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0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08화
뭔데 귀여운 거야 (1)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점자가 찍힌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강우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흠, 침음을 삼켰다.
문뜩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시스템이라는 게 뭘까.’
가이아를 비롯한 신들을 이 시스템을 일컬어 ‘섭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처음 지구에 도착했을 당시, 자신의 힘을 봉인했던 가이아 시스템은 저 ‘섭리’ 중 지구의 수호자격 신인 가이아가 할당받은 일부였다.
‘즉.’
섭리의 일부만으로, 그가 품고 있던 마해를 봉인할 수 있었다는 의미.
‘물론 그때랑 지금이랑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실 있는 정도가 아니다.
지구로 돌아온 이후 그는 폭발적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마해 자체도 끝을 모르고 팽창하고 있었다.
이미 지옥에서의 자신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고작 일부에 만으로 마해를 봉인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체되는 보상을 확인 중입니다.]‘그냥 이렇게 보면 기계장치 같은 느낌인데.’
강우는 게임의 로딩화면처럼 그래프가 채워지고 있는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지금에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자아가 있어.’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은 인격이라기보다는 인공지능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뭘까.’
고민을 이어갔다.
가이아는 ‘가이아 시스템’의 보호 덕분에 외계의 존재가 지구에 함부로 간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것만이 아니지.’
별을 수호하는 것은 섭리가 지닌 기능의 일부에 불과했다.
섭리는 플레이어를 만들고, 힘을 부여한다.
신들의 행동을 제약해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 물질계에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힘은 지구, 에르노어를 넘어 이 우주 자체를 통치하고, 통솔하고 있다.
‘마치.’
율법(律法)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규칙처럼.
[‘티탄의 율법’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확인되었습니다.] [추가적인 간섭이 확인될 시, 신격(神格)이 격하됩니다.]익숙한 방울소리와 함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붉은색 메시지창이었다.
“호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 이건가.’
재밌는 반응이었다.
강우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붉은색 경고창을 바라보았다.
굳이 신격의 격하를 감수하며 정보를 얻을 이유는 없었다.
‘방금 메시지로 대충 윤곽은 잡혔으니까.’
티탄의 율법.
강우는 그 단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티탄은 신들의 창조주이자, 이 우주를 만든 존재였다.
‘지금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보다 티탄이 더 신에 가깝지.’
가이아와 티리온 등, 신격을 지닌 존재는 흔히 생각하는 ‘신’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전능(全能)하지도 전지(全知)하지도 않다.
인격을 지닌 초인에 가깝다.
‘무협지로 비유하면 신선(神仙)과 같다고 할까.’
강우처럼 스스로의 경지과 수행을 통해 신격을 획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 정확한 비유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신들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신격을 지니고 태어나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과 더 비슷하지.’
공교롭게도 지구를 수호하는 최고위격 신의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가이아’였다.
“…단순한 우연일 리가 없지.”
아마 신화와 가이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티탄의 율법’이라는 단어 자체.
그것만으로 이 시스템이 누구의 손에 만들어졌는지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울리와 같은 거인들이 만들어낸 건가.’
그렇다면 일부의 힘만으로도 마해를 봉인한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티탄이라.”
강우는 나지막이 그 존재들을 입에 담으며 고개를 들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섬뜩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티탄.
신들을 창조하고, 우주를 만들어낸 존재.
‘어떤 맛일까.’
꿀꺽. 침을 삼킨다.
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혈액이 빠른 속도로 몸을 돌며 뜨겁게 달아오른다.
강렬한 갈증이, 배를 쥐어뜯는 듯한 허기가 그를 잠식한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어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제어했다.
지금 어차피 욕심을 부려봤자 티탄이 어디 있는지, 실제 존재는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심연에 갇힌 채 광포한 포효를 내지르는 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신 바울리.
그의 앞에서 여유로운 척 건방을 떨었지만.
‘실제 싸우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육체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실제 바울리와 싸운다면, 패배할 확률이 높다.
-내가 아니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울리의 외침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것이 허세에 찬 말이 아님을 강우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바울리가 없다면.’
마해는 유지될 수 없다.
마해의 핵심은 자신이 아닌 바울리기에.
“…이것도 각오해둬야겠군.”
언젠가 바울리와의 전면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강우는 쓰게 웃으며 혀를 찼다.
-띠링.
그때, 기다리던 방울 소리가 들렸다.
[‘마신이 되는 길’의 보상이 ‘우러러보는 자’ 특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오강우’에 대한 신앙을 신성으로 변환하여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일정치 이상의 신성이 쌓일 경우, 신격이 격상(格上)합니다.]눈앞에 떠오른 푸른색 메시지창.
강우의 눈이 반짝였다.
“신앙, 이라.”
고개를 돌렸다.
황성의 아래.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는 대륙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 전쟁 이후 그들은 자신과 김시훈을 신처럼 따르고 있었다.
대륙인들이 자신해서 만든 교단의 이름은 ‘광명(光明)교’.
광휘의 신인 강우에게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강우는 광명교의 신도들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괜찮은데?”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엄청난 능력이다.
마기나 성력, 마력과는 달리 신성이라는 것은 자체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로지 신격을 지닌 존재를 포식의 권능으로 먹어야지만 수급이 가능했다.
‘신앙을 신성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체적으로 신성을 수급할 수 있다는 의미.
사냥으로만 식량을 구할 수 있던 원시인이 농작을 배운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당연히 고기가 맛있긴 하지만.’
언제 다른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급처가 생겼다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꾸는 거지?’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특성을 배우면 그 특성을 사용하는 기초적인 방법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신앙을 신성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의문에 답하듯 다시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앙을 흡수하여 신성으로 변환하는 것은 ‘마해의 열쇠’를 통해 변환할 수 있습니다.]“마해의 열쇠로?”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마해의 열쇠에 그런 기능이 생긴단 말인가.
-찔꺽.
“뭐야 이건.”
검은 반지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마신의 유산, 이라고 불리던 검은 덩어리였다.
마해에서 빠져나온 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검은 덩어리가 질척이는 몸으로 강우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온 검은 덩어리가 강우의 뺨에 몸을 비볐다.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질척이는 소리와 달리 탱탱볼처럼 굉장히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졌다.
-찌걱, 찌걱, 찌걱!
검은 덩어리가 기쁜 듯 몸을 떨었다.
이내 노란색 점 두 개가 떠올랐다.
‘눈까지 있었어?’
강우는 당황스럽다는 듯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게 마해의 열쇠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후려 맞는 듯한 감각이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강우를 바라보며 검은 덩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꾸륵?”
꾸륵?
“…너 울음소리도 내는 거냐.”
검은 덩어리가 그의 어깨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강우는 혼란스럽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고개를 돌렸다.
크기는 축구공보다 살짝 작은 정도.
반들거리는 피부에 출렁출렁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어딜 어떻게 봐도 슬라임이었다.
“꾸륵! 꾸륵!”
“…하.”
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뭐야 이….’
아, 다른 판타지 소설들 보면 귀여운 펫 하나씩 있던데, 이번 기회에 하나 넣어 볼까?
‘라는 식으로 대충 만들어진 것 같은 놈은.’
만들 거면 성의 있게라도 만들지.
검은 슬라임이 대체 뭐란 말인가.
“…….”
강우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검은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검은 덩어리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마치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와 같은 반응.
‘뭐야 이거.’
뭔데 귀여운 거야.
“꾸르륵….”
검은 덩어리의 노란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천히 손을 뻗어 검은 덩어리를 만졌다.
-찔꺽.
과히 듣기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렸지만, 촉감 자체는 전혀 질척이지 않았다.
탱글탱글하고 통통하니 뭔가 만지는 감각이 좋다.
물풍선을 만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꾸륵, 꾸륵.”
강우가 손을 대자 검은 덩어리가 기쁜 듯 가늘게 눈을 뜨며 그의 손에 몸을 비볐다.
“…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우는 분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이 자식….”
귀엽잖아.
“슬라임 주제에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강우는 눈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와 머릿속 상식 사이의 괴리에 표정을 구겼다.
‘아니, 귀여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검은 덩어리의 역할을 다른 곳에 있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의 신앙을 흡수해 봐.”
“꾸륵!”
검은 덩어리는 맡겨만 달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마신의 유산은 공포의 감정을 흡수할 수 있었지.’
악의 성좌들이 강우를 찾아 나선 것도 그들을 향해야 할 공포가 엉뚱하게 루시퍼를 향했기 때문이었다.
‘공포와, 신앙이라.’
둘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임과 동시에, 공포와 경외의 존재기도 했으니까.
‘아, 그래서 신앙을 흡수할 수 있던 거군.’
강우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마신의 유산에는 감정을 흡수해 신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의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거고.
“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과연 어떻게 신앙이라는 비물질적인 힘을 신성으로 변환하는지 확인할 기회였다.
-질꺽, 철퍽.
검은 덩어리는 강우의 어깨에서 내려와 통통 튀어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쩌억.
검은 덩어리의 입이 벌어졌다.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이 돋아난 흉악한 입이 보였다.
벌어진 입은 점점 더 크기를 키웠다.
이내 사람 하나는 가볍게 씹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커진 입이 사납게 허공을 물어뜯었다.
-우득, 우드득!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씹어 삼키듯, 검은 덩어리는 열심히 입을 움직여 무언가를 뜯어먹었다.
“…….”
강우는 다시 한번 어처구니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귀엽게 보이던 검은 덩어리가, 이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괴물로 변해 있었다.
[‘마해의 열쇠’를 통해 흡수된 신앙이 신성으로 변환됩니다.]“꾸륵!”
신앙을 먹어치운 검은 덩어리가 다시 폴짝폴짝 튀어와 손 위에 안착했다.
반지 위에 꿀렁거리며 몸을 비비자 마해의 열쇠를 통해 몸 안으로 신성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음.”
당연히, 그 양은 많지 않았다.
‘황성까지 와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삼백이 좀 넘을까 할 정도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이라는 비물질적인 힘을 실제 물리력을 지닌 에너지로 변환하는데 그게 많을 리가 없었다.
“뭐, 어쨌든.”
강우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광명교라.”
광휘의 신인 자신과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주 좋은 식량… 아니, 신도들을 얻었구만.’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자신이 할 일은 적절한 비료와 물을 줘서 농작물이 잘 자라나도록 만드는 것뿐.
“흐흐.”
여러 계획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실 없는 웃음을 흘렸다.
강우는 검은 덩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은 덩어리는 칭찬을 바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하나 붙여줘야겠네.”
계속 검은 덩어리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흠….”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강우는 좋은 이름이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손을 뻗어 검은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앞으로 네 이름은 질퍽이다.”
“꾸륵!”
찔꺽찔꺽.
질퍽이는 기분 좋다는 듯 통통 몸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