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50
12화
녀석은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 을 중얼거 리는 듯했다.
‘살려만 주신다면’으로 시작해서 ‘죄 송합니 다’로 끝나는 말들이 었다. 중국인 각성자들 사이에서 지애 누 나와 함께해 왔거니와 누나를 내게 보 내 준 장본인이기도 해서 목을 칠 생 각은 없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 개를 떨어트렸다.
“살려 주지. 하나 더 말해 봐.”
“바라는 거 없어?”
녀석의 얼굴에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혼란이 묵직하게 서려 있었다. 흔들리는 두 눈으로 바닥만 쳐다보 는데,그러다가 차차 진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녀석의 식은땀이 방울져서 뚝 떨어 졌을 때 조심스런 목소리가 나왔다.
“본부로…… 보내 주십시오.”
“이태한에게?”
지애 누나를 만나게 해 준 공로를 인 정.
그래서 아이템을 원한다면 아이템을 주려 했다.
레벨 업을 바란다면 적당히 키워서 성일에게 붙여 주려 했다.
그나마 녀석의 장점을 꼽아 보자면, 바깥에서는 별반 준비되어 있지 않았 음에도 불구하고 생존력과 처세술에 눈을 떠 구(舊) 천공 길드의 십대 부 공대장에까지 오른 것이 하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중국인 무리 속 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온 것까 지가 둘.
단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많지만 성 일의 곁에 붙여 주기에는 제격인 녀석 이었다.
강자에게는 굴복하고 약자에게는 위 에 서려는 녀석.
이런 녀석들을 길들이는 건 그리 어 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녀석은 이태한의 곁을 택했 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예기 치 못할 위험을 감수하고 내 곁에 있 기보단,차선의 권력 궤도 안에서 다 시 비상을 꿈꾸는 것이니까.
“가 봐.”
눈에 띄게 떨리고 있는 녀석의 뒤통 수에 대고 뇌까렸다.
녀석은 아마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전 친척 형제들을 통틀 어 제일 예뻐하셨던 사람이 지애 누나 였다.
내게 묻지도 않은 누나의 소식을 때 때로 전하셨을 뿐더 러,누나에게는 퇴 임 전까지 후원을 지속하셨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형제가 없는 내게 지애 누나가 친누나처럼 되길 바
라셨던 것 같다.
“만나고 왔어?”
“이태한을 택하더군.”
누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내가 물었다.
“왜. 친했어?”
“친했다기보다는 서로 의지하던 사 이였지. 중국인 각성자들 속에서 우리 둘만 한국인이었잖니. 이젠 헤어져도 상관없어. 피차 한국인들을 피해 다닐 이유는 사라진 거니까.”
“누난 나와 함께 있자.”
누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
몬스터 시체가 산처럼 쌓인 거리와 마찬가지의 시산(屍山)을 만드는 성 일의 모습을 쳐다보며 생각이 깊어지 는 옆모습이었다.
“너와권성일 씨뿐이야?”
“이젠 누나도 있지. 나이트 습격 전 에 퀘스트부터 받자.”
누나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성일이 손을 탁탁 털면서 다가왔 다. 소개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때도 누나는 도시 어디에나 쌓여 있는 몬스터 시체들을 둘러보며, 도시 의 음산한 분위기에 적응하도록 애쓰 는기색이었다.
사방에 널린 몬스터 시체와 핏물로 물들어 버린 건물 외벽들은 첫날의 테 마파크 같았던 풍경과는 판이해져 있 었다.
해가 기울며 시산들의 그림자가 길 게 늘어질 때면 수천 개의 팔다리가 허우적거리듯 거리를 차지하는 모양 새로 변한다.
누나의 얼굴을 가린 그림자도 그중 의 하나였다.
이윽고 해가 넘어가며 그림자가 어 둠 속으로 뭉개졌다.
도시의 분위기는 더 괴기스럽게 바 뀌었다.
이따금씩 시산이 저절로 무너질 때 가 있었는데,그럴 때마다 나는 큰 소 리에는 어김없이 바람까지 스미어들 어 비명 같은 소리를 자아냈다.
성일과 나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잘 먹고 잘 쉬면서 나이트 습격을 준비하 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분위기에 압도된 누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줄었다.
초점이 한 부분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내가 준 장비들의 정보를 계속 확인하 는듯했다.
그러나 감탄보다는,그런 장비들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나도 중국인 각성자들과 함께 나 이트 습격을 수차례 겪은 바 있었다.
밀물처럼 쏟아져 오는 그것들의 물 량이 얼마나 많은지,그래서 나와 성 일이라고 해도 누나를 처음부터 끝까 지 다 챙겨 줄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알 고 있을 것이다.
2막까지 온 마당에 자잘한 설명들은 필요 없었다.
한마디 만 했다.
“내 거리에서 벗어나지만 마.”
[ 레벨 업 하였습니다. ] [ 레벨 업 하였습니다. ] [레벨 업…….]동일한 메시지만 20 차례.
단 두 시간 만에 20레벨이 상승해서 이젠 262레벨이었다.
다른 도시들에선 습격을 방어했기 때문에 경험치가 들어왔다면,여기에 서는 경험치를 얻기 위해 습격을 방어 하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약 일만 명의 각성 자들이 조직적으로 그것도 방어 시설
에 의존해야만 가능할 일을 선후 혼자 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방의 구(舊) 천공 길드를 홀로 박 살 내고,덴마크의 구(舊) 세력 하나 를 일거에 제압해서 레볼루치온에 흡 수시켜 버리는등.
소문으로만 들었던 선후의 능력은 충격적 이었다.
오히려 소문이 진실을 따라가지 못 한다고 생각될 정도였었다.
‘미쳤어. 여긴 완전히 크레이지야.’
지애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습격 이 시작된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된 때 였다.
축축하고 숨 막히는 고요 속.
지애는 핏물을 뒤집어쓴 선후를 향 해 다가갔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난 때 라,선후는 두 눈에서 열기를 뿜어내 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불태워 버릴 듯했던 온 갖 화염들과 똑같은.
그래서 순간 지애는 입술을 떼지 못 했다.
도대체 몇 레벨이냐는 물음 따위는 그때 침과 함께 삼켜져 버렸다. 선후 의 눈빛이 공포스러웠다.
선후가 행사했던 악마 같은 힘 또한 마찬가지다.
이 도시는 도리어 몬스터가 살육당 하는 비정상적 인 세계였다.
지애가 이해 안 되는 바는 권성일에 게도 있었다.
권성일이 선후의 심복으로 잘 알려 져 있기는 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서 부터는 각각 따로 움직 였다.
때문에 권성일은 보통의 각성자라면 치를 멸 만한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 었다.
그것을 전투력으로 승화시키는 불가 사의함은 그렇다고 쳐도, 여전히 선후 의 곁에 머물고 있는 바도 쉽사리 납 득되는 일이 아니었다.
파티로 묶이지 않은 이상 경험치는 분배되지 않는다.
권성일에게 합리적인 길은 선후가 만들어 낸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발버 둥 치는 것 말고 본인만의 군단을 창 설하는 것이다.
구태여 여기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 이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권성일 같은 강 자를 환영하고 있다. 퀘스트를 몰아 줄 것이고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 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권성일이란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런데도 권성일은 선후의 곁에 있 었다.
“누님. 다친 데 없으요?”
“난 괜찮지만.”
지애는 대답하며 권성일의 다리 쪽 을 턱짓해 가리켰다.
핏물이 뒤범벅이라 잘 보이지 않지 만 무시 못 할 부상인 것만은 분명했 다.
“자고 나면 괜찮아집디다. 그나저나 누님. 오늘 광렙 좀 하지 않았으요?”
지금 레벨 업 따위가 문제인가!
직전에 공포스런 눈빛을 띄었던 선 후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애는 다시금 깨달았다.
이들에게 있어 전투는 먹고 자는 일 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말 이다.
한때 리더였고,이후로도 온갖 각성 자를 경험해 본 지애였으나 지금껏 자 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떨어져 버린 듯한 충격에 휩싸 였다.
타닥. 타닥.
찢겨 버린 시체 조각들은 아직도 타 들어 가고 있었다.
와르르.
대충 쌓여 만들어진 시산들도 이제 는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들이 상당했 다.
그리고 내일이면 또 새로운 시산들 이 쌓일 것이다.
그날 밤.
지애는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후의 배려로 20레벨을 단숨에 올 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은 크지 않았다.
당시의 기분과 흡사했다.
대검 공안부로 영전(榮轉)했을 때 받 은 느낌.
여기는 내가 어울리기엔 무리가 있 다는 느낌.
그래도 당시에는 젊은이의 열정과 치기가 대단했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버렸고 아마도 선후의 후원이 었을 지 원 사격을 받아 대검 중수과장까지 이 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와 분명하게 다른 점은 어제 나이트 습격에서 자신이 한 일이 라고는,선후의 뒤만 쫓아다녔다는 데 있었다.
선후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선 을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두 시간이 아 니라 한 시간 만에 종결됐으리라.
선후가 나눠 준 경험치는 두말하면 잔소리.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 것이 었다. 중수부에서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지원에 힘입어 주도적으로 종결시킨 수사들이 많았다.
비록 대검 중수부의 일이 늘 그렇듯 전일 그룹을 비호해야 되는 사건들이 많았어도,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벌 이는…….
그러니까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수립 하고 돌발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한 등 의 총지휘는 자신이 도맡아 해 왔던
것이다.
만일 선후와 권성일 외.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몇 명 더 있다면 생각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과 파티를 짜서 선후가 만들어 낸 환경을 이용하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선후에게도 득이 되고 자신에게도 득이 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 었다.
이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비참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들과 함께하기에는 서로 속한 영역이 너무 많이 달랐다.
지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결 국 선후에게 털어놓았다.
길드 본부로 가겠다고.
“누나도?”
“너를 다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해. 많은 위안이 됐어.”
“우리 아버지가 누나 많이 아꼈던 거 알지? 이대로 보내면 아버지 다시 될 면목이 없어. 서운한 게 있었다면 말 해봐.”
“얘 봐라.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 도 아니고. 계속 빨대 꽂고 있을 순 없 지. 262레벨이면 탑 클래스야. 누난 이제 시작이야.”
“애초에 다이아 구간까지였어.”
“응?”
“다이아 구간에 진입할 때까지만 빨 대 꽂고 있어. 그때 가서도 생각이 변 치 않는다면 보내 줄 테지만 지금은 안 돼.”
“누가 들으면 나 욕하겠다. 줘도 못 먹는 미친년이라고. 그런데 있지. 솔 직히 누나,좀 많이 쫄린다?”
지애는 지난밤,나이트 습격에서 있 었던 위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이 서늘했다.
방어막이 소진된 이후부터였었다. 여왕의 추종자들은 자신이 제일 약한
걸 알고 집요하게 노려 왔었다. 물론 선후 선에서 차단되었지만 목숨이 경 각에 달렸던 순간들이 끊임 없었다.
지애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단 하룻밤이었어도 영원히 잊지 못 할 악몽의 순간이 었음을 말이 다.
웨이브,첨탑,군단 전투,다른 도시 에서의 나이트 습격 등.
그걸 전부 합쳐다 놓아도 지난 밤에 는 견줄 수가 없었다.
“네 곁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권 성일 씨 같은 사람밖에 없어.”
“본부로 가면?”
“이 회장하고 잘 얘기해 봐야겠지.
선후도 알 것 같은데. 이 회장,생각 머리 없는 사람 아니잖니.”
“후회할 텐데? 어젯밤의 레벨 업이 계속 생각날 거야.”
“그래도 뭔 걱정이겠어. 오딘이 내 동생인데.”
아이템 몇 개를 더 챙겨서 보낼 수밖 에 없었다.
“오딘이 그렇게 상냥하게 말할 수 있 는지 이제 알았으.”
비꼬는 게 아니 었다.
“사나이란 무릇 내 가족에게는 상냥 해야 하는 법. 역시 사나이 중의 사나 이! 존경을 안 할 수가 없으. 나도 바
깥에 돌아가기만 하믄 내 가족들에게 그럴 거여. 꼭 그럴 거고만.”
성일은 누나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 쳐다보며 마저 말했다.
“그건 그렇고. 누님이 떠나는 것도 영 이해 못 할 것은 아녀. 사람 사는 구석이라곤 할 수 없잖어. 좀 번거로 워도 차라리 다른 도시들의 외벽처럼 시체들로 둘러 버리는 게 어떠? 바깥 으로 치워 버리자는 거여. 젓더미가 된 것들은 내비두고 온전한 것들로 만.”
“난 그냥 누워 있으련다. 너도 좀 쉬 어야 하는 거 아니냐?”
“재미 삼아 하는 건디 뭐. 잠만 퍼 자 는 것도 물려.”
“마음대로.”
성일이 쌓은 시체 외벽은 제법 벽다 운 모양새를 갖춰 나갔다.
거리에 쌓여 있던 잿더미들은 날이 지날수록 줄어들었고,새로운 시체들 은 어김없이 외벽의 상층부로 던져졌 다.
그날 아침도 성일은 지난 습격에 누 적된 시체들로 벽을 세우고 있었다.
[ 빛기둥에서 위험 신호가감지 되었습니다. ] [ 위험 1단계 까지: 24시간 0분 0초 * 결계 한 층을 파괴 하십시오. ]빛기둥이 위험 1단계에 돌입하면 길 드원 전체의 공격력이 저하된다. 그러나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는 뜻의 메시지들이 계속 갱신되는 중 이었다.
[ 길드: 일성2 군단의 김지애 공격대가 결계(1 층 1구역)에 도전 하고 있습니다. ] [ 길드: 쏘을 군단의 엔젤라 공격대가 결 계 (1층 1구역)에 도전 하고 있습니 다. ] [ 길드: 지안티엔 군단의 리웨이펑 공격대가 결계 a 층 1구역)에 도전 하고 있습니 다.]
마지막 하나 남은 1층 결계 구역으로 길드의 병력들이 운집했으며,거기에 서 며칠 전에 떠난 지애 누나의 행적 또한 찾을 수 있었다.
결계 3층이 파괴된 날은 2막에 돌입 한 지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내 레벨은 500대를 돌파했다.
성일도 마(魔)의 구간인 마스터 구간
을 목전에 두며,우리들 사이에서만 ‘평화’라고 불릴 수 있는 시간들을 보 내왔었다.
성일이 완성시킨 시체 외벽은 부패 가 끝나 온갖 해골들로 얽혔다.
도시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도 외 관만으로도 접근을 꺼려 하는 곳이 된 것이다.
성일이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지만, 2막이 끝날 때까지 거점이 될 곳이라 서 나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악마가 사는 지 옥 성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길드에서 이탈해 야인(野人)으로 돌
아다니는 것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 게 들렸으나,내 도시 주변에서는 절 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었다.
[ 레벨 업 하였습니다. ] [ 레벨: 501]“392, 494? 무슨 놈의 경험치가…… 사십만이나 쳐 먹여 달래. 쓰벌.”
기뻐한 것도 잠시,드디어 마스터 구 간에 진입한 성일이 놀란 소리를 뱉었 다.
“어느 세월에 이걸 다 쌓고 레벨 업 한디야. 마스터 구간 왜 이려. 이거 잘
못 본 거 아닌디,물 먹는 하마도 이 정도는 아닐 거여.”
“그래서 마의 구간인 거다.”
예전의 시스템으로 치자면 성일은 A 급 각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의 A급 각성자들과는 수 준 차이가 심하게 날 수밖에 없는 까 닭 하나는,숙련도는 올랐지만 여전히 등급 낮은 스킬들에 있었다. 성일에게는 주력 특성은 있어도 주 력 스킬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결계 4층부터는 마스터 박스 가 보상으로 담긴 퀘스트가 나오기 시 작한다.
5층 각 구역부터 하나씩. 그러다 7층 에 이르러서 최종 보스전을 클리어한 구역으로 첼린저 박스가 보상으로 떨 어진다.
팔악팔선들은 그 무렵 즈음부터 주 력 스킬과 아이템들을 얻기 시작했다 고했다.
어쨌든 다른 도시에서는 그 퀘스트 들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있겠으나 내 도시에서만큼은 아니다.
완벽한 거점.
쏟아지는 퀘스트와 보상.
경험치를 무한정으로 빨아들이는 여 기는 나만의 낙원이다.
[ 루아-르를 매번 찾아주셔서 감사해요.NPC 신세로 추락한 정령이 기쁨의 날갯짓을 했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네요. 인도관님께서 각성자 여러분들께 꼭 전하셔야 할 사안 이 있는데요…… 조용하시네요. 대체 뭘 하신담. 저 루아-르가 승급됐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사안이라는 게 뭐야?”
그때 였다.
정령이 뿌리던 빛무리가 붉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건 이 녀석이 인도관의 직위로 있 지 않은 이상,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 다.
[탐험자가 발동하였습니다.] [ 교체된 인도관에 대하여 (탐험자 보상) 위대한 시스템의 명령을 거부하는 인도 관은 인도관의 자격이 없습니다. ]정령은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 었다.
히죽거리는 그 얼굴에 악의(惡意)가 넘실거렸을 때,불길함과 함께 녀석이 띄운 메시지도 나타났다.
정령에서 발광하는 적색 빛 무리는 지금껏 겪었던 색채들보다 더욱 뛰어 났다.
불가사의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라서,나는 황급히 뒤 로 거리를 벌렸다.
몇 박자 늦은 성일의 목덜미를 낚아 챈 것도 물론이 었다.
“뭐여. 저거 왜 또 빨갱이로 변했어.” 성일에게도 정령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탐험자 특성이 알려 준 대로였다.
내 도시의 많은 정령 중에 하나가 인 도관으로 승급한 것이다.
정령에게서 발산되기 시작한 빛은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초월 감각의 영역에서도 인지할 수 없는 속
도.
그것이 부딪쳤을 때 탐험자 특성이 연거푸 발동됐다.
둠 카오스는 시스템이 창조되던 틈을 비 집고 자신의 권능을 심어 두는 데 성공 하 였습니다. 완벽할 수 있었던 시스템을 변 질 시켰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 았습니다. 이제 둠 카오스는 시스템에 심 어 둔 권능을 소비하여 그의 전지전능함 으로 말미암아, ‘마루카 일족의 의례’에 대 답해 주고자 합니다.
내용: 권능 소비. 시스템 내 둠 카오스의 영향력이 현격히 줄어듭니다. ]
자세하게 확인할 틈 없이 일은 벌어 졌다.
지금껏 망부석이었던 정령이 내 앞 으로 날아왔다.
[ 즐길 준비들 되셨나요? 위대한 시스템 의 이름으로 진행 됩니다. 외쳐 볼까요. 싸 워라,싸워라. 한 명만 남을 때까지! ]쏴•악-!
처음 시작의 장에 진입할 때와 같았 다.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이 나를 휘감기 무섭게 이공간 속으로 던져 버렸다.
바닥은 딛고 설 수 있는 검은 기운으 로만 평평하게 깔렸다.
사방 벽도 똑같은 기운으로만 구성 된 이곳은,10평 남짓의 좁은 공간이 었다.
[ 싸워라,싸워라. 한 명만 남을 때까지 (퀘스트)강자들은 사선을 넘는 대결을 통해서 성 장하기 마련입니다.
임무: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살아남으십 시오.
제한 시간: 2시간
* 제한 시간 내 임무가 완수되지 않을 시,공간이 닫히게 됩니다.]
나와 함께 진입된 사람은 두 명이었 다.
둘 모두 동양인 젊은 남성.
검은 벽을 등진 채로 서로를 훑어보 는 동시에 퀘스트를 확인하는 눈빛들 이 번뜩였다.
둘이 가슴에 달고 있는 문장은 비숫 한구석이 많았다.
그 때문이 었을 거다.
둘은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고도, 서로를 향해 고개를 짧게 끄덕인 다음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둘에 게는 내 표정이 적개감으로 가득해 보 였을 테지만,사실 내 분노의 근원은 저따위 녀석들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 었다.
이건 상위 무대의 각성자들에게 벌 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셋 중 한 명만 살아남으라는 퀘스트 는 결국 상위 무대의 각성자 수를 1/3 로 줄여 버리겠다는 악랄한 집념일 수 밖에 없었다.
탐험자 보상으로 띄워 줬던 정보들 을 확인하고 있는데,녀석 중 한 놈이 선 자리에서 말을 내뱉었다.
“보자마자 알겠더라고. 너 같은 놈 들,들어 본 적 있다. 밤에는 결계로 숨어들어 나이트 습격을 피하고,낮에 는 사냥감을 찾아 안전지대를 뒤지고 다닌다지? 그렇지 않냐?”
근근이 들려왔던 야인(野人)에 대한 이야기였다.
[ 상대가 당신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스킬,개안) ] [ 상대가 당신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스킬,개안) ]동시에 메시지 두 개가 들어왔다.
흠칫 떨려 나오는 호흡 소리들은 바 로 직후에 이어졌다.
“쉿.”
그렇게만 내뱉어도 충분했다. 두 녀 석을 닥치게 만든 다음,마저 탐험자 보상 창을 확인했다.
마루카 일족의 의례에 대답해 주었 다?
권능을 소비해서 시스템 내 영향력 이 현격히 줄어든다?
어쩌면 초월적인 존재마저도 작금의 돌아가는 상황이 영 미덥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 인류의 각성자들이 빠르게 성
장하고 있으며,2막 1장의 빛기둥을 파괴할 수 있는 선까지 안정 적으로 퀘 스트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시선을 다시 두 녀석에게 가져갔을 때였다.
한 녀석이 집게손가락으로 나를 가 리키고는 X자를 막 그어 보이고 있었 다.
그 수신호의 뜻은 명백했다.
녀석들은 아이템 없이 맨몸 상태의 나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와 싸울 수 있는지.
그때 수신호를 보내고 있던 녀석이 긴장된 목소리를 냈다.
“우리…… 싸우지 맙시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법만 있습니까. 잘 찾아보면 다 같이 살아 나갈 수 있 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 다. 아니,반드시 찾아야만 합니다.”
“동감입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쪽은 제가 살펴볼 테니, 다른 분들께서는 출구가 따로 없는지 잘 보시죠.”
두 녀석은 검은 기운으로 막힌 벽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게 보란 듯이 동작을 크게 하면서, 곁눈질을 하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 았다.
“상태 창을 꿰뚫어 보려고 시도하는 건.”
내가 말하자 둘의 동작이 느릿해졌 다. 나를 제대로 돌아보는 고갯짓 또 한.
“이미 공격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 지.”
내 눈빛을 받은 녀석이 황급히 외쳤 다.
“그,그건 당신의 소속이 불분명했기 때문이었어! 당신도 내 창을 꿰뚫어 보면 될 거 아니야. 어서 봐 봐. 그럼 내가 누군지 알 거야. 날 건드려서는 조금도 좋을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거다! 뭐해. 어서 해 보라니까. 어서 해 봐아아아!”
녀석은 팔을 크게 벌리면서 피력했 다.
그때 녀석의 목덜미를 쇄도해 들어 간 공격은 내게서 나오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한편이 되기로 했던 다 른 녀석의 칼끝에서 송곳 같은 기운이 솟구쳐 나왔다. 거기에 타격을 받은 녀석이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친 다음 부터가 시작이었다.
광!
두 녀석 사이에 서로의 목숨을 두고 격전이 일어났다.
승자가 가려진 순간이 었다.
“……저 새끼가 당신을 죽이려 했었 어. 끝냈으니까. 이제 끝냈으니까. 여 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자. 날 도와 서 같이 나가게 된다면.”
녀석이 마저 말했다.
“틀림없이 오딘께서 보답을 해 주실 거다. 오딘이 누구신지는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