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3
32화
-언데드(2)
이현은 리코스의 시신을 제외한 6구의 시신을 하나씩 던전에 흡수시켰다.
해 질 녘에 동굴로 들어와 마지막 시체를 흡수시킬 때는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다.
“됐다!”
“자, 그럼 이렇게 바둑판!”
“이이익!”
이현은 던전수가 시체들을 흡수하는 동안 민아에게 실뜨기를 가르쳐주며 놀아주고 있었다.
밤이 늦었지만, 피로도 느끼지 않고 잠도 필요 없는 민아가 심심해해서였다.
“그런데 얘는 딱히 식성 같은 건 없나 보네?”
여기서 얘란, 이현이 만든 바둑판을 풀기 위해서 끙끙대는 민아가 아니라 던전수였다.
던전수는 흡혈종이나 용인종인 사우레노르를 가리지 않고 잘만 흡수했다.
“영양분이 되는 데에는 구분이 없어요. 인간도 좋아할걸요?”
“으윽.”
사실 던전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구하고자 시작한 흡수였다.
헌터의 시체가 아닌 사람의 시신도 문제없이 흡수할 수 있는 게 당연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얻는 인자가 하나도 없네.”
마지막 시체의 흡수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특별한 알림 방송은 없었다.
아마 마지막 시체의 흡수가 끝난다고 해도 인자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흡혈종의 시체를 흡수시켰을 때, 처음부터 인자를 얻었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했다.
“주인님의 운도 이제 슬슬 다 떨어진 게 아니겠어요?”
“애초에 바란 적도 없었거든?”
“거짓말. 아쉽죠? 아쉽죠?”
티타니아가 히죽대며 이현을 놀렸다.
애써 아닌 척했지만, 이현은 사실 실망스럽긴 했다.
흡혈 종의 인자로 얻은 [시생] 인자, 그리고 [망자] 특성은 이현에게 큰 도움이 됐었다.
사우레노르 헌터들의 시체로부터 아무런 인자도 얻지 못한 건 아쉬운 일이었다.
“운은 농담이었구요. 헌터들의 격이 낮아서 그래요. 격이 높아야 던전수도 빨아들일 영양분이 많지 않겠어요?”
“물질적인 영양분이 필요한 게 아니었어?”
“무슨 소리예요. 던전수는 당연히 격을 먹고 자라죠.”
던전수가 인자를 얻기 위해선 흡수될 대상이 품고 있는 격이 중요하다는 소리였다.
“흡혈종은 기본적으로 격이 높은 종이에요. 반면 용인종 중에서 사우레노르는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죠.”
“인간은?”
“최하. 아마 전 우주에서 인간보다 낮은 종도 드물걸요?”
“…….”
던전수가 흡수하는 양분의 수치로 환산하면, 흡혈종은 한 명당 30, 사우레노르는 5, 인간은 고작해야 1이었다.
이현은 흡혈종의 높은 격에 놀라기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인간의 격에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격 높은 흡혈종 시체로도 인자를 뽑아내기가 어려운 편이에요.”
“사우레노르로는 더더욱 힘들겠네.”
“그렇죠. 저번이 규격 외 상황인 거였어요. 그런 일은 흔한 게 아니라니까요.”
티타니아가 손가락을 까딱대며 고개를 저었다.
으스대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현이 괜히 열 받기 시작할 때였다.
흡수가 완료되었다는 알림 방송이 울렸다.
[던전수가 양분의 흡수를 완료했습니다.] [던전 보스가 던전수에 지속적으로 양분을 바쳐 애정을 기울입니다.] [던전이 [초보 원예가] 업적을 기록합니다.] [업적에 어울리는 보상이 제공됩니다.]동굴을 울리는 알림 방송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티타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규격 외가 또 규격 외 했네.”
“야,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이현이 티타니아의 태도에 발끈하려던 참이었다.
[보상 : [부분 초기화]] [초보 원예가]는 [최초의 살해자] 이후로 얻는 두 번째 업적이었다.“부분 초기화?”
“풉!”
그런데 보상에 대해 들은 티타니아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업적 보상을 얻어 들뜬 이현의 기분을 티타니아의 웃음이 망쳐 버렸다.
“푸헤헤헤.”
“야, 그만 좀 웃지?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티타니아는 이현의 눈총에 헛기침하며 겨우 웃음을 가라앉혔다.
“사실 이게 받기 어려운 업적은 아니에요.”
“그래?”
“던전수에 비료, 그러니까 영양분을 10번만 공급해주면 얻을 수 있죠.”
이현은 손가락을 꼽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흡수시킨 것이 딱 10구째의 시체였다.
“던전수에 비료를 주는 던전 보스가 드물긴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요. [최초의 살해자] 업적처럼 얻기 힘든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문제는 보상이죠.”
업적은 던전 내에서 특수한 기록을 세운 이들에게 던전 시스템이 내리는 보상이었다.
“헌터들도 업적을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럼요. 그게 오히려 헌터들을 던전으로 꾀는 미끼가 되니까요.”
업적으로 얻는 보상은 오로지 던전 시스템이 지배하는 던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보상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헌터들은 던전에 들어오고 업적을 얻으려 노력했다.
“동시에 던전의 몬스터들이 능력을 강화하는 수단이기도 하죠.”
“내 경우처럼 말이지.”
이현은 [최초의 살해자] 업적으로 얻은 분석의 안약 덕분에 지금까지 몇 번이고 위기를 넘겼던 걸 떠올렸다.
“맞아요. 그래서 보상은 업적의 꽃과 같은 거죠.”
업적의 보상은 보통은 능력에 간단한 보정을 주거나 물건을 강화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현의 경우에는 분석의 안약이라는 아티팩트를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킬이 나오는 건 정말 희귀한 거예요. 대박 중의 대박!”
아티팩트 보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소모 횟수가 있기도 하고, 아티팩트 자체가 파괴되면 그만이었다.
반면, 업적 보상으로 얻는 능력 보정은 정말 간단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티팩트 강화나 능력 보정에 비하면 스킬은 소모적이지도 않고 유용한 편이었다.
“그럼 대박을 뽑은 건데 왜 웃었어?”
“하필이면 뽑은 스킬이 [부분 초기화]니까요. 풉!”
부분 초기화는 초기화 스킬의 하위 호환이자 파생 스킬이었다.
전체를 원상복구 시키는 초기화와 달리, 부분 초기화는 던전의 일부만 되돌리는 스킬이었다.
“주인님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진짜 완전 하위 스킬이네. 뭐야.”
티타니아의 설명에 기뻤던 이현의 표정도 떨떠름해졌다.
그러자 티타니아가 웃으며 이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은 점도 있어요. 일부만 복구시키는 대신, 그 일부의 특정 시점 상태를 던전에 등록시킬 수 있어요.”
“등록시킨다고?”
“네. 그러면 등록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죠.”
“일종의 세이브, 로드 개념이네?”
“정확해요.”
이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음식을 보관해둔 텐트나 매점만 되돌릴 수 있었다.
식량 때문에 초기화를 할 때마다, 던전 전체가 초기화되었다.
“매번 공원 건물로 되돌아간 무전기를 가지러 가는 것도 귀찮고. 나름 괜찮은데? 이게 어때서?”
“어떻긴요. 거머리가 가진 스킬들 못 봤어요?”
[은신], [암살] 같은 전투계 스킬부터 보조계 스킬인 [후각 탐지]까지.하나같이 대단한 스킬이었다.
“그런 스킬을 놔두고 하필이면 허접한 던전 관리용 스킬을 얻었으니 쪽박인 거죠.”
황금 구슬이 가득 찬 상자에서 쇠 구슬을 뽑은 격이라며 티타니아가 혀를 찼다.
“에휴,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 아니네요. 주인님의 고생이 곧 내 고생인데.”
갑자기 축 처진 티타니아와 달리 막상 이현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현은 티타니아를 보며 웃어 보였다.
“쇠 구슬에는 쇠 구슬 나름의 쓸모가 있는 법이지. 두고 봐.”
“퍽이나요.”
그렇게 업적으로 인한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이현은 민아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향했다.
“아빠, 저 공룡은 왜 안 묻어?”
민아가 하나 남은 사우레노르 헌터의 사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사체는 민아를 지키려다 죽은 리코스였다.
“민아나 다른 사람들처럼 되살려줄 거야.”
부활의 개념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민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현은 민아에게 한 말 그대로 리코스를 언데드로 부활시킬 셈이었다.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온 헌터였지만, 민아를 지키려고 했던 자였다.
이현은 그런 자의 영혼마저 던전에 갈아 넣는 것이 꺼려졌다.
“지금 당장은 안 되는 거 알죠? 주인님의 격이 어느 정도로 올라야 문제가 안 생겨요.”
“그래. 알고 있어.”
보스인 이현의 격이 낮은 지금은 리코스를 부활시켜 봤자 통제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사우레노르가 흡혈종보다는 격이 낮다지만, 이현의 격 역시 낮았다.
“함부로 되살렸다간 오히려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안전과 생존을 중시하는 이현에게 그런 도박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이현은 자신의 격이 올라가 통제가 가능해질 때에, 그를 되살릴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사체가 부패하지 않게 여기에 둘 거고.”
한여름임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운 동굴 안이었다.
이곳에 두면 사체가 부패하는 속도도 느려지고 그로 인해 격이 떨어지는 것도 늦출 수 있을 터였다.
“그런 다음은 저 자에게 맡겨야지.”
언데드로 부활한 뒤에는 부하로 삼아도 되지만, 다음은 그의 선택에 맡길 셈이었다.
언데드로서의 제2의 삶.
그것이 민아를 지켜주려 했던 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답이었다.
* * *
이현은 동굴 밖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재성을 발견했다.
물론 재성은 동굴 속에 있는 이현과 민아를 보지 못했다.
“지독하네. 그동안 계속 기다린 거야?”
적어도 6시간을 넘게 숲속에서 기다렸다는 소리였다.
이현은 재성의 쓸데없는 근성에 혀를 내둘렀다.
“참 할 것도 없는 사람이네요. 저런 노력을 다른 데 쏟아 보지.”
티타니아도 혀를 찼다.
밤중의 숲속에서 기다리다 모기한테 뜯겼는지 몸 여기저기를 긁는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어쩔 거예요?”
“글쎄…….”
동굴의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면 지금 나가선 안 되었다.
하지만 6시간을 기다린 재성이 언제까지 버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빠, 민아가 혼내줄게.”
민아가 으르렁거리며 바닥에서 돌을 주워들었다.
총이 없으니 돌을 던지려는 걸까.
이현은 깜짝 놀라 민아의 손에서 돌을 빼내었다.
“안 돼. 민아야.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그치만 저 아저씨가 아빠 힘들게 하는걸!”
민아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순순히 이현에게 돌을 넘겨주었다.
힘으로는 이현이 이길 리 없었지만, 민아는 순순히 이현의 말에 따랐다.
‘그냥 나갈까?’
지금 나가면 동굴의 위치를 들키게 되겠지만, 그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은 많았다.
‘여차하면 폭력을 써서라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애 앞인데.’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민아가 유독 재성에게 사납게 대하는 것도 이현이 평소 그를 좋게 보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이현이 직접 재성을 두들겨 패기라도 한다?
민아의 교육에 좋지 못할 게 뻔했다.
‘민아가 싸우는 건 좋지만, 대상은 헌터뿐이어야 해.’
민아가 산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나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건 괴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려고 되살린 게 아니니깐.’
이현은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법을 고민했다.
“이걸 어쩐다…….”
민아는 이현이 고민하는 게 불만이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아져 얌전해졌다.
그때였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건지 재성이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사납게 둘러보던 그는 퉤 하고 침을 뱉더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그 방향이 캠핑장이 아니었다.
“어쭈?”
“공원 쪽으로 향하는데요?”
스마트폰 불빛으로 앞을 밝히며 재성이 향하는 곳은 공원 쪽이었다.
이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공원으로 간다고?”
분탕질을 친 전과 때문에 이현은 재성과 춘식이 공원에 가는 것을 금지했었다.
그가 시킨 일 때문에 가더라도 건물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해 놓았다
“티타니아, 몰래 따라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