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73
71화. 우위, 제압 (2)
“별것도 아닌 힘 가지고 까불지 마. 정하성.”
어디 보자.
일단 방어기제로 무심코 말을 뱉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이어나가야 한담.
‘흠.’
솔직히 F급의 몸뚱어리는 뭔가 내세울 만한 강점이 없다.
따라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듯한 허세는 부릴 수가 없으니 선택지가 좁혀지는군.
‘반대편을 깎아내려야겠어.’
나는 정하성을 비방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억지로라도 강한 사람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너 같은 각성자가 염화 계열 최고봉이라니 세상도 말세지.”
툭툭.
나는 손등의 그을음을 털며 상대방을 태연스레 헐뜯었다.
“사실은 자기 능력을 반의반도 다루지 못하고 있는 주제에…….”
“뭐?”
“그 실력으로 괴물 취급받을까 봐 걱정하는 건 좀 자만 아닌가?”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오히려 내가 궁지에 몰렸다.
사실 저기 있는 정하성이라는 청년은 트집을 잡을만한 것도 얼마 없는 축복의 결정체라.
“너 랭킹 1위치고는 스킬 다루는 솜씨가 형편없잖아.”
사회적 지위도.
타고난 마력양도.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는 게 없던 저 S급의 유일한 흠결이란 바로 마법의 컨트롤.
그래서 나는 정하성의 미숙한 부분을 애써 물고 늘어졌으나…….
“솔직히 스킬 활용 능력만 놓고 보면 너나 길가의 F급들이나 다를 게 없지. 안 그래?”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하성이 스킬을 잘 다루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는 다른 S급들과 비교해봐도 홀로 눈에 띌 정도로 마력량이 독보적이었기에.
너무 큰 마력은 오히려 각성 능력에 대한 적응을 몇 배로 힘들게 만들었을 터.
이 단점은 정하성의 전투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말하면, 저 S급은 사소한 기교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타고났다는 소리니.
‘지구 기준으로 보면 진짜 괴물이지.’
나는 조용히 겁에 질렸다.
하지만 이를 겉으로 티 내진 않았다.
“현재에 안주하지 마. 정하성.”
부스럭.
나는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편의점에서 들고 나온 비닐봉지를 굳게 쥐었다.
“네가 그러니 발전이 없는 거야. S급만 되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아?”
일단 최대한 강자가 할 법한 소리를 하고는 있다만.
“한심하게 굴지 말고 꾸준히 강해질 궁리를 해야지! 각성자라면.”
나는 스킬 사용에 대한 지적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슬그머니 말을 멈췄다. 벌써 말할 거리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
무서워서 시선을 피하고 있던 탓에 한발 늦게 알아챈 건데.
정하성은 아까부터 이쪽을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F급 따위가 감히 S급에게 말대꾸니 충격적인 모양이지.
하지만 어쨌든, 진짜 문제는 흠씬 지적질을 했는데도 그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빌어먹을!’
덕분에 이쪽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의 허세로 하성에게 경계심을 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나, 나쁘게 듣진 마! 나도 다 안타까워서 그래. 넌 충분히 더 강해질 구석이 있는데 애가 일에만 빠져있길래…….”
나는 허겁지겁 설명을 덧붙였다.
“그, 그냥 내 말은, 미래를 생각하자는 거지!”
“미래?”
“지금이야 어떤 던전이든 수월하게 깨고 있을 테지만, 나중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하나 있다.
나는 전생에 대마법사로 살았던 탓에 남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거든.
대부분의 사건을 무력으로 해결했다는 거다.
따라서 아부에 서투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일.
“벌써 무리하면 안 돼. 건강 챙기라고.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라도.”
“…….”
“혹시 의사들은 이런 이야기 안 해주든? 솔직히, 너 8월에 내가 그렇게 억지로 재워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헌터 경력 절단났을 수도 있어. 그럼 네가 좋아하는 구호 활동도 다 물 건너가는 거지. 잠깐의 고집으로.”
“그렇습니까.”
“그, 그러니까 결론은, 나는 네가……. 앞으로 치료를 잘 받고 다녔으면 좋겠는데…….”
망할.
내 영혼의 알고리즘은 일단 건강 걱정을 해두면 착해 보일 거로 생각하는 건가.
나는 결국 지난번과 비슷한 문장으로 대화를 끝마치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당차게 허세로 시작했으면서 결국 막판은 설설 기는 신세.
그렇게 정하성의 눈치를 살피며 이 대화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고심하는 찰나였다.
“김기려 헌터!”
순간, 내 귀에 구세주와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어?”
선우연이다.
그 B등급 각성자는 갑자기 튀어나와 나와 하성 사이를 가로막았는데.
생각해보면 선우연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서 있던 골목은 응급실 후문 바로 맞은편이었기에.
‘내 목소리가 문쪽까지 들린 건가?’
밖으로 나서면 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응급실을 왜 나왔느냐인데.
“치료가 벌써 다 됐어요?”
“아, 네. 생각보다 순서가 빨리 돌아와서요.”
이제 보니 협회 직원은 잘린 검지가 깨끗하게 원상 복구된 상태였다.
그사이 힐러를 만난 모양이다.
“그런데 보리차 사러 간다는 분이 왜 이리 늦나 했더니.”
선우연은 숨을 고르며 나와 정하성을 번갈아 봤다.
“대체 정하성 헌터만 보면 왜 이리 못 잡아먹어 안달이에요?”
“예?”
“오면서 다 들었어요! 하성 씨에게 막말하신 거요. 하, 한심하다느니 뭐라느니.”
그 직후. 선우연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신 채로 내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제발 싸우지 마세요!”
“어…….”
“여긴 병원 앞이에요. 마력에 취약한 노인분들도 많이 계셔요.”
개인적으로는 나처럼 무해한 사람보다 저 인간병기인 S급을 말리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흐음.”
뭐, 때마침 잘됐다.
나는 선우연의 애원을 구실로 삼아 이만 퇴장하기로 했다.
“맞아요. 싸우면 안 되죠. 사람을 때리는 것만큼 나쁜 일이 어딨겠어요.”
하성이 이걸 듣고 뭔가 느끼는 게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무튼 심부름이 늦어져서 죄송했어요. 자, 여기 보리차요. 이제 각자 집에 갑시다.”
“어, 어?”
“마침 저기 빈 차도 오네. 택시!”
후다닥.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로로 달려나갔다.
원래는 이대로 물 흐르듯 도망칠 생각이었다.
“잠깐만요.”
그런데, 아무래도 상대는 이렇게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버려두고 왔던 정하성이 갑자기 이쪽을 불러세웠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지.
“왜?”
그런데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일전에 제게 쓰셨던 회복약 값이요.”
“응?”
웬걸.
정하성이 의외의 발언을 꺼냈다.
“…말하는 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값을 내고 싶은데 계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까맣게 잊고 있었네. 이 말마따나 확실히 나는 이전에 그의 목숨을 구해줬었지.
은혜를 갚겠다니 듣던 중 다행이긴 하다마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인제 와서?’라는 의문이 벌컥 들었다.
이 지구인, 그동안은 은인이고 나발이고 자기 일을 방해했다고 죽일 듯이 달려들었잖아.
‘무슨 의도지?’
혹시 이건 무언가의 흉계가 아닐까?
나는 불신에 가득 찼다. 그래서 S급의 제안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됐어.”
“예?”
“됐다고.”
탁.
곧이어 택시의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린다.
“정 고마우면 폭행으로 고소한다던 거나 취소해주든지.”
정하성은 그 말을 듣고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S급을 상대로 허세를 부리는 것도 슬슬 한계라.
“휴우!”
부우웅.
잡아탄 택시가 출발할 무렵.
나는 뒷좌석에 푹 기대앉아 식은땀을 훔쳤다.
‘살았다!’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생존했으니 됐어.
게다가 이번 일로 더욱 명백해졌다.
정하성은 분명 허풍에 약한 타입이다!
‘기분 나쁠 만한 소리를 꽤 했는데 결국 끝까지 달려들지 않았잖아.’
큭큭. 이거 완전 겁쟁이로구만.
나는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다시금 다짐했다.
그래. 저 S급 앞에서만큼은 무조건 강자 이미지로 밀고 나가는 거야.
‘얕보이면 또 칼부림부터 내겠지. 그리고 나 같은 게 S급의 검격을 두 번이나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것만이 살 길이다.
***
기려가 떠난 뒤.
응급실 후문 앞.
“…….”
정하성은 김기려가 탄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조용히 살피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강해질 궁리라.’
확실히 그런 관점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S급 헌터로 각성한 이후.
자신은 언제나 이 힘을 억누르고 축소하는 데에만 신경을 쏟았으니.
‘내가 실제로는 각성 능력을 반의반도 못 다루고 있다. 그 말인가…….’
하성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힘없이 웃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의 각성치는 순수한 숫자만 따지면 무려 S급 헌터 평균의 1.5배에 달하는 수준이었기에.
이 거대한 힘은 마치 드센 야생마와도 같았다. 또한, 그는 한 번도 이 말의 고삐를 바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저 날뛰는 마나의 흐름에 질질 끌려다니며. 매달리며.
‘한심해.’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 불꽃을 억제하려 들었는데.
이렇게 타인의 입에서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는 소리가 나올 줄이야.
-그 실력으로 괴물 취급받을까 봐 걱정하는 건 좀 자만 아닌가?
처음 듣는 평가였다.
실력이 없다니.
A급 게이트는 밥 먹듯이 처리하고. 같은 S급조차도 입장을 꺼릴 정도로 고난도였던 백인탑을 단신으로 클리어한 자신이.
‘그래.’
원색적인 비난이다.
그렇기에 눈이 뜨였다.
‘그 사람 말은 틀린 거 하나 없어.’
당장의 일 때문에 몸을 혹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지 않나.
그의 말마따나 나는 현재에 안주하고 있었구나.
이래선 안 됐는데.
초조함에 쫓겨서, 또는 주변의 부채질에 넘어가 이상한 자학에 빠져…….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곧이어 호주머니에서 익숙한 벨 소리가 울렸지만, 하성은 이를 받지 않았다.
[협회장님☎]발신자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
최근 들어 헌터 협회는 연락이 잦았다.
자신이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며칠 정도 일감을 줄이자 은근슬쩍 전화를 걸어서는.
요즘 어디 아프냐.
갑자기 게이트 예약은 왜 줄인다는 것이냐.
그럼 혹시 쉬기 전에 미리 약속했던 그 A급 던전만 좀 돌아줄 수 있느냐.
하여간 뭐라도 맡겨놓은 양 사람을 볶아대고…….
“그만할까.”
후우.
깊은 심호흡 끝에, 정하성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내려놓자고.
그동안은 타인의 눈이 두려워서, 제 내면의 공포에 쫓겨 그들의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하려 들었건만.
이제는 슬슬 옳은 조언을 따라야 했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삑.
정하성은 휴대폰의 전원을 아예 꺼버리고 길을 나섰다.
‘한동안은 인터넷을 끊어야겠네…….’
몇 년 동안이나 그를 괴롭혀왔던 중압감이 비로소 무게를 잃은 순간이었다.
[정하성, 활동 잠정 중단… 사유는 컨디션 난조]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어” 英雄의 발언에 협회는 ‘난색’]그리고 며칠 뒤에는.
한국의 신문 각지에서 랭킹 1위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
【 익명게시판 】
[제목 : ㅈㅎㅅ 싸움 목격담] [내용 :야 나 아까 오는 길에 정하성 봄!!
가까이에서 본 건 아니고 길 건너편에서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던데 암튼 각성자란 게 티가 나서 신기하긴 하드라 ㅇㅇ
그런데 깜짝 놀랐다
원래는 정하성 보고 아 이대로 신호등 건너서 말 걸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막 고함 소리가 나는 거임
근데 그거 알고 보니까 누가 정하성한테 쌍욕 박고 있던 거였음 ㄷㄷ
ㄹㅇ뭔 조폭같이 생긴 놈이 화내면서 삿대질하고 그러던데
그때는 그냥 말싸움하는가 보다 했지만 집에 와서 사진 찍은 거 보니까 그 사람 손에 화상 흉 있네
정하성 오늘 그 사람이랑 싸웠나 봄;;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으니까 별생각은 없긴 한데
좀 놀라긴 했다. 정하성 방송에선 성인군자처럼 나오더니 같은 헌터끼리 막 싸우기도 하네] [댓글(12)] [익명 : 누가 미쳤다고 S급한테 개기겠냐ㅋㅋㅋ 다음은 더 개연성 있게 써오도록] [익명 : 인증ㅇㄷ?] [익명 : 딱 봐도 빛빛빛좌 시기 질투한 방구석 백수가 쓴 글] [ㄴ작성자 : (사진)] [ㄴ작성자 : 본문에도 사진 찍어놨다고 써놓고 첨부를 까먹음] [익명 : 오 사진 보니 진짜 같다] [익명 : 이게 인증이 있네] [익명 : 아니 랭1위랑 싸우는 또라이는 또 뭐임;;] [익명 : 옆에 서 있는 헌터??는 누군가요? 이름 알려주실 분] [ㄴ익명 : ㄹㅇ첨봄] [ㄴ익명 : 안다는 사람이 안 나오네] [익명 : 이거 허락 없는 도촬 아닌가요? 일반인분들 얼굴도 그대로 나와 있는데 작성자님 사진은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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