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0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05화
루시퍼의 혈육 (1)
“흐읍.”
숨을 깊게 들이쉰다.
폐에 공기가 차오르며 마기가 전신에 퍼진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했다.
‘불길의 권능.’
권능을 일으켰다. 만마전의 깊은 곳.
그 안에 먹혀 들어간 마몬의 영혼을 깨웠다.
혈액에 녹아든 마기를 타고 뜨거운 기운이 전신에 퍼졌다.
“…….”
통증이 느껴졌다.
혈액 대신 용암이라도 흐를 듯한 감각. 강렬한 불꽃이 몸을 휘감았다.
샛노란 빛이 몸을 감쌌다.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중지에 찬 검은 반지, 마해의 열쇠에 의식을 집중했다.
검은 반지가 샛노랗게 달아올랐다.
-치이이익!
피부가 타들어갔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여 갔다.
무시했다.
녹아내린 살점이 떨어지며 검은 피가 증발했다.
무시했다.
‘집중해.’
눈을 감은 채 의식을 모았다.
난폭하게 타오르는 불길의 권능이 그의 몸 안에서 날뛰고 있었다.
제어되지 않는 불꽃.
그 불꽃을 짓누른다. 짓밟고, 억누른다.
마몬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듯 몸을 비틀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원혼이 내뱉은 비명을 뒤로한 채 또 한줄기의 마기가 만마전에서 빠져나왔다.
‘칼날의 권능.’
-치이이이이익!!
-쿠구구궁!!
딛고 있는 대지가 녹아내렸다.
땅이 늪처럼 늘러 붙으며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마를 타고 땀이 흘렀다. 무시할 수 없는 고통이 전신에 퍼졌다.
구역질이 솟았다.
의식의 희미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놓아버리고 싶다. 몸이 불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등골을 자극했다.
하지만.
-탁.
발을 내딛었다.
들어 올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전신을 휘감고 있던 샛노란 불길이 팔을 타고 흘렀다.
팔을 타고 흐른 불길이 손에 맺혔다. 샛노랗게 타오르는 손. 그 손에 맺힌 열기를 반지에 밀어넣는다.
“크, 윽.”
신음이 흘렀다.
팔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끔찍한 고통만이 느껴졌다.
땀샘에서 빠져나온 땀방울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쉰다. 한쪽 무릎이 꺾였다. 머리가 뜨거웠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의식이 몽롱하다.
앞으로 뻗은 오른손을 움직였다.
검지부터 중지, 약지. 조금씩. 1㎜라도 좋다. 움직인다.
손에 맺힌 불꽃을 움켜쥔다.
-치이이이이이익!!!
바닥이 갈라지며 용암이 솟구쳤다.
지옥이 우스운 죽음의 대지가 발아래 펼쳐졌다.
움켜잡은 화염. 대공의 권능에 칼날의 권능을 겹친다.
이제까지 그 어떤 악마도, 그 어떤 대공도, 설사 신조차도 시도해 보지 못한 대공의 권능과 다른 권능의 조합.
기적이 형태를 띠었다.
샛노란 화염으로 타오르는 검이 손에 쥐었다.
이제는 마지막 단계.
구체화된 기적에 그 이름을 붙일 때였다.
입을 열었다. 생각해둔 이름은 있었다.
“인페르노.”
-띠링.
[‘인페르노’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스킬로 등록된 기술은 조금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사용 가능해집니다.] [아무도 이룩하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마신이 되는 길’의 상위 퀘스트, ‘???’에 대한 실마리를 습득하였습니다.]‘뭐야 이건 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눈살을 찌푸렸다.
“마신이 되는 길의… 상위 퀘스트가 있어?”
마신이 되는 길은 아마도 극마지체, 마령 등의 단계일 것이다.
‘근데 그것도 끝난 게 아닌데.’
마령은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마령이 ‘마신이 되는 길’의 마지막 단계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그 상위 퀘스트라니.
‘블리치냐?’
뭐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복선을 던지는 거야.
“하아.”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상태창을 열어 ‘???’라 적힌 상위 퀘스트를 클릭했다.
“예상대로면….”
-띠링
[‘???’ 퀘스트의 열람 권한이 없습니다.]“거봐, 씨바. 내 이럴 줄 알았지.”
정확히 예상했던 대로의 내용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예전에 했던 하나의 맹세를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만든 새끼 만나면 반드시 대가리를 ‘?’ 모양으로 접어버리겠어.”
하다못해 가로세로 낱말풀이조차 힌트가 있는데 이건 힌트도 없다.
‘이거 만든 새끼도 아직 뭔지 모르는 거 아냐?’
에라 모르겠다, 일단 던지고 보자는 얄팍한 생각으로 메시지를 뿌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씁.”
혀를 찼다.
불친절함의 극을 달리는 메시지창에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실패한 수수께끼 책처럼 ‘???’만 가득한 상위 퀘스트가 아니었다.
“어디.”
손에 쥔 인페르노를 들었다.
아주 살짝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인페르노의 검신이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군.’
스킬로 등록됐다고 하지만 그가 완벽히 다룰 수 없는 권능을 조합한 것이다 보니 그 완성도가 처참했다.
“그래도.”
발을 굴렀다. 손에 쥔 인페르노를 움켜쥐었다.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오늘의 8시 뉴스입니다. 미국 에리조나주 그랜드 캐넌에 갑작스러운 지진과 함께 화산 폭발과 같은 용암의 분출이 관측되었습니다. 이 기현상을 두고 과학자들은 결코 자연 현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마법적인 무언가의 영향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가디언즈가 조사에 투입되었고 에리조나주에 긴급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지에 나가 있는 이한석 기자와 연락해 보겠습니다. 이한석 기자?] [예! 이곳은 현재 이상 현상이 일어난 그랜드 캐넌입니다. 협곡 사이에 용암이 흐르고 있으며 엄청난 열기가 가득합니다!] [이상 현상이 일어난 범위가 어느 정도입니까?] [현재로서는 직경 300미터에 걸쳐 용암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열기가 정말 엄청납니다! 어느 정도 열기가 심한지 제가 직접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화면 너머의 기자가 협곡 사이를 흐르는 용암 근처로 다가갔다.
[으아아아아악!]애달픈 비명소리가 들렸다.
-삑.
TV의 전원이 꺼졌다.
묘한 적막과 침묵이 내려앉았다.
“흐음. 일이 꽤 커졌네요, 강우 님.”
“…….”
침대에 엎드려 대자로 뻗어있는 강우를 향해 리리스가 다가왔다.
“움직이실 수는 있으신가요?”
“…아니.”
고개를 저었다.
인페르노를 사용한 후, 마치 만마전의 봉인을 해방한 것처럼 탈진 상태에 빠진 강우는 하루가 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리리스는 그가 엎드려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권능인 것 같네요.”
“끄응. 솔직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어.”
파괴력이 그 정도로 거대할 줄도, 그 후유증이 이 정도로 심할지도 예상 못 했다.
몸 전체가 무거운 쇳덩어리에 짓눌리는 듯한 감각.
강우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가디언즈 쪽에 뭐 별문제는 없었지?”
“예. 마법물품의 보급도 착실히 이뤄지고 있고 평균 레벨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마탑의 마법사들과 정당한 계약과 거래 하에 이뤄진 마법물품의 제작.
그 힘을 익힐 겸 레벨을 올리기 위해 가디언즈는 남미, 중동과 같은 몬스터에게 빼앗긴 땅을 수복하고 있었다.
적절한 장비를 지급 받으며 몬스터 사냥이라는 실전 훈련을 쌓고 있다 보니 가디언즈의 전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일단 그쪽은 걱정할 것 없겠네.”
강우는 한시름 놨다는 듯 몸을 돌려 누웠다.
“루시퍼 세력과 악마교 사이의 전투는 어떻게 되고 있어?”
지금 상황에서 가디언즈의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루시퍼의 세력과 악마교의 교전.
둘 사이에서 완벽하게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전력을 최대한 소진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서로 전면전은 펼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어느 쪽이 우세할까?’
악마교와 루시퍼의 세력.
솔직히 둘 중 누가 우세할지는 전혀 예상도 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루시퍼 쪽이 압승일 텐데.’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루시퍼 세력에는 루시퍼가 있었다.
대공 서열 3위.
루시퍼의 존재 하나만으로 힘의 균형은 평행을 이룰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단정 짓기에는 악마교에 대해서 확실히 아는 게 없으니.’
마몬이 악마교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악마교를 이끌고 있을 것이다.
‘누굴까.’
알 수 없었다.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일에 섣부르게 추측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상상을 단절시키며 생각을 제한했다.
‘이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가능성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추측은 예측이 되고 예측은 확신이 된다.
그렇게 무너지는 많은 이들을 봐왔다.
“일단 루시퍼는 지구에 온 상황인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
마령의 조건을 위해서라도 대공의 영혼을 먹어치워야 했다.
루시퍼의 세력과 악마교의 교전을 의도한 것은 좋았지만 루시퍼 본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다른 놈들은 먹어도 큰 의미가 없으니.’
더 이상 잡몹들에게 경험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했다.
대공이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
“아뇨. 아직까지 흔적도 발견되지 않은 것을 봐서 오지 않은 것 같아요.”
“끄응.”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오지 않는 건가.’
조금 자극이 부족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루시퍼 세력들이 몇 개월째 전면전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만 봐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당하고 있을 놈이 아닌데.’
루시퍼, 사탄, 바알.
이 셋과 가장 오랜 시간 전투를 이어왔다.
루시퍼는 결코 이런 상황에서 숨죽이고 있을 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곤란한데.’
루시퍼를 더욱 자극시킬 필요가 있었다.
천계의 세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사탄 하나를 향해 광적으로 달려드는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그 방법인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길.”
두 세력을 이간질시킨 지도 어언 반년.
그동안 서로 어쭙잖은 견제만 반복하는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 참, 강우 님.”
“응?”
“루시퍼는 오지 않았지만 루시퍼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악마는 지구에 온 것이 확인됐어요.”
“아들, 이라고?”
“예. 무너진 악마교 지부의 영상 기록 장치를 확인해 봤는데 분명 자신을 루시퍼의 아들이라 밝힌 악마가 그들과 전투를 벌였어요.”
“…….”
강우의 눈이 빛났다.
‘루시퍼의 아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공이 혈육을 낳는다고?’
전무후무.
대공이 구천지옥에 존재한 지 수만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 레비아탄의 경우 부모가 있긴 했지.’
레비아탄은 마물의 왕, 베히모스의 자식이었다.
베히모스가 혈육이라면 혈육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공이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처음 듣는 말.
“…….”
침묵이 흘렀다.
강우의 눈이 빛나며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기 시작했다.
“…강우 님?”
“리리스.”
고개를 돌렸다.
“악마들도 자기 자식이 소중할까?”
강우의 두 눈동자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섬뜩한 살기.
타르와 같이 점성을 띤 마기가 바닥에 낮게 깔렸다.
광기와 살기, 뒤틀린 악의가 뒤섞인다.
“…예?”
리리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바들바들 몸을 떨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저랑 아이를 만들고 싶으시다고요?”
“뭐?”
“호, 호호호. 조, 조금 당황스럽네요. 마왕님께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아니, 뭔 소리 하는 거야.”
“저, 저도 생각은 해두고 있었습니다만… 조, 조금 갑작스러워서 부끄럽네요.”
“저기요?”
리리스는 뺨에 손을 올린 채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검은 머리칼이 꼬이며 녹색 촉수로 변하기 시작했다.
찰싹찰싹. 촉수로 변한 머리칼이 부끄럽다는 듯 강우를 때렸다.
‘아니.’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리리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간만에 분위기 좀 잡으면서 말하려 했는데.’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간지나는 대사였는데….
악역 느낌이 물씬 나는 주인공이 내뱉을 법한 섬뜩한 대사였는데….
‘나한테 자꾸 왜 그러는 거야.’
제발 주인공 좀 시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