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51
350화
-높으신 분들(3)
십이선.
벌레 신에게 36마리의 사도가 존재한다면, 총관에게는 그를 돕는 열두 명의 신선이 존재했다.
총관은 자신이 직접 탄생시킨 티타누스를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았고 몇 번의 우주를 건너뛰며 그들과 함께 해왔다.
때문에, 십이선에 대한 총관의 애정과 신뢰는 무척이나 깊었고 그들은 전 우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으신 분들이었다.
그 위세가 얼마나 높았냐면 던전 마켓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다섯 상회의 이사들이 머리를 바닥에 박고 그들을 맞이해야 할 정도였다.
“시, 십이선을 영접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섯 상회의 이사와 포프터 직원들이 머리를 박고 인사를 하는 와중에 십이선들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십이선 중에 빠진 이가 있는 듯, 그들의 수는 총 열 명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인간이 아닌 제각각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사슴, 늑대, 고래 같은 짐승의 형태나 나무, 광석, 빛 덩어리 같은 이형의 존재도 있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각양각색의 비단으로 만든 신선의 옷을 입고 그 옷자락을 길게 끌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회를 주관하는 연단 상회의 테자스 이사가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위대하고 높으신 분들이시여,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부디 즐겨주시옵소서.”
“흥!”
열 명의 신선들은 다섯 이사와 포프터 직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긴 옷자락을 끌며 연회실로 들어갔다.
“큽!”
“조용히 해, 이 친구야.”
십이선이 보여주는 모욕적인 대우에 참지 못한 이사 하나가 이를 악무는 소리에 다른 이사가 기겁하며 속삭였다.
자신들의 불충한 태도를 십이선에게 들키면 그대로 그들의 목숨은 끝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테자스가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은 채로 몸을 조아리며 십이선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누추하군.”
“형편없어.”
“냄새가 고약하기까지 해.”
십이선들은 다섯 이사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준비한 연회장을 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테자스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만 연신 조아렸다.
“말씀하신 대로 높으신 분들께서 계시기엔 형편없지만, 저희가 가진 가장 값진 것들로 준비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반응들뿐. 테자스가 한참이나 고개를 처박고 있어도 살벌한 분위기는 가실 줄을 몰랐다.
‘어, 어떡하지?’
테자스가 당장 오체투지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나선 이가 있었다.
“선배님들, 불만이 있으시더라도 거기까지 하시지요. 저희가 여기에 놀러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흥! 막내의 얼굴을 봐서 참도록 하지.”
막내라고 불린 노 도사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내자, 그제야 십이선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테자스를 포함한 던전 마켓의 이들은 십 년 감수한 듯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무 괘념치 말게. 다들 전쟁 준비로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러니.”
고풍스러운 수염을 길게 늘인 노 도사는 자신의 자리로 가기 전에 테자스에게 조용히 속삭이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래도 정상적인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군.’
테자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보잘것없지만 저희가 준비한 음식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테자스가 손뼉을 치자 포프터 하인들이 각양각색의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이미 준비해놓은 음식들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했지만, 새로 나온 음식들은 끝없이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잠깐, 이걸 우리보고 입에 넣으라고?”
늑대의 얼굴을 한 신선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테자스가 당장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박았다.
‘뭐, 뭐가 잘못된 거지?’
정보 상회가 미리 알려준 대로 그가 선호하는 고기를 지식 상회가 가진 최고의 레시피로 조리한 요리였다.
그런데 입에 대지도 않고 화를 내다니.
테자스는 육체만 있었다면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번에도 그를 구원한 건 수염을 기른 노 도사였다.
“허허, 적라(赤那) 선배님. 분노를 가라앉히시지요.”
“소현(蘇玄),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적라라 불린 늑대 신선이 발톱을 비죽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이런 하찮은 격을 가진 음식을 내 입에 넣어야겠냐고!”
쾅!
적라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그의 앞에 있던 모든 음식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놀라운 능력에 테자스는 자신의 영혼이 먼지가 된 듯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소현이라 불린 노 도사, 소현 진인이 벌인 일이었다.
스르륵.
소현 진인이 소매를 한번 떨치자 먼지가 되었던 음식들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조아린 테자스를 살짝 보더니 곧 웃음을 지으며 적라를 달랬다.
“어차피 우리가 이곳에 진귀한 음식을 대접받으러 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라가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고 으르렁댈 때, 옆에 앉아 있던 사슴 신선이 입을 열었다.
“소현 사제. 나도 적라 사형과 같은 생각이야. 이건 너무 저급해서 냄새도 맡기 싫네.”
우주에서 가장 격이 높은 과일과 채소로 이루어진 샐러드를 보면서도 사슴 신선은 코를 막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소현 진인은 그런 사슴 신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란륵 사저까지 그러시다니. 다른 사형들도 음식에 불만이 많으십니까?”
그의 말에 다른 십이선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현 진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테자스를 바라보았다.
“자네들이 우리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음식을 굳이 내놓는 건 우리를 모욕하겠다는 건가?”
소현 진인의 말에 경악한 테자스가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저희가 어찌…….”
“그렇지? 그러면 이 요리들은 완성된 게 아니겠군.”
“소현 사제, 그게 무슨 말이야?”
적라가 늑대의 콧등을 구기며 언짢은 듯 묻자 소현 진인이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음식들로 우리의 입맛을 더럽히면 목이 달아난다는 걸 아는 이들이 일부러 이렇게 음식을 낼 리 없죠. 이것들은 미완성일 거고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한 수가 남아 있을 겁니다. 안 그런가?”
소현 진인의 물음에 테자스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이봐! 그걸 가져와!”
테자스의 황급한 부름에 포프터 시종들이 준비되어 있던 넥타르와 암브로시아가 담긴 병을 들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이건?”
소현 진인이 감탄하는 목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회장에 들어선 내내 불쾌한 듯 인상을 구기고 있던 십이선들도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향기는 총관님께서 즐겨 드시던 그 음료군. 넥타르라고 했던가?”
“맞습니다. 저희가 담당하는 상품 중 하나입니다. 격이 매우 높은 음료지요.”
테자스의 대답에 다른 십이선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여기 있는 모두가 총관이 나눠 준 넥타르를 마셔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형들의 심기가 편해지자 소현 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넥타르와 비슷하게 좋은 향이 나면서도 살짝 다르군. 이건 뭔가?”
“그건 암브로시아라고 불리는 일종의 양념입니다. 음식에 끼얹어서 드셔보시지요.”
테자스의 말에 소현 진인이 솔선수범해서 황금빛 암브로시아를 자신의 음식에 끼얹었다.
그러자 향긋한 격의 향기가 연회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퍼졌다.
그 향기에 그 까다로운 십이선들이 눈과 귀를 쫑긋거릴 정도였다.
“매우 만족스럽군.”
화권, 즉 꽃빵이라 불리는 밀가루 빵을 암브로시아와 함께 한입 베어 문 소현 진인의 얼굴에 큰 만족감이 드러났다.
그러곤 다른 십이선에게 음식을 들 것을 권유했다.
“사형들도 어서 드셔보시지요. 이 암브로시아라는 것의 맛이 일품입니다.”
“흥! 고작해야 양념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저질 음식의 맛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겠지.”
적라가 으르렁대며 먹기를 거부했지만, 그의 옆에 있던 사슴 신선 마란륵은 암브로시아를 뿌린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머리의 뿔을 부르르 떨었다.
“당신, 헛소리 말고 얼른 먹어요.”
“마란륵? 무, 무슨 소리야?”
“이건 먹는 게 남는 거라구요!”
“나,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한 말을 번복하겠…….”
“쓰읍!”
아내의 성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암브로시아를 뿌린 고기를 입에 넣은 적라의 귀가 쫑긋 섰다.
“어? 어?”
예상을 초월하는 진귀한 맛에 적라의 콧구멍이 벌름거릴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십이선들도 어느새 정신없이 암브로시아를 뿌린 음식과 넥타르를 먹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집중했으면 연회장에 먹는 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
그걸 본 테자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동료들 사이로 물러났다.
“와, 저거 아니었으면 우린 다 뒈졌을 거다.”
정보 상회의 아파스 이사가 십이선에게 들리지 않게 동료들에게 속삭였다.
“너희들은 복도 많다. 저런 대박 상품이 왜 나한텐 안 온 거지?”
아파스의 말에 아카샤는 히죽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이현과 티타니아를 빨리 알아보고 내치지 않았던 자신의 선택을 열 번도 넘게 자랑했었으니까.
정작 물어본 아파스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저분들을 상대로 한낱 던전 보스가 협상을 시도한다는 게?”
아파스가 말하는 한낱 던전 보스는 당연히 사도의 알을 가지고 십이선과 협상하려는 이현이었다.
“나도 걱정이다.”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아파스처럼 아카샤도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둘의 걱정은 같은 듯 보이면서도 서로 달랐다.
아파스는 이현이 십이선의 심기를 거슬러서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고, 아카샤는 이현의 안위 자체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 이 모든 것이 이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은 같았다.
“정 안되면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잔뜩 뇌물로 바쳐서 안전만이라도 확보해야겠지.”
“안 돼!”
그럴 경우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테자스가 황급히 반대 의견을 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당장 목숨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 * *
한차례 폭풍 같던 식사가 끝나고 연회장은 깔끔하게 치워졌다.
십이선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넥타르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건 아까 마신 넥타르랑 또 다른 풍미가 있군요.”
“목염(木髥) 선사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요. 연화성모(蓮花聖母). 마치 상계와 하계의 중간적인 맛이에요. 표현하자면 굉장히 처음 보았지만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풍경?”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반도원에서 경홍무를 추는 선녀? 하지만 그 선녀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에요.”
“정확한 표현입니다, 연화 성모. 허허허.”
목염이라 불린 나무 형태의 신선과 연꽃 형태의 여 신선이 신이 나서 넥타르의 품평을 하고 있었다.
식물의 몸이라 음식을 먹지 못하고 넥타르만 마시는 그들에게는 새로운 넥타르가 즐거웠기 때문.
그밖의 다른 십이선도 넥타르를 맘껏 즐기고 있을 때였다.
벌컥!
연회실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여! 오랜만이에요, 다들?”
문을 열고 나타난 건 스스로 빛을 내는 날개를 달고 있는 티타니아였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연회장을 쓱 훑어보았다.
“청명이 빼고 다 모였네? 웬일이래. 다들 엉덩이 무거우신 분들이.”
“총관님의… 칭찬이… 자자한, 그으 소문의… 던전 보스를… 보기 위해서어… 왔지.”
가장 몸집이 큰 고래 신선, 태경군(太鯨君)이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아오, 답답하구만!”
보다 못한 적라가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대신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건방진 놈은 어디 있는데?!”
“여기 있습니다.”
철컥, 철컥.
적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회실로 골렘을 착용한 이현이 발을 들여놓았다.
“제가 바로 그 던전 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