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92
391화
-새로운 원주(1)
우르릉!
“지, 지진이다!”
갑자기 찾아온 지진에 소찬경이 기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왓장이 덜컹거리며 땅이 흔들리는 것이 보통 지진은 아닌 듯 보였다.
심지어 어두운 밤 마교의 장원을 밝혀주던 화로들이 덜컹거리며 넘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진에 놀라 허둥지둥대는 이는 오로지 소찬경뿐이었다.
‘뭐야? 다들 왜 이리 침착해?’
이 정도 지진은 일상이라도 되는 양 마교의 교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지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평온하기까지 한 그들의 표정에 소찬경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외침이 들려왔다.
“충충가향 충현진인!”
마교의 본거지를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외침.
그 외침이 들리자마자 마교의 교인들이 모두 그 자리에 부복하며 복창했다.
“충충가향 충현진인!”
“충충가향 충현진인!”
방금까지 소찬경을 조금 모자란 교인 취급하며 마교의 정보를 알려주던 교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가향 충현진인!”
이럴 때 어리바리하게 당황하면 첩자라고 할 수 없는 법.
소찬경은 눈치 빠르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복하며 기도문을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도 대협은 어찌 된 걸까.’
궁금한 것투성이였지만, 고개를 숙이고 부복하다 보니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찬경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다수의 사람이 발을 맞추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현교의 교인들은 고개를 들라!”
“존명!”
우렁찬 소리와 함께 주변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소찬경도 때를 놓치지 않고 함께 고개를 들었다.
앞에 나서서 신선 같은 복장을 하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교인들을 바라보는 자는 바로,
“교주님을 뵙습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이현이 사지를 토막 내고 목까지 날렸던 마교의 교주, 충충도인이었다.
그의 목을 날려 버렸던 장본인인 이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경악했겠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보이는 교주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던 벌레의 겹눈도 보이지 않고 평범한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찬경은 교주가 이곳에 나타난 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이 이현의 계략이라고 여겼다.
‘도 대협은 위패를 가지러 가신다더니 어떻게 된 거지? 옳거니! 이게 계략의 일부인가 보다.’
이현이 충충도인과 사도의 함정에 빠져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모르는 소찬경이었기에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교주의 관심을 이쪽으로 돌려놓고는 위패가 있는 교주의 거처를 뒤지시려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소찬경은 안심한 채 교주 충충도인을 바라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교주의 정보도 알아가자.’
교인이 아닌 이상 마교 교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소찬경은 이 기회에 교주의 얼굴을 기억하려 그의 모습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때였다.
충충도인의 눈이 초승달을 그리며 기묘한 웃음을 띠었다.
“교인들이여, 방금 충현궁에 침입한 대역무도한 이가 있었다.”
교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교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감히 마교의 본거지인 이곳에서 누가 충현진인을 모신 제단이 있는 충현궁에 침입한단 말인가.
교주는 당황해하는 교인들을 슥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충현진인께서 보우하사, 무엄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는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충충가향 충현진인!”
“충충가향 충현진인!”
침입자를 없애 버렸다는 충충도인의 말에 교인들이 기뻐하며 기도문을 외웠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충격에 빠진 얼굴로 기도문을 외우지 못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소찬경이었다.
‘뭐? 지금 도 대협이 죽었다는 소린가?’
소찬경은 자기도 모르게 볼을 꼬집어 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괴물들을 단숨에 죽여 버리는 무시무시한 고수인 이현을 없애 버렸다는 교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래서일까, 혼이 나갈 정도로 당황한 소찬경은 자신을 쳐다보는 교주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충충도인은 소찬경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충현진인의 제단을 더럽히려 한 대역무도한 침입자는 바로 무림맹에서 보낸 괴한이었다.”
거기까지 말한 충충도인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과 북의 무림맹은 서로 손을 잡은 뒤 우리를 핍박하려 무인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전국에 방을 붙여 항마대원과 현정대원을 모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충충도인은 노성을 터뜨렸다.
“본 교주는, 그리고 그대들은 충현진인의 가르침에 따라 가련한 백성들을 구원하려 했을 뿐! 우리가 어찌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무림맹은 비겁하다!”
“무림맹은 타락했다!”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우리의 앞을 막는 무림맹은 악이고, 적이다! 그들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멸(滅)! 멸(滅)! 멸(滅)!”
“살(殺)! 살(殺)! 살(殺)!”
충충도인은 분노에 사로잡혀 멸살을 외치는 교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본 교는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무림맹을 멸할 것이다.”
“멸(滅)! 멸(滅)! 멸(滅)!”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자들을 죽일 것이다!”
“살(殺)! 살(殺)! 살(殺)!”
충충도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교인들의 분노와 함성도 커져 갔다.
교주는 최고조로 끌어 올려진 교인들의 기운을 승천시키기라도 하는 듯, 양손을 번쩍 들어 하늘로 향했다.
“가라, 나의 교인들이여! 충현진인의 권속들이여! 가서 무림맹을 멸하고 무림인들을 죽여라!”
“충충가향 충현진인!”
“충충가향 충현진인!”
교인들의 분노가 하나 되어 마교의 본거지를 아니, 천산산맥 전체를 뒤흔들었다.
소찬경은 이 집단적 광기의 현장 속에서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여긴 미쳤어. 서둘러 탈출해야 한다.’
마침 교인들이 무림맹을 공격하기 위해 장내를 빠져나가는 지금이 적기였다.
소찬경은 교인들 속에 파묻혀 비밀리에 이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충충도인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비릿한 웃음을 입가에 그리고 있던 충충도인이 옆의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제단에 침입한 놈과 한패일 게 분명하다. 저놈을 따라가 추살해라.”
“존명!”
교주의 곁을 지키던 무인들이 내공을 일으켜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교의 제일가는 살수들이 추격을 시작했으니, 동이 트기 전에 잘린 목이 교주에게 전달되리라.
살수들을 믿어 의심치 않는 충충도인은 아직 남아 있던 수하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범소백에게 명을 내려라. 더 기다리지 말고 무림맹을 치라고.”
충충도인의 눈동자가 수십 개로 분열하며 겹눈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의 주인을 위협할 가장 위험한 인간이 사라졌으니, 이제 마교의 천하가 도래할 것이다. 크큇큇!”
겹눈의 마교 교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큇큇 웃어댔다.
* * *
한편, 사도의 알 아니, 사도의 알이라고 생각했던 함정 속의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이현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워, 원주라고? 정말로?”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던 사도가 깨어나 권속으로 뒤덮여 곳곳이 파괴된 지구.
이현이 살던 도시, 강원도의 원주 역시 파괴된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랬던 곳이 지금 이현의 눈앞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나? 아니면 꿈인가?’
이현이 몇 번이나 눈을 비벼도 마찬가지였다.
원주는 평온한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저씨, 제 말 안 들려요?”
멍하니 있던 이현의 귓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음성.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현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에서 요정 날개를 펴고 날아 내려온 젊은 여성이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여기서 피해요. 곧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킬 거니까.”
“예? 던전 브레이크요?”
던전 브레이크라는 소리에 이현이 입을 쩍 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던전이 있나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여기 던전이 생긴 지 1년이 넘었는데.”
이현의 물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여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정말 드릅게 말 안 듣네. B팀, 여기 민간인 데려가요. 코스프레인지 뭔지 몰라도 요상한 중국옷을 입고 있어요.”
[치직-, 알겠습니다.]여성이 옷깃에 달려 있던 브로치 형태의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바로 응답이 들려왔다.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는 여자의 말에 이현은 그녀의 옷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도 옷차림이 독특한데?’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에 가죽점퍼 차림이 인상적이었지만, 앳된 얼굴은 평범한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현의 시선을 끈 것은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양 주먹에는 격투기 선수나 낄 법한 두툼한 글러브가 착용되어 있었다.
‘여자애가 끼고 다니기엔 흉악한 글러브인데?’
손가락이 모두 나와 있는 글러브는 앙증맞아 보였지만, 딱 보기에도 흉악한 금속판들이 덧대어져 있는 게 보온용 장갑처럼 보이진 않았다.
‘거기다 옷도 보통은 아니다.’
분석의 안약을 넣지 않은 지금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었지만, 이현의 예민한 격감에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들에서 흘러나오는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최소 아티팩트다. 이 여자, 대체 정체가 뭐지?’
이현은 자신이 갑자기 마교의 본거지에서 이곳으로 이동한 것도 놀라웠지만, 온몸에 아티팩트를 두르고 있는 여성의 정체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봐요. 좋은 말로 할 때 눈 아래로 깔지?”
어리바리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자 불쾌한 얼굴이 된 여성이 미간을 구겼다.
그제야 이현은 자신의 시선이 무례했다는 걸 깨닫고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이현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여성은 흥 코웃음을 쳤다.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한두 번 봤어야지. 됐어요. 이따 B팀 오면 얌전히 피난이나 해요.”
그 말을 남긴 채 여성은 다시 등에서 요정 날개를 펼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난 경고했어요. 당신 죽어도 난 이제 모르는 일이야.”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분하기 힘든 반존대로 마지막 경고를 날린 그녀가 날아가 버렸다.
날개가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등이 훤히 파인 가죽 재킷의 디자인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녀가 남긴 인상만큼 독특하진 않았다.
“허 참.”
이현이 충격적인 첫인상을 남긴 여성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은 피하자.”
소란스러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이현은 [부여-투명화]를 몸에 걸었다.
그리고 B팀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오기 전에 그곳을 몰래 빠져나갔다.
* * *
“제길, 어떻게 알고 따라오는 거지!”
헐떡거리며 달리는 소찬경의 몸은 곳곳이 피범벅이었다.
필사적으로 도망쳐 보았지만, 마교 살수들의 칼을 전부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출혈이 너무 심해. 이대로 가다간 쓰러지고 만다. 그래선 저들의 손에 죽겠지.’
그의 예상대로 다리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내공을 불어넣어 봐도 출혈로 인한 체력 저하는 막을 수가 없었다.
‘여기다.’
소찬경은 더는 뛰지 못할 것 같자 근처 수풀로 뛰어들어 숨었다.
‘제발 찾지 마라. 제발 찾지 마라.’
하지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흐흐흐. 더는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혈향을 맡은 마교의 살수들이 어느새 소찬경이 숨은 수풀을 포위하고 있었다.
인간 같지 않은 후각이었다.
“마교의 위대한 목적을 방해하는 적은 여기서 목숨을 내놓아라.”
“누가 순순히 죽어준대?”
소찬경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살수들을 비웃었다.
“도 대협은 죽었어도, 그 유지는 내가 이을 거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마교의 살수가 이죽거리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때, 소찬경의 눈이 빛났다.
“이야압! 도 대협의 신물 맛 좀 봐라!”
취이이이익!
어느새 이현이 숨겨 놓은 증기 분사기와 탈라리아 샌들을 착용한 소찬경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으아아아악! 생각한 것보다 빨라!”
마교의 살수들은 닭 쫓던 개처럼 하늘로 솟구쳐 도망가는 소찬경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