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51
14화
녀석은 내 이름을 팔지 말았어야 했 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겠 지만.
[ 퀘스트 ‘싸워라 싸워라. 한 명만 남을 때까지’를 완료하였습니다.] [ 잠재적인 위협 : 318 명 ]도시로 돌아와졌다.
[ 길드 인원: 52,820 명] [ 길드 인원: 44,991 명] [ 길드 인원: 31,500 명 ] [ 길드……. ]성일이 나타난 건 길드 인원수가 2만 대까지 떨어진 뒤였다.
두 주먹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고통 스런 표정이었다.
나지막하게 욕지기를 뱉은 그는 분 노를 터트릴 대상을 찾아 주위를 두리 번거렸다.
그러다 건물들을 부수고 다니기 시 작했다.
원래부터 나이트 습격으로 인해 폐 허나 다름없었던 건물들이었기에,성 일과 직면한 것들은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곧 건물 부서지는 소리가 몇은 대신 성일의 목소리가 뻗쳐 올랐다.
“수만 명이 죽었으. 동족의 칼날에!”
흩어지는 먼지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성일이 드러나 있 었다.
성일과 한데 묶이지 않았던 걸 다행 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
귀환석이 있긴 하지만 귀환 장소는 크시포스 군단의 얼음 성채에서 변동 된 적이 없었다.
“참 드립구만. 살면서 받았던 것 중 에 제일 드립고 드러운 기분이여. 어 디 가려고?”
“본부.”
“나도 같이 가고 싶긴 한디,나까지 왔다리 갔다리 하기에는 시간 없잖 어.”
“그래서다. 혼자 다녀오지. 나이트 습격 전까진 돌아오마.”
그렇게 말하는데 속이 계속 울렁거 렸다.
상황이 최악으로 돌변했다.
상위 무대라는 것이 어디까지 지칭 되는지는 모르겠다만,그 무대의 각성 자 수가 1/3로 줄어든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퀘스트가 발생했던 무대들 전체는 2 막 1장을 공략할 힘을 잃어버린 것이 었다.
재앙이라고밖에 달리 표현될 말이 없었다.
우리 무대에서 희생된 것만 수만 명 이다.
퀘스트가 발생된 전 무대를 통튼다
면 그 희생자는 대체 얼마나 된단 말 이냐.
상공에서 내려다본 이태한의 도시는 암담하고 침울한 분위기 였다.
실제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퀘스트 장소에서 돌아온 자들은 피를 뒤집어 쓴 채 아무 데나 주저앉아 살짝 넋이 나가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부상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들의 머리맡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들은 해골 용을 탄 나를 올려다보 고는 황급히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해골 용을 풍문으로나마 들어 알고 있던 자들에게서 먼저,내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중지. 중지! 그분이시다.”
해골 용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시청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도 거리와 사정이 다르지 않 았다.
피비린내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온 다.
복도와 홀에 너저분하게 앉아 있던 자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살의(殺意)가 채 지워지지 못한 시선도 있었다.
복도 한복판에 이태한이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보인 눈 빛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는 힘없이 움직였다.
이태한이 말없이 나를 안내한 곳은 그가 서재로 쓰던 한 방이 었다.
“김지애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시청 뜰로 모이기로 되어 있습 니다. 살아 나왔다면 곧 거기서 만나 실 수 있을 겁니다. 살아 있을 겁니다. 그럴 테지요……
이태한의 목소리는 무력했다.
“오딘. 둠 카오스…… 시스템…… 우
리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 까.”
그때 시야가 뿌예졌다. 축 처진 이태 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위험 신호였다.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있으나,생각 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지는 것이었다.
상위의 무대들에게 발생된 재앙.
상위 무대라 함은 높은 확률로 레볼 루치온과 투모로우의 고위 각성자들 이 시작한 무대일 것이다.
그곳들은 이번 재앙의 충격에서 벗 어날수 없다.
여기 무대야 내가 존재하지만,그곳 들은 죽을 힘을 다해도 살아남기 가 어 려울 것이다.
오늘 밤 나이트 습격부터가 어려울 텐데…….
아는가.
공들여 쌓아 온 탑이 무너지고 있었 다.
둠 카오스는 손짓 하나로 세계 각성 자 협회의 지휘부를 찢어 놓으려 한 다.
성일이 하고 싶지 않은 두 건의 살인 때문에 분노하고,이태한이 둠 카오스 의 가공스런 권능 때문에 절망감을 느
끼고 있다만!
지금 이 순간 제일 격한 감정에 휘둘 릴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다.
젠장. 젠장. 젠장할! ! !
인중을 스치는 콧바람이 뜨거웠다.
관자놀이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통 제 불능으로 꿈틀거리고 마침내 심장 이 가슴 벽을 빠르게 때려 대기 시작 했다.
되는 대로 나무 의자에 앉아 숨을 몰 아쉬지만,숨이 가쁘게 오가는 수만큼 안압이 급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눈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성일처럼 무엇이든 박살 내 버리고
싶었다.
내 화를 내가 못 이겨서.
우웩.
토사물이 발등으로 쏟아지며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괜찮으십니까?”
“받아라.”
보관함에서 장신구들을 끄집어내는 대로,이태한의 손 위에 떨어트려 주 었다.
이태한은 A급 아이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엔젤라와 군나르손에게도 분배해. 주력인 녀석들에게도 적당히.”
이태한은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오늘 밤이 고비가 되겠군요.”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청 뜰에서 지애 누나를 발견한 것 을 끝으로 내 도시로 돌아왔다.
“안색이 왜 그려? 이태한 그 쓰벌 것 이 마음대로 안 따라 주는 거여?”
“넌 옆 도시로 가라.”
“다른 도시들을 도와. 여기는 나 혼 자서도 충분하니까.”
성일에게도 장신구들을 건넸다. 이 제 보관함에 남아 있는 건 주력 1세트 뿐이었다.
“그러지. 칠도시로 갈게.”
성일은 내게 뭔가를 말하려다가 몸 을 돌렸다.
그가 떠난 후 황혼이 물들었다. 하늘 이 물에 퍼진 핏물처럼 붉은 색으로 희끄무레해졌다.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태양은 바클란 군단에서 봤던 둠 아루쿠다의 눈알처 럼 불길하기 짝에 없었다.
“둠 카오스…… 시스템…… 우리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
이태한이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 다.
그때.
[ 퀘스트 ‘잠재적인 위협’이 완료 되었습 니다.] [ 완료 보상으로 다이아 박스가 지급 됩 니다.] [ 154,550 xp를 획득 하였습니다. ]각성자들끼리 서로 죽이라던 퀘스트 가 제멋대로 완료되 었다.
완료 후에도 다시 수행 가능한 반복
퀘스트라더니 그대로 증발되었다.
[ 탐험자가 발동하였습니다. ] [ 소비된 둠 카오스의 권능에 대하여 (탐 험자 보상)시스템에 깃들었던 둠 카오스의 권능 대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시스템 내 둠 카오스의 권능은 퀘스트 ‘둠 맨의 탄생’에 만 집약 되어 있으며,이후로는 시스템을 교란 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내용: 모든 각성자들에게서 퀘스트 ‘잠 재적인 위협’,‘암살’, ‘권좌’ 등이 제거 됩 니다. 동일한 체계의 사건은 더 이상 발생 되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악의적인 부분이 사라졌다 는 것인데.
“콕. 크크크콕……
본 시대에서는 블랙 존이라 불렸고, 이번에 와서는 위험 지대라 불리던 곳 이었다.
개 같은 그날 밤에도 거기서 쏟아져 나온 것들이 내 도시를 쳐들어왔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내 도시로 쳐들어온 것들을 쓸어버린 후,이웃 도시 중 성일이 가지 않은 도시를 도 왔다.
그러던 중에 뜬 메시지.
[ 길드: 도시(십일)의 방어가 무너졌습니 다.]중국인 각성자가 대거 몰려 있는 도 시로 이동하는 사이에도 난리였다.
[ 길드: 도시(사)의 방어가 무너졌습니 다.] [길드: 도시(십일)이 위태롭습니다.] [길드: 도시(사)가 위태롭습니다.]빌어먹을. 내 몸은 두 개가 아니잖은 가.
그나마 4시 지역에 있다 해서 ‘사’로 명명된 도시는 이태한의 도시와 가까 웠지만,이태한 쪽도 사정은 여의치 않을 것이다.
방향을 틀었다.
길드 본부로 완성된 도시와 인접한 도시를 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
단했기 때문이었다.
메시지가 경고한 대로 그 도시의 외 벽 곳곳이 뚫려 있었다.
비행 기수들은 망루를 집요하게 물 어뜯고 있었으며,여왕의 추종자들 중 에서도 높은 등급의 바클란들은 막강 한 괴력으로 방어 시설들부터 무너트 리던 중이었다.
그래서 방어 구조물의 보호를 받고 있던 원거리 딜러들은 바클란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화염 속성의 투사체를 퍼붓는 구조 물이 용을 쓰고 있으나 거기도 함락되 긴 시간문제로 보였다.
모두가 처절했다.
다 낫지 않은 몸들로 바클란들과 엉 켜서 뒤죽박죽이었다.
혼자 살겠다고 결계를 향해 도망치 는 것들도 있었고, 그것들을 단죄하라 며 소리를 지르는 공대장급 인사들도 보였다.
질서 있게 이뤄져 왔던 세상이 하룻 밤 만에 무너 지고 있었다.
후읍. 후읍.
해골 용은 나의 분노에 공감했다. 그 것의 내부를 빠르게 휘몰아쳐 오르며 아가리로 집약된 검은 기운들이 허공 을 갈라 놓았다.
쿠아아악 一
검은 하늘에 검은 브레스가 비행 기 수들을 덮쳤다.
급히 공중을 선회하는 것들이 있었 으나 해골 용의 아가리도 따라서 움직 였다.
물 대포가 화재를 진화시킨 자리처 럼, 해골 용의 브레스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더 남은 것들이 없었다.
하늘을 정리한 후부터는 해골 용에 서 내려 시청 거리 앞부터 시작했다.
무너진 정문 입구까지 쇄도해 나갔 다.
찌르고 가르고 잡아 뜯고.
도시 각성자들은 내 주변에 있지 않 는 것이 날 도와주는 것이었다.
내가 일으킨 화염과 죽음의 기운들 이 몬스터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숨까 지도 앗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바,그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 하며 소리쳐 댔다.
“물러서어어엇! 오딘 님 앞을 비워라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들 이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늘어진 혀,내장을 쏟아 내고 있는 복부,함몰된 얼굴.
성급한 아이에게 쥐여 준 장난감처
럼 사지가 떨어져 나간 시체들까지. 전사한 각성자들이 도처에 깔린 구 역까지 도달했다.
시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죽어 버린 것은 다시 죽지 못한 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몬스터뿐.
광역 스킬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화염이 솟구치며 길을 만들었다. 폭발에 무너진 건물 파편들이 바클 란들의 정수리로 떨어지기 전에,세 갈래 죽음의 기운으로 그것들의 육신 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것들이 내 협회에 가한 충격만큼,
할 수 있다면 그것들의 영혼까지도 뜯 어 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에도 뭔가가 내 귀에 대고 계 속 속삭이는 것 같았다.
명령이었다. 분노로 가득 찬 심장에 서부터 전해져 오는.
죽여라. 죽여라. 다 죽여라.
허무한 목숨들이 증발된 날이 아니 던가.
보이지 않는 상위 무대 어딘가들은 점점 말라비틀어지다끊겨 버릴 거다. 그런데 젠장.
[ 길드: 도시(십일)이 파괴 되었습니다. ]아주 먼 무대 중앙.
빛 기둥에서 파장이 퍼져 나왔다.
[ 빛 기둥이 위험 1단계에 돌입 하였습니 다.* 빛 기둥이 파괴 될 때까지 공격력이 30% 하락 됩니다. ]
내 도시를 홀로 방어하고 다른 두 도 시를 지원했었다.
마스터 구간에 이른 성일 또한 다른 도시 하나로 파견했었다.
주력 세트를 제외하고 남은 아이템 들을 다 풀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하나가 파 괴되어 버렸다.
재앙이 휩쓸고 간 영향이 잔존한 것 으로,살아 돌아온 각성자들마저 부상 을 달고 있던 까닭 때문이 었다.
그날 밤이 지나간 후.
[ 길드 인원: 14,002 명 ]근 칠만에 육박했던 수는 그렇게 곤
두박질쳤다.
내가 속한 무대도 이러할진대, 같은 재앙을 겪었던 다른 무대들의 운명이 야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는 마냥 분노에 빠질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정령의 장난질을 포함해, 시스템이 전 각성자에게 농간을 부렸던 모든 작 업들이 중단되 었으니까. 시작의 장 안 에서는 물론 끝난 이후로도 계속 말이 다.
상위 무대로 특정되지 않은 무대들.
그러니까 재앙을 피한 대다수의 각
성자들이 특혜를 누린다.
그들이 전과 다름없이 성장해서,보 다 안정적인 인성을 되찾으며 바깥으 로 나가게 될 거다.
그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감정이 사 고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왼쪽 눈 밑의 근육.
거기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찔 대고 속은 여전히 거북했다.
아직까지도 넋 빠진 듯 굴고 있는 것 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시 돌아올 밤을 준비해야 할 녀석들이 그 러고 있는 것이다.
재앙이 덮치고 습격이 지나간 아침
은 처참했다.
이태한까지 그러고 있다면,보자마 자 갈아 치울 생각이 었다.
하지만 녀석은 제 집무실 안에서 휘 하 공대장들을 집결시켜 놓고 소리치 고 있었다.
“다 소집시켜!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브 론즈 1레벨짜리라도!”
지애 누나도 거기에 있었지만 이태 한을 제외한 모두에게 나가라고 지시 했다.
모두가 빠져나갔을 때 이태한이 말
했다.
“오셨습니까.”
본론만 꺼냈다.
“도시가 파괴될 때마다 한 계단씩. 감춰져 있는 제한 시간 내에 다음 층 의 결계를 벗겨 내지 못해도 한 계단 씩. 빛 기둥의 위험도가 상승한다. 2 단계에서 아이템 무력화,3단계에서 특성 스킬 무력화,4단계에서 모든 능 력치의 무력화로 진행되지. 알겠나? 도시 하나가 더 무너 지 면 전부 끝장이 다.”
그런 상황이 오면 이 무대를 끌고 갈 수 있냐 없느냐가 아니라, 나조차도
생존의 문제가 걸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본 시대에서는 2막 1장을 관 통하지 못한 무대들이 많았다 했다.
가장 높은 피해율로 손꼽히는 무대 가 2막 1장이 었다.
이미 지금도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이태한의 표정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어제 빌려주었던 아이템에 대한 언급 도 없었다.
나도 감사의 인사나 듣자고 온 게 아 니고.
“공격력에 디버프가 걸렸습니다. 그 걸 상쇄시킬 추가 병력은 없고 방어 구조물들도 다시 세워야 하는 실정입
니다. 좋지 않습니다.”
“빌드 점수는 내가 채워 주지. 도시 전부.”
전 도시의 결계 퀘스트 전체를 내가 직접 완수하겠다는 뜻이다.
“내 도시의 이웃 도시들도 지원하겠 다. 그쪽 도시들에 투입할 병력은 최 소한으로만 잡도록.”
녀석들도 살고,나도 살아남는 방법 은 그 길밖에 없었다.
도시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으 로도 내 성장분을 충분히 채울 수 있 었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 개입하지 않 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2막 1장의 모든 결계 퀘스트를 나 흘 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해가 떠 있을 때는 결계를,해가 진 후에는 도시들을 끊임없이 맴돌아야 한다.
이번 장이 완료되기 전까지 밤낮없 이 계속.
결계 4층부터의 전 경험치를 독식하 겠지 만 부차적 인 문제 일 뿐.
그런 것이다.
시스템의 악의적인 부분이 사라진 대신, 둠 카오스는 내 휘하들의 목숨 을 앗아 가고 또 내게는 생존의 문제 를 던진 것이다.
이태한의 양어깨를 붙잡고 그의 눈 을 직시하며 다시 말했다.
“도시들을 사수하는 데만 주력해라. 그럼 나머지는 내가 다 끝내 주마.”
북방의 왕으로 있었던 시절.
태한은 그룹을 고무시킬 목적으로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던 적이 있 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누구도 거기에 공감하지 않았기 때 문이었다.
죽은 자들은 전사자가 아닌 낙오자
로 지칭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전우 애라는 게 생길 즈음이면 다시 반복되 는 악랄한 퀘스트이 그렇게 만들었었 다.
처음에는 그런 퀘스트를 발생시키는 시스템에 회의감이 대단했다.
소수의 사람을 선택해 초자연적인 힘을 쥐여 줬을 때는 언제고,막상 서 로를 죽여 대라고 부추겨 대니 말이 다.
장이 진행될 때는 같은 그룹원들끼 리 혈안을 띄게 만들며 장이 끝난 후 에는 다른 그룹과의 대규모 출혈을 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선악(善 惡)이 공존하는 초자연적인 현상.
오딘에게 진실을 듣기 전까지만 해 도 시스템은 그렇게만 여겨졌었다.
진실은 경악스러웠다.
칠마제라는 악의 군주들이 존재했 다.
흔히들 말하기론,외계에 문명이 존 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주 공간의 굉장한 낭비라고 하지 않았던 가.
그래서 외계 문명이 침공했던 일까 지는 납득이 가는 사건이었으나 칠마 제 중에서 제일 고등하다던 ‘둠 카오
스’는 아니었다.
둠 카오스는 관념(觀念) 으로만 존재 할 법할 신적인 존재였다.
정말로 둠 카오스의 권능은 신성을 지녔었다.
온갖 군상들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을 없던 일로 만 들어 버렸다.
퀘스트 ‘싸워라 싸워라. 한 명만 남 을 때까지.’로 상위그룹이라 특정된 무대들을 파괴시켜 버렸다.
태조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 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
니 빛이 있었고,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 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성경의 첫 구절과 무엇이 다를까.
둠 카오스님이 이르시되 셋이 가서 한 명 만 남을 때까지 싸우라 하셨으니,한 명만 남아 있더라.
그래서 무력감에 휩싸였었다.
오딘이 주고 갔던 아이템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뿐만 아 니라,길드원 전체에게서 악의적인 퀘 스트들이 사라졌다는 보고들이 속속 들어왔다.
뭔가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태한은 줄곧 그걸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시를 사수하는 데만 주력해라. 그 럼 나머지는 내가 다 끝내 주마.”
“……아시겠지만 절망적입니다. 소 집령을 내려도 따라 주질 않습니다. 강제로 끌어다 놔도 그때뿐입니다. 다 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퀘스트가 또다시 발생할까 봐.”
“그래서?”
오딘의 두 눈은 어제부터 줄곧 분노 로 가득 차 있었다.
“저도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았 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오딘께서 결계를 맡아 주시는 것만으 로는 장담드릴 수 없습니다.”
태한은 오딘의 그 얼굴과 마주하는 게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오딘의 두 눈뿐만 아니라,눈 밑의 경련 또한 당장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목 따위는 쉽게…….
그래도 태한은 오딘에게 꼭 받아 내 야 할 대답이 있었다.
“마침 나쁜 퀘스트들이 사라졌습니 다. 반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던 ‘잠 재적인 위협’도 다시 받아지지 않습니 다.”
“본론만.”
태한의 결론은 그랬다.
전 도시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오딘 의 도움 외에도,전체를 고무시킬 이 야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악랄한 퀘스트들이 취소된 까닭 이……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
야겠습니다. 오딘이 행하셨기 때문이 라 발표해야만 합니다. 어제와 같은 퀘스트도 다신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합니다. 부디 허가 해 주십시오.”
오딘은 그런 사내였다.
자신의 공을 내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도리어 없던 이야기를 지어 내겠다는 것은 그의 분노를 사기에 충 분한 것이었다.
지금껏 오딘이 보인 모습으로는 용 납되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하면서 도 끝내 말을 마쳤다.
태한은 차마 오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의 입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로 분노가 멸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오딘이 진지하게 고려하 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오딘의 입술이 열렸다.
“사실을 거짓처럼 말하는 재능도 있 었군.”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이다. 내가 행했다. 그런 것이 나…… 큭. 다름없지. 공표해. 이제 둠 카오스의 권능은 내게만 집약되고 있 는 바,너희들에게는 그 같은 피해가 다신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것 말이 다.”
이 또한 시스템이 변질된 원인처럼 뜻밖의 진실이었다.
오딘과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 니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진실!
“정,정말입니까?”
“그래. 시스템의 개 같은 짓거리는 끝났다. 이태한.”
“예.”
“자식이 있나?”
“있,있습니다.”
“그럼 기뻐해도 좋다. 우리는 비극을 겪고 있지만,다른 무대 어딘가에 있 을지도 모를 네 혈육들에겐…… 희극 일 테니.”
그때 태한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 길드원 두 명을 죽이라며 제한 된 공간으로 진입되었을 때처럼. 하지만 육신은 여기 그대로였고,정 신만 오딘의 이글거 리는 두 눈으로 빨 려 가 버리듯 머릿속이 멍해져 버리는 것이었다.
오딘이 떠난 뒤.
태한은 가슴 깊은 곳부터 서늘해져 버려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 다.
지어내려고 했던 이야기는 사실 말 이 안 되는 것이었다.
칠마제 둠 카오스 외에도 시스템 자 체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있으며, 그것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소리 였으니까.
하지 만 사실 이 었다니 .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둠 카오스의 악랄한 권능이 자신에게 집약되었다 하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오딘은 인 류 전체가 감당해야 할 악신(惡神)의
공격을,홀로 받아 내고 있는 것이었 다.
이번 무대만 봐도 오딘이 하려는 일 은분명했다.
그런 존재를 부르는 말이 있었다.
구원자.
그러한 거인이 보내온 생애는 무엇 이든 다 말이 될 것 같았다.
예컨대 오딘은 세계 각성자 협회의 조슈아 폰 카르얀과 어 깨를 나란히 하 는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상일지도.
빌더버그 클럽의 후신인 전일 클럽 이 전일 그룹의 사명과 동일하고,그
전일 그룹이 오딘의 아버지 성함과 동 일한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었다.
오딘이 전일 그룹의 주인이자 전일 클럽의 리더일지도.
시작의 날을 오래전부터 예기하고 준비해 왔었는데,당시에 받을 경제 충격을 예상 못 했을 리가 없었다.
세계 경 제를 구원했을지도.
그런 거인을 두고 멋대로 추측해 왔 던 바들이 부끄러워졌다. 뒷조사 같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태한은 다른 도시의 지휘부를 소집 시킨 동안.
거인이 남긴 그림자 속에 계속 파묻
혀 있었다.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도 거인의 그림자 속에서 벗 어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런 길이 열려도 그러고 싶지 않았 다.
인류의 구원자를 모시는 게 타고난 운명이 었을지도 모른다.
오오. 오딘이시여.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엔젤라는 아니 었다.
그녀석 김지훈.
“길드장님.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 는지 알고 싶습니다.”
태한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무력 감에 찌들어 있었고 나이트 습격 당시 에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만 잠식되어 있었다.
그러다 오딘에게서 한 줌의 빛이 보 였다. 진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그 빛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자신 을 덮쳐 왔다.
그때부터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 작했는데,이 압삽한 녀석이 이 와중 에도 눈알을 굴리는 꼴을 보자니 더욱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곧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다. 준비 시켜.”
태한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버렸던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당당히 본부에 입성 했던 날,내뱉은 말은 딱 하나였다. 오딘께서 본부로 보내서 왔다고.
정말 그게 전부였다.
본인을 제거하려 했던 일에 일언반 구도 없었으며,오딘에게 지난 뒷조사 를 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언급하지만 않을 뿐 무언(無 룸)의 시위가 종종 있어 왔었다.
1막에서도 그랬듯이 사람 눈치나 슬
슬 살피는 얼굴로 주변에서 얼쩡거리 는 모습에는,지원을 해 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오딘께 일러바치겠다는 느 낌이 다분했다.
약점을 잡힌 것이었다.
고작 저따위 녀석에게.
그래서 녀석이 시야에 잡힐 때면 언 제나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
화가 나지 않았다. 실로 거대한 세계 를 영접한 직후였기 때문이 었다.
녀석이 자신에게 굴었던 것과,자신 이 인류의 구원자에게 굴었던 것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 같이 못난 녀석들이다.
“그럼 가 봐.”
태한이 말했다.
지훈은 의아한 시선으로 태한을 바 라보다 몸을 돌렸다.
2막이 시작되기 전에 가졌던 대회에 비하면 끔찍하기 짝에 없었다.
이날 밤에도 있을 나이트 습격에 대 비하여 부상자들은 회복에 주력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운집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
음에도 그곳은 불행과 공포를 전염시 키는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공간이었 다.
오늘 밤에는 누가 죽을지,그런 계산 들만 여기저기 얽혀 있었다.
태한이 급조된 단상에 올랐을 때에 도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레볼-루!치온!’ 하는 우렁찬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나도 너희들과 같았다. 이게 뭔 짓 거리인가 싶었다!”
그 말로 포문을 열었다.
“알다시피 나는 너희들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다. 바깥에 돌아가서는 일
성의 수만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 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적었다.
뻔한 연설.
다들 합심하여 오늘 밤도 이겨 내자! 라고 끝나게 될 연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 었다.
태한 또한 힐끗힐끗 관심을 주는 뻔 한 시선들을 향해 외쳤다.
“각성한 이후로도 나는 내 회사 생각 뿐이었다. 너희들 중에서 어떤 놈들을 데리고 가야,일성에 도움이 될까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일성
을 버렸다. 각성자 이태한이다. 너희 들의 길드장 이태한이다!”
태한은 단상에서 내려와 운집한 사 람들 사이를 거닐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눈을 마주치며,그를 외면 하고 있던 시선들을 잡아당겼다.
“말하지 않아도 다 들려! 어제 같은 퀘스트가 또 일어나면, 시스템이 또 농간을 부리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 고 개죽음당할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 냐! 웃기지 마라. 되지도 않는 거짓말 로 나도 오늘만 살아가고 싶지는 않 다.”
태한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내 목을 걸 수 있다. 다시 그런 퀘스 트가 발생한다면 몬스터가 아니라 내 목을 잘라라. 저항 않고 내 목을 밀어 주지.”
술렁임 없이 이태한의 목소리만 바 람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퀘스트 ‘권좌’가 취소된 마 당에,길드장의 지위가 인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머리가 있다면 생각들 해 봐라. 권좌가 왜 취소되었을까. 잠 재적인 위협도,암살도. 왜 모두다 날 아가 버렸을까. 나는 진실을 알아 버 렸다. 이제 너희들에게도 그 진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모를 진실을!”
비로소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 한 태한은 단상 위로 돌아갔다.
“멍청한 녀석들을 위해 결론부터 들 려주마. 우리 곁에 구원자가 계시다. 너희들이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그분, 두려워서 쩔쩔멜 뿐 막상 그분의 위대 한 업적은 생각지 못하고 공포의 대상 으로만 여겨 졌던 그분.”
격앙된 태한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 다.
“오딘께서 다 없애셨다. 시스템의 악 랄한 부분들은 종국에 지워 버리시고, 나머 지 둠 카오스의 권능을 홀로 받아
내고 계시단 말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서 가능한 일인 것 같은가. 천만에. 신 성(神性)의 영역인 것이다.”
파앙-!
그 순간 태한이 외친 소리가 도시 전 역으로 뻗쳐 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는 이 미 신성의 아래에 있는데!”
태한은 자신에게 쏠려 있는 시선들 이 점점 뚜렷해지는 걸 느꼈다.
“오딘께서 시스템의 악행을 중단시 켰다. 오딘께서 결계를 파괴하실 것이 다. 우리는 고작 이 도시 하나씩만 지 키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시도 잊
지 마라.”
[ 길드: 길드장 이태한이 도시(길드 본부) 를 ‘구원자의 도시’라 명명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성이 머무는! 구원자의 땅 을 딛고 있다!”
그때부터 였다.
태한이 직접적으로 유도하지 않았 다.
레볼루치온의 경례법처럼 허공을 움 켜쥐는 주먹들이 나타났지만 구호가 달라져 있었다.
“오一딘!”
“오-딘!”
“오一딘!”
비로소 태한도 허공을 움켜쥘 수 있 었다. 가슴이 벅차올라 전신이 떨려 오는 순간이었다.
태한은 힘껏 외쳤다.
“오一딘!”
이태한이 연설했던 자리에는 없었지 만 연설 내용만큼은 전 도시로 확산되 어 있었다.
내게 신격을 부여하고 나를 숭배하 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고무시킨 것이 었다.
큰 효과를 봤기 때문인지, 본인부터 가 열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는 한 번으로 끝내질 않았다.
그가 나이트 습격이 끝날 때마다 집 회를 열고 목자처럼 행세한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은 이태한의 도시에서 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여섯 개 도시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일정한 의례가 통일되지 않았을 뿐.
나를 숭배하는 교단이 만들어진 거 나 다름없었다.
어떤 종교나 사상을 비판 없이 믿기 만 하는 것을 광신이라 한다.
사람이 광신에 빠지면 어디까지 잔 인하게 멍청해질 수 있는지를 익히 겪
어 왔었던 나였지만,이태한이 주도하 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사실 하나를 밝혔을 때부터 각오했던 바.
차악일지언정, 일단은 모두가 살고 볼일이었다.
도시가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나부터 가 끝장이니까.
길드 이상의 응집력이 필요한 때란 걸 인정해야만 했다.
신앙적 공동체를 이루는 한이 있더 라도.
신은 세 가지 방법으로 기도를 들어 준다고 하였다.
하나는 바로 이뤄 주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이뤄 주지 않는 것이며,마지 막으로는 천천히 이뤄 주는 것으로.
‘네가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것으로 믿으라’는 말씀은 거기에서 나왔다.
에리크는 옷 속으로 목걸이를 매만 지며 그의 신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 다.
잃어버릴 때마다 새로 나무를 깎아 만들어 온 십자가 목걸이 였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구원자 오딘께 서 6층 결계를 돌파하셨다. 이제 남은 결계는 단 1개 층으로 오늘 밤에 우리 가……
집회가 한창이었다.
도시의 구성원 반절이 덴마크계이기 도 해서,이태한 옆에서는 통역관으로 있는 덴마크 각성자 하나가 붙어 있었 다.
어쨌거나 에리크의 불만은 하나였 다.
신의 이름이 퇴색되어 버린 세상이
라고는 해도 마침내 구원자가 등장한 시기이지 않은가.
낮에는 홀로 전 도시의 결계에 도전 하고,밤에는 그분의 도시와 이웃 도 시들의 나이트 습격를 방어해 주시는 한편.
둠 카오스라는 악마에 홀로 대적하 시고 있는 그분 덕분에 종말로 치달을 무대가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란 말이 다.
이런 때에는 길드 지도부에서 단 한 마디만 언급해 주면 믿음이 다시 도래 할 수 있었다.
오딘은 전지전능하며 유일하신 우리
의 신께서 보내 주신,구원자라고 말 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딘을 보 내셨노라고.
하지만 지도부에서는 그런 언급 하 나 없이 오딘에 대한 찬양뿐이었다.
또 문제는 일반 각성자들도 마찬가 지라는 데 있었다.
다들 오딘만 바라볼 뿐,정작 오딘과 같은 구원자를 보내 준 분이 누구신지 를 생각하지 않는다.
에리크는 참다못해 용기를 냈다.
이태한의 연설이 막 끝나며 다들 자 리에서 일어나던 순간.
에리크가 크게 외친 말이 모두의 시 선을 집중시켰다.
“이 많은 분들 중에서 크리스천이 한 명도 없습니까?”
이태한의 눈총에 의해서였다.
에리크는 뒤에 말을 이어 자신을 밝 혔다.
“에리크 한센이라고 합니다. 1막 3장 에서 군나르손 님께 합류했었습니 다.”
애초부터 에리크에게는 논쟁을 하려 는 의도가 빤히 보였기 때문에,사람 들의 시선은 싸늘함을 넘어서 공격적 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이태한의 손끝을 바라보았 다.
이태한의 손가락이 에리크를 가리킨 다면 금방이라도 에리크를 잡도리할 눈빛도 함께였다.
그러나 이태한은 손가락을 뻗지 않 고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했다.
“죽어 천국에 가고 싶나? 누군가 내 게 그렇게 묻는다면 ‘아니요. 발할라 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 다. 차라리 발할라가 존재한다는 걸 믿겠다.”
“오딘의 이름 때문이십니까? 그 부 분에 대해서는 제가 설명……. ”
에리크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닥쳐.”
이태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뻗쳐 올랐다.
“발할라의 지배자가 전지전능하신 네 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 지? 해 봐. 우리에게 부족한 건 웃음 이잖나.”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 니다.”
“다른 건 없어. 똑같은 말장난이다.”
이태한은 피식 웃었다.
“모두들 잘 들어. 우리 레볼루치온은 길드원의 신앙까지 묵살할 마음은 없 다. 그런 게 남아 있는 자가 얼마나 되
겠냐마는 뭘 믿든 자유다. 하지만 어 설프게 우리들의 결집을 해치려는 자 는 간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레 볼루치온의 결단! 혼자 속으로 끙끙대 는 것까지는 내버려 두겠다는 거다. 그러나 그걸 공석까지 가져오지 마 라.”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 습니까?”
“신이 있다면 우리를 이 지경까지 만 들지 않으셨을 거다. 오늘은 경고로 넘어가겠지만 두 번은 없다. 멍청한 녀석.”
에 리크는 속으로 외 쳤다.
‘아닙니다. 길드장님. 그래서 오딘을 보내신 겁니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에 는 군중들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공포 스러 웠다.
자신만 크리스찬이었다. 결국 지금 에 와서는…….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 렸다.
도시 입구 쪽에서부터 빠른 잔영이 띄엄띄엄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잔영의 주인은 퀘스트를 주는 정령 앞에 서 있었다.
오딘이 었다.
에리크도 모두와 같은 경외 어린 시 선으로 오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봐도 그분의 얼굴은 푸석푸 석해 보였다.
뺨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짙고,더 럽게 굳은 핏물들이 머리끝부터 발끝 까지 치덕치덕해 보였다.
개인 정비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시간 에 쫓기시는 것 같았다.
식사는커녕 쪽잠이라도 자는 시간을 가지고는 계시는 것일까.
하루도 빠짐없이 이 주째.
매번 비슷한 시각에 도시에 나타나 결계로 사라지신다.
흩어지는 잔영마저 오딘의 다급함이 물씬 담겨 있었다.
에리크는 오딘이 사라지고 남긴 잔 영을 향해 속으로만 중얼거 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 멘.
‘구원자 오딘을 축복하소서. 멈추지 않는 힘을 주소서.’
오늘도 구원자는 제 몸을 돌보지 않 고 있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체력을 우선적
으로 올렸었다. 화력이 충분한 이상, 지구력이 필요했었다.
그렇게 일찍이 첼린저 구간에서 이 룰 수 있는 체력 부분의 한계까지 찍 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수면부 족에 시달렸다.
한달이 었다.
그 기간 내내 열정자 7단계를 유지하 기 위해서 쪽잠은 1시간 내외에서 그 쳐야 했다.
제시간에 나를 깨워 줄 사람이 필요 했는데 물론 성일이었다.
이렇게까지 내 몸과 정신을 극한치 까지 몰아세웠던 적은 없었다.
죽은 자들의 대지에서조차 수면 시 간만큼은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 던 나였다.
그 날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응응!
나를 휘감은 강력한 풍압에 간신히 눈이 떠졌다.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다.
“겁나게 안 깨어나길래 어쩔 수 없었 으.”
성일이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일의 사투리도,나를 안쓰럽게 쳐 다보는 그 시선도 나를 괴롭혀 댔다.
관자놀이를 찔러 들어온다.
머리 전체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고 통스럽게 곤두선 신경들이 청명한 하 늘조차 불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 다.
지금 입을 열면 뻔했다.
신경질뿐인 말이 튀어나와 성일의 얼굴을 굳게 만들 테지.
빌어먹을 부아가 치미는 걸 꾹 참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성일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 통을 내밀었으나 역시나 미지근했다.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기는커녕,불 쾌감만 더 키울 뿐이었다.
맞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자야 한다.
수마(■魔)가 원래도 엿 같았던 내 인성을 갉아 먹고 있다.
그나마 오늘로 7층 결계의 마지막 남 은 퀘스트들을 다 해치우며 빛 기둥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그 일념 하 나밖에 없는 것이다.
2막 1장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 본 무대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
그래서 경험치가 미친 듯이 쌓이다 못해 폭발하고 있는 레벨 업이나 4층
결계부터 획득한 마스터 박스들 그리 고 오늘 획득하게 될 첼린저 박스도.
광신자가 되어 버린 것들의 경외 어 린 시선,오늘도 보였던 성일의 처량 한눈빛까지도.
그 어떤 것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다.
나의 숭배자들 또한 내게 어떤 말도 걸지 말고 내가 이뤄 주는 것에나 기 대하고 있는 게,날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모두들 오늘이 2막 1장의 마 지막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던 것 같 았다.
가는 도시마다 함성이 잦아들지 않 았다.
곤두선 신경으로 굳어진 내 얼굴이 그것들에게는 장엄해 보였던 것 같다. 소음만 커졌다.
“오一딘!”
“오一 딘!”
“오一딘!”
2막 1장은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런 무대.
모두가 이번 무대가 빨리 끝나길 바 라겠지만 나보다 이상은 있을 수 없 다.
[7층 결계가 파괴 되었습니다. ]마지막 구역의 결계를 깨트린 순간.
괴수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졸개들 을 데리고 튀어나왔다.
2막 1장의 보스 몬스터라고 등장한 녀석이지만,정예들로 운집된 군단급 으로 대항하라고 존재하는 녀석이지 만.
수마(§1 魔)에 사로잡힌 내게서 역경 자조차 띄우지 못하고 있었다.
비몽사몽 중에도 반사적인 움직임들 이 전신에 녹아 있었다.
그때는 무엇인가가 나를 대상으로
매크로를 돌려 버린 듯했다.
생각보다 먼저 일어나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스킬을 제때에 사용하는 것도 감각 의 영역 안에 속해 있었다. 한 치의 오 차도 없이.
그것은 문득 정신이 바짝 들 만큼 신 비로운 경험이었다.
창을 띄우지 않아도 어림잡아 시전 하지 않아도,아이템과 특성 등의 효 과로 줄어든 재사용 시간이 느낌으로 만 파악된다.
내 남은 방어력과 스킬들의 최대 공 격 거리까지도.
일악 같은 새끼들이 도달했다던 재 각성의 경지가 이를 말하리라.
온몸의 근육과 뇌리로 누적되어 온 전투들.
그것들이 극한 상태와 맞물린 결과 일까.
뜻밖의 경지로 나를 도약시킨 것만 은분명했다.
시스템의 체계를 한 몸에 녹여 버린 것 같은 느낌이어서 혼연일체(揮然一 體) 혹은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 이 더 제격이다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지독한 피로감 이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빨리 끝내고 잠이나 퍼 자고 싶다,라는 마음이 더 컸다. 재각성의 경지가 뭐든지 간에 기계적으로 움직 일 뿐이었다.
이윽고 데비의 칼날이 녀석의 대가 리를 훔쳐 냈다.
그 대가리의 주인조차 무슨 일이 벌 어졌는지 알 수 없는 속도로.
싹둑-!
거대한 몸이 느릿하게 기울다가 대 지에 곤두박질쳤다.
[ 퀘스트 ‘빛 기둥의 수호자’를 완료 하였 습니다.] [7층 결계를 파괴 하였습니다. ]솟구쳤던 핏물이 소낙비처럼 떨어지 는 걸 맞으며 .
개 같은 최종 메시지를 마침내 보았 다.
[ 레벨 업 하였습니다. ] [ 레벨: 534] [ 둠 맨의 탄생 (1) : 534 /561 ] [ 최초 완료 보상으로 첼린저 박스를 획 득 하였습니 다. ]지금 내 상황에선 아이템이 먼저다.
라의 태양 망토처럼 본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물건이길 바란다.
그것으로 지난 나의 고행을 달래 주 었으면 한다.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에게 양심이란 게 있다면.
듣고 있냐?
내 무대의 사람들이 네놈 대신 나를 숭배하고 있다고 해서!
그래서 개 같은 걸 내놓는다면 나도 네 놈한테 똑같이 굴어 줄 수 있다.
그 이전에 생각해 봐라.
내가 네 놈에게 무엇을 해 줬었는지, 해 주고 있는지를 말이다.
전 각성자를 통틀어 누가 네 놈의 목 적을 이뤄 주고 있는지도.
[ 첼린저 박스(아이템)을 개봉 합니다. ]그러니 내놓아라.
주력으로 쓸 수 있는 것을 어서 !
[ 오딘의 황금 갑옷을 획득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