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0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10화
앞으로, 앞으로 (1)
-쿠드드득!!
거대한, 아니 단순히 거대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크기를 지닌 무언가가 강우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커헉! 카학!”
강우는 가슴을 움켜쥐며 몸을 비틀었다.
아득한 고통이 몸을 잠식했다.
“아, 으.”
비틀비틀.
다리가 휘청인다.
그의 심장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무언가가 거칠게 발버둥 치는 것을 느낀다.
“아아.”
무너진다. 망가진다. 부서진다.
유리로 만든 공예품이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산산이 박살 난다.
시야가 점멸한다.
호흡이 거칠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다.
검은 바다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검은 바다가 날뛴다.
금이 간 ‘그릇’ 사이로 검은 바다가 넘쳐흐른다.
“히히히히히!!”
바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끄럽다는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 건….’
끊어지려는 의식의 끈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조각난 사고의 파편을 억지로 이어 붙였다.
깨져가는 그릇을,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 심연에서 벗어나게 되는구나!!
태초의 어둠에서 탄생한 거인의 외침이 들렸다.
그를 옭아매고 있던 마해(魔海)의 심연에서 벗어나,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강우와 바알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타락한 세계수의 가지를 타고 거인의 힘이 바알에게로 옮겨간다.
“키힉!! 키히히히히힉!! 아아, 이거구나! 이게 마신의 힘이구나!”
바알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다는 듯 광소를 터트렸다.
풀썩.
강우의 무릎이 꿇렸다.
마신이 빠져나간 검은 바다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쩌적.
‘깨진, 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무언가가, 그의 본질이자 근간이, 점차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쿨럭! 쿨럭!”
화르륵.
강우의 몸을 뒤덮고 있던 탐식의 불이 사그라들었다.
몸을 웅크린 채, 검은 피를 토해냈다.
“헤에, 그래도 용케 이성을 유지하고 있네?”
바알이 놀랍다는 듯 눈을 빛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못 버티고 바로 미쳐 버릴 줄 알았는데.”
“바, 알….”
강우는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는 이성 속에서도,
바알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마신이… 바알에게로 옮겨 갔어.’
마해의 심연 속에 갇혀 있던 마신 바울리가 바알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바알과 자신, 둘 다 모두 마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크윽.”
입술을 짓씹었다.
날뛰는 마해에 몸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분명 마해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마신이 아닌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신을 마해의 심연 속에 가둬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해의 근원, 마해를 이루고 있는 뿌리 자체가 자신이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그릇이었으니까.
마해를 완성하기 위해, 마해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
“제기, 랄….”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당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잉그리움이 그런 역할을 하는지도, 애초에 자신이 마해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써 만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심연 속에 묶여 있던 마신이 그의 몸을 떠나 바알에게 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어떻게, 해야.’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한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쥐어 짜낸다.
하지만.
“쿨럭! 쿨럭!”
다시금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게 이런 상황을 빗대어 쓰는 표현일까.
한 번 폭주하기 시작한 마해의 기운이 난폭하게 몸을 헤집었다.
마치 댐이 무너진 강물처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마기가 날뛰었다.
“씨, 이발.”
피를 토하며, 몸을 웅크렸다.
단 한 번의 실수, 아니, 이걸 과연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대처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은 일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망가지고, 부서진다.
-크흐흐흐! 꼭두각시 놈이 제 분수를 안 것 같구나!
환희에 찬 마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 이 그릇은 아직 불완전하다만… 어쩔 수 없지.
바알의 몸속에 들어간 그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혀를 찼다.
-크흐흐. 이제… 이제야 마해를 손에 넣게 되는구나!
바울리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헤.”
그때, 바알이 히죽 입가를 올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뭐라?
“히히히!”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넌, 찌그러져 있어.”
바알의 눈이 광기에 번들거렸다.
그의 시선이 쓰러진 강우를 향했다.
“방해, 하지 마.”
쾌락에 찬 목소리로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알아?”
바알은 혀를 길게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마왕이 무너지는 순간.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박살 내는 순간.
그가,
“키히히히히히히히히히!!! 내가! 내가 말했지?! 응? 내 말이 맞았잖아!!”
양팔을 활짝 벌리며,
절규하듯 외쳤다.
“너느으으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오오오오!!”
쿵, 쿵, 쿵.
거친 발걸음으로 다가가 쓰러진 강우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뻐억!
강우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흥. 네놈도 저 꼭두각시와 다를 바 없군.
마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바알의 머릿속을 울렸다.
-내가 그런 비참한 굴욕을 두 번 당하리라고 생각하나?
마신은 낄낄 웃음을 흘렸다.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완전한 그릇인 너 또한 파멸을 면치 못하리라.
완전한 그릇이었던 강우라면 몰라도, 바알의 그릇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상태.
마신의 도움 없이는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금 대로라면,
바알은 강우와 마찬가지로 몸이 붕괴되어 죽는다.
“상관없어.”
소년은 방긋 웃으며, 해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뭐라?
“히히히! 상관없다고.”
마신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죽음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바알의 시선은 강우만을 향해 있다.
“네게… 비참한 최후를 맛보게 해줄 수 있다면.”
비참하고, 처절하고, 절망적인 늪에 빠트릴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자신의 목숨조차, 그 앞에서는 하찮다.
-무슨….
마신은 경악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오강우와 바알.
그가 만들어낸 무수한 그릇 중 가장 뛰어난 두 그릇이 모두, 그의 의지를 거스르고 있었다.
“오강우.”
바알은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마신의 비명을 무시한 채,
쓰러진 강우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 오강우우우우우우우!!!”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
“자! 이제! 이제 인정하라고! 응?”
갈망하듯, 애원하듯, 소리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제발.
“내가 구천지옥에서 견뎌 온 그 모든 비참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줘.
“내 삶은! 내 존재는! 내 욕망은!”
의미 있다고 말해줘.
“나를….”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나를… 증명해줘.”
격변의 날, 그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곳은 아주 무섭고, 끔찍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포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비참하고, 처절하고, 처참하게 발버둥 쳤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절망적인 삶 속에서,
그에게는 삶을 지속시킬 목적이 필요했다.
-나는 선택받은 거야.
포식의 권능이라는 정체 모를 힘을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자신은 선택받은 존재라고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그렇기에, 이 끔찍한 지옥조차 일종의 시련에 불과하다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티고, 버텼다.
악마를 먹으면 먹을수록 변해가는 육체와 망가져 가는 정신 속에서, 오로지 그 하나의 끈만을 붙잡으며 삶을 지속했다.
하지만,
“말해… 빨리, 빨리 말하라고.”
특별한 존재는 자신이 아니었다.
선택받은 존재는 자신이 아니었다.
그가 버텨온 삶은, 마왕의 탄생과 함께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내 삶은 의미가 없던 게 아니라고 말하란 말이야!!”
처절하기까지 한 절규를 들으며,
“좆, 까… 이, 새끼야.”
끊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답했다.
숨을 헐떡이며, 입가를 올렸다.
“너는, 결국… 네,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병신, 새끼야.”
차가운 조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씨, 팔… 무슨, 사춘기 애새, 끼냐?”
만 살이나 처먹고 자아 찾기라니,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 개짓거리다.
“넌.”
네 삶은.
네 존재는.
네 욕망은.
결국 다른 누군가의 인정 없이는 증명조차 할 수 없는 삶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
바알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아, 아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을 웅크린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히스테릭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오, 강우우우우우!!”
자신을 응시하는, 증오에 가득 찬 눈빛.
순수한, 어쩌면 투명하게까지 느껴지는 광기가 그를 향한다.
‘씨, 발.’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뻐억!
“커헉!”
바알의 주먹이 거칠게 강우를 후려쳤다.
바닥을 구르며 튕겨 나갔다.
퍼억! 퍼억! 뻑!
바닥에 쓰러진 자신의 몸이 짓밟히는 게 느껴졌다.
늑골이 부러지고, 어깨뼈가 박살난다.
찢어진 피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크윽! 크르륵.”
목에 고인 핏물이 거품이 되어 흘러나왔다.
“히, 히히히히!! 됐어. 이제 네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고!! 헤, 헤헤헤!!”
망가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몸을 짓밟은 발길질이 한층 격해졌다.
‘제기, 랄.’
폭력이 거세질수록, 의식이 희미해졌다.
몸 안을 헤집는 마기를 어떻게든 제어하고 싶었지만, 마신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마해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 게든.’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한다.
‘개문이라도, 멈춰, 야, 해.’
세 개의 문 중 두 개의 문이 열려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어떻게든 마기의 제어권을 가져오려면, 저 문부터 닫아야 했다.
-우드득!
“크으윽!”
“헤, 헤헤. 어때? 어때? 아프지? 히히!”
바알이 그의 발목을 잡아 비틀었다.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인 발목을, 그대로 힘을 주어 짓이겼다.
허벅지에 발을 올리고, 발목을 있는 힘껏 잡아 뽑았다.
-우둑, 둑.
피부가 찢어지며, 살점과 근육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바알이 손을 뻗어 무릎뼈를 비틀어 뽑았다.
끔찍한 격통이 다리를 타고 전해졌다.
‘이딴, 것, 쯤은.’
이런 고통쯤은 이미 탈태와 개문을 통해 익숙해졌다.
하지만.
“제… 길.”
까드득. 강우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바알의 폭력보다, 그 폭력으로 인해 내부의 마기가 날뛰는 것이 더욱 끔찍한 격통을 가지고 왔다.
핏줄 하나하나에 날카로운 바늘이 떠다니는 듯한 고통.
탈태의 고통보다도 더 격렬한 고통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시간이, 필요했다.
“헤헤. 자, 이제 반대쪽 다리도 뽑아볼까?”
바알은 싱글벙글 웃으며 강우의 왼쪽 다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때,
“천룡.”
“하늘.”
무겁게 겹치는 두 목소리.
“일섬!”
“부수기!”
양쪽에서 나타난 김시훈과 발록이 바알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