고 이름은 수십 번을 바꾸고, 아지트도 수시로 갈아치웠거늘.
표나길은 이번 달 들어서 조직원 2명을 잃고야 말았다.
말단의 정체가 어디에서 새어나간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누가 죽였는지만큼은 확실히 대답할 수 있지.
서에스더.
‘한국마탑의 길드장…….’
그 S급 헌터는 무등록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또라이 같은 년.’
초능력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같은 각성자를 쳐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
공포 정치나 다름없는 행동인데 그 방식이 뜻밖에 효과를 봤다.
에스더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이상. 누구도 대놓고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했으니까.
“쓰읍…….”
에스더는 눈엣가시다.
게다가 최근엔 조직의 꼬리가 밟혔으니 수뇌부인 자신도 이제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남자는 고심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낸 상황이었다.
“일단 암살은 미뤄야겠다.”
S급 헌터의 살해.
별거 아닌 좀도둑처럼 보였던 투명인간 사건은 사실 어떤 계획의 테스트였으니.
“완벽한 은신일 거라더니 이게 뭐야? 공급처가 사기를 쳤나? 아니, 그렇다기엔 꼴이 좀 우스운데.”
“으음.”
“자기들이 스킬석의 진가를 증명하겠다며 호언장담했던 거잖아. 실제로 S급을 상대로도 들키지 않았었고.”
얼마 전.
표나길은 뒷세계의 동포에게서 상급 은신 스킬석인 [나이트 워커]를 어렵게 구한 참이었다.
하지만 이 바닥에 신뢰라는 게 어디 있겠나.
그는 당연히 [나이트 워커]라는 스킬의 성능을 의심했고.
표나길이 ‘이게 아무리 고급 은신이라고 해도, S급인 에스더에게 안 먹히면 끝인 거 아니냐’라고 물으니.
스킬석을 구해온 동포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스킬의 위력을 보여주겠다.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대리를 앞세워서 예행연습을 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
그들은 스킬 복제 아이템을 사용해 [나이트 워커]의 소유자를 2명으로 늘렸다.
복제된 스킬의 사용 기한은 3일에 불과했지만 뭐 어떤가.
성능 검증은 성공적이었다.
S급 헌터인 정하성은 투명화한 각성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일부러 같은 백화점을 돌며 이목을 끌었는데도, 수사 기관마저 방법이 없다는 듯 투명인간에게 쩔쩔맸으니.
“쇼핑몰이 정말 마지막 테스트였는데.”
헌터 마켓의 마력 검출기는 일종의 최후 관문이었다.
그것마저 속였으니 이제 세상에 걸림돌이 없을 거라 여겼다.
“이상하군. S급도, 협회의 검출기도 못 잡아낸 은신을……. 웬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양아치가…….”
그런데 이 와중에 새로운 방해물이 나타날 줄은.
투명인간을 까발린, 연령 미상의 남성이라.
“가서 뭐 하는 놈인지 좀 캐내 봐.”
이때까지만 해도 표나길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은신이 들킨 거야 뭐.
차라리 계획 실행 전에 허점이 드러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뒷조사를 해보면 나이트 워커를 간파한 수단도 나오겠지.”
어차피 상대는 지나가던 헌터일 뿐이다.
앞으로 얽힐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예상과 달리 보고된 내용은 충격에 가까웠다.
“이게 뭐야.”
A급 헌터인 안윤승과의 연줄.
마탑의 미로 클리어.
정하성 피습 사건 용의자.
이렇게 전적이 화려한데 각성치 측정 결과가 고작 F급이라고?
“검사 기록이 작년과 올해 2번 있는 거 보면 협회에서도 의심은 한 모양인데…….”
전형적인 등급 위장자의 특징이다.
이 순간, 표나길은 상대가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 업계 놈 아니야?”
“모르겠습니다. 수소문해봤는데 얼굴을 안다는 사람은 없어서.”
“야, 게다가 이거 기록이 왜 이래. 덜렁 한 장이 끝이라고?”
대체 무슨 꿍꿍이길래 이토록 위장이 철저할까.
F급 헌터. 김기려.
작년 6월에 각성 검사를 했다는 기록을 제외하면 그의 과거는 마치 유령 같았다.
모든 게 너무 깨끗했다.
하다못해 그 흔한 아이템 거래 기록마저도 없으니.
아니, 최근에 1건 있긴 하군.
그래도 헌터 치고는 아이템 소비량이 지나치게 적어.
‘암시장을 쓴다는 증거야.’
표나길은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이 헌터의 정보를 훑을수록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 그 투명인간 대리는 계약 아이템으로 단단히 입막음을 했으니, 어차피 그것만으로는 우리 계획을 알 수 없을…….’
그런데 그때.
창고에 들여놓은 찢어진 소파 위에서 누군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매니큐어를 칠한 일전의 그 여자였다.
“이 사람 이름…….”
그녀가 중얼거리자 조직원들이 시선을 돌린다.
“이름이 뭐?”
“예전에 들었던 그 이름이 맞는 것 같은데…….”
“들어? 어디에서?”
“근데 확실하진 않아서 괜한 소리 하는 걸 수도…….”
“야, 답답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조직 리더는 툴툴거리며 부하를 재촉한다.
하지만.
“우리랑 거래 트려고 했던 그 인신매매 브로커요. 체포되기 얼마 전에 이번엔 점찍어둔 감정사가 있다고, 저희 구역 흥신소에서 어떤 사람 주소를 물었잖아요.”
문장이 진행될수록 리더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이 헌터, 걔들이 마지막으로 납치한 사람……. 아니에요?”
잊고 있던 정보였다.
전해 듣기로는.
그 조직의 운반책을 죽이고, 사장을 습격해 괴멸로 몰고 간 것은 어떤 S급 헌터의 짓이라니까.
강창호의 행동에 가려져 지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날.
사건 현장에 외부인이 하나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