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32
231화
-감염종의 행성(3)
이현은 잠시 맥도일을 이아코스에게 맡겨두고 코에스몰, 즉 히든 던전으로 들어왔다.
“후, 이게 바로 문명의 향기지.”
이현이 코에스몰의 공기를 힘껏 들이켜며 히죽 웃었다.
맡아지는 거라곤 방향제와 새 건축물에서 나는 공업 용품의 향이 전부였지만, 이현은 매우 만족한 얼굴이었다.
“또 그런다, 또. 어떻게 주인님은 매번 올 때마다 그 요상한 짓을 계속하는 거예요?”
“야, 네가 반년 동안 캠핑장에서 살아 봐. 안 이러고 배기나.”
“무슨 소리래. 저도 주인님이랑 같이 살았거든요?”
“아, 그렇지?”
이현이 실없이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티타니아에게 구박을 받더라도 이현은 코에스몰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마나 현대 사회의 문물에 찌들어 살았는지 이제야 알았다니까.”
강원도 출신에 캠핑과 자연을 사랑하던 청년 도이현은 자신이 도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반년 만에 접한 한국 소비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에스몰 앞에서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캠핑장은 시설이 너무 열악했어. 공원 사무소에 있는 물자도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사무소 건물의 작은 매점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기로 가면 대형 마트가 있어. 온갖 식재료와 생활용품으로 가득한 곳이지. 이 층의 반은 전부 의류점이야. 이제 입고 싶은 옷은 마음대로 골라 입어도 돼. 나머지 반은 뭐냐고?”
“음식점이요, 음식점.”
“그래. 이제 내가 밥을 안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이현의 얼굴에서 싱글거림이 떠나지 않았다. 티타니아가 질렸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좋으면 아예 여기서 살지 그래요?”
“나야 그러고 싶지.”
이현이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라고 여기서 살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캠핑장의 텐트에서 반년을 살아왔던 그에게 코에스몰과 붙어 있는 호텔의 스위트룸은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다.
푹신한 침구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생활 시설, 거기다 체육관과 수영장은 덤이었다.
실제로 이현을 제외한 공원 사람들은 모두 코에스몰의 호텔로 이주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한 건 너잖아.”
이현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티타니아를 살짝 노려보았다.
하지만 티타니아는 그 눈빛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흥! 당연하죠. 던전 보스가 던전을 비우고 다른 곳에서 사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라구요.”
“괜히 던전이랑 분리시켰나 봐.”
엄연히 이현의 던전에 소속되어 있고 그의 관리하에 있는 던전이지만, 히든 던전은 분리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보스인 이현이 메인 던전을 버리고 히든 던전 깊숙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으면 아무리 저나 주인님이라도 적의 침입을 느끼기 어려워요. 그리고,”
“메인 던전보다 히든 던전에 사념 에너지가 집중되겠지. 그러면 던전수의 성장에 방해가 되고.”
티타니아가 몇 번이나 말한 덕분에 귀에 딱지가 내려앉은 이현이 그녀가 할 말을 먼저 했다.
“잘 알아. 거기다 내가 있으면 새로 온 사람들이 불편해하니깐, 나도 여기서 살 생각은 없어.”
이현의 격은 이제 겨우 5성, 아직 그에게는 갈 길이 먼 경지였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이현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반걸음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격과 보스가 가지는 위압감에 모두 그를 어려워했다.
정확히는 두려워했다.
이현이 살짝 상처 입은 표정을 짓고 있자 티타니아가 한심하다는 듯 이현의 팔뚝을 꼬집었다,
“아프잖아!”
“정신 차리라고 한 거예요. 원래 보스는 부하들의 경외를 사야 하는 법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티타니아에게 이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아주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었다.
“거기다 그런 도움도 안 되는 짐 덩어리들이 뭐가 예쁘다고.”
“……그건 그렇지.”
티타니아의 투덜거림에 이현이 부정하지 못하고 쓰게 웃었다.
513명의 신입들이 던전에 합류한 지도 벌써 50일이 다 되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던전의 새로운 전력이 되어주기는커녕, 사고만 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 되는 중이었다.
“던전에 왔으면 던전의 법을 따라야지! 다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다니까요?”
처음엔 이현과 던전에 먼저 휘말렸던 사람들이 그들에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밖으로 가봐야겠어!”
사람들은 이현의 통제를 벗어나 캠핑장이나 공원 구역으로 달려갔다.
몇몇은 투명하지만 막혀 있는 던전의 경계 즉, 돔 벽을 마주하고 절망했고, 몇몇은 사우레노르들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며 되돌아왔다.
‘난리도 아니었지.’
덕분에 그들은 리코스나 디르케, 이아코스처럼 지구 외 존재들에게 눈총을 받을뿐더러, 같은 지구인인 공원 사람들에게도 백안시당했다.
이현이 얼마나 고생하며 자신들을 지켜줬는지를 아는 그들에게는 신입들의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이 용납 되지가 않았다.
“진짜 그런 말을 했어요? 내가 이 사람들을 그냥!”
“혜인아, 그러지 마.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야.”
지금 도서관 카운터에서 분을 터뜨리고 있는 혜인과 민수가 딱 그런 이들의 대표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 보스! 마침 잘 오셨어요. 사실 그게 말이에요…….”
혜인이 씩씩 성을 내며 민수와 시위대 사이의 일을 이현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특히 마지막에 민수를 보고 괴물이라고 불렀다는 말에 이현의 표정이 싹 굳었다.
“진짜예요?”
“……네.”
마치 고자질하는 것 같아 민수는 민망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보스인 이현이 성을 내자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아무리 체념하고 받아들인 운명이더라도 괴물이라고 매도당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언제까지 저들을 봐줘야 하는 건지.”
이현이 혀를 차며 싸늘한 눈빛으로 시위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 사람들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고 그랬죠?”
“네. 전부 제각각이에요.”
이현의 물음에 혜인이 노트 하나를 꺼내 메모해가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513명의 사람 중 불만을 가진 사람은 반의반도 안 돼요. 한 백 명 정도? 하지만 그 사람들이 일으키는 분란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어요.”
그 100명도 네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 혜인의 설명이었다.
“첫 번째는 탈출파예요. 어떻게든 던전 밖으로 나가자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벽을 발견한 이후로는 얌전해졌어요.”
정확히는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울해진 것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잠잠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정말 한심하지만, 탐욕파예요.”
코에스몰이라는 거대한 쇼핑단지에 존재하는 사람은 단 500명.
이들은 자신들이 던전에 갇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한정된 물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과 분란을 일으켰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이현이 툭 던진 말에 민수와 혜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탐욕파들이 하는 짓이 초창기 고재성과 함춘식이 벌이던 일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함춘식은 일찌감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고재성은 끝까지 욕심을 부리다가 목숨을 잃었다.
자신들이 동참했던 건 아니지만 고재성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였던 민수와 혜인은 이현을 볼 낯이 없었다.
“[초기화]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선 꽤 얌전해지지 않았어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아직도 가끔 호텔 쪽에선 싸움이 나요.”
서로 좋은 방을 차지하려고 갈등이 일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티타니아가 혀를 찼다.
“아주 배가 불렀네요. 그냥 다 창 하나 쥐여준 다음 헌터들 상대하라고 해야 하는데.”
“무리라는 걸 알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다들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전투에 몇 번이고 참가해 헌터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는 민수가 티타니아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한 번이라도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전투를 겪어보고 나면 겨우 숙소 가지고 싸우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며.
“지금은 무리야. 나중을 기약해야지.”
티타니아 말마따나 지금 창 한 자루씩 들고 전투에 나서면 모두 전멸할 터였다.
이현은 한숨을 짧게 내쉰 다음 그다음을 물었다.
“다음은요?”
“정말 소수이긴 하지만, 종교파가 있어요.”
종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이현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마트에 갇힌 사람들을 선동하던 영화 속 한 광신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편이에요?”
“아니요, 다행히 코에스몰 앞에 있는 절의 스님 한 분이 계셔서 다들 얌전히 있는 편이에요.”
잠시 신도들을 위한 주전부리를 사러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스님이 던전에 휘말렸다고 한다.
던전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신을 찾고 광신으로 치달아갈 뻔한 종교인들을 스님이 온화한 마음으로 달래고 있었다고 한다.
“정말 그분이 계셔서 다행이라니까요. 몇몇 종교에 심취한 분들이 제물이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했었어요.”
“절대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돼요. 만약 한 번만 더 그런 소리가 나오면 제게 바로 연락하세요.”
“네, 그럴게요.”
“그 스님 이름이 뭐예요?”
“지광 스님이요. 법명이 지광이라고 하셨어요.”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마지막은 정치파에요.”
“정치파요? 정치인이라도 있어요?”
“그것도 그런데, 하는 짓이 진짜 질 나쁜 정치질이라서 그렇게 불러요.”
이들은 앞으로 대놓고 나서질 않으면서 뒤에서 교묘하게 다른 이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재성…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아래로 두려는 것 같아요.”
혜인의 말에 이현이 침음성을 흘렸다.
고작 수십 명이었던 공원 사람 중에서도 고재성이라는 이가 나왔었다.
500명이 넘는 신입 중에서 그런 이가 없을 리가 없었다.
“그중 대표가 아까 말한 김주동이라는 정치인입니다.”
민수가 혜인의 말을 보충해주었다. 지금쯤 한창 나진과 언쟁을 벌이고 있을 거라며.
“그 사람들의 선동에 얌전하게 지내고 있는 다른 사람들마저도 시위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좀…….”
민수가 말끝을 흐리자 이현이 알겠다는 의미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알겠어요. 나한테 맡겨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랑 나진 누나는 어디에 있어요?”
“입구 근처 중앙 광장입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티타니아와 함께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이 사람들을 어쩌면 좋을까?”
이현의 중얼거림에 티타니아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냥 힘으로 눌러 찍어 버리는 게 제일 편하다니까요.”
“솔직히 그게 제일 편하지.”
이현이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사실 방법은 간단했다.
5성의 격이 가지는 위압감으로 찍어눌러도 되고, 이현이 가진 무력으로 겁을 줘도 됐다.
아니면 당장 [초기화]를 멈춰서 그들이 먹고살 식량과 전기, 수도를 끊어 버려도 통제는 가능했다.
하지만 이현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현아, 이번 일은 내게 맡겨 줘.’
히든 던전으로 코에스몰을 분리하면서, 이현은 나진에게 히든 던전의 보스를 맡겼다.
덕분에 나진은 현재 중간보스라는 직업까지 가진 상태였다.
히든 던전을 맡게 되자 나진은 사람들의 관리를 자신이 맡겠다고 자처했다.
‘힘으로 다스려도 되지만, 그래선 나같이 협조하는 이들은 더 안 나올 거야.’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보호해주는 이현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진은 평범한 연예인에서 전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녀였기에,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다스리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나진 양이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누나를 믿어.”
이현의 눈에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는 나진이 멀리서 보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강한 사람이거든.”
쾅!
나진의 창끝이 바닥을 파고드는 모습을 보며 이현이 말을 이었다.
“……무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