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84
383화
-습격(1)
“무, 무슨 소리! 나는 간세가 아니야!”
마교의 간세라는 말을 들은 첩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이건, 그래! 술이 고파서 그랬소. 나는 뱃속에 술 벌레가 살아서 하루라도 술을 거르면 잠들 수가 없거든. 으하, 으핫핫핫!”
짐짓 호탕한 척 웃어 보이는 첩자의 임기응변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현의 싸늘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제길, 안 통하나?’
첩자가 어떤 말을 떠들든 이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이현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냄새가 느껴져?”
“냄새라니, 이 거리에서 무슨 냄새가 느껴진단 말입니까?”
이현의 물음에 소찬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댔다.
그러자 이현은 피식 웃고는 품에서 [판타소스의 꿈]을 꺼내 들었다.
“가까이 데려오면 되는 거지? 티타니아.”
부우웅!
거대한 도끼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담벼락에 붙어 있는 첩자를 덮쳤다.
으직!
“아, 죽여 버렸네.”
힘을 너무 줬던 걸까, 곤충 표본처럼 도끼에 고정된 첩자의 시체를 보며 이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래도 냄새는 맡을 수 있으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이현의 모습에 소찬경은 머리를 감싸 쥘 뿐이었다.
“아니, 다짜고짜 죽이시면 어떡하십니까!”
소찬경이 비명을 지르듯 이현을 타박하자, 이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어쩌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이현의 모습에 소찬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완전 미치광이군! 몽중현녀처럼 선계에서 내려온 신선인 줄 알았는데, 살인귀였어!’
소찬경은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산 채로 붙잡아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저런 놈을 붙잡아 두겠다고?”
“가, 간세라면 잡아서 뒤를 캐든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하다못해 정체를 확실히 밝혀야 했어요. 이렇게 되면 빼도 박도 못하고 대협께서 동도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지탄받으실 겁니다!”
소찬경은 거기까지 말하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명을 쓰는 건 아닌가? 실제로 죽였으니…….’
그런 소찬경의 모습을 보며 이현이 피식 웃었다.
“잘 봐.”
“네?”
이현을 바라보며 항변하던 소찬경의 시선이 죽은 첩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으악!”
이현의 도끼에 고정된 첩자의 시체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마, 마교의 무인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더니…….”
“그런 게 아니야.”
귀신을 본 것마냥 혼비백산해서 떠드는 소찬경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 시작일 거다.”
퍽!
이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첩자의 머리통이 폭죽 터지듯이 터져 나갔다.
“크퀴이이잇!”
그리고 머리가 터져 나간 목에선 핏물 대신 팔뚝만 한 지네가 용솟음쳤다.
“히이이익!”
지옥에서나 볼 법한 괴이한 장면에 소찬경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눈앞의 광경 앞에서 담력을 유지할 이는 거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사람의 목에서 거대한 지네가 튀어나와 몸부림치는 모습이라니.
이현은 그 모습을 보고서도 전혀 놀라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게 충란선단의 정체다. 벌레 신의 권속이 태어나는 알인 거지.”
“알이라뇨? 선단이 아니었단 말씀입니까?”
“그래. 내공을 준다고 좋다고 받아먹었다간 몸에서 저런 기생충을 키우게 되는 거야.”
이현이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마 원래라면 한참을 더 있다가 부화했을 테지만, 숙주가 죽어 버려서 더는 기생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된 탓에 급격하게 튀어나온 걸 거야.”
이현의 말처럼 권속 오공(蜈蚣, 지네)은 갑각도 채 굳지 않은 채로 급하게 부화하느라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어 소찬경은 이를 딱딱거리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관음님, 부처님, 원시천존, 태상노군이시여. 세상천지에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마교 놈들, 정확히는 벌레 신의 사도가 하는 일이 이거다. 권속을 늘리는 거지.”
이현은 거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충란선단이 모습을 드러낸 건 무 행성 기준으로 10년 전.
마교에 속아 넘어가 몸속에 권속을 품고 있을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태였다.
“저기요, 주인님? 그만하고 얘 좀 처리해주지 않을래요? 이거 기분 더럽거든요?”
“아, 미안. 깜빡했다. 돌아와.”
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권속의 몸에 박혀 있던 티타니아가 투덜대자, 이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이현이 손을 내밀자 티타니아가 시체에서 벗어나 이현의 손에 들어왔고, 권속 오공은 잠깐 동안 자유의 몸이 되었다.
“퀴이이익!”
자신의 몸을 구속하던 도끼에서 해방이 된 권속 오공이 원하는 것은 새로 숙주가 될 몸이었다.
급하게 부화하느라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권속 오공의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거지.
“크퀴이잇!”
목표를 정한 권속 오공은 지체할 것 없이 소찬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 으아악!”
놀란 거지가 입을 크게 벌리자 권속 오공은 기쁨을 느꼈다.
저 목구멍으로 들어가자. 인간의 따뜻한 뱃속에서 장기를 갉아 먹으며 버티다 보면 곧 성체로 자랄 수 있을 거다.
권속 오공의 희망은 곧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중간에 그것을 가로막은 이현이 없었다면 말이다.
“어딜!”
서걱!
도끼날이 날아오는 권속 오공을 그대로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렇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꿈꾸던 권속 오공의 꿈도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우, 우웨에엑!”
이현이 서둘러 처리해주었다지만, 권속 오공의 체액을 얼굴에 뒤집어쓴 소찬경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체액에서 뿜어져 나오는 끔찍하고 고약한 냄새에 버틸 재간이 없어서였다.
“역시 코가 좋네.”
이현은 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소찬경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바로 권속의 냄새다. 잘 기억해 둬. 앞으로 그런 냄새를 풍기는 이들이 있으면 찾아내야 하니까.”
이현이 굳이 소찬경을 데리고 온 이유.
그것은 그가 기감이 매우 발달한 예민한 체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공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길래 혹시나 했더니 역시 권속이 내뿜는 사기(邪氣)에도 잘 반응하네.’
사기를 냄새로 여기고 반응한다는 점이 독특했지만, 뭐 어떠랴.
‘권속만 잘 골라내면 됐지.’
이현은 소찬경을 비롯해 기감이 예민한 이들로 하여금 충란선단을 먹은 자들을 찾아내게 할 셈이었다.
“자, 일어나. 다른 놈들도 찾아내야지.”
“으흐윽, 살려 주십쇼.”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사내자식이 울기는.”
“어흑흑.”
이현은 눈물을 펑펑 흘리는 소찬경의 뒷덜미를 잡고 무림인들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남무림맹에 잠입한 마교의 첩자들과 그 속의 권속들은 모두 이현의 손에 싸늘한 시체로 변해서 맹주관 앞으로 옮겨졌다.
그 광경에 은미환과 북무림맹의 삼인방의 표정이 아연실색해진 것은 덤이었다.
* * *
수백 개의 초가 동시에 타들어 가며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충현궁의 제단.
그곳에서 충충도인은 낮게 경문을 읊조리며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훅!
그중 열 몇 개의 초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하얀 연기만을 남기고 꺼져 버렸다.
“……묘한 일이군.”
구중궁궐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건물 내부에 위치한 제단의 방에 바람이 새어들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촛불이 꺼졌다는 의미는 곧,
“숙주 몇이 목숨을 잃었어. 그분의 권속들 또한 죽은 모양이군.”
초 하나하나가 충란선단을 복용한 마교의 손이 미친 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남무림맹인가…….”
마교의 교주 충충도인은 불이 꺼진 초에 적혀진 이름을 읽고 낮게 중얼거렸다.
감히 마교를 처단하겠다고 방을 써 붙인 건방진 곳.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하찮은 무인들에게 충란선단을 주며 첩자로 삼았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다.
그것도 잠입한 단 하루 만에.
“흥미롭군,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운 일이야…….”
뭐가 그리 흥미로운지 같은 말을 계속 뇌까리던 충충도인이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에 제거당한 무인들에 관한 생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지?”
충란선단을 먹은 첩자들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첩자들이 내공을 얻었다고 해도 고작 10년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일 뿐.
그 정도라면 일류 무인 여러 명을 당해내긴 어렵다.
하물며 남무림맹은 10년 전 범소백을 고작 8살의 나이로 물리친 소검후 유주가 있는 곳이 아닌가.
권속 오공 역시 급하게 부화하느라 약해져 있을 테니 못 죽일 것도 없었다.
문제는 충란선단을 먹은 자들을 남무림맹의 누군가가 정확히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이를 어쩐다…….”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밀어 넣은 첩자는 이미 제거되었고 그들을 구분할 능력이 있다면 다시 침투시켜도 의미가 없으리라.
충충도인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 □□□.”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사악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제단에서 울려 퍼졌다.
듣기만 해도 범인이라면 정신을 놓고 광기에 빠질 소름 돋는 목소리에 충충도인은 오히려 환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충현진인님. 언제나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제단에 깊숙이 절을 올린 충충도인은 그대로 발걸음을 빨리해 제단의 방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그의 주인이 명한 일을 행해야 했다.
화르륵!
화로 여러 개가 타오르며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충현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터에는 백이 조금 안 되는 이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전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남무림맹에서 무림인들이 도열해 있었던 것처럼.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중 반절은 창백한 안색으로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이었다.
“읍, 읍.”
심지어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손은 포승줄로 단단히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쩌렁쩌렁한 충충도인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마교의 아이들아. 때가 왔노라.”
“충충가향(蟲充家鄕) 충현진인(蟲玄眞人)!”
교주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지 않은 마교도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마교의 기도문을 외쳤다.
그들을 흐뭇하게 보던 충충도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충현진인께서 말씀하셨다. 마교에 충심을 바치는 자, 등선에 올라 그분의 곁에서 극락의 복을 누릴지어다!”
“충충가향 충현진인!”
“충충가향 충현진인!”
교주의 말에 마교도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마교의 기도문을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구속된 채 공포에 떨던 마교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는 어디 가고 환희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 마교도들을 보며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충충도인은 양팔을 하늘로 펼치며 외쳤다.
“그러니 증명하라! 네 핏줄을 충현진인께 바쳐라! 충심을 증명하거라!”
“충충가향 충현진인!”
“충충가향 충현진인!”
교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유롭게 풀려 있던 마교도들이 자신의 칼로 구속된 마교도 아니, 자신의 가족인 이들의 목을 찔렀다.
서걱! 서걱! 푹! 푹!
아비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부모를 찔렀다.
믿었던 가족의 손에 죽어가는 이들 중엔 아직도 교주의 연설이 주는 여운에 빠져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크흐윽!”
“으으읍!”
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의 공포 앞에 최면이 깨져 비명을 질러댔다.
공터에는 어느새 그들의 공포와 격렬한 감정이 짙은 사념 에너지를 퍼뜨리고 있었다.
“흐으읍. 그분께서 아주 기뻐하시겠구나. 풍부하고 맛이 좋은 사념이야.”
사념 에너지를 깊숙이 들이마신 충충도인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나, 난 못하겠습니다.”
챙그랑.
유일하게 칼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는 이가 있었다.
꿈틀, 충충도인의 미간이 한껏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