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2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4화
나는 분노다 (1)
‘전에 분명 없었지 않았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바알과의 전투에서 3번째 문을 개방하고 심연의 군세를 모조리 소환했을 당시에 사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직접 확인도 해봤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놓쳤을 리는 없는데.’
심연의 군세의 숫자는 일개 개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는 마해의 주인이었다.
심연의 군세가 결국 마해에서 태어난 존재인 이상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가 헤아리지 못할 리는 없었다.
“…대체 얘는 언제 들어온 거야?”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사탄이 확실한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았지만,
[아, 아아… 나, 나느은… 부, 분노, 다.]“이 새끼 이거 사탄 맞는데.”
어딜 어떻게 봐도 사탄이다.
강우는 소환한 사탄의 뺨을 툭툭 쳤다.
사탄은 악마치고는 신장이 작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작아진 몸으로도 까치발을 들면 어떻게 뺨에 손이 닿을 수 있었다.
‘뭐, 별 상관없나.’
이제와서 사탄이 마해에 빠져 있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때 전문 개방했을 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잡아먹은 건 사실이니까.’
오히려 전문 개방을 했을 당시 사탄이 소환되지 않았던 것이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 사탄!”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탄의 모습에 발록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강우를 지키려는 듯 다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아, 괜찮아. 이거 내가 소환한 거야.”
“…사탄을 말씀입니까?”
“응.”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쥐어 사탄의 배를 후려쳤다.
-꾸륵.
사탄의 배가 검은 점액질로 꿀렁였다.
“에이 씨, 마기가 너무 개미 융털만 해져서 제대로 시험을 해볼 수가 없네.”
심연의 군세가 지닌 ‘불사(不死)’ 특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는데, 마기가 워낙 약해진 상태다 보니 불사 특성을 확인할만한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발록, 네가 한 번 후려쳐 줘봐.”
“사탄을 말씀입니까?”
“엉.”
“명을 따르겠습니다.”
발록은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우를 공격했을 때 걸레짝이 되었던 그의 주먹은 어느새 말끔하게 상처가 치료되어 있었다.
“흐읍!”
퍼엉!
발록이 주먹을 휘두르자 사탄의 상반신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후드득. 검은 점액질이 사방에 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꾸륵, 꾸르륵.
마치 시간이 역행하듯 사방으로 튀었던 검은 점액질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상반신이 사라졌던 사탄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아, 아아.]“역시 불사 특성은 그대로네.”
순식간에 재생하는 사탄의 몸을 보며 씨익 웃었다.
심연의 군세는 직접적인 전투력이 강한 것보다는 ‘죽지 않는다’는 사기적인 특성이 강점인 존재들이었다.
불사 특성만 지니고 있다면 총알받이든 방패로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리라.
‘재생할 때 내 마기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일단 소환을 유지할 마기만 있으면 아무리 짓뭉개지고 아작이 나더라도 추가적으로 마기가 소모되지 않았다.
전투력이 강점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지금 약해진 자신보다는 훨씬 강할 테니 나무랄 것이 없었다.
“좋은데.”
강우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때였다.
[아, 아으. …아, 파.]“엥?”
재생을 마친 사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강우는 동그랗게 눈을 떴다.
‘아프다니?’
심연의 군세가 통증을 느낄 수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의식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사탄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의식이 있어.’
희미해 보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의식이 남아 있었다.
“이거 설마 명령을 거스르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의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소환된 사탄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어.’
강우는 날카롭게 빛내며 사탄을 노려보았다.
움찔.
사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 인마.”
씨익 입가를 올리며 명령했다.
사탄은 강우의 명령에 거스르지 않고 차렷 자세로 멈춰 섰다.
“발록,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후려 패.”
“예, 알겠습니다 마왕님.”
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붉은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쓰―으.”
깊게 숨을 들이쉬며 자세를 낮추더니,
-퍼버버버버벅!!
무시무시한 속도로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아파… 나, 는. 아….]“흐아아아아!!”
무언가 중얼거리는 사탄의 몸을 발록의 주먹이 거칠게 두들겼다.
복날 김서방의 이불 위에 똥을 싸지른 누렁이처럼 두들겨 맞은 사탄의 몸 이곳저곳이 펑펑 터져 나갔다.
[아으. 아.]사탄의 몸이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며 진흙을 짓뭉개놓은 것처럼 처참하게 변했다.
“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우의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최근 한 달, 마음껏 몸을 움직여 본 기억이 없다.
그와 동시에,
“…사탄.”
나지막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변화였다.
반쯤 인형에 가까운 상태라고는 해도, 눈앞에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사탄’이었으니까.
사탄.
그 끔찍하고 잔인한 악마에 대한 기억을 어찌 지울 수가 있을까.
“네놈 때문에!!”
강우는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퍽!
발록의 일격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주먹을 한 번 후려칠 때마다 뭉개진 진흙처럼 변한 사탄의 몸이 터져 나갔다.
“알렉이 죽었어!”
적을 죽이는 것조차 망설일 정도로 심성이 착했던 수호자는,
사탄의 손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레이날드…! 설마 그 이름을 잊지는 않았겠지!!”
에르노어 대륙에서 건너온 용맹하고 정의로운 영웅은 머나먼 지구의 땅에서 사탄의 손에 차디찬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아아, 루드비히! 루드비히이이!”
천사들의 대리인이자, 그 누구보다 악을 증오했던 성자(聖者)!
그는 사탄의 술수에 속아 타락하여 둘도 없는 친구였던 김시훈을 죽이려들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한 마귀로 변해 버렸다.
“다, 다! 네놈이 죽인 거라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머리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사탄의 손에 비참하게 죽어간 비운의 영웅들이 느꼈을 슬픔을 상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쉬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마기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 개자식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변명을 하는 사탄의 모습에 더욱 분노가 끓어올랐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라파엘! 그래, 그 정의로운 대천사도 네놈이…!”
어 잠깐만.
“라파엘은 다른 놈이었나?”
라키엘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어차피 둘 다 똑같은 놈들이니까 그냥 사탄이 죽였다고 하자.
“으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분노.
불알 잔주름에서까지 끌어모은 힘을 주먹에 담는다.
-쿠드득!
마기를 머금은 주먹이 사탄의 몸을 후려쳤다.
타이밍 좋게 발록과 동시에 들어간 강력한 일격에 사탄의 몸이 완전히 파괴되어 바닥에 흩뿌려졌다.
“후우. 개운하다.”
지난 한 달간 한설아의 품에 꽁꽁 묶여 생활했던 답답함을 풀어내듯, 강우는 환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어깨를 풀었다.
“역시 사람은 움직이면서 살아야 해.”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보석처럼 빛났다.
강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감격에 떨었다.
‘이것이 바로 노동의 가치!’
삶의 진정한 가치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꾸르륵.
감격에 젖어 있는 사이, 완전히 박살나 바닥에 흩어졌던 사탄의 몸이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재생되던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느려진 속도였다.
“불사라고는 해도 재생에 필요한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는군요.”
“그러게. 나도 이건 처음 알았네.”
바알과의 전투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때는 바알이 심연의 군세를 수십, 수백 번을 쓸어버려도 재생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심연소환이 가진 한계거나 내 문제겠지.’
이제 막 육체의 재구성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어느 정도 패널티가 주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 아아. 아으. 나는, 나아는….]“그나저나.”
다시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한 사탄을 뒤로하고 고개를 돌렸다.
광기에 가까운 폭력의 여파일까, 깔끔했던 단련실 내부는 어느새 너저분하게 더러워져 있었다.
강우는 힘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 발록을 가볍게 두드리며 몸을 돌렸다.
“그럼 뒷정리는 사탄에게 맡기자고.”
“예, 그렇게 하죠. 이제 올라가시는 겁니까?”
“응. 슬슬 올라가야지. 빨리 안가면 임자가 슬퍼해.”
“흐흐흐. 왕비(王妃)님을 아끼시는 것도 좋지만 리리스도 신경 써 주십쇼.”
“리리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리스 그년이 요즘 왕을 자주 만나 뵙지 못하고 있다고 얼마나 찡얼거리는지 모릅니다.”
“아….”
하긴. 최근 한 달은 내내 한설아에게 붙잡혀 있느라 다른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이건 좀 임자랑 얘기해 봐야겠네.’
이제까지 리리스에게 받은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골치 아파지겠네.’
임자 외에 다른 여인들에 대한 일은 이제껏 이것저것 변명을 대며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확실하게 결단을 내릴 때가 온 것이다.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거절하든지.’
자신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여인은 한설아였으니까.
“그래, 알았다. 내일 또 내려올 테니까 그때 보자.”
“예.”
발록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강우는 단련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난장판이 된 단련실에 홀로 남은 사탄.
사탄은 강우의 명령에 따라 흐느적흐느적 움직여 빗자루를 움켜쥐었다.
흐느낌이 섞인 중얼거림.
사탄의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끼익.
“강우 씨이이이!!”
“커헉!”
문을 열자마자 바람처럼 달려온 한설아가 그를 끌어안았다.
“하으으. 너무 보고 싶었어요, 강우 씨.”
한설아는 온몸으로 강우를 끌어안으며 그의 머리칼에 뺨을 비볐다.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격렬한 반응.
“자, 이제 저녁 식사하셔야죠?”
더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한설아는 강우의 몸을 들어 올렸다.
“크윽.”
강우는 침음을 흘렸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이번에 삶의 진정한 가치를,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지 않았던가!
언제까지고 부르주아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노동자로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일어서라!’
일어서라 노동자들이여!
일어서라 프롤레타리아여!
일어서라 마르크스여!
단결하고, 투쟁하라!
거대한 자본에 맞서, 자유를 손에 넣어라!!
“임자. 나는 더 이상…!”
“후후후. 너무 귀여워요, 강우 씨. 아 참, 가슴 만지실래요?”
“넹.”
나중에 일어서는 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