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72
70화. 우위, 제압
“아야야…….”
밖으로 나오자 찌그러진 앞좌석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흘렀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만에 이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우지끈!
그 직후, 선우연은 형태가 틀어져 열리지 않는 앞문을 힘으로 뜯어버리며 시원스레 탈출했으니까.
“대체 뭐가 떨어진 거예요?”
밖으로 나온 B급 헌터는 곧바로 질문했다. 그러나 이쪽도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글쎄요.”
저건 나도 처음 보는 생물인지라.
“피용! 피요오오~!”
우리는 자동차 위에 웅크리고 있는 몬스터를 조심스레 살폈다.
뚱뚱한 몸집에 찬란한 오색 빛깔 깃털을 가진 조류.
정체를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 이거 C급이에요.”
다행히 협회 직원 쪽이 그 몬스터를 알고 있었으니.
“한 마리만 덜렁 돌아다니는 걸 보니 인근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거겠죠.”
이렇게 말한 선우연은 즉시 조치에 나섰다.
차의 지붕에 앉아 있는 괴수를 직접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우연이 B급 각성자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어. 저 정도 마력이면 어지간한 일에는 다치지 않을 텐데.’
지구의 생물들은 마법 활용도가 0에 수렴해 타고난 마나량이 승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B급과 C급의 싸움은 불 보듯 뻔한 일.
‘휴.’
휘리릭.
선우연이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몬스터를 갓길로 날려 보낼 때쯤.
나는 지구인이 어련히 이길 거라 짐작하며 느긋하게 뒷좌석의 짐을 챙겼다.
어디 보자. 내 물건들이 크게 상하지 않았어야 할 텐데.
“벌써 끝나셨어요?”
주섬주섬 녹차 선물 세트를 회수하고 나니 어느덧 선우연이 다시 승용차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가온 각성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이 사람, 어쩐지 표정이 영.
‘헉!’
위화감에 고개를 기울이던 나는 뒤늦게 문제점을 파악했다.
잠깐, 지금 보니 저 B급 헌터……. 오른손이 완전 피투성이잖아.
“손가락이!”
나는 협회 직원의 덜렁거리는 집게손가락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물론 놀란 건 선우연 본인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말했다.
“저기, 그게. 몬스터가 원거리 공격을 쓸 줄 알더라고요. 깃털을 날리는 거였는데. C급이라 별거 아니겠거니 방심했다가…….”
아무리 각성자의 몸이 튼튼하다 해도 저렇게 깊게 베인 손가락이 저절로 붙을 리는 없을 터.
“치료해야겠는데요. 회복제 있으세요?”
“없어요.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 쓰긴 아깝고요.”
“그럼?”
“병원에 가야겠어요. 일요일이라 상주 중인 힐러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짧은 대화 끝에 가까운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
***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났을까.
이내 도착한 병원 응급실.
나는 병상에 누워있는 여성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선우연이 푹 한숨을 쉬었다.
“그 C급 몬스터요. 우리를 만나기 전부터 난리를 피우고 다녔다나 봐요.”
이 와중에 선우연의 붕대가 칭칭 감긴 손이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실려 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던데요.”
“진짜요?”
“네. 그래서 다른 위급환자를 먼저 봐야 하니 제 순서는 나중으로 미뤄진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짧은 연민에 잠겼다.
불쌍한 헌터들.
어지간히 마력 제어에 능하지 않은 이상 타인의 주삿바늘 같은 건 다 부러트려 버릴 테니 일반 의사에게는 진찰받을 수 없고.
결국 치료 계열 각성자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그들은 인력이 부족해서 온종일 기다리는 신세이니 원.
‘쯧쯧.’
나는 선우연을 딱하게 여기다 이윽고 몇 마디 했다.
“목은 안 말라요? 물 사다 드릴까요?”
“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앞에 편의점 있던데.”
이에 선우연은 눈을 크게 뜬다.
“괘, 괜찮아요. 이러지 마시고 헌터님은 먼저 집에 가세요. 여기까지 같이 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하지만 나는 상대의 말을 듣고도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내 책임도 있으니까.
‘내가 녹차 세트에 정신 팔려 있지만 않았어도.’
마력 감지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조언만 잘했으면 선우연의 검지는 무사했을 일.
얕은 죄책감이 든다.
“그쪽이 치료받는 것만 보고 갈게요.”
“오래 기다리시게 될 텐데요…….”
“괜찮아요.”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고 다시금 질문했다.
“아무튼, 편의점 들를 건데 심부름시킬 거 없어요?”
그러자 선우연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어, 그, 그럼 보리차 하나……?”
찻물 따위로는 별 에너지원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뭐 배고프면 나중에 알아서 말하겠지.
“아니, 잠시만요. 역시 제가 직접 사러 가는 편이……!”
“선우연 씨는 여기서 대기하고 계셔야죠. 힐러가 언제 부를지 모른다며요.”
나는 협회 직원을 뒤로하고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
딸랑딸랑-.
필요한 물건을 모두 산 후.
나는 선우연이 있는 곳으로 곧장 돌아가려 했다.
‘어.’
그런데 이 헌터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시하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컸으니까.
‘정하성?’
응급실로 향하는 길목에서 랭킹 1위의 사냥꾼을 만나게 될 줄이야.
언제나와 같은 새치투성이의 머리카락에 잿빛 코트를 걸쳐 입은 모습.
왠지 저번보다 초췌한 것 같기도 한데.
“안녕하세…….”
나는 평소처럼 인사하려다 다급히 숨을 삼켰다.
‘아차! 얘 앞에선 강한 척을 하기로 했었지?’
솔직히 좀 미안한 일이지만, 저 헌터는 기를 죽여둘 필요가 있으니까……!
“야, 정하성!”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일전의 콘셉트를 지키기 위해 냅다 반말부터 질렀다.
“네가 병원은 웬일이냐?”
“…!”
“남이 쉬라고 권할 때에는 죽어도 안 오더니.”
일단 주먹이 날아오지 않은 걸 보아 기선제압은 성공.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정하성을 흘긋 살폈다.
그러자 상대의 손에 진료 영수증이 들려있는 것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진료 영수증?
‘어라? 혹시나 했는데 진짜 치료를 받으러 왔던 건가?’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야 정하성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은 병원에 처박아두는 편이 안전하니까.
“하성아, 너 설마……. 내가 저번에 말했던 대로 치료라도 받아보려고?”
내가 진료 영수증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하니 정하성은 다급하게 그 서류를 숨겼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지.
“정말 잘 생각했어! 그래. 사람이 아프면 병원을 와야지.”
“…….”
“아 참, 그동안 무리한 것도 있으니 이 김에 입원하면서 푹 쉬는 게 어때?”
나는 싱글벙글할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은근슬쩍 입원을 권유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이 S급을 한동안 격리해버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음흉한 속내가 들킨 것 같다.
‘엇.’
그렇지 않고서야 정하성이 저런 무서운 얼굴을 하진 않을 테니…….
나는 정색한 하성을 확인하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
-게이트에 온종일 집착하질 않나,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몸을 혹사하질 않나. 내가 보기엔 그거 병이야.
김기려.
그 의문의 각성자와 마찰을 빚고 어느덧 몇 주가 지났던가.
정하성은 사실 그때의 대화가 끝난 직후. 곧바로 인근의 정신과로 향했었다.
기려의 조언을 새겨들어서?
물론 그런 이유는 아니고.
‘뭘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헛소리는.’
하성은 그저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입증할 생각이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다 받고도 끝내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김기려가 틀린 게 되니까.
그는 뻔뻔한 위장자의 입을 다물리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하성 헌터님. 제 소견으로는 아무래도…….”
막상 전문가를 찾아가 보니 충격적인 판정이 떨어졌다.
높은 불안 수치.
강박적인 사고.
애초에 알파우리인도 아닌 것이 매번 식사와 수면을 기피했는데 이게 어찌 정상적인 상태겠는가. 의사는 환자를 위해 그의 상태를 부드럽게 설명해주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진짜 상담이 필요한 상태였다니.
‘혹시 돈 때문에 억지로 치료를 권하는 건가?’
하성은 첫 번째 진단에 불복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러 병원을 순회하며 다른 이의 소견을 들어보는 중이었다.
S급 헌터란, 유명 연예인 못지않게 이목을 끄는 자리라 이런 행동이 당연히 건강 이상설이니 뭐니 하는 추측성 보도로 이어질 테지만.
지금의 하성은 연이은 과로와 자폭성 테러로 심신이 지쳐 그 당연한 과정을 예측할 정신도 없던 상황.
‘이럴 수가…….’
그렇다면 이 순례의 결말은 어떠할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하성은 용하다는 의사를 닥치는 대로 만나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현대의 체계화된 정신 의학은 그에게 언제나 같은 우려를 제시했으니.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향하는 길은 그다지 옳은 방향이 아니었음을.
‘하지만 내가 일을 쉬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거야말로 잘못된 거 아닌가……? 이게 정말 나쁜 생각이라는 거야?’
그런데 이 와중에 자신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호되게 말했던 장본인을 만났으니 얼마나 심경이 복잡하겠나.
“야, 정하성!”
“…!”
마지막 진단을 받고 나오는 길.
하성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 들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기려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게 됐는데.
“그동안 무리한 것도 있으니 이김에 입원하면서 푹 쉬는 게 어때?”
하성은 입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그런 짓을 했다간 한바탕 난리가 날걸요.”
“어?”
“진료 일정 때문에 고작 며칠 일감을 줄였더니 벌써 무슨 소리가 나오고 있는지는 아십니까?”
퇴물 다 됐네.
죽을 국민은 생각 안 하나. 이기적이다.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던전은 내팽개치겠다는 거냐.
정하성은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인터넷 댓글을 줄줄이 읊었다.
하지만 기려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원래 인터넷이라는 게 그렇잖아.”
“예?”
“서로 얼굴이 안 보이니까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거지. 실제로는 다들 네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걸.”
“그렇지만 말만 못한다 뿐이지 속으로는…….”
기려는 정하성의 말을 툭 끊고 일갈했다.
“속으로는 뭐? 그럼 너 설마 남의 속마음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살 생각이었어?”
“음.”
“아니, 이게 미쳤나…….”
단어 선택은 거칠었지만, 세세히 뜯어보면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런 거 하나씩 신경 쓰다 보면 오래 못 살아. 적당히 무시할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정하성이 반론을 못하고 입을 어물거리고 있을 쫌이었다.
기려는 허세를 부려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진심 어린 조언을 시작했는데.
“하성아. 너도 사람이야. 사람.”
선의에 찬 이 문장이 의외의 화근이 되었다.
“각성이 뭐 대수야? 너도 길가에 널린 시민이랑 똑같은 존재니까. 그냥 너무 부담 갖고 살지 마.”
너도 다른 이들과 같다…….
그 말 한마디가 S급 헌터에게는 어찌나 우습게 다가오던지.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정하성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이에 기려는 흔쾌히 대답했다.
“응.”
물론 S급 헌터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더라면, 보다 신중한 답을 냈을 텐데 말이다.
“웃기시네. 각성이 대수롭지 않아? 이보세요. 우리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항상 폭탄을 들고 다니는 셈인데 사회가 똑같이 취급해주겠어요?”
정하성은 안색을 싹 굳히고 제 손아귀에 불꽃을 만들어냈다.
순간, 그들 사이에 매서운 열기가 자리 잡는다.
“마음만 먹으면 이 병원도 언제든 부숴버릴 수 있고. 총에 맞아도 멀쩡한 게 각성자인데.”
“야…….”
“시민 입장에선 우리나 몬스터나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들을 지켜주는 시늉까지 그만둔다고 생각해봐요!”
하성은 만들어낸 불꽃을 상대에게 들이밀며 협박했다.
“그땐 진짜 괴물 취급받는 거예요.”
“…….”
“봐요! 김기려 헌터. 당신도 당장 이런 큰불을 보면 겁부터 먹을 거 아니에요? 자!”
무엇에 신경이 긁힌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정상적인 대화는 아닌 상황.
그런데 이 행동에 대한 김기려의 대답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고 보는 게 옳았다.
-화르륵.
“자, 잠깐만!”
김기려는 하성을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그대로 불구덩이에 손을 넣었으니까.
“지금 뭐 하시는……!”
치이익.
끔찍한 소리가 난다.
하성은 깜짝 놀라 다급히 스킬을 멈췄다.
그러나 기려의 손은 이미 화상에 뒤덮인 뒤였다.
“왜 불을 거뒀지?”
“……!”
“내가 네 능력을 무서워하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던 거 아니었어?”
고작 그깟 증명을 위해 제 살을 태워버리다니. 그것도 서슴없이!
믿을 수가 없다.
정하성은 이걸 보고 완전히 위축되어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김기려도 그러라고 한 행동이었으니까.
‘가, 갑자기 불은 왜 피운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만만히 보이면 끝장이야!’
쥐뿔도 없는 약자인 게 탄로 나면 저 S급이 거리낌 없이 죽이려 들 것이다.
김기려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사력을 다했다.
“별것도 아닌 힘 가지고 까불지 마. 정하성.”
상대의 기를 꺾으려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