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01
100화
-캠핑장 요새 공성전(2)
“뗏목을 띄워라!”
사령관 역을 맡은 호위병들의 지시에 계곡물 위로 뗏목이 띄워졌다.
어제와 달리 계곡물이 잠잠했고, 폭도 그리 넓지 않아 뗏목 몇 개가 연결되자 금세 훌륭한 다리가 완성되었다.
200명의 병력은 전날과 달리 안개가 끼지 않은 계곡을 체력의 손실 없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준비는 완벽하군.”
안개가 끼지 않은 던전의 날씨는 여름날의 햇볕으로 몹시 무더웠다.
사우레노르에겐 최적의 날씨이기도 했다.
“정렬!”
어수선하긴 했지만 200명의 인원이 부대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병사의 질은 전날보다 좀 떨어지지만, 수는 그 배에 가까웠다.
안개나 함정의 방해도 없어 컨디션도 최상에 가까웠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를 가져와서 파이오스 님의 명예를 지켜드리자고.”
“우리의 출셋길도 말이지.”
호위병 중 하나가 킬킬댔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요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 저게 뭐야!”
“신들이시여…….”
끔찍한 요새의 모습을 목격한 병사들이 동요하고 곳곳에서 탄식과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름드리나무로 건설된 목책의 벽에 전날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사체가 마치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혀를 길게 빼문 사체들은 알몸으로 난자당한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며 목에 밧줄이 감긴 채 걸려 있었다.
그중 제일 심각한 꼴의 사체는 리코스에게 배가 찢기고 목이 베인 탈라오스의 사체였다.
그의 꼬리에는 백인 대장임을 나타냈던 검은 말갈기로 장식된 투구가 매여 있었다.
사체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꼬리의 투구도 함께 흔들거리는 모습은 몹시도 끔찍했다.
“우웨에엑!”
누군가가 토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무도 그를 탓하지 못할 정도의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요새 입구였다.
“저들은 망자에 대한 예의도 없단 말인가?!”
“사악하고 저주받을 몬스터 놈들!!”
병사들이 그 끔찍한 광경에 분통을 터뜨렸다.
요새 정문에는 말 그대로 사체가 산을 이루어 쌓여 있었다.
청동 장비를 그대로 몸에 두른 병사들의 사체 더미가 쌓여 요새 입구를 막는 성문 역할을 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병사들의 사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깎여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전투에 익숙하지 못한 보급병들은 절반 이상이 패닉에 빠지기까지 했다.
“물러가라-!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도망쳐라-! 살고 싶다면 던전을 떠나라!”
미리 녹음해 두었던 디르케와 리코스의 목소리가 블루투스 스피커 여러 대를 통해 울려 퍼졌다.
여러 군데서 동시에 울리는 경고의 말은 마치 악령이 저주를 내뱉는 듯 끔찍하게 들려왔다.
덕분에 병사들의 동요는 심해지다 못해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진정해라! 고작해야 몬스터다! 겁먹지 마라!”
“저런 사악한 몬스터들을 물리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호위병들이 패닉에 빠진 병사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정규 병사도 아닌 그들은 쉽게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는 이들은 우리가 직접 베겠다!”
결국, 보다 못한 호위병 하나가 칼을 꺼내 들었다.
그 외침에 병사들이 움찔대며 동요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대신 공을 세운 이들은 우리가 직접 스트라테고스에게 말씀드려 황금을 내려주마!”
다른 호위병이 포상을 언급하자 병사들의 동요는 훨씬 눈에 띄게 진정되었다.
당근과 채찍 작전이었다.
처벌이 무섭든, 혹은 포상이 탐이 나든 싸울 수만 있으면 되었다.
“진격!”
호위병들의 명령에 200명의 병사는 함성을 내지르며 캠핑장 요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목책의 뒤편에는 망루 세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공성전을 대비해 이현이 요청해 춘식이 만들어놓은 시설이었다.
그 망루들 위에 이현, 나진, 민아가 각각 서 있었다
민아와 이현은 언제나처럼 마혈소총과 대형 투척 무기를 들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진은 예전처럼 다시 석궁을 들고 원거리 공격을 할 예정이었다.
나진과 민아를 지키기 위해 세 명의 좀비들이 청동 방패를 들고 함께 발판에 올라가 있었다.
방패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이현은 혼자였다.
“온다.”
이현의 덤덤한 말에 나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수백 명이 달려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격으로 보호받는 이현과 달리 평범한 인간인 나진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이길 거니까.”
그래도 그녀가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자신에 차 있는 이현 덕분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패닉에 빠지길 바랐는데, 아쉽네.”
이현은 나진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혼자 혀를 차며 투덜댔다.
밤새 그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끔찍한 광경에서 너무 쉽게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밤새 사우레노르 사체들을 밧줄에 매달아 목책에 내걸고, 좀비들과 함께 사체 더미를 쌓아 요새 입구를 막았다.
거기에 망자의 땅에서 회복한 리코스와 디르케를 데리고 소름이 돋을 만한 대사를 녹음시켜 스피커로 틀었다.
그게 저들의 심리를 흔들어 놓길 원했는데 생각만큼 효과가 크진 않은 듯했다.
“기왕이면 반 정도는 패닉에 빠져 도망칠 줄 알았는데 말야.”
“주인님도 한번 화나면 참 무서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네요.”
“이 정도로?”
이현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이현은 진심이었다.
캠핑장 아니, 그의 던전에 있는 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터였다.
평범한 인간으로 살았을 때는 생각도 못 할 끔찍한 일이라도 격의 보호를 받는 이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전날 전투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캠핑장 사람이 있었다.
그의 희생에 분노한 이현에게는 더더욱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파충류 인간들을 맨손으로 찢어 죽여도 풀리지 않을 분노였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먼저 선물을 주자고.”
이현은 분명 던전에 오지 말라고 그들에게 경고했었다.
그리고 그걸 무시한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2차 경고로 오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2차 경고까지 무시한 채 자신들을 공격하러 오는 병사들에게 이현이 줄 것은 차가운 도끼날뿐이었다.
“준비됐어?”
“언제든지요!”
대형 투척 도끼에 빙의된 티타니아가 들썩이며 동의를 나타냈다.
마혈소총을 든 민아도, 석궁을 든 나진도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 이현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은 강화 스킬을 건 몸을 최대한 뒤틀었다.
“공격!”
이현의 신호와 함께 대형 투척 도끼가 그리는 은빛 섬광이 적들을 덮쳤다.
마혈소총의 탄환과 석궁의 화살이 그 뒤를 따랐다.
콰드득, 퉁! 쐐액.
단 세 명의 공격이 200명이나 되는 적 부대에 붉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 *
“으아악!”
배에 화살이 꽂힌 보급병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화살은 양반이었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병사들이 차례로 무너져갔다.
마치 신들이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구름 뒤에 숨어 쏘아대는 천벌의 화살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일 끔찍한 건 따로 있었다.
콰드득!
“피해! 신물이 날아온다.”
“신의 징벌이야. 신들께서 노하신 거야!”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온 도끼는 번쩍일 때마다 병사들의 머리를 박살 내거나 팔다리를 끊어놓았다.
몇몇 병사들이 도끼를 쳐내거나 막아보려 했지만 닿는 것마다 족족 은빛 섬광 앞에서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동강이 나버렸다.
“아티팩트!”
스트라테고스의 호위병들은 날아드는 도끼의 정체가 아티팩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티팩트를 접할 길이 없는 일반 사우레노르들이야 신물로 착각할 법도 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5대 가문의 귀족이자 스트라테고스인 파이오스를 모시는 그들이었다.
아티팩트를 가져본 적은 없어도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멍청이들아, 그냥 아티팩트야! 신들의 물건이나 징벌이 아니란 말이다!”
호위병들이 당황하는 병사들을 윽박질렀지만, 그들이라고 딱히 대응할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쏴라!! 궁수의 수는 우리가 더 많다!”
호위병의 지시에 경보병 헌터들이 서둘러 자신의 활을 준비해 쏘기 시작했다.
저들은 고작 3명이지만, 이쪽은 궁수만 서른이 넘었다.
쐐애액!
사우레노르 진영에서 수십 대의 화살이 호를 그리며 목책으로 날아갔다.
쐐애액!
밑에서 위를 향하는 사격이라 위력은 떨어졌지만, 한꺼번에 쏘아져 날아오는 화살들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현은 적들의 궁수가 시위를 당기기 시작한 순간에 이미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방패벽!”
이현의 고함에 청동 방패를 든 청동 중갑 좀비들이 방패로 벽을 만들고 나진과 민아가 그 뒤로 숨었다.
이현은 전신에 두른 청동 방어구와 방패에 내구 강화를 걸고 직접 화살을 막아냈다.
후드득, 돌촉으로 만들어진 화살은 청동 방패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방패로 막아내지 못한 화살들은 좀비들이 몸으로 막아냈다.
청동 방어구를 뚫고 적중한 화살도 좀비들에게는 미미한 피해만 입혔을 뿐이었다.
귀한 청동으로 화살촉을 만들 수는 없기에 대부분의 화살은 돌로 화살촉을 만들었고 위력이 떨어졌다.
“다시 공격!”
한차례 화살을 막아내자 나진과 민아는 방패벽 사이로 무기를 내밀고 사격을 재개했다.
“통하지 않습니다!”
“뭐, 저런 괴물 같은……!”
호위병들은 기가 차서 입을 쩍 벌렸다.
청동 중갑 좀비들에게 화살이 전부 막혀 민아와 나진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한 것도 기가 찰 일이었다.
그런데 이현은 온몸으로 화살 비를 그대로 막아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저것도 아티팩트인가?”
실상은 내구 강화를 걸어서 끄떡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티팩트의 위력을 본 호위병들은 이현의 장비가 아티팩트일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티팩트라고 해도 저건 괴물이다.”
아무리 돌촉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화살에 맞을 때 전해지는 충격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수십 대의 화살을 몸으로 받아내고도 끄떡도 없는 이현의 모습에 일반 병사들은 물론 호위병들까지 기가 죽었다.
정작 이현은 투구 밑으로 히죽 웃고 있었다.
“내구 강화랑 방어 강화는 폼이 아니라고.”
“그래도 조심해요! 갑옷이 없는 곳에 맞으면 다칠 테니까요.”
티타니아가 화살을 막아내고 의기양양 해하는 이현에게 일침을 날렸다.
청동 장비로 가리지 못한 팔뚝이나 허벅지 부분, 그리고 투구 사이로 드러난 눈이나 목은 보호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이현이 방어 강화 스킬로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들을 맞으면 다칠 게 뻔했다.
“알고 있어. 그러니 먼저 공격해 주자고.”
당하고만 있을 이현이 아니었다.
“티타니아, 궁수들을 노리자.”
“알겠어요.”
이현이 대형 투척 도끼를 다시 한번 적들에게 힘껏 날렸다.
그러자 티타니아가 빙의된 도끼가 자연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움직임으로 궁수들에게 날아갔다.
“신물이다!”
“말도 안 돼…….”
병사들 사이를 누비며 궁수들의 목만 잘라대는 도끼의 움직임에 이번에는 호위병들도 아티팩트라고 반박하지 못할 정도였다.
“뭘 이런 걸로 놀라고 그래?”
이현이 준비한 건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좀 화끈한 걸 선물해주지.”
이현은 민아 뒤에 서 있던 민경에게 외쳤다.
“지금입니다. 부탁드릴게요!”
이현의 요청에 민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던전의 구성원에게만 보이는 망령종이기에 사우레노르 병사들은 민경이 그들 사이를 누비고 있음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목책 바깥 바닥으로 내려온 민경의 눈에 이현이 마련해놓은 표식 몇 개가 들어왔다.
‘저기구나.’
민경이 그 표식이 놓인 땅속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과 함께 폭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