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93
392화
-새로운 원주(2)
놀랍게도 이현이 처음 정신을 차렸던 곳은 캠핑장이었다.
정확히는 이현이 던전에 휘말렸던 바로 그 캠핑장에서 조금 떨어진 편의점 앞.
“그 편의점이 던전에 포함이 안 되어서 얼마나 아쉬웠었는지.”
그랬다면 던전에 휘말린 초창기에 먹을 게 더 풍부했을 텐데.
“안 그래, 티타니아? 아…….”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티타니아를 불렀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지금 무림맹에서 열심히 던전의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있을 터.
던전과 똑같은 캠핑장에 와 있다 보니 습관적으로 티타니아를 부른 모양이었다.
괜히 머쓱해진 이현은 서둘러 발을 놀려 B팀이 오기 전에 캠핑장을 벗어났다.
이현이 떠난 직후 도착한 B팀은 그곳에서 이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우선 집부터 간다.”
투명해진 채로 바깥으로 나온 이현은 자신이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원래의 지구와 달리 이곳의 원주가 멀쩡하다면, 분명 부모님이 계시는 집도 그대로 있을 터.
“여기 내 자동차도 있으려나?”
원주시에서 캠핑장까지는 자동차로 30분은 달려야 하는 거리.
이현은 원래 캠핑장에 있어야 할 자신의 애마를 떠올렸다.
“됐다. 그걸 언제 찾고 있냐.”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그걸 찾느라 시간만 허비할 터.
알 수 없는 게이트에 빠져 파괴되지 않은 원주에 떨어진 이현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파악해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뛰자. [강화].”
사념 에너지로 강화된 몸에 내공까지 불어넣은 이현의 다리는 자동차 못지않은 속도로 도로 위를 주파했다.
이미 투명화를 걸어 놓은 터라 얼마 있지 않은 자동차들은 그들의 곁을 유유히 달려 지나치는 이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현은 15분도 걸리지 않아 부모님이 살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딩동-.
혹시 몰라 눌러보는 초인종. 안에서 대답은 없었다.
이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이 알고 있던 비밀번호로 도어락을 열려고 시도했다.
삐빅- 삐빅-.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도어락은 이현의 입장을 거부했다.
“역시 아닌가.”
계속해서 울리는 경고음에 앞집에서 상태를 살피려는지 사람이 나오려 했다.
이현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여긴 대체 어디지.”
길가로 나와 근처 공원 벤치에 걸터앉은 이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현이 알고 있는 지구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부분도 있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여자라든가 말이지.”
이현은 ‘던전 브레이크’를 언급하던 여성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여기가 진짜 지구일 가능성.”
이현이 던전에 휩쓸리고 난 뒤 지구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터.
자신이 살던 지구와 다른 점은 던전에 의한 영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미 이현은 총관을 통해 지구의 상황을 들었고, 원주가 파괴된 채로 던전에 편입된 것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남긴 수기를 읽었다.
그러니 이곳이 진짜 그가 살던 지구일 리가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마음속에 이는 작은 희망을 지우며 이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 이곳이 진짜 지구라 하더라도 이대로 눌러앉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진과 던전 사람들을 놔두고 혼자만 돌아갈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두 번째 가능성은 이 모든 게 꿈이거나 허상이라는 거. 아 신발 꿈이라든가 말이지.”
사도들은 무지막지한 전투 능력 외에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샤이 규라흐는 각성을 모두 끝마치지 못해 그 능력을 각성하지 못했지만, 누다르는 달랐다.
누다르는 상대를 매혹시켜 타락시키는 괴랄 맞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티타니아와 소현 진인 또한 다른 사도 역시 제각각 능력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이현에게 알려주었으니, 확실한 정보였다.
그러니 지금 이 세계가 사실은 자신의 꿈이라면?
정신을 잃은 자신에게 사도가 그의 능력으로 환상을 보여주는 거라면?
“빨간 약을 먹어야 하는 건가?”
이현은 피식 웃었다. 그에게는 세상의 진실을 알려줄 빨간 약이 필요 없었다.
그보다 더 정확한 게 있었으니까.
“규격 외의 힘.”
오로지 전 우주에서 티타누스와 그의 힘을 물려받은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힘.
이현은 아무리 사도라도 그 힘을 환상 속에서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세계가 허구인지 실존하는 곳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간단했다.
규격 외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는지를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진짜가 맞네.”
머리를 얼얼하게 울리는 차가운 규격 외의 힘이 이현의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말인즉슨, 이곳은 사도가 만든 환상이 아니라는 소리.
“하, 그럼 대체 여긴 어디라는 거야?”
이현은 마지막 가능성을 떠올렸다.
우연의 일치로 지구와 99% 유사하지만 1%의 차이가 있도록 발전한 또 다른 행성.
“오히려 이쪽이 나한텐 좋은 거지만.”
만약 마지막 가능성이 맞다면, 어떻게든 무 행성이나 던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길 터였다.
“[통로의 뿔]을 가져왔으면 좋았을걸.”
한 번 가본 장소로 [워터게이트]를 열어주는 [통로의 뿔]이 있었다면, 단번에 돌아갈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티팩트는 티타니아가 가지고 전진기지를 설치하는 데 쓰고 있었다.
“일단은 정보부터 확보하자.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부터.”
이현은 생각을 멈추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꼬르륵.
배에서 울린 민망한 소리에 이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마교에 침입한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네.”
반신 급의 격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직 육체는 인간의 것.
이현은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일단 근처 편의점이라도 가볼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정보는 일단 배부터 채우고 찾을 생각이었다.
* * *
딸랑-.
“어서 오세요.”
종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선 편의점에서는 이현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멜로디나 목소리, 가사가 이현이 알고 있는 노래와 몹시도 유사했다.
아니, 똑같았다.
“똑같이 바라봤는데, 똑같이 헤맸는데 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니 이현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비슷할 수가 있나?’
심지어 편의점 매대에 있는 상품 역시 이현이 알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총관에게 들은 게 없었다면, 그리고 규격 외의 힘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전 세계를 의심하고 있었을 터였다.
“어?”
자신이 통속의 뇌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던 이현의 눈에 처음 보는 상품이 들어왔다.
“이건 대체 뭐지?”
‘Hit! 인기 상품’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상품은 손바닥만 한 상자에 담겨 있는 사탕이었다.
근데 놀랍게도 그 상자에 인쇄된 광고 모델은 이현이 아는 얼굴이었다.
“아까 그 여자잖아?”
요정 날개를 달고 자신에게 경고를 날렸던 20대 초반의 여성이 상자 겉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것도 세련된 의상을 입고 윙크까지 하면서.
“언제나 당신을 지켜주는 원펀걸과 함께해요? 알고 보니 유명인이었나?”
상자에 인쇄된 광고 문구를 읽던 이현이 헛웃음을 지을 때였다.
꾹꾹.
누군가가 밑에서 이현의 옷깃을 당기고 있었다.
이현이 고개를 돌려 밑을 바라보자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꼬마 여자애가 있었다.
“저, 저기 아저씨…….”
9살쯤 됐을까? 가방을 뒤로 멘 아이는 살짝 겁을 먹은 눈초리로 이현을 보고 있었다.
이현은 자신의 무서운 눈매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며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는 아니다만, 왜?”
“……아저씨 맞는데.”
애들은 솔직하다던가.
이현이 아무리 아저씨가 아니라고 해봤자 수긍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래. 아저씨한테 볼일이라도 있니?”
“……그거 살 거예요?”
“이거?”
이현은 자신이 들고 있던 사탕 상자를 들어 보였다.
“네!”
그러자 아이의 고개가 모터를 단 것마냥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그거 하나밖에 안 남은 거예요.”
“아, 그래?”
아이의 말대로 이현이 매대를 보니 남은 건 이현이 들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현은 사탕 상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갖고 싶니?”
“네!”
힘차게 대답한 아이가 양손을 모으고 이현에게 애교를 부렸다.
“다른 편의점에도 없대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네?”
“그래. 네가 가지렴. 아저씨는 이런 거 안 모아.”
“우와! 감사합니다!”
이현이 사탕 상자를 넘겨주자 아이가 신이 나서 계산대로 달려갔다.
이현이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좋을까.’
보통 좋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는 사탕을 계산한 즉시 그 자리에서 상자를 뜯었다.
“우아아아!”
허겁지겁 상자를 뜯어 안에 동봉되어 있는 카드를 꺼낸 아이가 함성을 질렀다.
“플래티넘 예린이다!”
아이가 들고 있는 카드는 황금빛이 번쩍번쩍이는 것이 고급 카드인 듯했다.
그걸 확인한 아이는 사탕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댔다.
‘하긴, 나도 어릴 땐 저런 카드나 장난감에 사족을 못 썼지.’
좋은 카드를 뽑으려고 얼마나 많은 사탕을 샀던가.
이현이 추억을 떠올리며 히죽 웃고 있을 때였다.
“부럽다…….”
성인으로 보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아이를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현은 그런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남자도 카드를 모으나? 다 큰 어른이?’
물론, 다 큰 어른도 모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아이의 카드를 뺏고 싶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 선을 넘었다.
아니, 쳐다보는 수준이 아니라 질투와 탐욕에 가까운 사념 에너지가 아르바이트생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이현에게 느껴졌다.
‘위험한데.’
이현은 이상할 정도로 이글거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눈에서 아이를 가리는 위치에 가서 섰다.
“꼬마야, 아저씨가 궁금한데 그 카드 한번 봐도 될까?”
이 카드가 뭔데 성인인 아르바이트생이 못된 마음을 품을 정도일까?
이현이 확인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 아이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 아저씨, 카드 안 모은다면서요…….”
“응?”
이현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의 얼굴에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저씨는 안 모아. 진짜야. 그냥 궁금해서 보고 싶은 것뿐이야.”
“정말요?”
“그럼.”
이게 뭐라고 꼬마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카드를 뺏을까.
이현이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짓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아저씨가 가지려던 거였으니 딱 한 번만 보여줄게요.”
“고맙다.”
이현은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낸다는 표정을 지으며 카드를 내미는 꼬마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카드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아까 그 여자네.’
카드의 홀로그램에 인쇄된 여성은 사탕 상자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까의 그 날개 달린 여성이었다.
「이름 : 설예린
칭호 : 원펀걸, 불 주먹, 헌터돌
근력 : S
내구 : A
민첩 : A
체력 : B
마력 : S
설명 : 우주 최강 아이돌 헌터! 화려한 불꽃과 함께 던전을 해결하는 한국의 자랑 설예린!」
카드를 살짝 돌려보면 아까의 여성, 설예린의 뻗은 주먹에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사진으로 바뀌었다.
‘이름이 설예린이라고 하는구나. 진짜 유명인인가 보네.’
이현은 어깨를 으쓱이곤 카드를 다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잘 봤어. 고마워.”
아이는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 듯 카드를 서둘러 가방에 집어넣었다.
“저 가도 돼요?”
“그럼. 누가 잡아가니?”
“아, 아니요!”
이현의 농담에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서둘러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아이씨, 저거 내가 살걸…….”
“큼, 흠.”
이현은 떠나가는 아이를 향해 부러움에 찬 중얼거림을 내뱉는 아르바이트생을 살짝 째려보았다.
아이를 볼 때와는 달리 아주 무서운 눈매로.
“힉!”
서둘러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우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이현이 혀를 차던 때였다.
“민아야! 나 플래 예린 떴어!”
“진짜?”
너무도 익숙한 이름, 익숙한 목소리에 이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편의점 바깥에서 아까의 꼬마와 손을 잡고 방방 뛰고 있는 아이는 바로,
“민아야!”
이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이, 장민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