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64
64화. 꺼져, 역겨우니까
카람빗.
동남아 불법체류자를 중심으로 한 청부조직이다.
견주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블룸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실력자를 보유한 곳.
남지웅은 꿩 대신 닭이라고 이번 기회에 그들과의 끈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여겼다.
“여기요?”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어느 폐차장.
곳곳에서 동남아인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눈팔지 말고 그대로 걸어가.”
뒤에선 카람빗의 조직원이 등을 툭 밀며 말했다.
남지웅은 그를 잠시 흘겨보다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폐차장의 안쪽에는 조립식 창고가 있었다.
자동차 엔진을 비롯해 각종 부품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그곳에는 카람빗의 조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보스, 데려왔습니다.”
뒤편에 있던 조직원이 사각 나무상자 위에 앉은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작고 왜소한 체격.
하지만 탄탄한 몸으로 보건대 상당한 실력자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외모.
전혀 동남아인으로 보이지 않았고,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한국인 정도로 생각될 정도였다.
-퍼억. 털썩.
예의 등을 밀었던 놈이 발을 휘둘러 오금을 때렸다.
그 충격에 남지웅은 무릎을 꿇었다.
“견주와 아는 사이라고?”
보스의 물음에 남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르오. 나도 연락이 없어서 그곳을 찾았다가 당신들을 만난 거요.”
“……”
“헌데 도대체 무슨 일이오? 카람빗과 유령개 사이에 다툼이라도 생긴 거요?”
“견주만이 아니라 리 일가의 리첸지, 그리고 우리 카람빗의 전 보스께서도 실종됐다. 우리도 찾는 중이지.”
그는 세 조직의 회합 이후, 보스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경찰에서 사건정보를 통제하고 있지만 리첸지의 저택에서 수십 명이 학살되었다는 소문이 조선족 쪽방촌에 돌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설마 블룸인가?’
견주에게서 얼핏 듣긴 했었다.
흑룡파의 의뢰를 받고 블룸을 치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블룸에 대해 알고 있는 남지웅은 성공할 리 없다고 여기고 코웃음을 쳤었지만, 이제 보니 두 세력의 전쟁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았다.
블룸은 그 이후로 갑자기 잠적했고, 세 조직의 보스들은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니.
“블룸이라고 알고 있나?”
마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의 입에서 블룸이라는 말이 나왔다.
남지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견주에게서 들은 적이 있소. 청부조직 중 하나라고.”
“그쪽에는 검진을 안 나가나?”
“내가 거래하는 곳은 유령개밖에 없소. 지금은 아시다시피 밥줄이 끊겼지만.”
거래를 하자는 의도가 다분한 어조였다.
그는 이해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도 불체자가 대다수라 의사가 필요한데, 어때? 생각 있나?”
남지웅의 생각대로였다.
애초에 의사는 뒷세계에서 상당히 고급인력에 들어간다.
어떤 조직이든 의사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이는 남지웅이 이곳에 순순히 끌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안전은 무조건 보장되니까.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소.”
“이름이 뭐지?”
“김재철이라고 하오.”
남지웅은 가명을 알려주었다.
잠행을 나온 상황에서는 본명을 알리지 않는다는 철칙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닥터 김이라고 부르지.”
“당신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칼리완이다.”
“미스터 칼리완, 한 가지 더 제안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제안?”
“나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약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전문가라오.”
그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캡슐형태의 알약이었다.
블룸에서 사용하는 각성제의 프로토 타입으로 부작용 때문에 블룸에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약이지?”
“중독성은 거의 없고 통증완화, 기력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거요. 과장을 조금 가미해서 말하자면 이걸 복용할 시 팔다리 몇 개 떨어져나가도 싸울 수 있다고 보면 되오.”
“각성제 타입이로군. 그 정도면 시중에 도는 것들보다 훨씬 강력하겠는데?”
“백 배 이상 센 건 확실하오.”
“그런데도 중독성이 거의 없다고?”
“그렇소.”
“부작용은?”
“약효가 십오 분 정도로 짧은데다 리바운드가 몇십 배인 단점이 있소. 멀쩡한 상태에서 쓰면 한 달 정도는 근력상승에 따른 근육피로도나 체력저하로 고생할 거고, 다친 상태에서는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끔찍한 고통이 뒤따를 거요.”
“고작 그게 전부라니 대단하군.”
칼리완은 약의 효과에 만족하는 표정을 보였다.
다소의 부족용은 있지만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않고, 쇼크사로 죽지도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효과가 좋은 약이라는 증거였다.
“이거 시험해 봐도 되나?”
“얼마든지.”
남지웅이 허락하자 칼리완은 수하에게 지시했다.
“가서 그놈 끌고 와.”
곧이어 발가벗겨진 중년남자가 창고로 들어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그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껄떡거리고 있었다.
칼리완은 알약을 그의 발밑에 툭 던졌다.
“먹어.”
“사, 사, 살려다오.”
“그거 항생제야. 그 꼴로 죽기 전에 빨리 먹어.”
“……”
“이봐, 아버지. 그냥 이렇게 죽을 거야? 내가 말했잖아. 한국에 있는 네 가족도 잡아다가 똑같이 만들어 줄 거라고.”
“이이······”
“날 버린 것처럼 그들도 버릴 거 아니면 먹어. 먹어야 살고, 살아야 날 막을 수 있을 거 아냐.”
“가,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내 가족은 아무 잘못 없어.”
“사람은 잘못한 게 없어도 죽을 수 있어. 나는 뭐 잘못한 게 있어서 당신에게 버림받은 거 아니잖아?”
중년남자는 치를 떨더니 땅바닥에 있는 알약을 씹어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전신에 시퍼런 핏줄이 불거지며 통증이 사라져가고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칼리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
-촤악, 촤악.
어느새 손에 쥐어진 갈고리칼, 카람빗이 중년남자의 겨드랑이와 발목을 훑고 지나갔다.
베는데 특화된 카람빗의 칼날이 양팔과 양다리의 힘줄을 끊은 것이었다.
그는 그에 그치지 않고 전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중년남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반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력의 차이.
중년남자는 숨이 붙어있는 채로 자신의 몸이 갈가리 해체되는 걸 두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봐, 닥터 김. 이 약, 효과 죽이는데? 쓸만해.”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칼리완이 악마같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공급할 수 있지?”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뭐지?”
“저기 저놈 목숨을 원하는데 줄 수 있겠소? 내가 맞고는 못 사는 놈이라.”
남지웅이 가리키는 자는 오금을 찼던 칼리완의 수하였다.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죽고 싶······!”
그때 피리릭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그에게 날아갔다.
-퍼억.
칼리완이 들고 있던 카람빗을 던져 수하의 머리통을 찍은 것이었다.
“끄윽······ 왜······”
“누가 허락도 없이 대화에 끼어들라고 했지?”
“……끄륵.”
그가 죽자 칼리완은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가 카람빗을 회수했다.
“이제 됐나?”
“흐흐, 첫 달은 반값에 서비스 해드리겠소.”
“거래성립이군.”
그렇게 십오 분이 지나고,
약기운이 떨어지고 리바운드가 찾아온 중년남자가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
전민성을 만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내가 용의선상에 올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들어오십시오.”
박인섭이 직접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뒷짐을 진채 이곳저곳을 살폈다.
마치 수상한 게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모양새였다.
“프로골퍼라 집이 화려할 줄 알았는데 굉장히 단촐하네요.”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잖습니까.”
나는 식탁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앉으시죠.”
“아, 네.”
“물밖에 없는데 괜찮으세요?”
생수병을 내밀자 그는 손을 저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집까지 찾아오셨습니까?”
“혹시 전검사님께 얘기 못 들었나요?”
표정이 알고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다.
이러면 또 응해줘야지.
“김천수 때문입니까?”
“네, 그것과 관련해서 염석훈 씨께 확인할 게 있어서요.”
“그 화상자국 때문에 저도 용의선상에 있는 건가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확인하실 게 뭐죠?”
박인섭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김천수, 리첸지, 아사드 캄, 이종인 외 다수의 살인사건 용의자가 염석훈 씨라고 생각합니다.”
“……”
“이건 개인정보확인 동의서입니다. 거기 사인해주십시오.”
“네?”
“그걸로 사건이 있었던 날짜와 시간대를 기준으로 염석훈 씨의 핸드폰 위치추적을 할 생각입니다.”
제법이다.
그걸로 나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생각인 모양이다.
“민성이 형에게는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절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두 분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지만 전검사님은 물리적인 시간이 거의 없으니까요. 검사란 직업은 따로 확인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바쁩니다.”
“그게 끝입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증거가 없으니까 돌직구를 던지는 거네요? 이걸 사인해주지 않으면 널 범인으로 생각하겠다?”
“……”
“장난하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난 또 무슨 그럴 듯한 증거라도 있어서 이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김천수 몸에 남은 화상자국이 미소고아원과 관련됐고, 그래서 미소고아원 출신인 내가 유력한 용의자다? 참 쉽게 일하시네요.”
“……”
“사건관계를 정확히 해야죠, 박계장님. 민성이 형과 저는 김천수가 아니라 설아누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설아누나 죽음에 김천수가 개입했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박인섭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각오하고 왔다는 듯.
“김천수는 산성 칼부림 사건이 있었던 장소 근처에서 발견됐다면서요?”
“네.”
“민성이 형 말로는 그때 놈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패싸움을 했고 당시 사건현장에서 김천수가 도망쳤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럼 상대 쪽 놈들에게 당해서 그렇게 됐다는 게 더 자연스러운 추리 아닙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쪽에 당했다면 그런 식으로 우물 속에 산 채로 묻힌 게 아니라 칼에 찔려 즉사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겁니다.”
저돌적이다.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느낌이 든다.
사인하지 않으면 넌 백프로 범인이다라는 전제를 깐 압박 말이다.
“좋아요. 한 가지만 대답해주시면 사인해드릴게요.”
“말씀하십시오.”
“설아누나 사건과 관련해서 이런 식으로 동의서를 받은 적이 있나요?”
“……!”
처음으로 표정이 드러난다.
저 얼굴은 없다는 뜻이다.
“없습니까?”
“……”
“그러니까 김천수 같은 놈들 사건은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뛰어다니시는데, 설아누나 사건은 뒷전이라는 거네요?”
“그게······”
나는 앞에 놓인 동의서를 들고 반으로 찢었다.
“당신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
“일반시민의 죽음은 내팽개치고 깡패새끼의 억울한 죽음을 먼저 밝히는 게 경찰이 할 일입니까?”
반으로 찢은 걸 다시 한번 반으로 찢었다.
“민성이 형한테 노예문신 물으면서 용의자 취급했다고 들었습니다.”
“……”
“그 문신과 관련해서 민성이 형이 가해자고 김천수가 피해잡니까?”
“……!”
나는 화를 억누르며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피해자에게 그런 걸 물어볼 땐 최소한 용의자 취급은 하면 안 되는 거야. 당신들은 가해자의 인권도 지켜줘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쉽게 하면서 왜 피해자의 아픔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거지?”
그리고는 갈기갈기 찢은 동의서를 박인섭의 얼굴에 뿌렸다.
“꺼져, 역겨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