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이단심문관 (1)
사실 장작 나르기는 본격적인 운동이라기보단 노동에 가깝다. 하지만 몸을 만들기 위한 근육보다 이렇게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근육이 오히려 더 실전 근육에 가까웠다. 보기만 좋은 근육은 오히려 움직임을 방해하고 지구력은 떨어지기 쉬우니까.
“흐음…….”
게벨은 아이작의 몸 이곳저곳을 툭툭 두드리며 확인해 보았다.
“왜 그러시죠?”
그사이 호흡을 가다듬은 아이작이 물었다.
“숨 고르는 속도도 빨라졌고, 근육이 붙는 속도도 보통이 아니군. 그런데 무거운 도끼를 번쩍번쩍 들다가도 장작 몇 개 들고 무겁다고 벌벌 떨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다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게벨은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아이작을 성체로 확신하고 있는 상태여서 별다른 의심할 거리도 없었다. 다만 아이작이 어떤 때에 성체로서의 괴력을 발휘하는지 그 조건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게벨은 이제 다른 지점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체력이 붙는 속도가 굉장하다. 놀라울 정도군. 일주일 만에 근육이 이 정도로 붙을 줄이야.”
아이작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는데 게벨이 보기에는 다른 모양이다.
‘촉수 때문이겠지.’
[죽은 신의 내장 / ‘포식’한 상대의 능력치 일부와 특성을 흡수합니다.] [살점 저장고 / 포식한 상대를 소화시킬 때까지 재생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살점 저장고’는 포식한 대상을 빠르게 소화시키는 대신 치유 속도를 대폭 늘리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종일 체력단련을 마치고 지친 몸에도 적용되었다.
근육이 증가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운동을 통해 근육을 파괴한다. 그러면 근육은 다시 치유되면서 전보다 더 크고 질겨진다.
이 과정을 반복해 더 크고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아이작은 살점 저장고 능력 덕분에 부상 우려 없이 더 과감하고 무리한 운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작의 근육 성장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거기다 ‘죽은 신의 내장’이 그 효율을 대폭 올려 주고 있으니,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게벨의 평가를 듣고 기뻐졌다.
‘좋아, 좋아. 이제 그나마 좀 이세계에 온 혜택을 누리는 것 같군.’
모든 것이 수월하게 잘 풀려가고 있었다.
성기사단 부단장 출신인 게벨에게 신체 단련을 받고, 수도원장으로부터 기적과 성가를 배운다.
아이작은 이대로만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도원장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성기사가 되도록 팍팍 밀어주는데 대체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이대로 교단 안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여명군을 이끌고 성지를 탈환하면 된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이작은 수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게벨의 지도 아래 세월을 보냈다.
그사이 틈틈이 이름 없는 혼돈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촉수의 능력을 키웠다. 수도원 안에서 촉수를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아이작은 그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왔다.
촉수를 통해 받는 영양 보급과 게벨의 검술 지도는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켜서 아이작의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아이작의 몸으로 맞이하는 3번째 겨울이 왔다.
그의 기대보다 다소 거칠게 다가온 겨울이었다.
전에 없이 빨리 내리기 시작한 눈발에 수도원을 둘러싼 숲이 하얗게 잠겼다. 하지만 늦가을 동안 게벨과 아이작이 겨울나기를 열심히 준비해 온 덕분에 수도원은 이전보다 훨씬 더 든든하게 겨울을 준비한 상태였다.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아이작은 수도원의 뒤뜰에 칼을 머리 위로 든 채 서 있었다.
지난 2년간의 수련은 그의 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젓가락 같던 팔다리에는 어느새 근육이 붙어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고, 얼굴에도 앳된 청년의 티가 나타나고 있었다. 여전히 호리호리하다는 인상은 남아 있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발군의 성장이었다.
칼을 휘두르는 대신 그저 들어 올린 채 한참 동안 서 있던 아이작의 몸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칼 한번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송이는 그의 몸에 미처 닿기도 전에 열기로 녹아내렸다.
이내 아이작의 눈빛이 번뜩였다.
휘두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칼이 움직였다.
칼날의 궤도가 날카롭게 떨어졌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며 주변에 쌓여있던 눈이 휩쓸려 날아갔다. 그제야 아이작은 탁 터뜨리듯 호흡을 내뱉었다. 뒤늦게 땀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게 내 체력이 허용하는 한계인 것 같은데.’
네필림의 저주받은 피 특성은 아이작이 검술 훈련을 하는 내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포식 특전을 통해 체력을 꽤 기를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완할 수는 있었다.
‘이 정도가 네필림이라는 종족이 가진 체력의 한계치인가? 생각보다 종족 한계의 벽이 높군.’
이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강한 힘과 지구력을 가지려면 마법적인 수단이나 기적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상급 검술을 배운다면 이 정도 체력으로도 얼마든지 커버가 되겠지만…….’
아이작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검술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게벨로부터 배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지 너머가 엿보였던 것이다. 그 ‘경지 너머’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수치로 표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작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하급 성기사 검술 숙련도(Lv 99) (999999/999999)] [조건 미달로 다음 단계가 열리지 않습니다.]검을 쥐는 것을 허락받은 이후, 아이작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검술을 단련했다. 배 속에 있던 칼센 밀터를 다 소화하고도 남을 정도의 기간이었다.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많이 수행하는 것보다 더 큰 경험치를 주었다.
그 덕분에 아이작은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이미 검술 수련도를 가득 채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반년 전 일이다.
아이작이 ‘경지 너머’로 향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몸은 그 직전에서 본능적으로 멈추고 말았다.
너무 지친 상태였거나,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탓이다.
‘상급 검술…… 이라면 스킬 같은 거겠지.’
네임리스 카오스에서 ‘검술’은 마법이나 기적처럼 스킬로 분류되었다. 가짓수는 적지만 엄연히 다른 카테고리의 ‘스킬’이다.
마법사가 마나를 사용하고, 사제가 숭배를 대가로 기적을 받듯, 검술은 체력을 소모한다. 게임에서는 HP를 소모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현실은 어떨지 모른다. 정말 분수에 맞지 않는 기술을 쓴다면 몸이 부서질지도 모른다.
아이작의 HP가 0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다 평생 못 쓰는 건 아니겠지?’
덜컥 걱정이 들었지만 지금도 어디 가서 객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촉수의 포식 특성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저 미달된 ‘조건’이 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최대한 절제하여 검을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성기사라도 되어야 하나?’
사실 게벨에게 상급 검술을 배운다면 좋을 것이다. 이미 상급 검술을 보여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이작은 내심 상급 검술이나 검술 숙련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게벨은 아이작에게 상급 검술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오래전에 설명해 주었다.
‘기사단 검술은 수준이 높아질수록 현란하고 복잡해진다. 높은 수준의 검술은 마법이나 기적 같은 효과를 보일 때도 있지.’
그동안 아이작은 아이작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게벨이 가르쳐 준 동작들을 능숙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작정하고 까탈스럽게 굴려던 게벨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이제 막 검을 잡은 14살짜리가 전장에 수십 년을 굴러먹은 백전노장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베고, 찌르고, 내려치는 것이다.
‘검의 길을 추구하는 성기사단들에겐 저마다 다 자기들만의 비전(祕傳) 검술이 있다. 다들 자기네가 최고라고 하지만, 저마다 연구와 노력 끝에 도달한 경지라 우열을 따지긴 힘들지.’
그런 아이작이 바로 상급 검술을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하지만 다 큰 어른도 그걸 다루기 어려워서 폭주하거나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이작의 어린 몸이 다치거나, 심하면 산산이 찢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될 것은 없다.
현실에서도 초심자가 무리하고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려다가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그런 움직임이 마법적인 효과를 내지는 않지만, 초인적인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이 세계에서라면 마법적인 일도 가능할 뿐.
지금 아이작이 상급 검술을 배워도 쓸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발란체 검술을 함부로 유출시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제가 아발란체 성기사단에 들면 배울 수 있나요?’
‘그럴지도.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은 이제 없으니까.’
아이작은 그게 가르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게벨은 딱 잘라 가르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상급 검술 외에 모든 동작을 세심하게 지켜봐 줬다.
그는 기초 검술만을 섬세한 기계 부품을 고치듯이 조정해 가며 반복 훈련을 시켰다. 가끔 방향을 바꾸거나 변칙적으로 동작을 잇거나 검로를 뒤트는 방식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거의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시켰다.
덕분에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작은 여전히 기초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베기, 찌르기, 내려치기, 막기.
지난 몇 년간 정확성과 위력에 집중해 반복해온 동작은 이제 근육에 새겨져 칼끝에 눈송이가 내려앉는 것까지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아이작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오늘치 수련은 다 했지만 아이작은 묘한 미련에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호흡은 가라앉지 않아 거칠었고 근육은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한 번 더.’
아이작은 상급 검술에 대한 미련을 놓았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팔굽혀펴기 횟수를 한 번이라도 더 늘리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일 때 딱 한 번 검을 더 휘두를 수 있는 체력을 기르지 못해 아쉬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촉수는 어디까지나…… 비장의 수단이야.’
괴물로 몰려서 쫓겨 다니고 싶지 않다면, 궁지에 몰렸다고 무턱대고 촉수를 꺼내 들어선 안 된다.
아이작은 호흡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칼끝을 허공에 겨눴다.
이번에는 단순히 동작을 가다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상의 적을 상정해 보기로 했다. 비슷한 수련은 여러 번 했다. 처음에는 멧돼지, 다음에는 게벨, 그다음에는 칼센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 상대는 인간도 괴물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혼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촉수를 뿜어내며 덮쳐오는 자신이었다.
아이작이 만난 사람 중 가장 강한 존재는 멧돼지도, 게벨도, 칼센도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범람하는 촉수가 폭주하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쏟아져나올 때, 아이작은 공포심을 느꼈다.
아이작은 만약 자신이 그런 존재를 상대하게 된다면, 혹은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었을 때 어떻게 막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수준으로는 백이면 백, 처참하게 죽어 나갈 뿐이다.
‘그래도 한번…….’
상상 속에서 수백 번 사지가 짓이겨지고 머리가 박살 났지만, 아이작은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다시 한번 움직였다. 또 한 번 촉수가 자신의 몸을 내리찍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검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이미 수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해 왔던 아이작은 그 변화를 예민하게 느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검이 꿈틀거리며 휘어진다고 느꼈다.
‘어?’
짧은 거리,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아이작의 검은 촉수의 궤적을 회피하며 그 뒤에 있는 적을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핑.
아이작은 정신을 차렸다. 상상 속의 적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의 앞에는 텅 빈 허공뿐이었다. 아이작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검이 있을 수 없는 기괴한 각도로 휘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촉수처럼.
***
‘이건…….’
탁. 아이작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기 전에 등 뒤에서 게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기 걸리겠군.”
아이작은 화들짝 놀라 검을 내렸다. 다행히 게벨은 방금 그 동작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아이작은 왜 자신이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들켜선 안 될 행동을 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작은 그것을 촉수가 몰래 불어넣은 예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들켜선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이런 예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작이 옷을 걸치는 사이, 게벨은 주변에 생긴 흔적들을 보면서 물었다.
“새벽부터 한 거냐?”
“예.”
아이작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별히 새벽부터 나올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나머지 예배와 미사 시간은 빠질 수 없었지만, 수도원장이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안 수도사들은 그 외 다른 모든 시간에 편의를 봐주었다.
“검술 단련은 이제 적당히 해도 된다고 했을 텐데.”
아이작의 실력이 정체기에 빠져 있다는 것은 게벨도 이미 잘 아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게벨이 ‘검술 훈련은 이제 적당히 해도 된다’라고 말한 이유 또한 알고 있었다.
“불씨의 기도문을 암송해보거라.”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작이 늘지 않는 검술에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도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모든 곳에 항상 먼저 계신 이, 눈먼 등대지기를 인도하시는 이…….”
틱, 티틱!
아이작의 손끝에서 불꽃이 튀면서 환한 빛이 나타났다. 그러나 명멸하는 불빛도 잠시, 빛은 나타났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그라들며 사라졌다.
지난 몇 년 내내 그랬던 것처럼.
게벨은 턱을 스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뭐가 대단해요?”
“검술에는 그렇게나 재능이 뛰어나고 신앙심도 나무랄 데 없는데, 이 정도로 기적에 재능이 없는 게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보통은 안 그래요?”
“보통 기도문을 배울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들은 믿음과 재능이 있다는 게 확실한 사람들이니까. 나는 반년 만에 등불의 기적을 성공시켰던 거 같은데.”
아이작은 좌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작의 종족, 네필림은 신앙 능력이 높기 때문에 기적에 관해서는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술이나 체력단련 쪽을 걱정했지.
그런데 결과는 그 정반대로 나오고 있었다.
‘칼센을 먹어서 검술 재능이 뛰어난 거라면, 그 녀석의 기적 재능도 가져왔어야 하는 거 아냐?’
아이작은 칼센에게 따지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방금 그 기도문은 기도문 중에서도 기초 영역인 등불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성체라며 수도원장과 게벨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무색하게도, 그 어떤 기도문과 성가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기적 하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성기사라니. 그건 그냥 기사나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의심받을 건덕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촉수 때문인가?’
네필림의 종족 특성이 기적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네필림의 높은 신앙 능력은 신의 기적을 훔쳐 쓰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기도문과 사용법만 알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추측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름 없는 혼돈뿐이다.
이름 없는 혼돈이 기적을 쓰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이작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이작은 지금까지 촉수에게서 무수한 도움을 받았다. 촉수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처럼 건강한 몸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죽을 뻔한 위기들을 몇 번이나 촉수 덕분에 넘겨왔다.
하지만 이름 없는 혼돈은 엄연히 빛의 법전이 적대시하는 신이다.
그 신의 일부를 몸에 품고 있는 아이작이 빛의 법전의 기적을 발휘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혹시 다른 방식의 기도문이라면 쓸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이름 없는 혼돈을 숭배하는 기도문이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