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9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98화
키미노 나마에와 (1)
“아….”
리리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보랏빛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아으, 아으, 아으으!”
리리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올랐다.
주먹을 움켜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촉수를 꿈틀거렸다.
촉수 끝에서 뿜어져 나온 고름이 사방에 튄다.
‘…….’
강우는 눈을 감았다.
무시하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참아도.
‘시바….’
지금 자신이 옳은 일은 한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혹시 나 무덤 판 거 아닌가.’
순간적인 감정에 취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그녀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도저히 저 촉수만큼은 익숙해지지가 않았으니까.
“흐윽. 흑….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마왕님.”
리리스가 해맑게 웃는다.
“헤헤. 처음으로… 마왕님이 먼저 키스해 주셨네요.”
“…….”
더 이상 없을 정도로 행복해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강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고맙기는 한데.’
아무리 외모를 무시하려고 해도, 신경 쓰지 않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너무 심하잖아.’
강우는 코를 찌르는 악취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쿠로사키 유리에의 모습이었다면 쌍수를 들다 못해 공중제비를 돌며 좋아했을 일이, 지금은 끓어올랐던 감정마저 차갑게 식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잠깐.’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강우의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그 방법이라면.’
지은 죄가 크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 명분은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가만히 넘길 수는 없어.”
“아….”
“리리스, 네가 한 일은 나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 그건.”
리리스의 눈이 떨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리리스가 자신을 속이고 자작극을 벌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왕에게 정면으로 반역을 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의 죄.
즉결 처형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리리스는 변명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가늘게 어깨가 떨렸다. 초조한 표정으로 발을 꼼지락거렸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녀는 꿀꺽 침을 삼키며 말했다.
죽으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의지가 느껴졌다.
‘좋아.’
강우는 긴장에 찬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있는 것을 금지하겠다.”
“…예?”
“내 앞에서는 무조건 쿠로사키 유리에의 모습으로 있어라.”
“그, 그건 안 돼요!!”
리리스가 다급히 외쳤다.
기껏 왕이 자신에게 먼저 손을 뻗어줬는데, 그런 못생기고 추한 외모로 그의 앞에 있어야 한다니.
그로 인해 왕의 사랑이 식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부탁드릴게요, 마왕님! 제, 제발 그것만큼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와 함께 있다 보면 혹시 버려지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로도 왕의 마음을 얻는데 수백 년이 걸렸는데…!’
모든 악마들에게 칭송 받는, 어지간한 악마는 보는 순간 이성을 잃고 달려들 정도의 외모로도 왕의 마음을 얻는데 수백 년이 걸렸다.
여기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라도 했다간 왕의 마음이 식는 것은 시간문제.
“아까 어떤 처벌이라도 따르겠다고 하지 않았어?”
왕이 가늘게 눈을 뜨며 그녀를 노려본다.
움찔.
리리스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알겠, 습니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촉수가 사라지며 인간의 육체, 쿠로사키 유리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강우는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욜로오오오오오오오!!!’
소리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
‘시바, 됐다! 이건 됐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사실, 리리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촉수는 싫다고, 고름은 더더욱 싫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인간 모습이 훨씬 아름답다고 몇 백번을 말해도 믿지 않았으니까.’
리리스가 지구로 온 이후 질리도록 말해도 그녀는 농담하지 말라며 웃어넘길 뿐.
어느 날은 정말 진지하게 말해도 호호 웃으며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 정도면 진짜 몰라서 그런다고 볼 수 없지.’
리리스의 머리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그 정도 말했는데 자신이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닐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즉, 그녀는 알고 있는데도 의식적으로 그 말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하긴.’
사실 그런 리리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단순히 고집 센 미친년으로 볼 수 있으나, 그 실상은 좀 다르다.
그녀가 살아온 세월은 만 년이 넘는다.
정확히 나이가 몇인지는 모르지만, 강우가 처음 지옥에 떨어졌을 때부터 리리스의 소문은 지옥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 아득한 시간 동안.’
아름답다는 말만 들어왔던 외모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정당했다.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강우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리리스는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저, 정말 이런 못생긴 얼굴로 왕의 앞에 있어야 하는 건가요?”
“그래. 내 앞에 있을 때는 항상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해.”
“그… 바, 밤일을 할 때도요?”
“절대로.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세 번이나 강조했다.
리리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어, 어째서 그런 무의미한 처벌을…! 마왕님도 제 촉수 테크닉을 그렇게 좋아하셨으면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요?!!”
“…….”
목까지 치밀어 오른 욕지기를 간신히 씹어 삼켰다.
“어쨌든, 그게 내 처벌이다. 전투 상황에서 힘을 해방하는 일이 아니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인간의 모습으로 있어야 해.”
“이익….”
“설마 이런 중죄를 지어놓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리리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달싹거리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 습니다.”
-콰앙!
그 말과 함께 거친 폭음이 들렸다.
강우와 리리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을 향했다.
“그, 그게 무슨 헛소리냐!!”
재생의 권능으로 몸을 회복한 루시스가 절망에 찬 표정으로 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리리스 님에게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루시스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불길의 권능을 일으키며 한 번 더 구워줄까, 고민하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씩 웃었다.
“그렇게 리리스가 인간의 모습인 게 싫은가?”
“당연한 소릴! 이건 리리스 님의 아름다운 촉수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너는 결국 리리스의 외모만 사랑했다는 얘기군.”
“뭐, 뭐라고?”
“쯧쯧, 진실한 사랑이니 뭐니 떠들더니… 한심하군.”
“크읏!”
루시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졌다.
“아, 아니야!! 난 진심으로 그녀를….”
“그렇다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지? 어차피 고작해야 껍데기가 바뀐 것뿐이잖아.”
“그건….”
“네게 중요한 건 리리스가 아닌, 그녀의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얘기지.”
“아, 아니….”
“아니라면 증명해 봐라.”
“…….”
루시스가 침묵했다.
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강우는 승자의 미소를 띄우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애송이.”
“아, 아으.”
고개를 떨군 루시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강우는 폐인처럼 혼을 잃은 눈빛을 짓고 있는 루시스를 바라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본론에 들어갈 때였다.
“좋아, 애송이. 몇 개 물어볼 게 있다.”
“내, 내가 대답을….”
“리리스.”
강우가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눈치가 빠른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리칼 몇 개를 촉수로 바꿔 루시스를 휘감았다.
“허업!”
루시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온몸을 비틀던 루시스의 눈이 흐리멍덩해지기 시작했다.
강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세뇌의 영향이 남아 있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세뇌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리리스를 데려가겠다는 목적으로 아버지 몰래 지구에 올 리도 없었다.
“아, 으. 아아.”
루시스의 입에서 질질 침이 흘렀다.
“우선, 루시퍼는 지금 어디있지?”
“아버, 지께서는… 시, 련을… 받고 계신, 다.”
“시련?”
통신 구슬로 대화하는 도중 루시스가 자신이 시련을 극복하며 강해졌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 시련이란 게 뭐지?”
“시련…은. 마신, 의 심장이… 만들어 낸… 공간. 그곳에서… 힘을 키우는… 것.”
마신의 심장.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지?”
“시간의… 흐름이, 다른 곳. 물질계와는… 다른… 섭리가 지배… 하는 공간.”
세뇌의 영향으로 뚝뚝 끊어지는 대답이었지만, 대충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 그 태초의 악몽 같은 공간인가.’
사탄을 따라 들어간 검은 공간을 떠올렸다.
시간의 흐름까지 다른 곳이라고 했으니, 짧은 시간에 루시스가 이렇게 강해진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루시스가 저 정도라면.’
루시퍼는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 자식 처음 지구에 왔을 때부터 신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우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자신 또한 과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해졌지만, 그건 루시퍼도 마찬가지.
마신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시련’이란 공간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루시퍼가 어떤 변수가 될지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단 이놈은 데리고 있어야겠군.’
강우는 루시스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에게 루시스가 있는 이상, 루시퍼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일단 든든한 보험은 들어둔 상황.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어.’
가늘게 눈을 떴다.
안일하게 있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조급한 상황 또한 아니었다.
‘잘만 한다면 루시퍼를 이용할 수도 있다.’
강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루시스를 활용하면 나중에 루시퍼를 이용해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식새끼 하나 잘 못 길러서 아주 개고생을 하는구나.’
루시스의 트롤링은 전율스러울 지경.
만약 저런 아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리리스. 전보다 더 철저하게 세뇌를 걸어줘. 네가 하는 말이면 아버지의 배를 쑤시던 목을 자르던 뭐든지 할 수 있도록.”
“예, 마왕님.”
리리스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이미 걸어둔 세뇌가 있었으니, 다시 세뇌를 강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응…?”
루시스의 등에 돋은, 여덟 장의 검은 날개가 보였다.
그 날개 사이사이에는 검은 뇌전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벼락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잠깐, 이거.’
강우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그래, 시바. 그런 방법이 있었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과 함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루시퍼를 제어하는 용도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루시스를 활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푸흡, 푸헤헤헤헿.”
자기도 모르게 천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왕님…?”
“잠깐 비켜봐.”
강우는 루시스에게 다가갔다.
루시스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잘 들어라 루시스.”
“아, 으…?”
“지금부터 네 이름은 루시스가 아니다.”
“이, 름…?”
“앞으로 네 이름은.”
씨익.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라키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