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70
369화
-사제 상봉(3)
이현의 옆구리에 끼어서 허공을 날아가는 중인 소찬경은 정신이 아찔했다.
‘신선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난단 말인가!’
구름을 타고 다닌다는 신선과 다르게 자신을 끼고 날아가는 남자는 허공을 밟고 달리고 있었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다.
“대협! 어르신! 아니, 신선님! 이것 좀 놔주시오!”
“왜? 언제는 거지 핍박하는 못된 사람이라며?”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대인을 몰라뵙고!”
“응. 난 대인도 아냐. 그리고,”
이현은 히죽 웃으며 소찬경을 옆구리에서 빼 옷의 뒷덜미를 잡고 흔들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가는 동안 입 좀 다물고 있어라.”
“으아악!”
낡은 옷깃에 의지에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소찬경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나,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하면 크게 후회할 거요!”
악을 써대는 소찬경을 당장이라도 떨어뜨리고 싶었던 이현이었지만, 그사이 이현과 소찬경은 월검장에 도착해 있었다.
“워, 월검장!!”
소찬경이 소흥에 잠입한 이유가 바로 월검장과 관련이 있었다.
‘이, 이자가 대체 어떻게 알고? 월녀검문의 사람이었나?’
월녀검법은 이름과 달리 여자만 배우는 검법이 아니었다.
자연히 월녀검문에도 남자 제자가 존재했다.
물론, 월녀검법 자체가 여성에게 어울리는 검법인 터라 장문인은 대대로 여성이 맡아 오긴 했지만.
“다 왔네. 어?”
찌지직!
이현이 허공을 내달려 월검장의 정원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찰나, 결국 거지의 낡은 옷깃이 찢어지고야 말았다.
이현처럼 중력의 힘을 벗어날 아티팩트가 없던 소찬경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이고!”
“엄살은.”
거의 지면까지 내려오고 나서 고작 1m 높이에서 떨어진 소찬경이 비명을 지르자 이현이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소찬경의 비명은 진짜였다.
“아이고, 내 팔! 팔이!”
이현을 공격하려다 부러졌던 팔이 바닥을 구르면서 한 번 더 으스러진 모양이었다.
“끄으윽!”
소찬경이 고통에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며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이현이 잠시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나저나 다들 어디 간 거지?”
이현 일행이 월검장의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묶어놓았던 장소로 다시 왔건만, 아무도 없었다.
이현 일행은 물론이고 포승줄로 묶여 있어야 할 월검장 사람들도 보이지 않자 이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이현이 목청을 키워 소리치려는 찰나였다.
“저, 저기 도 대협!”
“도 대협?”
아까 이현 일행의 손에 걸려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던 3대 제자 하나가 서둘러 달려와 이현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가씨께서 도 대협께서 돌아오시면 안으로 뫼시라 했습니다.”
“아가씨라면 그 유주라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맞습니다. 다른 분들도 안에 계십니다.”
아주의 정체가 정말 유주가 맞았을까?
이미 유주가 나진과 해후를 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현은 미심쩍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 3대 제자를 따라가기로 했다.
‘나진 누나가 거기 있다면 문제는 없겠지.’
이현이 겪어본 이 행성의 무인이라는 존재들의 실력으론 나진의 털끝조차 건들기 어려워 보였다.
‘이 거지만 봐도.’
이현이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소찬경을 내려다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던전을 나가기 전 아주랑 싸워도 질 것 같네.’
개방 방주의 제자인 소찬경이 들었다면 억울해서 팔짝 뛸 소리였다.
아주는 이현이 공들여 영약을 먹이고 나진이 [춘잠토심결]이라는 상승 내공 심법을 가르친 제자.
8살이었어도 충분한 고수의 반열에 오를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주보다 낮은 성취를 이룬 사람은 현재 이현 일행 중엔 없었다.
그러니 이현이 소찬경의 실력을 평가절하할 수밖에.
그런 이현의 시선을 따라간 3대 제자가 그제야 소찬경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협, 이 걸인은 누구길래…….”
“개방 거지.”
“힉! 뭐라고 하셨습니까?!”
3대 제자는 바닥에 뒹굴며 고통에 신음하는 거지가 개방 제자라는 소리에 기겁했다.
그 모습을 본 소찬경이 그제야 억울한 듯 외쳤다.
“맞소! 나는 개방의 소찬경이라 하오. 월녀검문에선 개방을 이리 대할 생각이시오?”
“아, 아니, 그게…….”
소찬경은 쩔쩔매는 3대 제자의 반응을 보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속사포로 떠들어댔다.
“절대 개방에선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거요! 내 비록 삼결 제자라지만, 개방 방주의 직전 제자요!”
“주팔공 방주의 제자?!”
한층 더 경악하는 3대 제자의 모습에 고통도 잊고 의기양양해진 소찬경이 소리를 더 높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나를 풀어주고 치료를…… 꾸엑!”
소찬경은 이현의 손바닥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쳐 혀를 깨문 다음에야 말을 멈추었다.
이현은 쌀쌀맞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툭 내뱉었다.
“시끄러워.”
“…….”
“…….”
개방 방주의 직전 제자를 한 방에 조용히 시킨 이현의 모습에 소찬경도 3대 제자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더 말하고 싶어도 이현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개방이고 나발이고, 넌 품속에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손에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거다.”
이현의 눈이 다시 자신의 품으로 향하자, 소찬경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자신의 품을 뒤져본 것도 아닌데 눈으로 슥 한 번 보고 바로 알아채는 이현의 신기에 소찬경은 놀라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이걸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키면 끝장이다.’
충란선단은 마교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물건.
임무를 위해서 챙겨온 것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림의 공적이 되기 십상인 물건이었다.
‘그냥 소화제라고 속여 넘길까?’
거기까지 생각한 소찬경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이현이 다 알아챌 것 같아서였다.
“내 다 말하겠소. 이건 사실…….”
“입 다물어.”
“힉!”
이현이 으르렁대며 거지를 윽박지르자 소찬경은 숨을 들이켜며 입을 다물었다.
옆에 있던 3대 제자도 덩달아 입을 다물자 이현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해? 얼른 안내해.”
“네, 넵!”
말을 잃었던 3대 제자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이현을 안내했다.
“이번엔 네 발로 걸어라.”
“……아, 알겠소.”
“대신 도망칠 생각하면 다리부터 부러질 줄 알아.”
“…….”
개방의 자랑인 경공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던 소찬경의 얼굴이 소태 씹은 듯 일그러졌다.
* * *
“도 대협!”
이현이 내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주?”
이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다 큰 여성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제가 바로 아주랍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니 유주라고 불러주세요.”
“……놀랍네.”
환하게 웃는 유주의 얼굴에서 어릴 적 아주의 얼굴이 보이자 이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도 대협도 그러시네요. 사부님도 엄청나게 놀라셨어요. 여기서 10년이 흐르는 동안 환상동에서는 고작해야 두 달이 지났다지요?”
“그래. 원래라면 시간의 흐름이 반대로 흘러야 했겠지만.”
자세한 내용은 설명해줘도 모를 거라며 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유주도 그것이 궁금한 건 아닌지 살포시 웃더니 이현의 팔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어서 이쪽으로 오셔요. 사부님과 대협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네가 데려간 거였구나.”
“사부님의 일행분인데요. 당연히 제가 대접해드려야죠.”
유주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과 도 대협의 은혜 덕분에 저와 월녀검문이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10년간 갚지 못한 은혜를 갚게 해주세요.”
이현은 어느새 다 커버려서 은혜를 갚겠다고 하는 유주를 보곤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 크고 나선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는지, 유주가 멋쩍은 표정을 짓다가 이현의 옷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도 대협께도 옷을 내어 드려야겠어요. 하인의 옷을 입고 계시게 할 순 없죠.”
“도?”
이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뭘?”
“후후후.”
유주의 손에 이끌려 비단으로 만든 무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현은 그제야 그녀가 말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진 누나?”
“이현아, 왔어?”
“…….”
이현은 말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나진의 모습이,
“예쁘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흰색 비단에 분홍 실로 아름답게 자수가 놓인 옷을 입고, 옥비녀로 머리를 반쯤 틀어 올린 나진의 모습은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이현이 넋을 잃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자 나진이 부끄러운 듯 볼을 발갛게 붉혔다.
“부끄럽게. 그래도 기분은 좋네. 헤헤.”
나진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치렁치렁한 무 행성의 의복 자락을 펄럭여 보았다.
그러곤 반짝이는 눈망울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어때? 어울려?”
“엄청요. 아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순 없겠는데요.”
이현이 쌍 따봉을 날리면서 칭찬하자 나진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
얼굴을 붉힌 채 나진이 이현의 옷깃을 매만져주었다.
“고마워. 너도 참 잘 어울린다.”
“그, 그래요?”
둘 사이에 흐르는 분홍빛 기류에 던전 사람들도, 유주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 아니, 한 도우미만 빼고.
“동작 그만!”
“으헉!”
“꺅!”
갑자기 이현의 품에서 몸을 빼내어 둘의 사이를 갈라놓은 티타니아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나진 양, 이건 반칙이죠! 혼자만 어필하기 있기에요?”
“어, 어필은 무슨! 제자가 준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인데요?”
“이익! 치사해!”
티타니아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도, 나도 갈아입을 거야!”
던전 사람들 역시 무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더 분통이 터진 모양인지, 티타니아는 발로 땅을 한참이나 구른 뒤 유주를 노려보았다.
“힉!”
그 시선이 어찌나 서슬 퍼렇던지 남무림맹의 손꼽히는 고수인 유주가 놀라 숨을 들이켤 정도였다.
“아주 양. 아니, 유주 양.”
“네, 네!”
“저 기억하죠?”
“그, 그럼요. 기억하다마다요.”
“그럼 나한테도 옷 줘요.”
마치 맡겨놓은 돈 내놓으라는 듯 당연하게 손을 내민 티타니아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나진 양한테 줬던 거랑 또옥같이 예쁜 걸루요. 알겠어요?”
“그, 그럴게요.”
티타니아는 유주가 서둘러 하인을 시켜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나진 때와 비슷하게 이현이 한동안 말을 잃고 나서야 만족해했다.
다만 그 이후 나진이 살짝 삐쳐서, 이현이 과거 윤나진 팬 시절의 일화를 줄줄이 읊은 후에야 사태가 진정될 수 있었다.
“항주 서호에서 가져온 용정차랑 남만의 번서(番薯)를 말린 다과예요.”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겨우 진정한 분위기에서 유주가 차와 다과를 내어왔다.
절강에서 가장 최고로 쳐준다는 용정차의 향기를 음미하던 이현은 번서를 말렸다는 다과에 눈길이 갔다.
“이거 고구마네요?”
“그러게. 맛도 고구마야.”
어느새 번서 말랭이 아니, 고구마말랭이를 입에 넣은 나진의 얼굴이 행복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유주의 얼굴도 환해졌다.
“제가 특히나 좋아하는 다과인데 사부님도 좋아하셔서 너무 기뻐요.”
“쫀득하고 달달한 게 제대로 말렸는데?”
그 뒤로 두 여자의 고구마 토크가 쭉 이어졌다.
“저는 주인님이 해주신 요리가 더 맛있는데.”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반면, 티타니아는 고구마말랭이를 씹으며 작게 투덜댔다.
이현은 그런 티타니아를 구박한 다음 유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부탁한 건 알아봤어?”
이현이 부탁한 것이라면,
“충란선단 말씀이시군요.”
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지금 강호가 충란선단과 마교로 인해 혼란에 빠졌어요.”
유주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