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옹케스토스(2)
이현과 나진이 이해한 듯 보이자 리코스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드라콘의 이빨에서 태어나 용의 피를 이은 다섯 영웅은 반신이나 다름없는 힘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다섯 영웅이란 바로 5대 귀족 가문의 시조들이었다.
“하긴 그런 드라콘에게서 태어난 이들이니 그런 검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이현이 디르케가 준 검 하르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의 무기라고 부르기엔 모호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현이 봐 왔던 무기 중엔 단연코 최고의 검이었다.
이현의 말에 디르케가 동의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런 다섯 영웅처럼 되기 위해 격을 쌓는 것이 저희의 미덕이에요.”
리코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명예를 잃거나 신들에게 한 맹세를 어기면 격이 떨어져 지성을 잃은 헤르페톤이 됩니다. 반대로 격을 쌓아 승격하면 에키드나나 오피디온 같은 승격자가 될 수 있지요. 승격에 승격을 거듭하면 언젠가 위대한 드라콘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리코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저에겐 이제 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그 말에 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모르지. 너도 이미 승격했잖아? 앞으로 몇 번 더 승격하면 드라콘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
“하하, 농담이 과하시군요.”
리코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현은 진지했다.
“아니, 생각해 봐. 민아도 원래는 시귀종이었지만, 승격하다 보니 흡혈종이 되었잖아.”
거머리를 비롯한 뱀피르 종족은 인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었다.
민아도 앞으로 승격을 거듭하다 보면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현은 샌드위치를 마무리하며 민아의 사례를 들었다.
“너도 모르는 거야. 언데드의 몸이면 어때. 승격하면 위대한 존재가 되는 건 달라지지 않잖아?”
이현의 말에 리코스는 웃음을 지우고 생각에 빠졌다.
그는 문득 어렸을 때 삼촌을 따라 여행 갔던 포이니케의 전설을 떠올렸다.
남편의 죽음에 분노해 세상을 창조했던 여신은 세상을 멸망시킬 사룡(死龍)이 되어 재앙을 가져 왔었다.
삼촌에게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이방인의 전설이라며 웃었던 리코스였다.
‘주인의 말대로라면 언젠간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사우레노르에서 언데드가 되면서 승격의 꿈을 포기했던 리코스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크으~ 맛 죽여주네. 안타깝다, 리코스. 너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이 기막힌 맛을 봤을 텐데.”
이현이 샌드위치를 한입 물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에 평가가 후한 것은 민망한 일이었지만, 이번 샌드위치는 정말 걸작이었다.
그건 옆에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 디르케가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이건, 정말 신들의 음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리코스도 먹어 봐야 할 텐데.”
디르케는 육포만 먹고 있는 리코스를 눈에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힌 채로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특히 지구산 샐러드 소스들을 좋아했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우레노르에게 채소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소스는 귀한 사치품이자 음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지구의 다양한 샐러드 소스에 감탄한 디르케는 그것만으로도 이현의 던전에 남길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맛있나?’
그러나 리코스는 음식에 감탄하는 이현과 디르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데드의 몸에 적응한 뒤로는 음식과 맛에 대해 무감각해진 느낌이었다.
크게 체력을 소모하지 않는 한 많이 먹을 필요도 없어서, 리코스의 식사는 육포 한 줌이 전부였다.
이현과 나진은 물론이고 디르케마저 정신없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리코스는 오랜만에 음식이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승격해서 종이 바뀌면 식성이 바뀔지도 몰라. 민아도 바뀌었잖아?”
“그건 고기에서 피로 바뀐 거 아닙니까?”
“다른 거로 바뀔 수도 있지.”
이현의 대꾸에 리코스도 웃음을 터뜨렸다.
사우레노르 시절에도 승격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런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릴 바에야 지금처럼 주인을 지키며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더 나았다.
“앞으로 주인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면, 승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하하.”
“그것도 좋네. 분발하라구.”
자신의 농담에 전투 때와는 정반대로 순진한 주인이 웃자, 리코스도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 * *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자.”
이현이 쉬지 않고 자전거를 달린 결과, 그들은 오로포스 구릉의 한 분지에 야영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 산비탈만 내려가면 옹케스토스에 도착하는 지점이었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때라서 산비탈을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은 위험했다.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 사우레노르들의 도시에 가봤자 잘 곳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었다.
“저는 땔거리를 찾아오겠습니다.”
이현이 지친 몸을 쉬는 동안, 리코스는 잔가지나 땔감들을 주워 오기로 했다.
언데드가 되어 밤눈이 좋아졌기 때문에 이런 일에 적합했다.
그동안 나진은 디르케에게 텐트를 설치하는 법을 알려주며 함께 잘 곳을 마련했다.
“그러니까, 음, 어? 이게 왜 안 맞지?”
문제는 나진도 텐트 설치를 많이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진 씨, 도와줄까요?”
“괜찮아요. 우리끼리 해볼게요!”
명분은 지친 이현을 쉬게 해준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나진의 승부욕에 불이 붙은 듯했다.
그녀의 의욕에 감명받은 디르케도 의기투합해 텐트 설치에 매달렸다.
“그거 전문가용이라서 어려울 텐데.”
“됐으니까 푹 쉬고 계세요!”
이렇게 한 번 발동이 걸린 나진을 말리기는 어려웠다.
이현은 키득거리며 나진의 배려 아닌 배려를 받아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리코스가 땔감을 모아 돌아왔을 땐, 나진과 디르케가 텐트 위에 아마 천을 덮어 위장까지 끝낸 후였다.
“봐요. 결국엔 해냈죠?”
“텐트 하나는요.”
다른 텐트는 둘이서 텐트를 설치하려 악전고투하는 동안 이현이 뚝딱 설치해 버렸다.
캠핑에 미쳐서 살았던 이현의 속도는 고인물 그 자체였다.
이현이 킥킥 웃자 나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흘겨보았다.
“아, 아니, 그게…….”
“됐어. 그렇게 팔팔하시면 저녁은 직접 만드세요! 오늘은 제가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흥!”
나진이 토라져서 가버리자 그녀가 직접 만들어 준 요리를 먹어 볼 기회를 놓친 이현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나진은 그런 이현을 뒤로하고 디르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알을 보살피는 중이었다.
밤의 차가움을 피해 불꽃 주머니를 부화함에 함께 넣어 알을 따뜻하게 해주는 중이었다.
정작 불꽃 주머니를 포기한 그녀는 추위에 떨게 되겠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언제쯤 깨어날까요?”
“아마 제한된 시간을 다 쓰고 던전으로 돌아갈 즈음엔 깨어나지 않을까 싶어.”
부화까지 약 40일 정도 남았다는 소리였다.
“알이 부화하는 데 얼마나 걸려요?”
“낳고 나서 해가 700번이 넘게 뜨고 지는 정도는 걸려.”
“2년이나요?”
“그 전에 뱃속에 여덟 달을 품고 있으니 더 오래 걸리는 셈이지.”
디르케의 말에 나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에 비하면 3.5배나 긴 시간이었다.
“오래 걸리는 대신 차이가 있지. 인간의 아이와 다르게 알에서 태어난 사우레노르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걷고 달릴 수 있어.”
나진의 놀람에 디르케가 웃으며 대답했다.
인간을 자주 접하고 아꼈던 그는 인간의 출생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는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갓난아이로 태어나는 인간과 다르게 사우레노르의 아이는 성장한 채로 태어났다.
“인간으로 치면 유치원 다닐 정도의 아이가 태어나는 건가 보네.”
어느새 다가온 이현도 신기해하고 있었다.
종족이 달라서 출산과 육아도 인간과는 전혀 달랐다.
애초에 난생과 태생으로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소나 말의 새끼도 태어난 즉시 걷고 달린다.
인간의 아이가 유독 유약한 편인 것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말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알을 따스하게 보던 디르케의 눈이 가늘어졌다.
“리코스.”
이현의 지시에 리코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위장용 천을 뒤집어쓰고 불가로 가서 누웠다.
병자인 척하는 것이었다.
디르케도 알을 천막 깊숙한 곳에 넣어놓고 일행의 리더인 척 그 옆에 앉았다.
“나진 씨, 우리도 준비해야겠어요.”
나진과 이현이 노예인 척 일을 하는 시늉을 하면 위장 완료인 셈이었다.
이현은 불을 관리하는 척, 나진은 디르케의 곁에서 시늉을 드는 척을 하며 준비를 마칠 즈음, 말 울음소리가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워! 워!”
말을 타고 나타난 건 척 봐도 고급 옷감을 사용한 옷을 입은 사우레노르였다.
말을 몰고 다가온 사우레노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왔다.
“이런 곳에서 여행자를 만날 줄은 몰랐네요. 반가운 일이군요.”
“성벽 밖의 만남이 항상 즐거운 법은 아니지. 누구냐?”
야영지에 알이 있는 탓에 예민해진 디르케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환영받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전 이노라고 합니다. 이스메이아에서 왔죠.”
방문자가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그러자 디르케가 창을 잡고 일어났다.
“접근금지. 더 다가오면 공격하겠어.”
디르케의 위협에 방문자 이노가 두 손을 들고 자신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음을 드러냈다.
“차가운 밤은 다가오는데 멀리서 보니 따스한 불길이 피어오르더군요. 염치 불고하지만, 함께 밤을 지새워도 괜찮을까요?”
이노는 정중하면서도 친절하게 요청을 해왔다.
디르케가 고민하고 있자, 이노가 난처한 얼굴로 자신의 신분을 설명해왔다.
“전 수상한 자가 아니에요. 제 옷차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스메이아의 귀족입니다. 옹케스토스에 사절로 가는 중이에요.”
이노가 자신이 사절임을 밝힌 것에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자신이 이렇게 공손하게 부탁하는데 거절했다간 차후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묵적인 협박이었다.
“부탁드립니다. 해가 진 후에 산에서 말을 타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잖아요?”
이노가 재차 간청하는 동안, 디르케는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그사이 이현은 리코스의 시중을 드는 것처럼 다가갔다.
그러자 리코스는 이현의 귓가에 속삭이며 그간의 대화를 전달했다.
‘귀찮은 일이 되었네.’
사정을 파악한 이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해치울까?’
이현은 허리춤에 찬 도끼를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피를 보기엔 옹케스토스가 너무 가까웠다.
이 일이 발각될 경우엔 일이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정전 협약은 이스메이아와 체결한 것이라 옹케스토스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이미 한차례 부랑자들의 피를 본 뒤였다.
거기다 이노는 부랑자들과 달리 지위가 높은 자였다.
분명 그녀의 죽음을 조사할 이들이 나올 터였다.
‘어쩔 수 없군.’
이현은 내키지 않았지만, 리코스를 통해 디르케에게 이노를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쿨럭, 쿨럭. 그러도록 합시다.”
기침도 대사도 어색한 리코스였지만, 상대는 그걸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리코스의 신호를 받은 디르케는 슬쩍 이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었군요. 하룻밤만이라면 괜찮습니다.”
“좋은 만남을 주선해준 운명의 여신께 감사를! 정말 고마워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근처 나무에 묶은 이노가 이현이 지피고 있는 모닥불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런데 이노를 바라보는 이현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몰래 분석의 안약을 넣고 바라본 이노의 정보에 뜨는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름 : 세멜레
종족 : 사우레노르(용인종)
격 : 543/550
스킬 : [독 숨결(E)], [카리스마(B), [집착(A)], [채찍술(C)], [약육강식(A)]」
‘세멜레……?’
자신의 이름을 속인 이노의 정체는 바로 세멜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