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50
149화
-습격(1)
으드득!
디르케의 창날이 경비 대원의 턱을 관통해 뇌를 휘저었다.
그녀는 두개골에 단단히 박힌 창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곤 그녀를 향해 찔러져 오는 창들을 향해 경비 대원의 사체를 들이댔다.
퍽! 퍽!
동료의 사체에 창질을 한 경비 대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잔혹한!”
“전장에서도 그딴 말이 나올까?”
디르케는 방패를 휘둘러 자신을 비난한 경비 대원의 주둥이를 으깼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 쥐는 경비 대원의 창을 꼬리로 주워든 다음 그대로 목을 꿰뚫었다.
“쿠에엑!”
“이거 완전 핏덩이들이잖아?”
이스메이아의 노련한 백인 대장으로 전장을 누볐던 그녀와 달리 경비 대원들은 애송이들이었다.
고작해야 저잣거리의 부랑자들과 실랑이해 본 것이 다인 그들이 디르케를 상대로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
디르케의 신형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경비 대원들이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경비 대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이런 실력자라곤 말 안 했잖아!’
허수아비처럼 당하기만 하고 쓰러지는 부하들을 본 경비대장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다, 당신들의 차례요!”
경비대장이 부른 이들은 그의 부하가 아닌 세멜레가 맡기고 간 전사들이었다.
다섯 명의 중장 보병이 말없이 창과 방패를 들고 방진을 짰다.
‘남김없이 죽여.’
애초에 세멜레는 경비대원들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옹케스토스에 도착하자마자 가문으로 연락해서 가문 소속의 전사들을 불러왔다.
그들은 가주를 호위하는 엘리트 전사들이었다.
“흡!”
또 다른 경비 대원을 쓰러뜨리던 디르케는 급소를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창날에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났다.
그곳에는 번쩍이는 청동 장비를 걸친 전사와 그의 동료들이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경비 대원들의 하찮은 전투 실력에 방심했던 터라 그들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디르케가 혀를 찼다.
거기다 보아하니 다들 한가락 하는 실력자들 같아 보였다.
그중 한 명이 나서서 대답했다.
“얌전히 항복하면 고통 없이 끝내주지.”
“웃기는 소리. 내가 누군 줄 알고 하는 소리야?”
“관심 없다. 우리는 명령을 따를 뿐.”
“디르케 우다이오스.”
자신의 말대로 관심 없이 디르케를 노려보던 전사들의 표정에 순간 동요가 찾아왔다.
당연히 그들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우다이오스 가문의 딸이자 뛰어난 전사 디르케의 이름을.
“……백인 대장이라. 쉽지 않겠군.”
그의 말과 함께 전사들의 기세가 한결 엄중해졌다.
방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오냐, 쉬울 리가 없지. 네 이름은 뭐냐?”
디르케가 피 묻은 창을 한 바퀴 돌리곤 전사들의 대표에게 물었다.
이미 전투에 낄 실력이 없는 경비 대원들은 물러난 다음이었다.
“밝힐 이름 따윈 없다. 그저 가문에 충성할 뿐.”
“이름도 없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니. 기가 막히네.”
싸움에 앞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전사의 명예였다.
그것마저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에키온 가문을 위해 길러져 온 전사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디르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덤벼, 자식들아. 하데스 앞에서도 이름을 안 대는지 한번 보자.”
디르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과 창이 엇갈려 서로를 찔렀다.
* * *
외적의 침입.
그리고 그 외적의 공격에 두려워한 신들의 도망.
지구에서 잊혔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신들이 되어 있었다.
이 놀라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마저 도망칠 정도로 무서운 적들은 대체 누굽니까? 왜 저희는 그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겁니까?”
[너는 아직 그것을 알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너에게 그것을 알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네레우스는 이현에게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네가 더 격을 높이고 그것을 알려줄 존재를 만나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네레우스의 대답에도 이현은 더 깊은 혼란에 빠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레우스가 더 대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이현은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라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행히 네레우스는 이번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었다.
[저 아이 때문이다.]네레우스가 가리킨 건 이아코스, 디오니소스의 환생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이아코스는 항상 해맑던 웃음을 잃고는 몹시 당황해하고 있었다.
“저, 저요?”
[그렇단다, 내가 아끼는 아이야. 내가 널 아끼는 이유는 디오니소스에게 진 빚 때문이었다.]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신들을 지구에서 사우레노르로 옮긴 구세주, 디오니소스.
네레우스는 이아코스에게 다가와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너는 디오니소스가 아니란다. 하지만 그의 얼마 남지 않은 흔적이기도 하지.]“그, 그렇죠? 제가 위대하신 신님이라니, 그럴 리가 없죠?”
네레우스의 말에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며 이아코스가 헤헤 웃었다.
하지만 네레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인간이지만 위대한 신이 될 씨앗을 품고 있는 존재다. 그리고 나는 널 우리와 같은 존재로 만들고 싶구나.]“네?”
네레우스의 말에 이아코스가 벙찐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시, 신이라뇨? 제가요?”
[그러하다. 너의 전생이었던 그 위대한 신 디오니소스처럼, 너 역시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네레우스가 이아코스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우릴 위해 희생한 디오니소스를 위한 내 보답이니라.]네레우스는 거기까지 말한 뒤, 당황하는 이아코스를 두고 이현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판가이온으로 데려가거라.]네레우스의 손짓에 물방울들이 모여 하나의 영상을 허공에 비추었다.
거대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고원 한가운데 웅장한 신전 하나가 존재했다.
[올림포스를 잃은 우리의 두 번째 신좌, 판가이온에 가서 이 아이의 잃어버린 신격을 되찾아라.]* * *
‘젠장, 젠장!’
에키온 가문에게 받을 선물에 눈이 멀었던 경비대장은 이제야 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디르케 우다이오스.
경비 대장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당연히 우리 애들이 상대가 안 되지!’
15명이나 데리고 왔던 대원들이 6명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에키온 가문의 전사들마저 당한다면, 그와 부하들의 목숨은 없을 게 뻔했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해.”
경비대장이 당황해서 턱 뿔을 미친 듯이 쓰다듬을 때였다.
“대장님, 저기 숨어서 보는 놈들이 있는뎁쇼?”
경비 대원 하나가 귀띔해왔다.
경비대장 역시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창문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전투 인원이 아닌가?’
어두워서 잘 확인이 되진 않았지만, 병자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가서 잡아 와. 인질로라도 삼게.”
경비대장이 디르케에게 들리지 않게 대원들에게 속삭였다.
만약 세멜레의 전사들이 디르케를 이기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대원들도 같은 마음인지 고개를 끄덕이곤 흩어져서 실레노스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깡!
경비대장이 수를 쓰는 사이, 디르케와 에키온 가문의 전사들의 싸움도 격화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에키온 가문의 전사들은 경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백인 대장 출신이라지만, 그들은 에키온 가문의 지원을 받으며 커온 전사들이었다.
세멜레만큼의 경지는 되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손꼽는 강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함께 덤벼도 디르케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퉤. 비겁한 놈들.”
디르케가 피 섞인 침을 뱉으며 으르렁거렸다.
방심하다가 맞은 방패에 볼 안쪽이 찢어진 탓이었다.
“전사라는 것들이 다 함께 덤비기나 하고. 창피한 줄 알아.”
처음엔 한 명만이 나서서 디르케와 싸웠다.
하지만 디르케가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며 싸우자 한 명씩 끼어들더니, 지금은 5명이 전부 디르케와 싸우는 중이었다.
“부끄러운 일인 줄은 안다. 하지만 우리에겐 명령이 더 중요하다.”
“아주 자기 비늘이라도 벗겨서 바칠 판이군. 감동적이야.”
“네가 뭐라고 해도 가문을 향한 우리의 충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충성?”
전사의 말에 디르케가 피식 비웃었다.
“세멜레 그년은 예전부터 그랬어. 모두 자신의 밑으로 두지 않곤 견디질 못했지. 너흰 충성이 아니라 사육당하는 거야.”
디르케의 도발에 전사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왜? 아냐? 너희 세멜레의 쫄따구들 맞잖아?”
“입 닥쳐라. 무례하게 감히 가주님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
으드득, 5명의 전사 모두 뿔을 비죽 드러내며 분노했다.
‘제대로 넘어왔군.’
예상대로 도발이 먹히자 디르케는 그들의 창을 받아내느라 너덜너덜해진 방패를 던져 버렸다.
그러곤 바닥에 떨어진 창 하나를 주웠다.
리코스가 나진에게 가르쳤던 이창류였다.
‘나진이 이 싸움을 봤다면 도움이 됐을 텐데.’
사실 리코스보다는 디르케가 더 이창류에 능숙했다.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리코스보다는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덤벼, 세멜레의 개들.”
디르케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발하자 결국, 전사들의 눈이 뒤집혔다.
“네년의 비늘을 모두 벗겨주마!”
“어머, 그것밖에 안 돼? 난 원수의 살점을 온 들판에 흩뿌렸는데 말야.”
디르케는 비식,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의 창을 내뻗었다.
그녀의 두 창과 다섯 전사의 창이 부딪치려 할 때였다.
“잠깐!”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디르케와 전사들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소리의 장본인인 경비대장은 청동검을 자신이 붙잡은 인질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거기서 창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자의 목이 달아날 줄 알아.”
“……너.”
디르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을 본 경비대장이 한층 더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너희가 병자와 함께 다닌다는 정보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 병자를 죽이기 싫으면 그대로 항복해라.”
“너 제정신이냐?”
“그럼! 아주 멀쩡하지.”
디르케의 당황한 표정에 경비대장이 킬킬댔다.
“왜? 전사가 인질을 잡는 건 명예가 아니라서? 이걸 어쩌나? 난 전사가 아닌데.”
경비대장이 이죽거리며 병자 행색을 한 인질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얼른 무기 내려. 이놈이 죽는 걸 원치 않으면.”
“……어쩔 수 없군.”
디르케가 양손으로 전사들을 겨누고 들었던 창끝을 밑으로 내렸다.
그 모습에 전사들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미안하군, 처음부터 명예 따윈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이기는 건 우리의 뜻이 아니었다.”
합공으로 디르케를 상대하긴 했지만, 적어도 전투였다.
전사들은 이런 인질극으로 뛰어난 전사와의 싸움이 끝나게 되자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무슨 소리야? 누가 안 싸운대?”
“무슨……?”
전사들이 그녀의 말에 당황하고 있을 때, 디르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코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약한 척하는 것도 힘든 일이네.”
콰직!
병자로 보였던 인질의 거대한 팔이 치솟으며 경비 대장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뭐, 뭣이!”
당황한 경비대장이 비명을 질렀지만, 좀비 로드의 강력한 악력은 한순간에 그의 머리를 으깨 버렸다.
퍼석, 터져나가는 경비 대장의 머리에 모두가 아연실색할 무렵, 리코스가 손에 묻은 피와 뇌수를 털어내며 말했다.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 당신은 그놈들이랑 놀아.”
“역시 내 남편이라니까. 근데 이제 재미없겠는데?”
디르케가 아쉽다는 듯 웃었다.
“스, 승격자……!”
병자의 옷을 벗어 던지고 2m가 넘는 거구를 드러낸 리코스의 모습에 모두가 전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