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adin of the Dead God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영원한 창백 (2)
콰두두두두!
단 두 사람, 아이작과 게벨의 폭발적인 돌격에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연계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을 휩쓸 것 같던 산사태는 이제 완전히 멈춰 섰고, 도리어 둘의 검이 맹렬한 폭풍이 되어 거슬러 올라갔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은 도리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지켜보던 로튼해머가 급히 명령했다.
“성배기사와 게벨의 뒤를 따라라!”
쿵!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곧바로 명령을 따라 갈라진 데스나이트들과 부딪쳤다. 기세가 꺾인 아발란체 성기사단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고 패퇴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병사들이 중상자와 전사자를 수습해 뒤로 끌어냈다.
불사 교단과의 전투는 적들을 처치하는 것만큼이나 사상자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제들의 손길에 중상자는 치유되고, 사망자는 빠르게 정화되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은 아이작의 반격으로 흔들린 전세를 쉽게 뒤집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데스나이트 무리 중심에서 린데가 불쑥 뛰쳐나와 돌진해 오던 아이작을 단숨에 내리쳤다.
쿵. 묵직한 충격이 아이작을 그대로 땅에 붙들었다.
아이작은 린데의 공격이 이전보다 훨씬 묵직한 것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 무거웠다. 린데가 휘두른 요도(妖刀)가 카훌린을 내리찍은 순간 그 안에서 온갖 악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악령들은 아이작의 몸을 할퀴고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아이작은 갑작스레 자신의 몸 위에 수십 명이 달려들어 땅 밑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같잖은 짓을.’
아이작은 린데의 요도를 뿌리치면서 카훌린에 깃든 검기로 악령들을 베어냈다. 악령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게벨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린데의 척추를 끊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린데는 사납게 그 검을 튕겨내고, 재차 아이작을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아이작은 린데의 공격이 게벨이 아닌 자신을 향해 집중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물론 자신이 가장 강한 위협이긴 하겠지만, 그들이 아발란체 성기사단인 이상 당연히 게벨에게 집착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린데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녀는 아이작에게 관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설마…….’
이 공격도, 지금의 상태도 모두 린데의 의지가 아니라면 설명이 된다. 린데는 아이작을 향해 요도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난타했다.
아이작은 저 요도에 일종의 영혼 포식 능력이 있으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영혼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성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올칸 규율의 오크들이나 불사 교단의 언데드들이 기겁할 만한 병기였다.
린데는 그런 사악한 성물의 능력을 거침없이 끌어다 쓰며 아이작을 향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아이작은 침착하게 린데를 쓰러뜨리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린데의 공격이 점점 무겁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그녀의 움직임은 이전에 겨뤘을 때와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린데는 더 이상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검술도 쓰지 않았다.
그저 술 취한 망나니, 전장에서 날뛰는 요괴, 춤추는 사신이었다.
실 풀린 인형처럼 휘꺼덕거리며 날뛰는 린데의 움직임은 예측조차 불가능했다. 이미 린데 자체가 요도에 잡아먹혀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린데가 자신을 돌파하여 성기사들 무리 한가운데 떨어지면 대량 학살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저 칼을 부숴야 해.’
하지만 이미 검기를 두른 카훌린까지 버텨낸 칼이다. 아마 카훌린 급은 아니더라도 무척 고위의 성물일 것이다. 부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아이작은 자세를 다시 잡아 진지하게 린데를 죽이기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가급적 아발란체 성기사단 검술로만 상대해 줄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린데가 아니라는 것을 안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 그리고 슬슬 몸에 부하가 걸리던 참이었다.
이삭 검술이 아닌 다른 상급 검술을 쓰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손바닥은 이미 터져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이작은 몸속에 매복한 사냥꾼을 불러냈다.
우득. 긴 호흡과 함께 그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아이작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심지어 정면에 있던 린데조차도.
아이작이 검을 고쳐잡는가 싶던 순간, 그와 린데 사이에 있던 거리와 장애물이 삭제되었다.
아이작은 단숨에 린데의 허리, 등뼈, 목을 차례대로 도려낸 뒤 인중에 칼을 박아 넣어 두개골을 뽑아냈다. 사냥꾼이 토끼 머리채를 낚아채듯 간단한 동작이었다.
***
영혼은 육체의 어느 한 부분에 머물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데드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두개골의 통제를 잃은 린데의 몸은 힘없이 허물어졌다. 설령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 해도 제대로 된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린데의 몸은 그것을 해냈다.
분명 주요 부위의 뼈들이 박살 나서 ‘연결’이 불가능할 텐데도, 그것은 온갖 자잘한 뼈들을 이용해 마치 지네처럼 기어가 아이작으로부터 도망쳤다. 그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지네나 뱀이 빙의해 있다면 모를까.
그때 린데의 입이 덜컥 열리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다.
린데의 목소리였지만, 린데의 말투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린데의 몸을 빌려 말하고 있었다.
[네가 여기로 온 덕분에 다른 곳으로 간 네 놈의 동료들은 이미 다 죽었다!]아이작의 표정이 굳었다. 분열된 다른 동맹을 가리키는 말이 분명했다. 목소리는 깔깔 웃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작!”
그때 게벨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이작, 서리! 서리가 온다!”
쩌저저저적. 아이작의 시야에 그제야 사방에서 엄습해 오는 새하얀 서리를 발견했다. 주변 사방을 뒤덮은 서리는 어느새 그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전장을 제외하고 모두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제들이 다급히 불꽃을 피워올리고, 부상당한 성기사들도 힘겹게 성가를 소리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기적으로 피워올린 불꽃과 온기가 퍼져 나가자 엄습해 오던 서리도 다가오는 것을 멈췄다.
서리가 엄습하기 시작하자 데스나이트들조차 움직임을 멈췄다. 은은히 밀려오던 바람도, 나풀거리던 먼지도, 린데의 웃음소리조차도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이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백색의 땅 위에서, 색을 가진 것이라곤 오직 이사크레아 성기사단이 피워올린 불꽃뿐이었다. 하지만 사제들조차 이 방대한 기적의 권능에 견디기는 어려웠는지, 몸을 으슬으슬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원, 성 아르테 찬가를 제창하라!”
혹시 모를 전투에 대비하던 로튼해머와 성기사단까지 기적에 참여하자 그나마 버틸만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천사가 온다.
싸늘한 적막과 공허 속에서 천사가 날개를 펴고 날아온다.
푸드드드득─ 아이작은 문득 울려 퍼지는 성가 사이로 날갯짓 소리를 들었다. 아이작만이 들은 것이 아닌 듯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먹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존재감을 보이던 태양에 일렁이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의 정체는 무수한 새 떼였다. 이내 새 떼는 태양을 시커멓게 뒤덮어 버리고 인위적인 일식을 만들었다. 이 모독적이고 두려운 광경 속에서, 새하얀 새 한 마리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깃털도, 살도 없는, 그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머리 셋 달린 비둘기.
아이작은 이미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영원한 관찰자, ‘창백’.
***
명천사 ‘창백’은 한 데스나이트의 어깨 위에 앉아 묵묵히 전장을 주시했다.
그때 아직도 아이작의 칼끝에 걸려있던 린데의 두개골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영원한 관찰자께서 오셨다! 이제 너희들의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다! 언데드가 되거나, 이곳에 영원히 얼어붙은 석상이 되거나…….]그때 린데의 말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창백이 린데의 두개골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텅 빈 동공 안에는 언데드가 공통적으로 갖는 푸른 안광조차 없었다.
그저 공허뿐인 동공은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겨울아귀.]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청아한 목소리였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목소리에 신음을 흘리는 병사들마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마저 아름답지는 못했다.
[닥쳐.]린데의 몸을 장악하고 있던 요도의 악령은 시키는 대로 닥쳤다.
아이작은 요도의 이름, 혹은 그 안에 깃든 악령의 이름이 겨울아귀라는 사실을 깨닫고 신음을 삼켰다.
겨울아귀는 불사 교단 안에서도 골치 아프게 다뤄지는 신수이자 검이었다. 오직 사람의 악의와 증오만이 남아 뭉쳐 돌아다니는 이 악령 군집체는 나름 언데드 생활 속에서도 ‘고상함’을 추구하는 베셰크에게 거슬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죽어서라도 해결하고 싶은 바가 증오와 원한인 것 또한 당연했기 때문에 용납해 주는 정도였다.
아이작이 게임을 하던 시점에서는 린데가 아닌 다른 데스나이트의 손에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겨울아귀는 말 그대로 마검, 아니, 요도였다.
아이작은 침묵하는 린데의 두개골을 내려놓았다. 밀봉 처리를 하면 좋겠지만 사제들이 전부 기적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럴 틈이 없었다. 상대는 천사다.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전과 다른 기분을 느꼈다.
천사가 등장했음에도 이전처럼 존재감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죽은 십이월은 아이작을 단지 존재감만으로도 질식시켜 죽이려 했고, 다른 명천사들 역시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무릎 꿇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존재라는 것만 느껴지는군.’
“창백.”
아이작은 호흡을 가다듬고 명천사에게 말을 걸었다.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더니, 결과가 예상 밖이었나 보지?”
창백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그 움직임이 정말 새 같아서 아이작은 기이한 기분마저 느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새의 행동을 따라 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창백은 한참 아이작을 관찰하는가 싶다가 입을 열었다.
“아발란체 성기사단의 처참한 패배가 네가 의도한 바인가?”
[아니, 너희들의 분열이 내가 원하는 바였지. 네 동맹은 모두 패배하고 패주 중이다. 대장들의 목은 창대에 걸렸고, 잘 썩힌 다음 노예로 만들 예정이지.]“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을.”
아이작은 일말의 충격이나 공포를 느끼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아이작은 이미 린데의 몸을 빌린 겨울아귀가 헛소리를 했을 때 헤사벨과 권속들을 통해 ‘상황’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모두들 저마다 나름의 곤경에 처해있기는 해도 패배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창백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흠, 어떻게 알았지. 일말의 동요조차 안 보이는군.]당연하다. 설령 권속들을 통해 확인하지 않았더라도 아이작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은 자신의 동맹들에게 조치할 수 있는 모든 보호 조치를 취해두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했느냐면 아이작이 있는 이사크레아 성기사단 쪽에는 ‘아이작’ 달랑 하나만 가져다 두었을 정도로.
즉, 이 자리에 아이작은 권속도 성물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맨몸뚱이뿐이었다.
애초에 아이작의 동맹들은 창백이 저렇게 단언할 정도로 패배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설령 천사가 나타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영웅이다.”
아이작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쏘아붙였다.
“기대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다. 그들 덕분에 내가 괴물이 되지 않고 영웅으로, 성배기사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다. 너희들은 솔직히 그 사람들한테 고마워해야 해.”
안 그러면 전부 다 잡아먹혔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