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대적자 (8)
크락스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당장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는 깨달았다.
“성배기사! 성배기사를 붙잡아라!”
새로 도착한 적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강력한 전력이 합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작의 태도를 봤을 때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의도적으로 올칸 규율을 끌어들인 게 분명했다.
당장 아이작이라도 붙잡아서 인질로 삼아야 했다.
이미 비슷한 판단을 마친 케식들이 크락스알의 명령보다 먼저 아이작을 공격했다. 인질보다는 몸을 두 쪽 내기 위한 공격에 가까웠지만, 그들보다 아이작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텅, 콰드득!
아이작은 케식의 만곡도를 쳐내면서 왼손을 놈의 말 몸통에 꽂아 넣었다. 검기에 휩싸인 손은 손쉽게 가슴을 파고들고, 아이작은 그 안에서 촉수를 꺼내 단숨에 난도질해 놓았다.
“커헉……!”
케식의 커다란 몸집에 비하면 작은 상처였으나 겉보기와는 달리 몸 내부는 진창이 나 있었다. 믹서기를 밀어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모양. 케식이 권법 한 방에 허무하게 쓰러지자 주변의 케식들이 경악하며 멈칫거렸다. 그 틈을 타 아이작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냈다.
“이놈!”
케식들이 빠르게 아이작의 뒤로 따라붙었다.
등을 보이는 아이작의 모습은 손쉬운 먹잇감처럼 보였다.
슉, 텅, 터터텅! 그러나 때맞춰 수도원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화살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아이작도 케식들도 눈먼 화살 정도는 쳐낼 재주가 있었지만, 주춤거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찰나의 타이밍으로 충분했다.
“쫓지 말고 돌아와!”
크락스알의 비명 같은 고함은 시야가 좁아진 케식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들렸더라도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세상에 올칸 규율의 경기병보다 말을 잘 타는 자들이 있다면, 엘릴의 기사들일 것이다.
비탈을 타고 믿기지 않는 속도로 맹렬하게 달려온 엘릴의 기사, 레이나 힐드가 단숨에 기병창으로 케식의 몸통을 단숨에 꿰뚫어 버렸다. 쾅. 엄청난 질량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기세가 꺾일 법도 했지만 레이나 힐드는 한 번 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여 주었다. 그대로 케식을 말 몸통째로 들어 올려 다른 케식에게 집어 던진 것이다.
“으하하하! 성배기사님, 선물입니다!”
레이나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케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로 미쳤냐느니 돌았냐느니 하는 욕설과 함께 다른 엘릴 기사들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엘릴 기사들은 매끄럽게 아이작을 중심으로 둘로 갈라지면서 케식들을 향해 밀어닥쳤다.
콰득, 콰직. 멈춰있던 케식들은 맹렬한 속도를 타고 달려온 엘릴 기사들의 흐름을 버틸 수 없었다. 강물에 휩쓸리는 모래알처럼, 순식간에 칼과 창에 난자당하고 말발굽 아래 녹아내렸다.
“아이작 님, 늦지 않은 듯하니 다행입니다.”
아이작 곁으로 엘릴의 소드마스터이자 성지수호자인 리안나 게오르크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저 얼굴이 반갑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아뇨. 정확한 시간에 와주셨습니다.”
아이작은 대충 예상했던 시간과 맞아떨어진 것을 보고 안도했다.
아이작은 엘릴의 지원군이 노르덴 항에 도착해 이곳에 오는 시간과 올칸 규율이 이사크레아 영지에 입성하는 시간이 맞아떨어지도록 의도했다. 사훌란 칸이 개입하든 안 하든 아이작은 이때쯤 놈들이 도착하게끔 할 생각이었다.
다만 예상보다 올칸 규율이 조금 일찍 도착해서, 아이작은 일부러 미적미적 걸어가고 헛소리로 협상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어야 했다.
목숨을 건 시간 끌기는 결국 어떻게든 대포 한 발 안 맞고 성공했다.
한때 적이었으나 이제는 같은 편이 된 리안나와 아이작은 어색하게 시선을 교차했다. 리안나는 아이작과 있는 것보다 전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에델레드 폐하는 뒤쪽에서 후발대와 함께 오고 계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녀는 바로 고삐를 흔들어 오크 군대를 향해 달려갔다.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하는 오크들을 도륙 내는 대열에 리안나가 뛰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무수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성배기사! 성배기사! 성배기사!”
수도원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과 성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엘릴의 나팔 소리와 세상의 화로가 두들기는 북소리를 들으면서 지지 않겠다는 듯 성배기사를 연호했다.
아이작은 가장 앞서 달려오는 로튼해머와 눈을 마주쳤다.
감정에 북받쳐 뛰쳐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아이작의 지시대로였다.
리안나와 함께 도착한 선봉대는 공격력과 기동력을 우선시한 기사들이다.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 공백을 이사크레아 군이 메워야 했다.
“침입자들을 처단하라!”
로튼해머의 포효와 함께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갔다.
물론 성기사들 정도가 아니면 다른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잔당 처리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일부러 그들을 전투에 밀어 넣었다.
‘승리를 거저 얻었다는 기분이 들게 하면 안 돼.’
아이작의 사람들이 피든 땀이든 이 땅에 흘려야 한다.
그들이 이 땅에 애착과 자부심을 품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이방인들과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을 섞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그들이 이번 전투를 기적적인 승리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이 일궈낸 승리라고 받아들이게끔 하고 싶었다.
***
아이작의 1차 전략적 목표는 ‘엘릴의 기사들이 올 때까지 버티기’였다.
엘릴 기사단의 행군 속도를 대충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제한을 두고 버티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는 ‘세상의 화로 교단의 도착을 기다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이미 올칸 규율이 겔리퍼드 산맥에 발을 딛기도 전에 이미 도착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세상의 화로 교단에서 두들기는 북소리가 연신 심장을 두들겼다.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를 악기로 표현한 이 묵직한 저음은 전사들의 심장에는 투지와 생명력을, 적들에게는 불쾌감과 공포를 심었다. 북소리는 산맥의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치며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온다.”
드워프의 짤막한 말 한마디와 동시에, 갱도 안쪽에서 도끼를 든 전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세상의 화로 교단은 올칸 규율이 침공을 시작한 이후, 거의 동시에 남하를 결정했다.
그들은 원래 이사크레아 영지와 별개로 독자적인 공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사크레아 영지에서 방문한 화로 장인, 울스텐이 매력적인 전략을 제안했다.
겔리퍼드 산맥에 개미굴 같이 얽힌 폐광이 있는데, 그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울스텐은 세상의 화로 교단에선 이단에 가까운, 다소 급진주의 성향의 사제긴 했지만, 오크를 많이 죽일 수 있는 계획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험한 산맥도, 폐광도 모두 세상의 화로가 좋아하는 환경이었으며, 무엇보다 현지 지도자의 협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메리트였다.
덕분에 세상의 화로 교단은 2주 가까운 시간을 폐광 안에서 매복한 채 지냈다.
오크들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까지.
올칸 규율의 무수한 병력이 일거에 이사크레아 영지로 진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긴 행렬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방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전방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오크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정체를 피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콰득, 콰직! 도끼질 한 방에 어깨가, 다른 한방에 머리통이 수직으로 쪼개졌다. 전사는 단숨에 도끼를 뽑아 버리고 오크를 절벽 아래로 걷어찼다. 오크들은 늑대 가죽과 전사들의 얼굴에 새겨진 온갖 기묘한 문신들을 보고 경악했다.
“라이칸스로프! 라이칸스로프 전사대다! 세상의 화로 교단 놈들이 나타났다!”
“아우우우우!”
전사는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고함 지르는 오크의 면상에 도끼를 집어 던져 박아 넣었다. 뒤늦게 오크들이 활을 들어 전사들을 향해 겨냥해 쏘기 시작했다. 화살을 맞은 전사 몇이 휘청거렸지만 이내 그들도 도끼를 집어던져 닥치는 대로 궁수들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아우우우!”
라이칸스로프 전사대의 싸움은 무기를 전부 버린 시점부터 시작된다.
여기저기서 늑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전사의 머리에 쓰고 있던 늑대 가죽이 피부에 눌어붙기 시작했다. 골격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피부의 문신을 따라 털이 돋아나고, 온몸이 반 늑대, 반 인간의 형상으로 거듭났다. 손에는 단검 같은 발톱이, 톱날 같은 이빨이 돋아났다.
세상의 화로 교단이 숭배하는 가치는 탄생과 변화.
그들의 신성한 정수를 담아 만들어진 라이칸스로프 전사대는 세상의 화로 교단의 성기사로서, 인간의 형상에서 짐승의 형상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삽시간에 2.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늑대인간이 된 라이칸스로프 전사대가 다시 새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오크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광전사들의 습격에 전열이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장소뿐만이 아니라, 겔리퍼드 산맥 곳곳에서 오크가 있는 곳이라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허리가 곳곳에서 뚝뚝 끊어지자 각 오크들의 무리는 백호장과 천호장 단위로 나뉘어 버렸다. 일부는 퇴각을, 일부는 지원을, 일부는 진격을 명령하며 지휘체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곧 무수한 오크들이 퇴각을 결심하게 만드는 재난이 벌어졌다.
콰르르르릉!
많은 오크들은 벼락이 땅에서 솟구쳐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곳에는 벼락에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 몇십 그루만이 보였다.
어떤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풍경을 보고, 오크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투할린! 벼락망치 투할린이 나타났다! 영혼파괴자 투할린이다!”
***
“난장판이군.”
사훌란은 황천을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나 칸의 눈이 있었다. 전방에서 엘릴 기사들에게 으스러지고 있는 오크들과, 이사크레아의 잡병 무리에게 도살당하는 오크들, 세상의 화로 교단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붕괴 중인 후방까지.
제각각 모두 사훌란이 염두에 두었던 위협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이런 변방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은 겔리퍼드 산맥을 넘어가는 요충지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땅이었으니까.
‘원래 이곳 영주가 반역을 저지를 셈이었다고 했던가. 적당히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려고 무기를 지원해 줬는데 실패했었지.’
당시에는 헨드락이라는 이름의 땅이었다. 사훌란에게는 그 정도 의미밖에 없는 땅이었다.
그는 어째서 이 수많은 신앙의 신도들이 땅에 목숨을 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사훌란은 눈을 들어 저 너머에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우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예의주시 중이었던 건지, 그자 역시도 사훌란과 눈을 마주쳤다.
황천은 지금 벌어지는 일의 원인이 아이작 이사크레아, 성배기사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만생자를 속이고 시간을 번 사이, 이런 간교한 짓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올칸 규율에게도 군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무시했다.
중요한 것은 한가지, 이 자리에서 최소한 저 성배기사라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칸이시여, 물러나셔야 합니다! 엘릴의 후발대가 오고 있습니다!”
테헤르마 장군 무당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언했다.
엘릴의 기사들이 엄청나게 빠른 건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영혼을 붙들고 있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무수한 영혼들을 통해, 테헤르마는 좌익에서 우회하던 군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릴의 군세가 심상찮을 뿐 아니라 강력하기까지 하다는 뜻이다.
지금 도착한 선봉은 그저 말 그대로 선봉에 불과했다.
“병사들을 뒤로 물려라.”
테헤르마는 안도했다. 하지만 사훌란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황천을 꺼내 화살을 쟀다.
테헤르마가 놀라는 사이, 사훌란은 황천의 끝을 아이작을 향해 겨냥했다.
‘아틀란과의 싸움으로 몸을 적잖이 다쳤다고 했지.’
방향만 맞으면 된다. 정확한 조준은 필요 없다.
사훌란은 황천을 들어 올리자마자 활시위를 놓았다.
철시가 무섭게 허공을 갈랐다.
찢어지는 돌풍이 엘릴 기사 두어 명의 몸통을 통째로 꿰뚫었다. 그러고도 화살은 역대 칸들의 분노를 담아 그대로 아이작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쾅.
그러나 그 순간, 한 사람이 앞으로 뛰쳐나와 단호하게 철시를 튕겨 냈다. 짧은 순간 나타난 수정 방벽이 찬란하게 깨지면서 허공에서 흩어져 내렸다.
[누가 감히 엘릴께서 보내신 대전사를 위협하느냐!]리안나였다. 그러나 그 내면에 있는 것은 리안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칼끝을 사훌란을 향해 겨냥했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천사들이 나대면 다른 신앙에서도 천사들이 나설 명분이 생기지.’
아이작은 이 상황이 기분 좋았다.
자기 대신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공짜로 이겨 준다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