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6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68화
전 모르는 일입니다 (1)
격전이 끝났다.
악마들의 시체는 모두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고 뒤를 따라온 악마교도들 또한 이제까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죗값을 치렀다.
잠시간의 정적.
악마와 격렬한 교전을 벌였던 강우의 일행은 다들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빛의 물결.”
한설아가 두 팔을 넓게 펼치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녀의 등에 새겨진 날개 문양이 빛을 뿜으며 찬란한 빛이 사람들에게 뻗어 나갔다.
거칠게 숨을 쉬고 있던 사람들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대단하군요.”
단순히 외상을 치유하는 마법이 아니었다.
상처를 입으면서 쌓인 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치유되는 감각.
낮잠을 자고 일어난 듯 몸에 활력이 돌았다.
“언제부터 이런 마법을 쓰실 수 있게 되신 겁니까?”
김시훈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외상을 치료하는 마법을 가진 힐러는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몸 안에 축적된 피로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힐러는 극소수.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가면 더 이상 회복의 영역이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전에 8차 각성을 하면서 얻은 특성 덕분이에요.”
“놀랍군요.”
순수한 감탄.
그만큼 한설아의 회복 마법은 특별했다.
‘그러고 보니 버프도 효과가 엄청났지.’
세 악마 중 하나인 할파스를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걸어주고 간 버프의 힘 덕분이었다.
스탯을 절대치로 올려주는 버프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사실.
“아, 아니에요.”
한설아는 주변의 시선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싫어할 인간은 많지 않았다.
한설아의 시선이 강우에게 향했다. 그녀는 어쩐지 들뜬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강우 씨는 특히 더 지치셨을 테니 한 번 더 마법을 걸게요.”
쪼르르 그에게 다가간 한설아가 강우의 손을 잡고 마법을 사용했다.
사실 악마들 중 3분의 2는 강우가 혼자서 상대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마워.”
강우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설아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그녀를 타고 몸속으로 흘러드는 빛무리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효과가 좋네.’
악마들을 상대하며 쌓인 피로가 사르르 사라지는 감각.
스탯이 120을 돌파한 이후 블랙펄 코트의 스텟 상승치가 적용되지 않았듯 그녀가 버프가 스탯을 올려주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는 한설아의 도움을 받기는 힘드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를 과소평가한 모양.
‘음.’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김시훈과 달리 무신의 영혼이 있는 것도, 다른 수호자들처럼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에게서는 정체 모를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대체 뭐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을 이어가던 강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 단서도 없는 일에 대해서 답을 구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다.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딱 그 정도.
그보다 당장 닥친 일을 해결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끝난 건가?”
차연주가 물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운도 없고, 대충 다 끝난 것 같은데?”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실 이번 악마교의 계획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획의 핵심이 되는 구천지옥급의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순 없지.’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구천지옥의 악마가 소환된 직후 그들을 덮치는 것.
그 전에 공격하다가 소환 의식 자체가 실패하여 악마가 소환되지 않는다면 그만한 손해도 없었다.
‘여기서 적당히 죽치고 있다가 대충 이유를 대서 움직이면 되겠지.’
소환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는 모두 들어둔 상태.
그쪽에서 거대한 마기의 기운이 느껴진 이후에 움직이면 얼추 타이밍이 맞을 것 같았다.
‘아주 좋아.’
생각대로 척척 진행되고 있는 계획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였다.
“아….”
가이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시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가이아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가이아 님께서… 직접 퀘스트를 내려주셨어요.”
“예?”
“잠시만요. 여러분들에게도 공유해드릴게요.”
그녀가 허공에 손을 저었다.
눈앞에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띠링.
[S급 특수 퀘스트가 시작됩니다.]퀘스트 내용 : 구천지옥의 악마가 소환되는 것을 막으시오.
보상 : 없음.
추신 : 미, 안, 하다… 나의 아이들, 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
‘뭐야 이건?’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창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가이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미친 트롤러가!’
표정이 일그러졌다.
퀘스트를 통해 지금 악마교의 소환계획이 끝나지 않았다고, 그들이 구천지옥의 악마를 소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린 것.
‘아니, 이런 씨…!’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적의 계획을 모두 저지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으리라.
의도 자체는 좋았다. 만약 구천지옥의 악마를 소환하려 한다는 것을 진짜 그가 몰랐었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근데 왜 하필….’
지금 타이밍이란 말인가.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그 결과가 시궁창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금 가이아의 퀘스트는 다 된 밥상을 뒤집어엎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다못해 보상이라도 주던가.’
퀘스트 보상도 없는 것을 보니 시스템의 힘에 개입할 힘도 마땅치 않은 모양.
괜한 헛짓거리에 힘쓰는 신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아직 악마교의 소환 의식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일행이 알아버린 이상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직 악마교의 소환 의식이 끝난 게 아니었군요.”
가이아는 표정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구천지옥의 악마가 소환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 강우 보면 뭐 막을 필요도 없지 않겠어?”
차연주가 다가오며 물었다.
수십에 달하는 악마들을 압도적으로 학살하는 그의 모습.
악마가 불쌍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굳이 막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가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는 강우의 활약 덕분에 어렵지 않게 악마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규모 소환의 주축이 되는 악마가 소환된다면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신의 힘을 얻은 영웅이라 할지라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맞습니다. 한시라도 급히 막아야 합니다.”
강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천지옥의 악마와 싸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소환 자체를 막는 것이 훨씬 간단하면서 확실한 일이니까요.”
“강우 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이아가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우선 그들이 어디서 소환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지부터….”
“그거라면 제게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강우 씨에게요?”
“예.”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를 받은 직후 티리온 님의 힘을 통해 뭔가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티리온의 이름을 팔았다.
사탄과 동급의 치트키.
불쾌한 기운을 느꼈다는 그의 말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 어디시죠?”
“저를 따라오십쇼.”
강우는 몸을 돌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악마교의 소환 의식이 진행되는 곳과는 다른 방향.
‘시간을 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악마교가 소환 의식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너 이, 악마교 자식들!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실패하지 마라!’
간절한 외침.
강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악마교가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인도했다.
‘빨리!’
그렇게 10분.
“아직 많이 남았습니까, 형님?”
“거의 다 왔어.”
20분.
“형님. 이러다가 소환 의식이….”
“이쪽이야! 이제 5분이면 도착한다!”
30분.
“강우 씨. 정말 이 방향이 맞는….”
“진짜 거의 다 왔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요!”
‘씨이이이이이이발!’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언제 성공하는 거야?!’
울화통이 터지는 것은 당연.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마기의 기운은 약해지고 마물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
‘빨리 좀 성공해라!’
언제까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안내할 수는 없었다.
느려터진 악마교의 행동에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제발.’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쿠우우우우우웅!!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마기의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왔다!’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왔다고!!’
“저, 저곳입니다!”
“다들 빨리!”
검은 기둥이 나타난 곳을 향해 다급히 달려갔다.
강우는 하늘 높이 치솟은 검은 기둥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최소 대악마급이다.’
구천지옥 내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악마.
어깨가 절로 들썩이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30분 동안 아군을 속이느라 개고생을 했던 것이 뿌듯하게까지 느껴질 정도.
강우는 눈을 빛내며 소환 의식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치, 침입자다!”
“크읏! 기어코 여기까지 왔군!”
과연, 구천지옥의 대악마를 소환하는 의식.
기껏해야 5~6명의 악마교도가 있었던 다른 장소와는 달리 이곳에는 50명 이상의 악마교도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 무기를 들어올렸다.
“네놈들의 사악한 계략은 여기까지다!”
당당히 외쳤다.
‘성공했구나, 짜식들아!’
다소 늦긴 했지만 어쨌든 성공한 것은 사실.
강우는 환희에 찬 미소를 가면 속에 숨겼다.
‘자, 어디 어떤 놈이 소환됐는지 얼굴이나 한 번….’
검은 균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하하핫!! 이미 늦었다, 빌어먹을 신의 권속들아!!”
“그분이 오신 이상 너희들은 모두 처참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저벅. 저벅.
검은 균열을 통해, 5미터에 달하는 거구를 가진 악마가 걸어 나왔다.
근육질로 뒤덮인 붉은 피부. 이마에 돋은 산양의 뿔.
등 뒤에 돋아난 박쥐의 날개와 기다란 꼬리.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파괴적인 기운을 가진 악마.
악마교도들이 무릎을 꿇었다.
“경배하라, 경배하라! 이분이야말로 구천지옥의 대악마!”
“파괴의 군주 발록 님이시다!!!”
“…….”
침묵이 흘렀다.
균열에서 걸어 나온 악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너희들은 누구지?]“저희들은 악마님들의 충실한 종복! 영원을 갈망하는 필멸자들이옵니다!”
[흐음.]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다는 듯, 거구의 악마가 고개를 돌렸다.
강우와 악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
지금 강우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얇은 가면 하나로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그와 같이 천 년을 지내온 발록에게 그깟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건 의미가 없었다.
[마, 마왕이시여!]발록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드디어 마왕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둠가드에게 얘기를 듣고 얼마나 마왕님이 그리웠는지 모릅니다!!]쿵! 거칠게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이 느껴졌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아아! 마왕이시여!]“진짜 모르는 일입니다.”
[크흑! 너무, 너무 뵙고 싶었습니다!]“난 저 악마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
다시금 찾아온 정적.
그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나지막한 욕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씨발.”
X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