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화
구천지옥의 주인, 지구로 돌아오다(1)
구천지옥(九天地獄).
가장 강력한 악마들만이 모여 있다는 아홉 번째 지옥.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 뒤틀린 대지와 핏빛으로 물든 하늘.
그 속에서 구천지옥의 악마들은 영원히 이어지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가 최강인지 우열을 가리는 싸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지난 만 년 동안의 전투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구천지옥의 중심, 황량한 대지에 이질적인 성 하나가 오롯이 존재했다.
모든 악마의 정점.
7개의 세력으로 나눠졌던 지옥을 통일시킨 마왕이 머물고 있는 장소.
거대한 왕좌.
일곱 악마 대공의 뼈를 엮어 만든 새하얀 왕좌에 흑발을 가진 청년이 앉아 있었다.
왕좌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서 숨 막힐 듯한 강렬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왕좌의 앞에 도열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수천의 악마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덜덜 몸을 떨었다.
도열해 있던 악마 중 하나가 왕좌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5미터에 달하는 거구. 붉은색 털로 뒤덮인 피부.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몸과 이마에 돋은 산양의 뿔.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어금니와 등에 돋아 있는 거대한 박쥐의 날개.
전형적인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마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이시여.”
발록.
구천지옥 내에서도 대공을 제외하고는 상대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그는 지금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눈앞의 청년을 불렀다.
단순 외형만 놓고 보자면 괴물 그 자체인 발록이 인간의 모습을 한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 도열해 있는 악마들 중 그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악마는 아무도 없었다.
마왕.
만 년 전 지옥에 떨어진 하찮은 인간에 불과했던 그 존재는 ‘포식(捕食)’의 권능으로 다른 악마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일천(一天)의 지옥부터 구천(九天)의 지옥까지.
악마를 잡아먹으며 성장한 인간은 만 년의 시간 만에 모든 지옥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었다.
수만, 수십만의 악마가 그의 권능에 잡아먹혔고, 하나하나가 너무 강한 탓에 서로 죽이지 못했던 일곱의 대공도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악마의 정점. 구천지옥의 악마들을 모두 잡아먹은 괴물.
두려움을 모르던 발록조차 그의 앞에서는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돌아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미 왕께서는 지옥의 모든 것을 가지지 않으셨습니까.”
발록은 두려움에 떨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감겨 있던 청년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한층 더 강력해진 마기가 그의 몸에서 휘몰아쳤다.
“가지긴 뭘 다가져.”
“…….”
왕좌에 앉아 있던 청년, 오강우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뭐가 있어야 가지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대체 여기 뭐가 있는데?”
억울함까지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성 안에 낮게 깔렸다.
“먹을 것도 없고 놀 것도 없고. 이 빌어먹을 곳에 대체 뭐가 있다고 다 가지고 있다는 거야?”
황량한 대지, 붉게 물든 하늘, 끝없이 타오르는 겁화 이외에 이 구천지옥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발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배가 고프셨던 겁니까? 그렇다면 제가 왕께 어울리는 음식을 얼마 전에 얻었습니다. 얘들아! 그걸 가져와라!”
“예!”
발록의 명령에 우락부락한 악마들이 거대한 그릇을 가져왔다.
그 그릇 위에 놓인 것은 검은 피를 철철 뿜어내고 있는 악마의 머리였다.
“대공의 잔존 세력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포칼로르를 얼마 전에 토벌했습니다. 마왕이시여, 이미 수만의 악마를 포식한 왕에게는 부족하나 이 못난 부하의 충성을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시옵소서!”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포칼로르의 머리를 본 강우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필요 없어, 이 새끼야.”
-쨍그랑!
그는 포칼로르의 머리가 담긴 그릇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굳게 주먹을 쥔 그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쿵!
“난! 이런 흉측하고 맛대가리 없는 걸 먹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다. 나는, 나는…!”
그는 굳게 쥔 주먹을 떨었다. 처절한 감정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치찌개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김치찌개!”
“포식의 제왕이 바라는 궁극의 음식!”
“붉은 피와 고기가 가득한 음식!”
“아니야…. 아니라고 이 머저리들아!”
강우는 굳게 움켜쥔 주먹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붉은 김칫국물에 고기가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 악마들이 상상하는 음식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발록은 충성심에 불타는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떤 존재의 머리로 만드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장? 말만 하시면 그 누구라도 갈기갈기 찢어 왕에게 대령하겠나이다.”
“김치찌개는 그런 게 아니라고….”
강우는 당장에라도 미칠 것 같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당초 식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악마들에게는 승자의 권리로 상대방을 뜯어먹는 것 이외에 음식이라고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놀 거리가 부족하시다니… 역시 일곱 대공이 모두 죽고 살육에 무료함을 느끼고 계셨던 거군요.”
“역시 마왕….”
“피와 살육의 제왕!”
“만화랑 소설이 보고 싶다는 말이었어.”
발록은 분하다는 듯이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쿵. 묵직한 폭음과 함께 성의 바닥이 우그러졌다.
“나약한 저의 힘으로는 왕을 만족시켜드릴 순 없으니…. 부족한 저를 죽여주십시오!!”
“사람 말을 좀 들어줘. 제발.”
강우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다시 왕좌에 앉았다.
“하다못해 여자라도. 그래, 여자라도 있었으면….”
“어며? 여자라면 이 리리스가 있지 않습니까.”
“리리스!”
“서큐버스의 여왕!”
“지옥 최고의 미녀!”
도열해 있던 악마들 중 한 존재가 몸을 일으켜 강우에게 다가왔다.
“마왕이시여, 이 리리스의 마음을 가지고도 부족하신 겁니까?”
그녀는 야릇한 목소리로 몸에 돋아 있는 수십 개의 촉수를 뻗어 강우의 팔을 쓰다듬었다.
안면 전체를 덮고 있는 18개의 눈이 그윽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
18개의 눈동자. 전신에 꾸물거리는 수십 개의 촉수. 뱀을 연상시키는 혓바닥.
지옥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리리스의 모습을 본 강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아니, 왜… 서큐버스가… 대체, 왜….”
수컷의 정기를 먹고 산다는 서큐버스는 그가 알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그의 기준에서는 리리스는 발록보다 흉측하게 보였다.
비단 리리스만이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서큐버스가 그녀와 비슷하게 생겼다.
“오늘 밤이야말로 왕의 침실에 함께하겠습니다.”
“아니야…. 오지 마.”
“어머, 후후훗. 부끄러워하시긴. 그래서야 어디 구천지옥을 다스리는 주인이라고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오지 말라고….”
“앙, 귀여우셔라. 후훗.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사옵니다. 이 리리스가 주인님을 평생 옆에서 보필하겠습니다.”
“제발 저리 꺼져….”
강우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외모만을 기준으로 사랑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진실된 사랑에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정도가 있잖아.’
이건 뭐 못생기고 예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는 도저히 납득 자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지구로….”
강우는 간절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구로 돌아가야 해.”
부하들의 필사적인 설득에도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설득으로 더더욱 결심이 확고해졌다.
‘돌아간다.’
며칠 전, 그와 끝까지 대치하던 마지막 악마 대공 바알을 잡아먹고 마왕의 자리에 올라서며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만 년간의 개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