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3
20 화
한창 때의 청소년들은 어쩔 수 없다. 만화계와 영화계에서도 학원액션 장 르가 유행 중인 시절이기도 했다.
서울 시내의 체육관들을 돌면서 매 일 같이 상처를 달고 살았을 때. 부모님께서는 지원해주시는 반면, 오히 려 학급생들이 시끄러웠다.
나를 둘러싼 소문들은 듣고 있는 게
곤욕스러울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 었다. 혼자서 강북 연합과 전쟁 중이 라느니, 조폭의 숨겨진 후계자라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랬던 어린 녀석들의 귀여운 무리 짓도 여름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끝났 다.
오늘은 방학 중 하루다.
상상 속의 친구, 성호와 같이 학원도 다니고 농구도 하는 평범한 하루.
적어도 어머니께서 알고 있는 내 하 루는 그랬다.
“아들. 언제 한번 성호 데려와라. 아 들 가장 친한 친구인데 엄마가 얼굴
한번 못 봤어.”
“예.”
“그리고 권투 계속할 거니?”
“그만두라면 그만둘게요.”
“얘는 무슨 말을 못하게 한다니까. 다시 운동 시작해서 좋아서 그래.”
“예.”
어머니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연고가 나왔다.
최근 들어 늘 있는 일이었다. 그냥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시고,상처들 에 연고를 발라 주시는.
“엄마는 아들이 반항 한번쯤 해도 괜 찮은데.”
나는 소리 없이 웃는 걸로 대답을 대 신했다.
“잘생겼다. 우리 아들. 늦지 않게 들 어오고. 아참. 용돈은 안 떨어졌니?” 용돈이야 진작 떨어졌지만, 오늘 이 후부터는 중학생의 용돈 수준에 맞춰 살 일이 없어질 것이다.
들어올 돈이 있다.
「일신금융지주는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어,외국계 전문 투자 기업 골드 위시와 조인트 합작 투자 회사인 ‘전일 인베스트먼
트’ 설립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약 속한 혜택 아래 성사된 본 결의는…….」
짧게 다뤄지는 데 그쳤어도.
아직은 신문에 나올 정도의 수준이 아니 었다.
나날이 닥쳐오는 외환 위기에 희망 섞인 소식이나마 들려 주려는 방침이, 저 높은 곳의 VIP 로부터 내려온 것일 테다.
첨부된 사진도 작고 흑백이 었다.
얼마큼의 외화를 들여오겠다는 구체 적인 내용 없이,이름 모를 외국인 대 표가 조그마한 지주 회사의 대표와 악
수를 하고 있는 게 전부.
외국계 전문 투자 기업이라면서 거 창한 듯 다루지만 현재 골드 위시의 진짜 정체는 속이 텅텅 빈 유령 회사 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혜 택들을 벌써부터 약속하고 있는 실정 이다.
외국계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 가고 있다.
시장에는 공포가 번져서 국내 투자 가들조차도 발을 빼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이 해하지만…….
몹시 안쓰러운 일이다.
그때.
보고 있던 신문 위로 그림자가 기울 었다.
고개를 들자 사진 속의 외국인 남자 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으나 그 아래로 드러난 하관이 사진 속과 일치했다. 우리는 신호를 주고받았다.
사실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왜 자신이 이런 구린 일까지 해야 하 는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 서려 있었 다.
어쨌든 그는 약속된 007 가방만 내
려놓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 또한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 다. 가방 안에는 100 달러 지폐로 꽉 꽉 채워져서 총 100만 달러가 들어 있 었다.
오늘 환율로도 대략 10억 원.
그 돈은 회사 분리 과정에서 만든 비 자금 중 일부였다.
금융권에서 100만 달러 규모의 환전 을 하기 위해선 신분증이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명동의 뒷골목은 93년 금융 실명제 이전의 거래 방식을 아직까지 도 고수하고 있었다. 달러상인 늙은 여사장이 나를 몹시 반겼다.
100만 달러는 ‘명동의 큰 엄마’ 라고 불리는 그녀 에게 작은 금액 일 테지만, 최근 들어서는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 는 일이 사라져 버 렸다.
그러니까 암 달러 시장 또한 꽁꽁 얼 어붙었고,나는 오랜만에 온 귀한 손 님이 된 것이다.
“혼자 들고 갈 수 있겠어요? 차에 실 어 줄까요?”
늙은 여사장이 쌓아 둔 돈 박스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고집불통 같은 얼굴 과는 달리 행동만큼은 사근사근했다.
“용달 불러 왔습니다. 거기로 옮겨 주시고,전화 한 통만 쓰겠습니 다.”
늙은 여사장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 던 수화기를 손수 집어 내 앞으로 내 밀었다.
버튼을 누르고 나자 연결음이 이어 졌다.
〈스피드 부동산입니다.〉
〈접니다. 김정호〉
< 아! 김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바깥에는 명동으로 오면서 달고 온 용달차가 대기 중이었다. 돈이 든 박 스들을 다 옮겨 실은 뒤 조수석에 올 라탔다.
10억 원은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가장 나았다.
어중간한 대포 통장에 그 만큼의 금 액을 집어넣다간 묶일 가능성이 크고, 또 대포 통장 브로커들 중에는 사기꾼 이 허다하다.
“김 사장님!”
부동산 중개인이 약속 장소에서 나 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용달차에서 돈 박스를 옮기는 걸 도왔다.
그의 세단 트렁크며 뒷좌석이 돈 박 스로 온통 가득 찼다.
중개인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 다.
“아직 젊으신 것 같은데,사업 크게 하시나 보네요. 부럽습니다.”
박스에 들은 돈들이 검은 돈이라고 해도,그는 자신이 신경 쓸 필요가 없 다는 투였다.
“계약 조건은 변동 없습니까?”
“사장님께서 바라시는 조건에 맞춰 주시겠답니다. 최 회장님이라고,강남 바닥에 빌딩 부자라고 소문나신 분입 니다. 강남 최 회장이라고 하면 이 바 닥 사람들,다 알죠. 믿으셔도 될 분입 니다.”
부동산 남자는 조금 돌려서 대답했 지만 뜻이야 뻔했다.
그의 고객이 큰 부자인 만큼,이런 조그마한 이면 계약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사무실을 임대하면서 내세운 조건이 있었다.
2년 계약 임대료를 일시불 현금으로
지급하는 대신, 실명 거래를 하지 않
는 것.
당연히 위법 사항이지만 부동산 중 개인도 임대인도 내 조건을 받아들였 다.
비싼 임대료를 지급하면서 강남 요 지의 빌딩에 사무실을 구한 이유는 따 로 있지 않았다. 이 근방의 빌딩들이 내가 요구하는 보안 수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ID 카드 소유자들만 출입할 수 있으 며,근사한 로비에는 젊은 경비원들이 24시간 대기 중이다.
부동산 중개인도 경비원 한 명과 임
대인이 상주시킨 대리인을 대동해야 만 나를 사무실까지 안내해 줄 수 있 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청소도 끝 나 있죠.”
사무실 문이 열리자, 여기를 임대하 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텅 빈 바닥 위.
거기에 단말기와 랜선 그리고 사무 용 전화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드디어!
빌딩 직원들이 들고 들어오는 돈 박 스들보다도 그것이 더 값졌다.
ADSL이 막 보급되고 있는 이 시기 에, 빌딩이 갖춰 놓은 인터넷 망은 일 반 가정집에서는 찾기 힘든 안전성이 있었다.
“임대비는 지금 치르겠습니다. 두 상 자 가지고 가시면,계산이 정확히 떨 어질 겁니다.”
물론 의심스런 시선이 조금 돌긴 했 다. 그러나 부자들 사이에서의 현금 거래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은 아니 었다.
오히려 이런 거래를 크게 반겨서 대 리 인의 눈가에 열은 미소가 돌았다.
이 런 돈이 다 최 회장이라는 사람의
비자금이 될 테니까.
“앞으로 사무실 관련해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이쪽으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대리인은 개인 명함과 ID 카드를 남 긴 뒤, 박스 두 개를 가지고 떠났다.
부동산 중개인에게도 비용을 현금으 로 지급했다.
종이 박스에서 돈이 술술 나오고 있 는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고급진 빌딩 안에서만큼은 위화감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인이나 대리인은 현금 부자들을 많이 만나는 자들이 다. 이제
그들의 부자 고객 명단에는 한 이름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바로 나 말이다.
그날 저녁.
금고 설치에 이어서 컴퓨터 설치까 지 끝냈다. 말하자면 하루 동안 ‘주둔 지’를 완성한 것이다.
다만 보급품과 각종 아이템들 대신 컴퓨터 한대가 놓였다.
랜선이 꽂힌.
나는 컴퓨터로 이어진 랜선을 흐뭇
하게 바라보면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전화선이 아닌 랜선으로 인터넷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컴퓨터 부팅을 기다리는 동안 수화 기를 들었다.
국제 통화 비용을 걱정할 단계는 비 자금이 들어온 순가에 끝나 있었고, 조나단도 사무실에 들어와 있을 시간 이었다.
서울은 오후 7시. 뉴욕은 오전 6시.
〈썬?〉
< 잘 받았고,덕분에 사무실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옆에 펜 있죠?〉
내 사무실 전화번호부터 불러 주었 다. 그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번번이 조나단만 긴 비행을 하고 있 지만,그렇다고 중계자를 둘 수도 없 는 노릇이었다.
이틀 후.
한국으로 들어온 조나단을 사무실로
데려왔다. 그 사이 사무실에는 각종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고,사실 상 운동 기구들이 사무실 공간의 반을 점유하고 있었다.
조나단이 혀를 내두르며 샌드백을 툭툭 쳤다. 능력자로서의 조나단을 기 억하고 있는 나로선,저 어설픈 동작 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운동을 광적 으로 좋아하나 봐? 잠깐. 저거 검 아 니야?”
조나단이 구석에 세워 둔 검까지 발 견했다.
피곤도 잊고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
니, 그는 내 사무실의 희한한 분위기 를 만끽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검이 걸려 있는 방향으로 향하던 조 나단이 도중에 다른 것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다가갔다.
“설마 썬이 그린건 아니지?”
벽에 걸어 놓은 그림 앞에서 조나단 이 물었다.
대꾸하지 않았지만 조나단은 확신하 는 눈치였다.
그림은 액자에 담겨 있지 않았으며, 샤프로 직접 그려 놓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조나단은 내 그림 실력이 얼마나 뛰
어난지 설명하기 위해, 그림 속의 괴 물이 얼마나 흉악해 보이는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에서 즐겁기 보다는, 어찐지 안심하고 있다는 느낌 이 든다.
실제로 조나단은 내 취미라고 생각 되는 것들을 물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시며, 형제는 있는지, 자라 온 환경들은 어 땠는지까 지 파고들 기세였다.
그의 007 가방으로 화제를 돌렸다.
“준비해 오신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 을까요?”
페이퍼 컴퍼니 목록만 책 한 권 분량 이었다.
분류 번호가 1000을 넘고, 그곳들을 거치며 자금이 이동된 현황들 또한 끊 임없이 올려졌다.
서류를 다 꺼낸 조나단은 얼굴이 굳 어져 있었다.
왜 모를까.
우리 앞에 놓인 서류들은 우리를 미 국의 감방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썩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판사와 변호인단을 잘 구성하면 역 외 탈세. 반대의 경우엔 횡령. 어느 쪽
이든 금액이 엄청나서 사상 초유의 금 융 범죄임에 틀림없죠. 하지만 다 이 렇게 압니 다. 규모의 차이 일 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