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3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40화
히어로 메이커 (3)
-후우우웅!!
리리스의 연락을 받은 강우 일행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협곡 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황녀가 죽는 것은 앞으로의 계획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제기랄!’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짜 반란군이라고?’
뭐 이런 미친 우연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개연성 씨발 어디 갔냐.’
엿 바꿔 처먹었니?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우는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리리스에게 명령을 전한다.
-황녀가 죽지 않도록 지켜.
-예, 마왕님.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으실 것 같아요. 황녀 쪽에 있는 기사들이 분전하고 있어서 괜찮아요.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강우는 살짝 안심한 표정으로 신속의 권능을 사용해 발을 박찼다.
-까앙! 깡!
“크읏! 진형을 유지해라!”
“황녀님을 지켜!”
협곡에 도착하니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피 냄새가 흘러나왔다.
전장에 도착한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너무 빨리 왔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력으로 오다 보니 파티원과 떨어져 버렸다.
전력으로 달리는 강우를 따라올 수 있는 존재는 파티원 내에는 없었으니까.
“리리스, 상황은 좀 어때?”
“아직까진 괜찮아요.”
강우는 좁은 협곡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내려다보았다.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복면인들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반란군의 숫자가 많네.’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숫자는 서른 정도.
그에 비해 복면인들은 최소 오백은 훌쩍 넘어 보였다.
“…황녀를 호위하는 것 치고는 병력이 좀 많이 적은데?”
전장을 바라보던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숫자는 물론 수준 또한 황녀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기엔 너무 부족해 보였다.
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뭐… 기사들의 수준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많이 부족해 보이고요.”
“흐음.”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아무리 제국에 망조가 들었다고 하지만 이게 말이 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건 일단 나중에 알아보고.’
지금 당장은 현재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악녀에게 천벌을!!”
“무능한 황녀는 필요 없다!”
복면인들의 외침이 들여왔다.
처절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
그들은 각종 병장기를 꼬나쥔 채 죽음을 불사르며 기사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피가 튀어 오른다. 비명과 함성이 시끄럽게 협곡을 울린다.
전투를 내려다보던 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거.”
기사들과 싸우는 반란군의 처절한 모습에서,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는 듯한 이질감.
강우는 콧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은데.’
머릿속에 떠오른 추측을 아직 확신하긴 일렀다.
지금 당장은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일단.’
보험은 들어두기로 할까.
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베르나크에게 연락했다.
-베르나크.
-예스, 마스터.
-부탁할 게 좀 있다.
강우는 격해져 가는 전쟁을 내려다보며 베르나크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형님!”
베르나크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뒤늦게 김시훈이 도착했다.
김시훈은 협곡에서 벌어지는 반란군과 기사들의 전투를 내려다보며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크읏,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성검 루드비히를 소환해 손에 쥐었다.
영롱한 빛으로 빛나는 검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형님, 그럼 바로….”
“아니, 잠깐만 기다려.”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를 잡았다.
“아직, 아니야.”
“…예?”
“조금 더 기다려 봐.”
침착한 눈빛으로 전장을 내려다본다.
기사들이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분전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더 극적으로 등장해야지.’
죽음의 위기에서 나타난 영웅.
그 연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결정적인 등장씬이 필요했다.
“시훈아. 일이 이렇게 됐으니 계획을 좀 앞당길게.”
“…그전에 말씀하신 영웅 계획이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멋있게 등장해서 황녀를 싹 구해 버려.”
원래라면 언데드의 습격이 시작된 후에 말할 생각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반란군의 등장으로 인해 조금 타이밍이 어긋났다.
‘큰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반란군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해야 할 내용이었다.
“시훈아, 영웅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냐.”
강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정이 어떻게 됐든, 지금부터 본격적인 히어로 메이킹 계획을 시작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강우의 질문에 김시훈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답했다.
“글쎄요… 정의감? 용기?”
“아니, 그게 아니지!”
얘가 무슨 헛소리를!
“잘 들어 시훈아.”
김시훈의 어깨를 잡는다.
“영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예.”
김시훈이 긴장에 찬 표정으로 꿀꺽 침을 삼켰다.
강우의 말이 이어진다.
“간지야.”
“…예?”
“비주얼 말이야, 비주얼. 간지야말로 영웅을 만든다고.”
“…….”
“생각해 봐, 만약 위기에 상황에서 구해 준 게 150kg 파오후였어 봐. 걔가 영웅이 될 것 같아? 걔는 인마 그 사건을 일으킨 배후로 몰리게 된다고.”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외모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런 부분에서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졸라 잘생겼으니까.
아, 가까이서 보니 더 잘 생겼네.
왜 이렇게 잘생겼냐, 이 새끼야?
생각하니 빡치네.
“아니, 이게 아니라.”
김시훈의 얼굴을 보며 갑작스럽게 끓어오른 그라데이션 분노에 강우는 고개를 훙훙 저었다.
“어쨌든, 간지가 중요하다 이 말이야.”
“아… 예.”
“그러니까 네가 해야 하는 게 뭐겠어?”
“어….”
김시훈은 얼빠진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강우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비주얼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이제 연출만 생각하면 돼지!”
“연출, 이요?”
“그래!”
강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이 등장할 때의 연출.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이때는.’
강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하아! 하아!”
“황녀님! 이, 이쪽으로!”
좁은 협곡.
짙게 깔린 피냄새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 있었다.
눈부신 외모와 우아하게 웨이브진 금발.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병상에 든 황제를 대신하여 제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된 여인.
아이리스 폰 아르난.
그녀는 지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좁은 협곡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꺄악!”
하지만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좁은 협곡을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 가지 못하고 아이리스 황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황녀님!”
그녀의 수발을 들던 시녀들이 다급히 다가왔다.
아이리스 황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넘어지면서 발을 접지른 탓에 그녀는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악, 하악.”
아이리스 황녀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붉게 달아오른 발목에 손을 올렸다.
아찔한 통증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녀의 눈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렀다.
“왜…, 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분노에 찬 외침.
아이리스 황녀는 신경질적으로 근처 돌을 주워 집어던졌다.
“화, 황녀님… 어서 도망치지 않으면….”
“시끄러워!!”
시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아이리스는 눈물에 젖은 채 고개를 떨궜다.
이미 도망치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흐윽. 왜… 어째서….”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답 없는 한탄뿐,
“황녀님….”
그녀를 보좌하던 시녀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황녀를 바라보았다.
아이리스의 입에서 처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라버니만… 오라버니만 계셨더라도.”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아이리스는 입술을 깨문 채 굳게 주먹을 쥐었다.
그때였다.
“찾았다!”
“이 악녀!”
복면을 쓴 반란군이 아이리스와 그 시녀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촤앙. 날카로운 검이 빛을 뿌렸다.
“꺄악!”
아이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명을 내질렀다.
검을 든 복면인들이 코웃음 쳤다.
“하! 아르난 제국을 멸망시킨 악녀가 잘도 비명을 지르는군!”
“꼴에 자기 목숨은 중요하다 이건가.”
복면인들에게서 전해지는 선명한 악의.
“네년 같은 탐욕스럽고 무능한 황족 때문에 피델리오 재상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고생하시는 거야.”
“그분이라면 제국이 이 꼴이 될 리도 없었을 텐데.”
“…….”
흠칫.
아이리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거칠게 입술을 짓씹으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아니야….”
입술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이, 토해내듯 외치고 싶은 무수한 말들이 입안에 맴돌았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녀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래.”
아이리스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계속 사느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질곡에서 헤매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무도 그녀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아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녀를 지켜주었던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가 사라진 후에 있었던 건.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끔찍한 나날들.
“그냥 죽여. 죽이라고!”
발작하듯 외쳤다.
처절한 외침에도 복면인들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래, 죽여주마!”
“혁명군을 위해! 새로운 제국을 위해!”
복면인들이 검을 들었다.
“아….”
아이리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가늘게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한 남자의 모습.
찬란한 금빛 휘광에 휩싸인 영웅.
‘오라버니….’
아이리스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흐른다.
복면인의 검이 그녀의 목을 향해 매끄럽게 떨어졌다. 그리고.
-까아아앙!
“크읏!!”
복면인의 검을 쳐내며 한 청년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한쪽 손을 살짝 땅에 짚는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바람이 휘날렸다.
대체 어디서 날라왔는지도 모를 꽃잎이 피로 물든 전장에 휘날렸다.
“너, 너는 누구냣!!”
복면인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협곡 위에서 떨어진 청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복면인의 말을 무시한 채,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리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김시훈의 등장이었다.
* * *
“크으, 이거지!”
협곡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낄낄 웃으며 손뼉을 친다.
“역시 첫 등장은 히어로 랜딩이지!”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공격을 막는 것처럼 간지 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강우는 권능을 사용해 김시훈과 아이리스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방방 발을 굴렀다.
“아, 팝콘이 없는 게 진짜 아쉽네.”
그것도 챙길걸.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차며 영상을 관람했다.
-어디 다치신 곳 없으십니까?
“캬, 대사 한 번 깔끔하고.”
김시훈을 몽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아이리스의 표정에 씩 입가를 비틀었다.
“좋아.”
본격적인 히어로 메이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