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7
5화. 이상 변이
“그래. 헌터를 하는 거야!”
목표가 정해지니 발걸음이 가볍다.
그거 잠깐 걸었다고 벌써 오른쪽 무릎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이거 봐. 뛰지도 못하는 몸으로 무슨 노동을 하겠어? 기억이 숭숭 비어서 일상생활조차 어렵고.’
얼굴 가죽은 미동도 없지만 나는 현재 아주 기쁜 상태다.
솔직히 오늘 점심까지만 해도 미래가 막막했거든.
이 몸의 주인은 몹시 가난해서, 전 재산이 국밥값을 내면 사라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돈을 벌어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희망이 보였다.
지구에 헌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마법으로 사냥해서 벌어 먹고사는 거야!’
물론 지금은 그 중요한 마법이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거야 시간을 들이면 차차 고쳐지겠지.
일단 해결 방안이 아주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 비기너 킬러라는 게 개체수가 충분해야 할 텐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지, 굳이 비기너 킬러만 노릴 필요가 있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비기너 킬러는 C급 몬스터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급의 사냥감도 있다고 추측되며.
‘아마 게이트의 위치는 저거겠지.’
게이트.
지구의 헌터들이 활동하는 사냥터가 어디 있는지는 뻔하다.
‘저 안에 몬스터가 산다라.’
마법 시전은 막혔지만 마나의 흐름 감지는 별개의 능력이니.
게이트라는 것의 위치를 특정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갈 수 있을 거리에 하나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럼 가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당연히 없지.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서라도 지구의 몬스터는 미리 분석해둘 필요가 있다.
‘근처에 사는 몬스터가 어떤 수준인지만 슬쩍 보고 와야겠다.’
이 마력 탐지 능력이면 멀리 떨어져서도 위험성을 파악할 수 있을 터.
나는 즉흥적으로 걸음을 돌렸다. 생각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
김기려는 얼마 뒤 인근 야산에 도착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인간의 다리로 걸어와 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후, 경사 때문에 숨넘어갈 뻔했네.”
그는 땀을 닦으며 눈앞의 게이트를 봤다.
“나무 사이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둘려 있어서 괜히 더 고생했군.”
인간들이 게이트라 이름 붙인 던전의 입구는 지금도 웅웅대는 옅은 마력 파동을 흩뿌리고 있었다.
“하여간 지구인들의 미적 감각은 이상하다니까. 식물을 왜 꾸미지?”
그럼 이제 슬슬 들어가 볼까?
그는 호흡을 한 번 고르고 지체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와! 안은 제법 넓은걸?”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기려는 그렇게 던전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10분 정도가 지나자, 조용하던 야산에 발소리가 울렸다.
사박, 사박, 사박.
이내 네 명 정도 되는 사람 무리가 다가왔다.
“여보세요? 실장님?”
그 무리에서 가장 앞장서 있던 20대 초반의 남성이 휴대폰을 들었다. 이어지는 것은 간단한 통화.
“저희 지금 게이트 앞에 도착했거든요.”
-그래. 윤승아. 주변에 혹시 민간인은 없고?
“괜찮아요. 통제 라인 잘 쳐져 있네요.”
‘윤승’이라고 불린 이는 주변을 휘 돌아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샛노란 경고 테이프가 게이트 주변의 나무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 전환이 일어난 게이트를 누가 가까이 와요.”
-하여간 그놈의 변이 때문에 돌겠어. 이번 달만 해도 등급이 뒤바뀐 게 대체 몇 개인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그들을 몹시 걱정하는 투였다.
“염려 마세요. 바로 조사 들어갈게요.”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보면, 지금 모인 이들은 이 게이트에서 벌어진 이상 현상을 조사하러 모인 헌터 팀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게이트의 위험도가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반응이 없었다.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들어가자! 여기 고작 F급이잖아.”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고.
“퇴근하면 술이나 땡길까. 불금인데.”
“시작도 안 했는데 또 그 소리······”
얼마 안 가 그들의 모습도 일렁이는 게이트의 빛무리 너머로 사라졌다.
“으, 퀴퀴하다. 이 한여름에 동굴이 뭐냐.”
게이트 안은 바깥세상과 전혀 다른 별세계였다.
금방이라도 박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습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높은 천장에는 간혹 종유석이 보였다.
“측정해보니까 내부의 마력 밀도는 D급 던전 수준이네요.”
“항상 그렇지. 이제 거의 법칙이잖아. 게이트에 이상이 생겼다 하면 꼭 2단계씩 뛰는 거.”
“1단계만 바뀔 때도 많아요.”
그들은 던전 내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록하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가장 앞에 서 있던 방패를 든 남자가 말했다.
“저희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은데 속도를 좀 늦출까요?”
“굳이?”
“꽤 걸었는데 몬스터가 흔적도 안 보이니까 좀···.”
신중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일행들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팀원 중 하나가 그의 반질거리는 두피를 찰싹, 때리며 농담할 뿐.
“짜샤. 넌 젊은 놈이 왜 맨날 그렇게 움츠러드냐. 우리 팀은 무려 A급 헌터! 안윤승 님이 계시는데 뭐가 걱정이야.”
조사원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대부분 B급. 심지어 팀 리더는 A급이나 되는 떠오르는 스타인데 걱정할 게 뭐 있나.
그래서 그들은 평소처럼 신속하게, 이 귀찮은 조사 일을 끝내고 싶어 했다.
“아, 형. 그래도요. 던전인데.”
“알았다. 알았어. 조심하면 되는 거잖······.”
그런데, 잡담을 나누던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쿵!
규칙적인 굉음이 울리고, 이어서 주변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조사원들의 대화를 침묵으로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무슨······.”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지팡이를 쥔 헌터였다.
그는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목을 쭉 빼고 시선을 멀리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를 낸 주인을 파악한 그는······.
“으아아아악!”
두 눈을 크게 뜨고, 미처 삼키지 못한 비명을 내질렀다.
***
-아아아···악······.
“음?”
잘못 들었나?
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김기려의 귀는 영 미덥지 않네. 새삼 생각하는 건데 알파우리 사람들은 청각이 진짜 뛰어난 거였어.’
나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작은 소음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 흥미를 잃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선을 원위치시켰다고 상황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이 정체불명의 게이트에 들어온 지 벌써 몇 분 째더라.
“꽤 깊게 들어온 것 같은데···.”
나는 분명 몬스터를 관찰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태껏 생물을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이곳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습도의 조용한 동굴이었단 거다.
‘김샌다. 내가 게이트를 잘못 이해한 건가?’
몬스터도 못 만나고. 그렇다고 동굴에 다른 특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계속 있어 봤자 뭐 하겠어?
나는 실망감을 팍팍 드러내며 걸음을 돌렸다. 그만 포기하고 입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음?”
그런데, 입구 방향으로 가까워지자 이상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 작고 조잡스러우면서 활기 넘치는 마나. 옳거니. 인류의 체내 마나군.
“누가 들어왔네? 헌터겠지?”
오늘 하루는 꽤 많이 움직였기 때문에 걷는 속도를 높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기려의 망가진 다리를 반쯤 절뚝거리면서도, 마력을 탐지한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드디어 소리도 들렸다.
“히, 히이이익!”
“흐윽, 흑··· 죽었어. 한 방에 죽었다고··· 오빠···!”
“···컥!”
어, 그런데 이 개판은 또 뭐냐.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자 확실해졌다. 이거 심상치 않다.
‘모, 몬스터가 나타났나?’
우선 상황부터 파악하자.
나는 재빨리 근처에 있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어디? 무서운 몬스터 어디에 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 바위에서는 현장을 명확히 볼 수 없지만, 대신 귀를 기울여 소리 정보에 집중했다.
“저, 저거. 픽시 글라스(Pixy Glass)로 봤는데··· A, A급이에요. 마력치가 A인 몹이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D급 던전에서 왜 A가 뜨냐고!”
“윤승아! 괜찮아?”
이런 제기랄. 저 지구인들이 뱉은 단어의 딱 절반을 모르겠는데.
답답해진 나는 고개를 빼꼼 들어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피투성이가 된 대머리의 남성이었다.
‘걸레짝이 다 됐네.’
무언가 거대한 것에 얻어맞은 듯한 상처.
벽에 처박혀 숨을 쌕쌕 고르던 남자는 방패를 고쳐 쥐고 일어났다. 방패? 저게 인류의 도구인가?
‘와, 원시적이야.’
하지만 방패를 들고 있어도 저렇게 휘청거려서야 전혀 듬직하지 않다.
그럼 저 남자를 저렇게 피투성이로 만든 원흉은 대체 뭘까.
“야, 바··· 방어계로 각성한 A급 놈도 못 막는 걸··· 우리가 무슨 수로 처리해··· 어?”
“빨리 스킬을 준비해주세요! 제가 틈을 만들어서······.”
“난 못해!”
으음. 각도가 미묘해서 하필 몬스터의 모습이 안 보인다. 그래도 얼추 마력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나는 그들이 상대하는 몬스터의 마력을 가늠하며 미묘한 감상에 빠졌다.
“이래서 경험도 없는 어린 새끼랑 팀 짜기 싫었어! 네가 똑바로 막았으면 내 팔이, 철민 형이······! 이 씨발······!”
“형! 잠깐만요!”
그런데, 잠시 탐지에 집중하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벽에 있는 저 핏자국. 설마 지구인 자국은 아니겠지?’
일단 저 3명은 한 팀으로 보인다.
대충 보니 1명이 앞장서서 몬스터의 발을 묶고 후방의 마법사가 요격하는 전법을 써왔던 것 같지만, 이제는 전체 수가 2명으로 줄었다.
욕설을 하던 마법사 하나가 방금 도망쳤으니까.
-쿠르르르릉······.
“속박, 속박은 아직이에요?”
“스킬··· 이미 썼어. 윤승아···.”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팀은 파멸을 맞았다.
전열의 헌터가 몬스터의 이목을 끌어주는 사이 동료가 속박 마법을 준비한 모양인데···.
그게 전혀 먹히지 않자 마지막 마법사가 눈치를 보며 이런 짓을 벌였거든.
“다, 다시 시도하면 통할 것 같아! 윤승아! 30초만 더 그 기술로 버텨줄래?”
“···허억, 헉. 네!”
방패를 든 헌터는 이미 초점이 풀렸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며 몬스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약속된 30초 뒤.
그가 마법사 쪽을 돌아봤을 때. 뒤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지막 마법사는 저 헌터를 몬스터의 이목을 끄는 미끼로 던져놓고, 그사이에 도망쳤다.
공격을 몸으로 막으며 목숨 걸고 지켜줬더니 제물 삼아 버리고 줄행랑. 이게 지구인의 인성인가?
“허······.”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걸 깨달은 헌터는 화낼 기력도 없는 듯 허탈하게 무릎 꿇었다.
더는 설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모두 믿었는데······.”
눈물로 흐려진 시선을 꾹 감고 죽음을 기다리는 저 모습. 가엾기도 하지.
하지만 괜찮다. 윤승아!
‘네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분석할 틈이 있었어.’
쿵!
몬스터가 패배한 헌터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거구의 몬스터는 자신의 뒤쪽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자 행동을 돌연 멈췄고.
나는 천천히 걸어 나오며 길었던 침묵을 깼다.
“이야, 가까이에서 보니까 확실하네. 이런 곳에서 만나니 반갑다!”
그래. 사실.
줄곧 그들이 대치하던 몬스터의 정체란··· 골렘이었다.
그리고 골렘은 알파우리인에게 있어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얼마나 친숙하냐고?
“오, 이거 완전 고대식이네?”
대충 다른 은하계에서 로봇 청소기를 만난 심정이라고 쳐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