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영웅놀이 하지 마, 역겨우니까.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베라라는 킬러가 애교 많고 발랄했다면 금방 들켰겠지만 무미건조한 성격이었던 덕분에 단답형으로 말을 줄이는 것만으로 티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딱딱하게 대답했던 탓일까.
로드라는 늙은이는 갑자기 당혹스러운 감정을 품더니 나에 대한 적개심을 일으키고 있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걸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것이었다.
“늙은이, 눈치가 제법이야?”
그래도 몇 가지 정보는 알아낼 수 있었다.
하나는 박인섭이 빼앗긴 사자모양의 반지를 가져간 놈들이 내 예상대로 스컬이었다는 것.
지금은 사이먼이 보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맥 무어와 나에 대한 청부살인이 엮인 이유가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통화 상으로 들은 스티브라는 사람이었다.
조지 크리크가 말해준 UW, 블렌드, 조르디.
그 중 블렌드 가문의 수장이 스티브 블렌드라고 했으니 같은 사람이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넌 누구냐?”
“목소리 낮춰, 모가지 비틀어버리기 전에. 여기서 당신을 죽이고 그 얼굴로 변하는 게 어려울 것 같나?”
“……”
“눈치만큼 상황판단도 빠르네.”
눈앞의 노인은 목숨이 아깝긴 한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고 있었다.
나는 베라의 모습을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
“이름.”
미스터 라이언이라고 했기에 스컬의 배후인 라이언 가문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노인에 대한 보다 디테일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한 질문이었다.
“로드 라이언이다.”
“라이언 가문과는 무슨 관계지?”
“내가 당대 가주다. 넌 누구지?”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질문은 나만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니까 새겨들어.”
“……”
“맥 무어에게서 의뢰를 받은 대신 뭘 요구했지?”
“……”
“눈알 빙빙 돌리지 말고 대답해. 말하는데 눈깔은 필요 없어.”
돈이라고 말하면 눈알부터 빼고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한 사람을 움직여달라는 부탁을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고분고분하게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 망가뜨리고 싶어서 근질근질한데 말이다.
“누구?”
“브라이언 볼드윈.”
“그게 누군데? 그리고 이유는?”
“전 국가정보국장이다. 그가 배후에서 CIA의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있기에 맥 무어로 하여금 그러지 못하도록 청탁을 하려고 한 거다.”
이 부분은 예상대로다.
역시 대가성 청부살인에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가 엮여 있는 것이었다.
“아까 통화했던 스티브는 스티브 블렌드인가?”
“…….그래.”
“어지간히 급했나보군. 라이언 가문의 수장께서 친히 걸음을 하다니 말이다.”
짧게 대화를 나눴지만 꽤 침착한 늙은이다.
처음의 당황은 어디가고 계속해서 나를 살피며 내가 누군지 추측하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본 브레이커와 관련된 건 이 정도면 되겠지.’
브라이언 볼드윈을 어쩌지 못하는 이상 스컬에 대한 CIA의 추적은 계속 될 것이니 말이다.
나는 다음 질문을 입에 올렸다.
“이제는 네오휴먼에 대한 걸 얘기해볼까?”
스컬과 퀸시의 관계, 그리고 메리엄.
지금껏 나는 퀸시의 입장을 통해서만 두 집단에 대한 정보를 얻었었다.
물론 청부살인이나 저지르는 놈들 입에서 나오는 말 따위는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퀸시도 메리엄을 비롯해서 케이시까지 나사가 빠진 듯한 행동을 자주 보였기 때문에.
“당신들은 왜 네오휴먼이면 무조건 죽이려는 거지?”
내 물음에 로드는 착 가라앉은 눈을 하며 내 말을 받았다.
“무조건이라······ 퀸시에서 그리 말하던가, 서훈?”
“뭐?”
그 짧은 사이에 내 정체를 짐작하다니.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만만찮은 노인네였다.
“그 말은 퀸시놈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 왜 무조건 죽이려고 하는 거냐,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무슨 권리로 우릴 죽이는 것이냐 하고 말이야.”
“……”
“그런데 그게 벌써 몇백 년이다. 지금은 속으로만 그리 생각할 뿐 입 밖에 내는 퀸시놈들은 없어. 그러니 자네는 퀸시와 가까우면서 퀸시가 아닌 인물이자, 퀸시의 정보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그걸 우리 쪽에 확인을 할 정도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내가 아는 한 그런 인물은 서훈, 한 사람밖에 없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날 특정할 순 없다.
그의 마지막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 걸러진 결론일 뿐, 그가 아는 한도 너머에 얼마든지 나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말은 떠보는 것일 뿐이었다.
“X소리 지껄이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으름장을 놓자 로드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우리는 무조건 네오휴먼을 죽이지 않는다.”
“아니라고?”
“퀸시의 입장에서는 무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린 너희들 네오휴먼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존재인지 수도 없이 겪어왔다. 쌓이고 쌓인 데이터가 조건이니 무조건은 아닌 거지.”
X랄 하고 있네.
그렇게 따지면 인류 자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존재인가.
끝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학살을 자행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의 주장은 모든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어본 내가 X신이네.”
“열에 아홉이다.”
“뭐?”
“네오휴먼이 손에 피를 묻히게 될 확률 말이다.”
그는 스컬이 계속 해서 네오휴먼의 수를 줄인데다 퀸시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억제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지금의 균형은 스컬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너희들 네오휴먼에게는 파괴적인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어린아이가 웃으며 개미를 밟아죽이고, 잠자리의 날개를 잡아 뜯는 것처럼 말이야.”
개인이 너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 그럴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환경적인 영향도 있었지만 염력을 얻고 제일 먼저 한 행동이 원장의 머리통을 수석으로 내리치는 것이었다.
그 힘이 없었으면 아마 피를 묻히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그때 고아원에서 맞아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확률상으로는 네오휴먼이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건 맞는 것이다.
“그렇다고 네오휴먼을 다른 종으로 규정하고 다 죽인다고?”
“너희들은 사회시스템으로 제어할 수 없는 존재니까. 자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만 해도 그렇지 않나? 몇몇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것이 의도된 살인행위였다는 걸.”
“……”
핵심을 푹 찌르네.
나도 알고 있다.
어떤 이유가 있든 내가 저지르는 행위가 범죄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어 마땅한 놈이라거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내 눈앞에서 치웠을 뿐이다, 쓰레기들을.
“네오휴먼이 늘어나면 이 사회는 혼란해질 것이고 질서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거다.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 너희들을 죽이는 거다.”
로드 라이언은 확고한 신념 아래 나, 그리고 네오휴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근데 말이야. 지금도 오십보백보 아닌가?”
“……뭐?”
“이 사회는 지금도 충분히 혼란하고, 질서가 바로 잡히려면 갈 길이 멀다는 뜻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아니.”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순간 짜증이 솟구쳐 니코틴을 충전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후우······”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유럽의 대부호라지? 등 따숩고 배부르니까 막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 잘 돌아가는 것 같아?”
“……”
“중동 분쟁지역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프리카 내전을 겪는 사람들은? 남미 빈민촌의 아이들은? 그들도 당신과 같은 생각일까? 아니, 이 사회는 X같이 혼란하고 빌어먹을 질서 좀 바로 잡고 싶다고 생각할 걸?”
“……!”
나는 담배 한 모금을 더 들이마신 후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프랑스에서 테러를 저질렀던 알 키사스였다.
“그렇게 인류를 위한다는 놈들이 테러조직은 왜 그대로 방치하는 거지?”
“그건……”
“왜? 니들은 네오휴먼만 잡아 족칠 테니까 그쪽은 국제사회에 맡겨놓겠다고 협약이라도 맺었나?”
“……”
“편하네? 죽이고 싶은 놈만 골라죽이면 이 사회를 지키고, 질서가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다니 말이야.”
“그, 그들은 그저 작은 문제일 뿐이다.”
그의 변명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아아, 대라이언 가문의 가오가 있지 전 세계를 위하는 일 정도는 되어야지 똥 치우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거네. ”
“그게 아니……”
“계속 들어봐, 내 말 안 끝났으니까. 예전에 날 쫓던 형사가 있었어.”
똑같은 상황이다.
이들도 그때의 박인섭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아는 범죄조직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거긴 건드리지 않고 날 쫓아다니더라고.”
“……”
“그런데 어느 날, 증거도 없는 주제에 갑자기 날 찾아와서 사인을 하라네? 그걸로 증거를 찾아내겠다고. 사인 안 하면 네가 범인이라는 식으로 말이야.”
“……”
“그래서 내가 물었지. 나 말고 그런 놈들과 관련해서 한 명이라도 이렇게 해본 적 있냐고.”
나는 당시의 짜증났던 기분이 떠올라 담배를 쭉 빨았다.
그리고 로드의 앞에 있는 책상에 걸터앉으며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없다더라고. 당신은 있나?”
“……”
“그러니까 알 키사스 대가리 이름이 뭐더라······. 무하마드 어쩌고? 하여튼 그런 놈 모가지 썰어본 적 말이야.”
“……”
“없어?”
“……”
“맥 무어처럼 돈 많은 놈들이 개인적으로 요청하는 의뢰만 받은 거야?”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지 입을 도통 열지를 않는다.
나는 염력으로 그의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물게 만들었다.
“으으······”
“왜 말을 못 해? 혓바닥이 안 움직여?”
담배불을 혀 위에 지지자 치지직 소리가 나고 혀가 파르르 떨렸다.
“으윽!”
“잘 움직이네. 어이, 지구특공대. 그렇게 편의주의적으로 일을 하면 되겠어?”
“으으······”
“영웅놀이 하지 마, 역겨우니까.”
나는 열사의 능력으로 꽁초를 재로 만들어버린 후 혀에 건 염력을 풀어주었다.
로드는 그럼에도 비명을 질러 바깥의 경호원들을 부르지 않았고, 콧김만 훅훅 내쉬며 고통을 달래고 있었다.
‘뭔가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을 듣고 잘못을 깨달은 건지 모르지만 여하튼 느껴지는 감정은 달랐다.
어쩌면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왔던 건 아닐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네오휴먼과의 대립.
라이언 가문의 후계자로서 그들을 인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유사인류이자 말살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며 가업을 수행해온 거라면 말이다.
뭐 이제와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노렸다면 자기가 죽을 각오도 해야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 길었네. 두 번째부터는 빠르게 가자고.”
나는 품속에서 반지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지 알지?”
“이건······”
“그래 너희들도 비슷한 걸 가지고 있잖아. 사자 모양의 반지.”
“……”
“그 반지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말해.”
내 물음에 로드는 그것이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가보라고 간단히 답해주었다.
“가보? 그게 전부야?”
“너도 상대해봐서 알 텐데. 그 반지로부터 일정거리 내에서는 네오휴먼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오래 전, 학살의 마녀라 불렸던 사이코키네시스의 능력자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반지 덕분이었으니까.”
과거에도 염동력자가 있었던 거구나.
그나저나 이명이 학살의 마녀라니.
나처럼 어지간히 죽여댔나보다.
“이걸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우리도 만들려고 했지만 희귀광물이라 재료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제야 그레이를 죽이고 시체를 방치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네오사이트라는 재료도, 같이 태우면 된다는 간단한 제조법도 모르니 그런 것이었다.
“그럼…… 마리 라이언이라고 들어봤어?”
메리엄의 진짜 이름.
그녀는 사백 년 전 라이언 가문의 다섯 째 딸로 그 이름을 사용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름이 전부일 뿐, 다른 정보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