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9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97화
Lose Octopus (4)
“보십쇼, 리리스 님!! 저자 스스로도 자신이 사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루시스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왕이 죽었다는 것.
비유하자면 광적으로 짝사랑하는 여인의 애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루시스의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
마왕의 부재와 사탄에게 속았다는 상실감에 빠져있는 리리스를 자신이 잘 위로해 주기만 해도 사랑이 결실을 맺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닥치세요! 마왕님이 사탄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리리스가 일갈을 내질렀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루시스를 쏘아보았다.
녹색 촉수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구속하고 있던 어둠이 풀려났다.
고개를 숙인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뺨을 타고 흘렀던 눈물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역시.’
강우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이로써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하아.”
강우는 깊은 한숨을 내쉰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크읏!”
그의 앞을 루시스가 막아섰다.
파지지직!
검은 뇌전이 창끝에 튀어 올랐다.
“거기 멈….”
춰, 라고 말하기도 전에.
강우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몸이 길게 늘어진 듯한 착각과 함께,
-콰아아앙!!
“커허허억!!”
루시스의 안면에 강우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검은 뇌전이 튀어 오르던 창을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한 채, 루시스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쿨럭! 쿨럭!”
형편없이 바닥을 구르던 루시스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제길!”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뇌전이 튀어 오르는 검은 구체가 양손에 맺혔다.
“리리스 님은!”
여덟 장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그그긍.
검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뒤흔들렸다.
루시스는 강렬한 의지가 타오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지킨다!!”
마치 사로잡힌 히로인을 구하는 듯한 주인공의 대사.
강우의 입에서 나와야 마땅할 그 말이 루시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랄.”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차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시도한 다섯 번의 탈태(奪胎).
그리고 한설아와 함께 자기 시작하면서 늘어난 마기 제어력이 만마전의 마기를 완벽하게 제어하기 시작했다.
“인페르노.”
나지막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탐욕의 대공 마몬. 그가 지녔던 불길의 권능과 칼날의 권능이 겹친다.
-화르르르륵!!
샛노랗게 타오르는 검이 강우의 손에 쥐어졌다.
“뭐, 뭐야.”
루시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샛노란 검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열기.
너무도 강렬한 열에 공간 자체가 비틀어져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열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저건….”
두 눈이 부릅뜨였다.
루시퍼를 통해 각 대공들이 지닌 권능에 대해서는 질리도록 들었다.
그중 탐욕의 대공 마몬.
화력에 있어서는 상위 서열 대공조차도 압도한다는 강력한 대공에 대한 얘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왜… 왜 사탄 네가 마몬의 권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공의 권능은 그 누구도, 설사 그 강대했던 마왕일지라도 다루지 못하는 고유의 힘이다.
그런데.
“뭐, 뭐야. 대체 어떻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루시스는 강우의 손에 타오르는 샛노란 검을 바라보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강렬한 열기에 수십 미터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가 타들어갔다.
“어, 어떻게 네가 불길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루시스는 울부짖듯 외쳤다.
강우는 픽 웃으며 인페르노를 움켜쥐었다.
“불길의 권능만이 아닌데 말이지.”
“…뭐?”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루시스가 가늘게 눈을 떴다.
“불길의 권능만으로는 이렇게 깔끔한 형태를 유지할 수 없거든. 연비가 더럽게 쓰레기인 권능이라.”
강우는 손에 쥔 인페르노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마기 제어력이 늘어난 덕분에 이제 대공의 권능과 다른 권능의 조합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과거 구천지옥에 있던 시절에는 감히 꿈도 꿔볼 수 없었던 경지.
당시 대공의 권능만이라도 어떻게든 써보려고 몇 번이나 탈태(奪胎)를 반복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강해지긴 했네.’
최근 들어 전력으로 싸울 일이 전혀 없다보니 체감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루시스를 눈앞에 두니 그 ‘격’의 차이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저 놈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시스는 폼으로 여덟 장의 날개를 등 뒤에 단 것이 아니었다.
무슨 시련을 넘어왔다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확실히 강해졌다.
물론 라파엘, 우리엘 등과 비교하면 몇 수는 아래.
기껏해야 대공 중 하위 서열인 벨페고르 정도 되는 힘이었다.
하지만 그 벨페고르조차도 구천지옥 내에서 얼마나 아득한 시간 동안 지배자로 군림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역시 루시스의 성장은 경이롭다.
‘그런데.’
강우는 인페르노를 손에 쥔 채, 루시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루시스가 발작을 일으키듯 검은 뇌전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쏟아 부었다.
이곳이 차원의 틈이 아니었다면, 주변 대지가 수백 미터는 터져나갔을 해일 같은 공격.
‘이 정도로 같잖게 느껴질 줄이야.’
물론 구천지옥에 있던 시절에도 벨페고르 정도는 혼자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하찮게. 이 정도로 같잖게 느끼지는 못했다.
‘이거 완전히.’
어린 아이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
대공이라는 절대적인 강자를 이렇게 압도할 수 있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피가 끓어올라 전신에 퍼졌다.
강해진다는, 원초적인 생물의 본능을 건드리는 쾌감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
세상을 발아래 두는 것 같은 무한한 전율감이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황혼(黃昏).”
우리엘이 그러하듯, 언어를 입에 담음으로써 이미지를 구체화시켰다.
온 세상이 거대한 화마(火魔)에 집어삼켜지는 상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과거라면 그저 상상에 불과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이 상상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어냈다는 것을.
-후웅.
인페르노를 가볍게 휘둘렀다.
김시훈마냥 무공의 묘리를 담지도, 경지에 달한 검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대충 휘두른 한 번의 검격(劍擊)에.
-화르르르륵!!!
휘둘러지는 검의 궤적을 따라, 응축된 화염이 공간을 찢어발긴다.
허공에 상처처럼 새겨진 노란 균열을 따라 무시무시한 화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강우를 향해 쏟아지는 수십 수백의 검은 구체를 씹어 삼키고, 차원의 틈 자체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지듯,
세상이 황혼(黃昏)에 물들었다.
“아아아아아악!!”
루시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염. 화염. 화염.
온 세상이 불타오르듯, 모든 공간에 미친 듯한 열기가 날뛰었다.
-띠링.
[‘인페르노’스킬의 파생 스킬 ‘황혼’을 습득하였습니다.] [‘인페르노’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인페르노’스킬의 등급이 SS급에서 SS+등급으로 상향 조정됩니다.]‘오, 이건 또 뭐야.’
예상치 못했던 수확.
웬 애새끼의 트롤링에 바닥을 쳤던 기분이 조금 풀어졌다.
“크윽! 커헉!”
온몸의 피부가 타들어가고 있는 루시스가 바닥을 뒹군다.
‘이러다 뒤지겠네.’
강우는 인페르노 스킬을 해제했다.
루시스가 죽던 말든 큰 상관은 없지만, 저 꼬맹이에게는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아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웅크린 루시스에게 다가갔다.
인페르노에 직격 당한 루시스의 몸은 반 가까이가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쯧.”
강우는 칼날의 권능으로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만든 후, 루시스의 입에 흘려 넣었다.
재생의 권능을 사용해 망가진 루시스의 신체를 치료했다.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며 불에 탄 신체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마왕님!”
그때, 리리스가 눈물을 흩뿌리며 그에게 달려왔다.
꿈틀거리는 촉수로 그의 몸을 휘감은 후, 활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왕님이 구해주러 오실 거라고 믿고 있….”
“리리스.”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 안에 담긴 짙은 노기(怒氣)에 리리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예? 왜, 왜 그러시나요, 마왕님.”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리리스의 시선이 점점 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왜 그랬어.”
입술을 짓씹으며, 물었다.
“마왕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왜, 그랬어.”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깨를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
“저 애새끼가 몰라볼 정도로 강해진 건 사실이야. 대공이랑 한 판 해볼 수 있을 정도니 정면 승부로는 어림도 없겠지.”
리리스의 전투 능력 자체는 별 볼일 없다.
단적으로 말해, 약하다.
아마 샤르기엘과 싸운다면 처절한 싸움 끝에 간신히 이길 정도의 수준.
대공급이 된 루시스를 이기는 것은 불가했다.
“하지만.”
강우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너라면 도망칠 수 있었잖아.”
“…….”
아스모데우스의 손에서도 도망친 그녀였다.
자신의 힘에 취한 철부지 애새끼의 손에서 도망치지 못할 리가 없었다.
“…….”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리리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처량히 눈물을 흘렸다.
“그치만….”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는… 한 번 도 그런 미소 보여주신 적 없잖아요.”
“…뭐?”
“수백 년을 마왕님을 바라봤는데, 모든 걸 바쳐서 마왕님만 생각했는데!”
울부짖듯, 그녀가 외쳤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설아 씨에게 보여준 것 같은 미소는 지어주시지 않았잖아요.”
“…….”
강우는 입을 쩍 벌렸다.
‘이게 뭔 싸구려 신파극이야.’
갑자기 아침 드라마 속에라도 들어온 기분.
설마 고작 저런 이유로 적의 손에 순순히 사로잡혔단 말인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상대가 루시스라 망정이지 아스모데우스였다면, 두 번 다시 자신의 품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아니, 모든 걸 다 떠나서 그녀의 행동은 선을 넘었다.
“어디서 그런 개소….”
“흐윽…. 흑.”
입을 흘러나오려던 거친 욕설이 끊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리리스의 어깨에서, 그녀가 지금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
그녀는 멍청하지 않다.
자신의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는 것 정도는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루시스의 손에 순순히 잡힌 것은,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끌기 위해 행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리라.
-제게는… 한 번도 그런 미소 보여주신 적 없잖아요.
리리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싸구려 신파극이라도 좋다. 아침 드라마라도 상관없다.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수백 년을 사랑한 사람이.’
심지어 정치적인 목적이었다고는 하나, 사랑의 맹세까지 나눈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덜컥 다른 사람을 연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했다.
굴러들어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여인에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지 조언까지 해줬다.
도움이 되기 위해 말이 되지 않는 업무량을 소화했고, 귀찮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자신에겐 관심도 없고 새로 사귄 연인만 좋다고 졸졸 따라다녔다.
대놓고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눈앞에서 염장을 지른 것이다.
‘어, 시발…?’
강우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내가 쓰레긴데?’
납치 자작극을 벌이는 게 아니라 식칼을 들고 배때기를 쑤셔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자신이 몇 번이나, 수십 수백 번을 넘도록 그냥 원래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을 믿지 않은 리리스의 탓도 있다.
하지만 리리스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어느 날 누군가 와서 당신의 지금 모습은 추하다고, 바퀴벌레 같은 외모가 훨씬 아름답다고 말했다고 치자.
대체 그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고작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조차 코웃음을 치며 개소리 말라고 할 텐데, 리리스는 수천수만 년 이상을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악마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에요.”
“…….”
리리스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올려진 강우의 손을 잡았다.
“한 번이라도… 정말 한 순간만이라도.”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손등에 떨어진다.
“제게 설아 씨에게 보여준 미소를 지어주셨으면 했어요.”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번 일에 대해 추궁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의 사정을 생각해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 된 기분.
‘그래도.’
이 말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리리스를 끌어안았다.
“앞으로 절대. 두 번 다시.”
끌어안은 손이 떨린다. 그녀가 처음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때 느꼈던 미칠 듯한 감정이 다시금 끓어올랐다.
“이런 짓은 하지 마.”
“아….”
리리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깨를 붙잡은 그의 손에서, 얼마나 그가 걱정했는지 전해졌다.
“미, 미안해요. 전 그저….”
리리스가 몸을 비틀었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이 됐다.
자신이 사랑하는 왕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한 거다.
“알고 있어.”
강우는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끈적한 점액이 손에 묻어나왔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끔찍한 촉수와 고름조차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강우는 리리스의 뺨을 잡아 고개를 들어올렸다.
밝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아, 아아.”
리리스의 몸이 떨렸다.
그토록 바랐던 미소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짜릿한 전율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마왕님… 마왕님…. 흐윽.”
차오르는 격정에 강우의 몸을 끌어안은 촉수에 힘을 더했다.
“…….”
강우는 눈물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고작 미소를 지어주는 것.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해주지 못해 그녀를 이 정도로 절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끓어올랐다.
외모가 끔찍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변명이다.
그런 것으로 치면 리리스는 그녀의 입장에서 물고기나 다름없이 생긴 강우를 수백 년간 한결같이 사랑했다.
‘그냥 단 한 번도.’
그녀를 이해하려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감정을 지닌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끔찍한 외모 속에 있는, ‘리리스’라는 여인을 단 한 번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리리스.”
강우는 깊게 심호흡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코를 찌르는 악취가 역겹게 느껴졌다.
몸을 더듬는 촉수의 감촉이 더 없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것만이 다가 아닐 것이다.
“아….”
리리스의 턱을 잡았다.
리리스는 18개의 눈을 크게 뜬 채 파르르 몸을 떨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수백 년.
그 기나긴 시간만에 처음으로, 그 어떤 강압이나 조건도 없이.
강우가 먼저 입술을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