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4
4화. 누구냐, 넌?
미소고아원에서 나왔을 때였다.
나는 보육기관에서 지내며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그 고민은 다른 사람들처럼 정규교육을 받고 학위를 취득하고 직장을 다니는 루트가 아니었다.
뭐 하러 남들과 같은 길을 걷겠는가.
나에게는 염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철저하게 숨겨야 하는 능력이지만 이걸 이용하지 않을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무슨 직업이 좋을까······’
이왕이면 번듯한 직업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내 부캐가 의심을 덜 받으며 활동할 수 있으니.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사회지도층은 경제사범이 아닌 한 범죄의 수사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무니까.
‘게다가 돈도 많으면 좋고.’
먹고 사는 걸 넘어 풍족해야 한다.
사람은 돈 걱정이 없어야 다른 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또한,
‘강도 높은 훈련을 할 수 있는 직업이면 더 좋고.’
염력의 핵심은 집중력이고 정신력이다.
명상도 좋지만 가장 효율이 뛰어난 방법은 신체단련에 따르는 정신적 성장이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돈도 많이 벌고, 전문적인 체력훈련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 운동선수겠지.’
뭐가 좋을까.
무슨 종목이든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는 재능은 능력으로 메우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또 아무 종목이나 정할 순 없다.
되도록이면 세상으로부터 나를 숨기고 싶었으니.
일단 매체에 자주 노출되는 스포츠는 제외했다.
팀워크가 요구되는 단체종목도 적합하지 않았다.
‘실업팀에 소속되지도 않아야 해.’
자유로워야 한다.
철저히 개인적이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스포츠.
그러면서도 대중의 주목을 받지 않는 종목.
조건이 까다롭지만 없진 않았다.
그 중에서 고른 것은,
‘골프가 좋겠어.’
더할 나위 없었다.
투어프로의 경우, 국내 상금만으로 억대가 가능한 수준이니 한 번만 대회에서 우승해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팀에 소속될 필요도 없고, 스폰서 계약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뿐인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골퍼가 아니면 알아주는 이도 없고, 관심도 없다.
간혹 방송에 노출되더라도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쓴다면 얼굴을 숨길 수도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염력을 사용해도 골프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선생님, 전 골프선수가 되고 싶어요.
장래에 대해 묻는 보육교사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은 어느 은퇴한 프로골퍼의 재능기부로 돌아왔다.
고아들을 위한 봉사활동.
과녁이 그려진 천 쪼가리와 아이언, 그리고 간이퍼팅기가 그와 함께 했다.
나는 거기서 모든 퍼팅을 성공시켰다.
프로골퍼의 눈에 약간의 호기심이 깃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들 잘 있었니? 아저씨 왔단다. 하하하.
다시 찾아온 프로골퍼.
그는 그물바구니를 들고 보육기관을 다시 찾았다.
나는 그에게 90% 이상의 어프로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퍼팅과 달리 스윙이 들어간 터라 티가 나지 않게 염동력을 조절한다고 피똥 싸는 줄 알았다.
다행히 그는 내 능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타고난 감각이라고만 여겼었다.
-병한이라고 했지? 혹시 골프 배워볼 생각 없니?
왜 없겠나.
아주 많지.
-배우고 싶어요!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는 두 눈에 열의를 머금은 상태였으니.
그렇게 그는 나에게 골프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환경을 바탕으로 번듯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프로골퍼라는, 내 어두운 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럭셔리한 직업을.
***
-따악.
시원하게 날아간 공이 과녁을 철썩하고 때렸다.
사방이 녹색그물로 둘러싸인 허공에는 하얀 궤적이 쉴 새 없이 날아올랐다.
내가 그리는 궤적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염프로, 오늘도 시원시원하네.”
“역시 프로는 달라.”
“저게 저렇게 똑바로 가는 거였구먼, 허허허.”
나는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연습장에 올 때면 늘 구경꾼들이 들러붙지만 오늘은 유독 많은 것 같았다.
“다들 연습 안 하세요?”
내 물음에 가운데 서 있는 중년남자가 답했다.
“이것도 연습이지, 이미지트레이닝.”
“……하하. 그런가요.”
그냥 구경하고 싶다고 하지.
“근데 닭장에서 칠 때는 그 모자랑 스포츠 고글은 좀 벗어도 되지 않아?”
이 연습장의 주인인 신사장이다.
골프광이기도 한 그는 인근에서 알아주는 재력가이기도 했다.
“그래, 잘생긴 얼굴 좀 보자고. 같이 사진 좀 찍어주면 더 좋고. 하하하.”
“김사장이 뭘 모르네. 우리 염프로, 맨얼굴로는 죽어도 안 찍는다니까.”
“뭐? 잘 생겼던데 왜?”
“그냥 싫대.”
구경꾼들은 나를 두고 이런저런 노가리를 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연습장을 다니는 투어프로는 내가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염프로, 안 답답해? 햇빛이 비치는 것도 아닌데.”
신사장의 말에 나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콩콩 찍었다.
“멘탈 관리요. 루틴 때문에 공 칠 때는 항상 이 복장이거든요.”
“오호, 연습도 실전처럼 그건가?”
“비슷해요.”
“역시 프로는 다르구먼. 평소에도 루틴을 철저히 지키다니.”
“멘탈 스포츠잖아요.”
나는 싱긋 웃은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때 옆 타석에서 거슬리는 말이 나왔다.
“루틴 X나게 따지는 것치고는 경기력이 너무 들쭉날쭉 하는 거 아닌가? 킥킥.”
혼잣말인 듯 하면서도 다 들으라는 듯 한 톤의 어조.
상체를 다시 세우고 옆을 돌아보았다.
젊은 남자다.
나와 비슷한 연배일 정도로.
금목걸이와 금팔찌, 명품 골프클럽까지 든 그는 전형적인 졸부 느낌이 났다.
“이봐요, 젊은 사장. 너무 무례한 거 아니오?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구경꾼 중 한 명이 미간을 좁히고 따져 물었다.
“내가 틀린 말 한 건 없는 거 같은데.”
묘하게 말이 짧다.
“그쪽이 프로라도 되오?”
“아닌데요.”
“그럼 그 말이 틀린지 맞는지 어떻게 아시오? 프로의 세계에 발을 담궈 보지도 않고.”
“다들 그러던데, 여기 다니는 투어프로가 실력은 괜찮은데 들쭉날쭉 해서 문제라고.”
“그거야 아직 경험이 없고 젊으니까 그런 거지. 주워들은 말로 뭘 안다고 무례하게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의 말에 젊은 남자는 채를 바닥에 던지며 인상을 썼다.
“아, X발. 내 입으로 말도 못해?!”
“……!”
“뭐? 경험? 경험이 X발 부족하면 필드를 한 번 더 나가던지 해야지 왜 이 X같은 닭장에서 연습하는데?!”
“뭐요? X같은? 내가 여기 사장이야! X같으면 나가!”
가만있던 신사장까지 가세하지 점차 말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나서서 그들을 말렸다.
“신사장님, 김사장님. 그만하세요. 그리고 그쪽 분도요.”
“그럼 당신이 말해봐. 내 말이 틀렸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듣기에 기분 좋은 말도 아니죠.”
“프로라며?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프로면 듣기 좋은 말, 나쁜 말 가리면 안 되는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해석이기도 하다.
나는 얼굴에 작업용 미소를 띄우고 답했다.
“……맞습니다.”
“X발,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그는 바닥에 던진 채를 주워 들고 내 머리를 가리켰다.
“내 말이 맞으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않나? 그 대가리도 X발 좀 숙이고.”
그 말에 신사장이 울컥하며 나서려했다.
나는 그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제지했다.
“예, 사과드리겠습니다.”
“염프로!”
“자네가 왜 사과해! 하지마!”
“저런 깡패 같은 놈한테 고개를 왜 숙여!”
사람들이 난리를 쳤지만 나는 보란 듯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 반듯한 미소를 머금고.
“이걸로 마음이 풀리시길 바랍니다.”
표정을 보니 안 풀리겠지만.
때로는 웃는 게 상대방 입장에서 더 약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
사과를 하는 사람은 대인배가 되고, 받는 사람이 오히려 지탄을 받으니까.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장님들, 수고하세요.”
“어어, 염프로 조심해서 들어가.”
“오늘 일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대회 준비 잘해.”
“그래, 다음엔 보란 듯이 우승해서 보여주라고.”
사람들의 응원을 받자 놈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찝찝한 것이다.
차라리 나까지 합심해서 몰아세웠다면 더 난장을 쳤을 텐데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예상이 빗나갔을 때 보일 법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싹 무시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본캐라서 안타깝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민했다.
녀석에 대해 알아보고 부캐로 움직일까하고.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로는 원장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다.
게다가 저놈도 오늘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이 연습장에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이번만 피하면 될 일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레인지로버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골프백을 넣은 후, 곧바로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왔다.
차가 많지 않았기에 4차선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화창한 날씨까지 어우러지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영화 속 명대사를 읊조리며 드라이브를 하는 그때였다.
갑자기 시끄러운 배기음이 들렸다.
백미러를 보았다.
붉은색 페라리였다.
-빵. 빵. 빵.
경적소리까지 내는 페라리는 내 뒤에 바짝 붙으며 다가왔다.
-빵. 빵. 빵.
뭐지?
경적은 왜 울리는 거지?
내 차에 이상이 있나?
계기판을 보고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봐도 이상은 없는데.
-빵. 빵. 빵.
그냥 미친놈인가?
페라리는 풀악셀을 밟더니 차선을 가로질러 앞쪽으로 간 후,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X랄을 하기 시작했다.
위협적인 난폭운전에 짜증이 솟구쳤다.
‘오늘 날이 왜 이래?’
마가 꼈나보다.
하루에 한 번도 겪기 힘든 일을 연속으로 겪는 걸 보면.
-부우웅.
페라리의 차선을 피해 속도를 살짝 더 냈다.
나란히 달리자 놈은 창문을 내리고 얼굴을 보였다.
“야이, 굼벵이 새끼야. 빨리 빨리 안 가! 도로 전세 냈어?!”
연습장의 그놈이다.
설마 따라온 건가?
일부러 시비를 걸기 위해?
‘나참…… 별 미친놈이 다 있네.’
아까 한 말 취소다.
죽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니라,
죽이기 딱 좋은 날씨다.
-부우우웅.
욕설을 무시하며 속도를 높였다.
놈도 속도를 내며 따라붙었다.
도로에 차가 많지 않은 덕분에 두 대가 나란히 스피드를 내는데 무리는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슬쩍 봤다.
‘앞으로 300미터라……’
도로의 상황을 확인하고 악셀을 더욱 밟았다.
그에 맞춰 페라리 역시 슈퍼카다운 속도를 뽐내며 따라붙었다.
누가 보면 길거리 레이싱으로 착각할 스피드였다.
[급커브구간입니다.]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좌측으로 도는 커브구간이었다.
나는 안쪽 1차선을, 놈은 2차선을 달렸다.
곁눈질로 오른쪽 차창을 넘어 페라리의 핸들에 시선을 뒀다.
‘잘가라.’
염력으로 핸들을 단단히 붙들었다.
‘핸들 꺾지 않고 드리프트를 할 수 있으면 살려준다. 솜씨 좀 보자고.’
브레이크를 먼저 밟으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페라리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후미등에 불이 들어오며 귀를 찢는 뜻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에게 이기려는 승부욕과 핸들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는 당혹감.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브레이킹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끼이이익. 콰앙!
페라리는 가드레일을 뚫고 커브길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저 정도면 슈퍼카 할애비라도 사망이다.
나는 백미러에서 눈을 떼고 정면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본캐라서 살짝 염려스럽기도 한데 누가 알겠어?
이게 타살인지.
***
밤이 되어서야 동네 근처에 도착했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오후 2시경, 경기도 양평의 도로에서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차량은······
그놈에 대한 것이다.
결과는 역시 즉사였다.
뉴스내용으로는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뉴스가 다 끝나갈 때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 나왔다.
나는 주차를 댄 후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
이사한 지 한 달은 되었기에 익숙한 구조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사는 집의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졌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염석훈 프로님? 아니, 염병한 씨라고 불러야 하나요?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호호.”
처음 보는 여자였다.
누구냐,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