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시에로 여명군 (3)
“저, 죄송하지만 성기사님은 누구…….”
“서두르는 게 좋겠군.”
아이작은 자기소개 대신 서둘러 가길 종용했다. 감동적인 해후였지만 사방이 좀비들로 버글거리는 장소에서는 사치스러운 짓이었다. 그제야 허겁지겁 여명군 무리가 시에로를 중심에 두고 둘러싸며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돌파한 길을 돌아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아이작은 갑작스레 심장 쪽에서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이름 없는 혼돈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아이작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회피했다.
자신의 심장이 있던 자리에서 무형의 기운이 뭉쳤다가 날카롭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을 노린 즉사 저주였다.
아이작은 곧바로 좀비 하나를 칼로 꿴 채 배후를 노려보았다.
어느 틈에 나타난 건지 리치가 좀비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즉사 저주를 걸려면 상대의 모습을 정확히 봐야 한다. 이를 위해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았다.
리치는 즉사 저주를 회피한 아이작의 모습에 한번, 그리고 이 무수한 좀비들 속에서 자신을 단박에 포착한 아이작을 보고 또 한 번 경악했다.
결국 리치는 귀중한 기적을 낭비하는 것을 포기하고 즉시 팬텀스티드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이작은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 치며 여명군 무리와 함께 크란 요새로 향했다.
대놓고 등을 보였지만 더 이상 공격은 없었다.
데스나이트들과 리치는 갑자기 등장한 ‘성배기사’라는 존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놓고 고민하며 허공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좀비들의 압력도 심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해진 상태였다.
‘내가 혼자 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군.’
아이작은 피식 웃었다. 사실 그걸 의도하긴 했다.
데스나이트들과 리치 사이에서는 복잡하고 신경질적인 언쟁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상대는 그 이사크레아 여명군의 성배기사다! 혼자 왔을 리가 없잖아!’
‘당장 보이는 건 저 한 명입니다. 적장을 잡으려면 고립되어 있을 때 잡아야지요!’
‘방금 데스나이트 머리가 단숨에 쪼개지는 걸 못 봤나? 즉사 저주도 피하는 괴물이라고. 저걸 빨리 제압할 수 있는 놈이 우리 중에 있나?’
대충 그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것이라고 아이작은 상상했다.
실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사 교단의 언데드들은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 튼튼하고 확실한 장기 계획을 좋아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험을 하기보다는 상황 파악을 우선하는 게 현명한 행동이었다.
뭣보다 이곳은 불사 교단의 영토로부터도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계획에 없는 싸움은 지양하고 싶을 것이다.
‘불사 교단 놈들은 소수 정예로 병력을 파견하니까.’
인간의 군대는 소수 정예 파견 같은 것이 쉽지 않다.
기사가 있다면 말도 있고, 종자도 있으며 군량을 나를 보급대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사 교단은 다르다.
불사 교단에는 ‘보급’의 개념이 없고 머릿수 또한 ‘현지조달’이 가능하다.
편리한 일이긴 하지만, 반대로 소수, 그러니까 데스나이트들과 리치만 잡는다면 이 전투는 바로 끝난다.
통제를 잃은 좀비들은 둔하고 공격성도 약화된다. 아이작을 잡으려다 자기들이 제압당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렇다고 좀비 무리를 몰아넣으면 이 광야에서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사크레아 여명군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방벽이 사라진다.
즉, 놈들은 아이작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 언데드 무리에 뛰어들 리 없으니까.
그러나 그 미친놈이 바로 그들 눈앞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이작은 손쉽게 크란 요새에 진입할 수 있었다.
데스나이트들은 아이작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뭐, 어리석은 짓은 아니지.’
아이작이 진짜로 혼자 왔다면 고작 성기사 한 명의 전력이 추가되는 것뿐이고, 무리가 함께 왔다면 전력을 아끼는 것이 맞다. 이 어마어마한 대군세 앞에 아이작 하나가 추가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크란 요새는 폭풍우 치는 파도 한가운데 놓인 나룻배나 다름없었다.
***
요새에 간신히 도착한 뒤, 긴장이 풀린 시에로는 숨을 헐떡이며 길 한복판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을 본 시에로 여명군 무리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시에로의 모습을 보며 흐느끼고 손발을 매만졌다.
“아니, 사제님. 저희들을 위해 이렇게 심하게 다치시고…….”
“저희는 사제님이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는 분명 사제님이 지원군을 데려올 것이라고 몇 번이나 주장했었지요!”
“저는, 저는……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사제님, 이렇게 심하게 다치시고…….”
물론 시에로에게 생긴 상처 중 대부분은 아이작에게 얻어터져서 생긴 것이긴 했다. 좀비 무리에 뛰어들 때는 옷자락이나 찢어진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시에로를 추종하는 무리들 눈에는 ‘시에로 사제가 자신들을 구원할 자를 모셔 오려다가 언데드들에게 다친 상처’로 보인 모양이다.
고막이 나간 시에로는 무슨 말들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를 원망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시에로는 더더욱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알기는 하는군.’
흐느끼는 눈물바다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시에로 여명군 중 몇 명의 시선은 저 무수한 좀비 무리 가운데서 맹활약을 보인 그 ‘구원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초췌하지만 평범한 인생을 살진 않은 듯한 험상궂은 인상의 노인이었다.
“실례지만, 혹시 그 아이작 이사크레아 님이십니까?”
“맞다.”
“역시 그렇군요. 훌륭하신 위업과 명성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노인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주변 사람들도 서둘러 아이작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거나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들을 구원할 구원자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별로 좋은 소리는 없었을 텐데.’
아이작은 사실 시에로 여명군 무리에 합류하는 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죽으러 가는 무리로 보였거니와, 영지에서 심심찮게 행패를 부리곤 했기 때문이다.
트라엘굴이 안개 속에서 두들겨 팬 시에로 여명군 무리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명성보다는 악명이 높았을지도 모른다. 영지 주변에 악마를 방치해 둔다는 소문으로.
하지만 노인은 그런 내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하게 아이작을 요새 안쪽으로 안내했다. 다친 시에로에 간호를 지시하고, 요새 방비를 명령하는 것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 노인이 이인자 내지는 실세 정도 되겠군.’
시에로에게 실질적으로 조직을 관리할 능력은 없어 보이니, 실권을 휘둘러 온 것은 이 노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름이 뭐지?”
“데반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요새 상황은 어떻지?”
아이작은 걸어가면서 물었다. 데반은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중얼 입을 열었다.
“좋은 편은 아닙니다. 식량 창고가 불에 타고, 우물에는 좀비가 들어가서…… 데스나이트들이 밤새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데 신경이 거슬려서 잠도 못 잔 자들도 많습니다.”
데반은 요새 벽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밖의 좀비 무리도 원래는 반밖에 안 됐습니다. 탈출하겠다고 도망치다가 좀비가 된 자들 덕분에 저렇게 불어났지요. 시에로 사제님께서 도망…… 아니, 구원 요청을 하러 간 뒤로 훨씬 늘었구요.”
데반은 시에로를 가까이에서 모신 만큼 그가 도망쳤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강제로 끌고 온 게 아이작이라는 것도. 하지만 아이작을 ‘구원자’로 보기에는 아직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데반은 잠깐 멈춰서서 물었다.
“……실례지만 성배기사님께서는 홀로 오신 겁니까?”
“그래.”
“그 이름 높은 이사크레아 여명군은 어디에 두시고…….”
“각자 자기가 맡은 임무가 있어서 그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럼 혹시 성배기사님의 그 이름 높은 ‘천사학살검법’으로 저 밖의 좀비들을…….”
대체 그런 불경하고 참람한 센스의 이름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분명 아이작을 저격하려는 의도를 가진 어떤 사악한 존재가 지어낸 것이 분명했다. 붉은 성배의 음모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런 미친 검술 따윈 존재하지 않아. 당연히 나 혼자서 상대할 수도 없다.”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데반은 죽으러 온 거냐고 묻지 않았지만 비슷한 뉘앙스를 담아 물었다. 아이작은 부축받으며 끌려오는 시에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 묫자리를 알아봐 주러 왔지.”
그러면서 데반을 향해서도 차갑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너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데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아이작뿐만 아니라 제국민 대부분으로부터 인식이 안 좋을 것이란 사실은 그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면전에서 듣는 것은 다르다.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너희나 시에로, 둘 다 솔직히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어. 아니, 죽어주는 쪽이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체가 남으면 안 되니까 불이라도 질러서 다 같이 자살해줬으면 좋겠다. 우물 속에 뛰어내리든가. 뚜껑은 덮어줄 테니.”
“무슨 말을……!”
“하지만 나는 이미 시에로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러려면 너희도 최대한 도와야겠지.”
아이작은 데반과 시에로의 주변을 둘러싼 여명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 같이 죽든가, 다 같이 살든가. 둘 중 하나다. 나는 우연히 너희에게 찾아온 이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우연도 너희 스스로가 자신들의 기적이 되지 못하면 잠깐의 행운으로 끝날 뿐이야. 이걸 기적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는 이제 너희에게 달렸다.”
***
불사 교단이 경계하던 ‘성배기사가 끌고 왔을지도 모르는 빛의 법전 대군세’는 오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데스나이트들은 분노한 듯 밤새 날아다니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세를 펼쳤다. 시에로 여명군 무리는 바로 그날 밤부터 ‘생물병기 공중폭격’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깨우쳐야 했다.
쾅, 쾅! 하늘에서 떨어진 좀비들이 지붕과 지면에 떨어질 때마다 굉음을 울렸다. 대부분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으스러졌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놈들도 움직일 만한 꼴은 아니었다. 명중률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성벽에 있는 병사들을 맞추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기는 확실하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크란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분노도 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이러다 주민 반란이 일어나겠군.”
시에로 여명군은 크란의 왕을 죽이고 요새를 차지했다. 하지만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할지언정, 굳이 학살을 벌이지는 않았다.
주민들은 시에로 여명군 무리에 겁을 먹고 잠자코 있었지만, 불사 교단의 언데드가 들이쳐서 공격을 퍼붓는 만큼 차라리 여명군을 죽이고 항복하자는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사이 기적으로 청력을 회복한 시에로가 아이작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선물 보따리에서 열심히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 아니, 시체 주머니에서 병균투성이 좀비를 던지는 데스나이트들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애당초 저놈들은 왜 내려오지 않는 거지? 솔직히 우리 병사들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닐 텐데.”
데스나이트들이 팬텀스티드를 타고 성벽에 내려앉으면 제압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명군 몇 명 죽이기만 하면 머릿수가 채워지니 포위조차도 필요 없다.
시에로의 의문에 아이작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대답했다.
“크란 요새에는 가호 기적이 걸려 있다. 허락받은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는 가호지.”
시에로는 그런 게 있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크란 요새를 점령하고 농성까지 하고 있으면서 몰랐단 말인가? 하기야, 크란 요새에 걸린 가호 기적은 유달리 강력하면서도 빛의 법전 영토가 아니란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알았으면 시에로도 목숨 걸고 도망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좀비들이 떨어질 때마다 엉망진창이 되는 데에는 낙하의 충격 말고도 기적의 영향도 있는 듯했다. 즉, 전통적인 공성전을 벌이거나 가호 기적을 깨뜨리지 않는 한, 이 성의 공략이 어려운 셈이다.
그리고 두 가지 방법 다 소수 정예인 데스나이트들에게는 어려운 방법이었다. 좀비들에게 공성장비를 만들 능력은 없을 테니까.
“그럼 쉽게 공략당하지는 않겠군. 그래서 주민 반란을 유도하는 모양인데…… 데반, 여명군은 지금 어떻게 보급하고 있지?”
“아, 그게 초기에 점령한 창고에서 빼돌린 것이 있는데…….”
“다 풀어.”
“예? 수성하려면 장기전을 생각해야…….”
“이 전투는 절대로 장기전이 될 수 없다. 교황청의 여명군 본대가 접근 중이고, 불사 교단도 그걸 알아. 무조건 그전에 떨어뜨리려고 할 거다. 독점하고 있는 식량 풀고, 약탈한 것들도 전부 돌려줘. 그리고 범법자도 확실하게 처벌하고 주민들에게 사과해.”
[연재] 죽은 신의 성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