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36
335화
-창의 끝(2)
[부러진 애각창]이 부르르 떨리는 모습을 본 나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창을 집어 들었다.우우웅.
나진의 손안에서도 창은 떨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저게 왜 그러지?”
애각창을 들고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왔지만, 이런 모습은 나진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설마…….”
이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의 옷을 가지고 나진이 들고 있는 창 가까이 다가갔다.
우우웅!
애각창의 진동이 훨씬 강해졌다.
“어? 어?”
나진이 당황해서 소리를 낼 정도로 강해진 진동에 이현은 확신했다.
‘이거구나.’
옷이나 장신구 둘 중 하나가 [부러진 애각창]과 연결된 매개체였다.
“저, 도 대협. 제 옷은 왜 들고 계신 건가요?”
아주가 자신의 옷을 들고 있는 이현을 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잠시 시험해볼 일이 있어서.”
이현은 아주의 옷과 장신구를 따로 떨어뜨려 놓고는 하나씩 애각창에 가까이 가져대 보았다.
“이건 아니고.”
아주의 옷에는 창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반대로 장신구는,
“이거였어.”
웅웅웅웅!
진동이 얼마나 커졌는지 나진이 창을 손에 꽉 쥐고 있기 곤란할 정도였다.
이현은 고개를 돌려 아주를 바라보았다.
“아주야, 이 장신구에 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어?”
“네? 그건 그냥 단순한 장신구예요.”
아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지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었다.
금이 간 낡은 옥환(玉環)과 색이 바랜 수실이 달린 이 장신구는 평범해 보이지만, 분명 애각창에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이현은 재차 아주에게 물어보았다.
“이 장신구에 얽힌 역사라든가, 사연 같은 건 없어?”
“으음…….”
이현의 물음에 아주가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두어 차례 끙끙대더니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는 월검장 문 앞에 버려졌었는데 거기에 함께 있었대요.”
“……미안하다.”
의도치 않게 아픈 과거를 들춰낸 이현이 민망해하며 아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아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억도 안 나는걸요. 그래서 그 장신구에 대한 사연도 잘 몰라요.”
“그렇단 말이지.”
다시 미궁에 빠진 장신구의 정체에 이현이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이현아, 이것 좀 봐!”
나진이 놀라 목소리를 높여 이현을 불렀다.
“빛이 흘러나오고 있어!”
나진의 말대로 애각창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뻗어 나와 장신구로 흘러가고 있었다.
창을 들고 있는 나진도, 장신구를 들고 있는 이현도 움찔했지만, 빛은 천천히 그렇지만 곧게 흘러나와 장신구에 닿았다.
화악!
빛이 장신구에 닿는 순간 장신구 전체가 빛으로 물들며 번쩍였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 거지?”
이현과 나진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할 동안, 빛에 감싸진 장신구는 낡은 모습을 버리고 마치 새것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현의 눈에 떠오르는 정보도 바뀌어 있었다.
「[애각창의 장신구]」
아주가 들고 있던 장신구의 정체는 애각창의 창미(槍尾)에 달려 있던 수실 달린 옥 장신구였다.
이현은 새것처럼 변한 장신구를 들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분석안에 뜨는 새로운 정보 때문이었다.
「[애각창의 장신구]
: 애각창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한 재료(2/4)」
“복원……?”
* * *
[애각창의 장신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갓난아기일 적 입양된 아주는 장신구에 대해 더 알지 못했고, 애각창의 주인인 나진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애각창을 복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진이 조금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저쪽으로 넘어가면 재료가 더 있을까? 응? 응?”
“그건 확실하지 않네요.”
장신구와 창을 들고 폴짝폴짝 뛰는 나진의 모습에 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4개 중에 두 개는 우리 손에 있는 거잖아. 금방 찾아낼지도 몰라.”
그녀의 말대로 [부러진 애각창]과 [애각창의 장신구] 가 있으니 애각창을 온전하게 복원시키는 것도 꿈은 아닐지도 몰랐다.
나진은 눈을 반짝이며 높은 텐션으로 이현을 향해 속사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마 남은 두 개는 부러진 자루랑 창끝 아닐까? 아니면 창 덮개려나?”
“하하, 누나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지! 나도 좋은 무기가 필요했단 말야!”
나진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흘겨보았다.
“다들 판가이온에서 좋은 무기를 받아왔는데 나는 없었잖아.”
나진의 말에 이현은 아차 싶었다.
리코스는 방패를, 디르케는 하르페 검을 개조한 하르페 창을, 이현은 [판타소스의 꿈]을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았다.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기에 등급이 높은 아티팩트들과 비교하면 E급에 불과한 [부러진 애각창]은 아무래도 손색이 있는 편이었다.
“미안해요, 누나. 제가 누나 장비에 대해 그간 신경을 못 썼네요.”
“그래! 너무 신경 안 쓰더라. 흥!”
이현이 삐친 나진을 보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누나 실력이랑 재능이 워낙 뛰어나니까요. 그 무기로도 워낙 잘 싸워서 그런지 생각도 안 들었어요.”
“흥, 아부해도 소용없거든?”
자신의 실력을 칭찬해주는 이현의 말에 나진이 안 그런척하면서도 기쁜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하지만 이현도 나진 좋으라고 한 소리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진의 뛰어난 역량이 부족한 장비의 결점을 메우고도 남았으니까.
‘누나에게 제대로 된 장비를 주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궁금하네.’
이현은 나진의 발전 가능성에 속으로 감탄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애각창을 복원하는 데 저도 최선을 다해볼게요.”
“고마워.”
이현은 얼굴 한가득 미소 짓는 나진을 두고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아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주야.”
“네, 도 대협.”
이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 장신구가 네게 중요한 물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갓난아기로 버려질 때 같이 있었다고 하니 친부모의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각창의 복원을 위해선 저 장신구가 꼭 필요했다.
이현이 거기까지 말하자 나진도 그가 말하려는 바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진은 자신이 아주의 물건을 가지고 기뻐했다는 사실에 자책하며 미안해했다.
“아주야, 미안해. 내가 네 앞에서 못할 말을 했네.”
“아니에요, 사부님. 저한테는 큰 의미가 없는 물건이에요.”
아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러곤 곧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만약 진짜 부모님 것이라고 해도 저에겐 지금 당장 위기에 처해 있는 어머니가 더 중요해요.”
아주는 포권을 취하며 이현과 나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장신구를 대가로 어머니를 구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드리겠어요.”
소나무보다도 굳은 아주의 심지에 이현과 나진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확실하게 보답해줘야겠네요.”
“내가 더 열심히 가르칠게.”
“저는 아주에게 좋은 영약이라도 찾아봐야겠어요.”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곤 둘을 남겨두고 훈련실을 떠났다.
그의 뒤로 다시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애각창이 반응한 거였군요?”
“그래. 원래 하나의 아티팩트였을 테니 서로 이끌리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이현의 설명에 티타니아가 흠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러진 애각창]이 있는 우리 던전이 게이트를 열 때가 되었고, 우연히 [애각창의 장신구]를 소지하고 있던 그 아이가 게이트를 열게 된 거네요.”
“맞아.”
이현은 이해가 끝난 티타니아를 보며 다른 것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됐어? 제대로 설치해놓고 온 거야?”
“네. 문제없이 등록 완료했어요.”
이현이 던전 게이트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사이, 티타니아는 던전수에 [패스파인더] 코드를 심어놓고 있었다.
이현은 티타니아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준 뒤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문제는 던전을 승격하고 다른 행성으로 게이트를 열지 않는 이상 당장 사도를 찾으러 갈 수 없다는 거네.”
“네. 그래도 다행인 건 당장 출입할 수 있다는 거네요. 얼른 사념 에너지 쏟아내 버리고 승격시켜 버리죠?”
B급 던전에서 A급으로 승격하는 조건이 바로 사념 에너지 소모였다.
원래 던전이 하는 일이 사념 에너지 소모이긴 했지만, 던전 승격 조건으로 걸린 소모량은 무려 사념 에너지 결정 1만 개 분량.
“1만 개라니. 샤이 규라흐랑 싸울 때 쓴 결정을 다 합쳐도 천 개가 조금 넘었는데.”
그 10배 가까이 되는 사념 에너지를 이번에 연결된 행성에 쏟아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어쩔 수 없어요. 그게 던전의 원래 역할인걸요.”
A급 정도까지 된 던전은 거의 성장을 끝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장을 마친 던전은 본연의 역할인 사념 에너지 소모에 최적화되어야 했다.
“A급 던전 정도 되면 행성이 생산해내는 사념 에너지의 80%는 처리해야 해요.”
“그게 얼마나 되는데?”
“사념 에너지 결정으로 치면 100만 개는 우습게 넘죠.”
“100만 개나?”
“그것도 1년 기준이에요.”
“어마어마하네.”
결정 1만 개 분량의 사념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어야만 A급 던전이 될 자격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현이 기가 막힌 양에 혀를 내두르고 있자 티타니아가 잊지 말라며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상대 행성에 최대한 영향이 가지 않게 사념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는 거 알죠?”
“그게 문제지.”
이현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본래 사념 에너지 소모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던전을 여러 번 초기화하는 걸로 사념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다.
더 많은 양의 소모하기 위해선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사념 에너지를 품은 몬스터를 게이트 바깥으로 배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던전과 연결된 행성은 이루말 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A급 던전이 되는 조건은 하나가 더 있었다.
대상 행성에 일정 이상의 피해를 주지 말 것.
“이게 말이 되냐고.”
“사념 에너지 소모의 목적이 지적 생명체의 말살이 아니라 생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티타니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만한 사념 에너지를 품은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나가면 행성 입장에선 재앙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념 에너지를 잔뜩 품은 드라콘들이 쏟아져 나오면 버텨낼 행성은 드물 터였다.
이현도 그걸 바라진 않았다.
‘멀쩡히 살고 있는 지적 생명체들을 굳이 나서서 학살할 필요는 없지.’
던전 브레이크가 사념 에너지 소모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그걸 피해온 이현이었다.
“그래도 사념 에너지 결정만 내다 버려도 문제가 된다는 건 조금 심하지 않아?”
“저쪽 입장에선 고순도, 고밀도의 사념 에너지를 뿜는 결정은 방사능 폐기물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냥 사념 에너지 결정을 게이트 바깥으로 버릴 생각이었던 이현으로서는 그 점이 아쉬웠다.
“고블린들처럼 사념 에너지 결정을 이용할 줄 아는 곳이면 더 좋았을 텐데.”
사념 에너지 결정은 마석을 사용하는 문명에는 방사능 폐기물이 아니라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할 금덩어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武) 행성은 무림 문명을 기반으로 한 곳이라 마석은커녕 문명이 중세 중국과 유사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사념 에너지 결정을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간 무 행성의 지적 생명체의 씨가 마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이현은 또 다른 대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도, 사념 에너지 결정 무단 투기도 아닌 세 번째 방법을.
“티타니아, 충란선단이라고 알아?”
“아뇨? 처음 듣는데요?”
S급 던전 도우미에 우주의 세월을 넘으며 오래 살아온 그녀도 듣지 못한 물건인 듯했다.
그리고 이현의 추리로는 충란선단은 분명 벌레 신과 연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 행성에 사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의외로 사도 퇴치는 가까운 데 있는 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