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3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6화
위키 홀릭 (2)
“흐응! 강우우우!”
더 이상의 성과가 나지 않아 수련을 중단하게 된 지 3일.
할 일도 없는 터라 한가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있자니 에키드나가 눈을 반짝이며 도도도 달려들었다.
“어이쿠.”
강우는 자신을 향해 폴짝 뛰어오르는 에키드나를 양팔로 받아냈다.
구도만 놓고 보면 아빠에게 달라붙는 철부지 딸을 보는 것과 같은 훈훈한 광경이었지만, 강우의 키가 에키드나보다도 작은 탓에 썩 그림이 좋게 나오지는 않았다.
“오늘도 집에 있는 거야?”
목을 끌어안은 에키드나가 기대와 흥분에 찬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엉. 이제 일반적인 수련으로는 별 효과가 없으니까.”
육체의 재구성을 촉진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자연적으로 재구성이 이뤄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빨리 힘을 되찾고 싶은데.’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패잔병처럼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프랑소와를 떠올리자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의태로 해결이 될 문제였다면 좋았을 텐데.’
처음 의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혹시 의태를 사용하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제한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프랑소와가 과거의 위용을 되찾은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씨발.’
의태를 사용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실제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희희낙락하며 한설아와 침실로 향한 적도 있었다.
‘설마 의태에 그런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줄은….’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의태(擬態)라는 기술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결함.
그것은.
‘설마 아무 감각이 안 느껴질 줄이야,’
의태라는 기술을 간단하게 비유하면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살덩어리 슈트를 입은 것과 같다.
겉에 둘러쓴 살덩어리 슈트에 자극을 줘봤자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즉.
‘무슨 짓을 해도 안 서… 프랑소와가 고개를 들지 않는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설아의 손을 잡고 침실로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우는 고통스럽다는 듯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때 허둥지둥거리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을 대체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내가 고자라니!’
의사 양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주르륵.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진박 울어.
“강우, 울어?”
에키드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흐응….”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에키드나는 작은 콧소리를 내며 털썩 소파에 누워 강우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렸다.
“흐응! 난 그래도 강우랑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아!”
수련을 접게 된 후 딱히 할 것도 없는 터라 같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에키드나와 같이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며 놀아주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 한설아가 몹시 끼고 싶어 하는 눈치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녀는 게임에 있어서는 정말 파멸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몇 판 같이하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차연주도 그렇고 한설아도 그렇고, 신체능력만 따지면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났을 텐데 이상하게 게임을 더럽게 못 했다.
“그나저나.”
강우는 무릎 위에 누운 에키드나의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요즘은 아이돌 일하러 안 나가?”
인기 아이돌치고는 집에서 뒹굴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방송사고 일으킨 것 때문에 당분간 자숙하고 있으래.”
“…하긴.”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놓고 그 소감이라고 말한 게 유부남에게 공개청혼을 하는 거였으니 어찌 보면 자숙하라는 말만으로 넘어간 것이 다행이었다.
‘영구 제명당해도 할 말 없을 것 같은데.’
물론 그딴 짓을 한다면 자신이 직접 움직여 방송국을 뒤집어엎어 버리겠지만.
힘이 제약된 상태라고 해도 그에게는 김시훈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일개 방송국 따위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설설 기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팬클럽은 아무 말 안 하디?”
사실 방송국보다 수호대라고 불리는 그녀의 극성팬이 더 문제였다.
“흐응! 다들 강우 탓이라고 강우 욕만 하길래 내가 따끔하게 혼내줬어!”
에키드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척, 허리에 손을 올렸다.
흐응흐응 콧김을 뿜으며 납작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누가 뭐라 해도 강우는 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아니.”
불난 집에 왜 씨발 기름을 통째로 들이붓고 있는 거야.
‘마해에 자극을 줄 만한 적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에키드나의 팬들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일단 지나치게 위험하다.
‘내가 아니라 걔들이.’
만약 그들이 자신의 육체를 파괴하는데 성공이라도 한다면, 육체가 재생되는 도중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마해에 휩쓸려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 김시훈과 발록조차 피를 흘렸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에키드나의 팬이라는 놈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은데.’
강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쯧, 혀를 찼다.
어차피 선택하는 것은 저쪽이다.
에키드나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을 습격하기라도 한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면 될 문제.
“호호호.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 수호대라는 놈들은 지금 마왕님의 얼굴도 모를 테니까요.”
소리도 없이 집 안에 들어온 리리스가 소파에 앉은 강우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이라 딱히 놀란 기색도 없이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정보 조작이라도 한 거야?”
“예. 마왕님에게 귀찮은 일 없으시도록 철저하게 감춰뒀어요.”
“잘했어.”
지시한 적도 없는 일을 남모르게 깔끔히 처리해 버린 리리스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리리스는 뺨을 붉히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마왕님을 위한 일이니까요. 아 참, 전에 말씀하신 것도 조금 조사해 봤어요.”
“위키 홀릭?”
“예.”
리리스가 강우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대략적인 건 시훈 씨에게 들으신 대로에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 문제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정체불명의 공간으로 전이시켜버리죠.”
역시 컨셉 확실한 놈이네.
“독특한 거라면… 플레이어 앞에만 나타난다는 것과, 어느 한 곳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목격 정보가 있다는 점이네요.”
“전 세계적으로?”
“예. 공간 자체를 이동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여러 마리인 거 아냐?”
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목격자들의 정보를 토대로 보면 같은 시간대에 위키 홀릭과 마주친 사람은 없었어요. 물론 워낙 세계 곳곳에서 목격 정보가 있다보니 여러 마리일 수도 있지만, 이런 기이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여러 마리나 있을 가능성은 적어 보여요.”
“그건 그렇지.”
저런 기괴한 괴물이 여럿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플 것이다.
“생김새는 금빛으로 빛나는 갈기를 가진 거대한 사자라고 하네요.”
진짜 스핑크스냐.
“그나저나 그 괴물이 얼마나 센지는 모르는 거야?”
위키 홀릭과 마주쳤을 때 문제를 맞혀 살아남는 방법도 있겠지만, 사실 더욱 간단한 방법은 위키 홀릭을 공격해 죽이는 것일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꽤 강할 것 같은데.’
위키 홀릭이 얼마나 강한지는 대략적으로라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음… 조금 애매하긴 하네요.”
“뭐가?”
“위키 홀릭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요.”
“…공격하지 않는다고?”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없었다.
‘공격하지 않고도’ 이제까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니까.
“생존자 중에서 위키 홀릭을 공격했다고 하는 사람은 많았어요. 하지만… 엄청나게 단단한 철벽을 후려치는 것처럼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해요.”
“신격을 지니고 있는 거네.”
강우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격을 지닌 존재는 ‘신격의 보호’라는 일종의 패시브가 생기게 된다.
신격의 보호는 신성이 담기지 않은 공격에 대해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방어력을 자랑했다.
‘억지로 힘을 때려 박으면 깰 수야 있겠지만.’
지금 지구에서 신격을 지니지 않은 채 신격의 보호를 깰 수 있는 실력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공격하다가 먼저 지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문제를 맞히지 않고 도망친 사람은 없어?”
“위키 홀릭을 마주치는 순간 주변에 황금빛 결계가 생겨 도망치는 걸 막는다고 해요.”
“…그렇단 말이지.”
신격을 지닌 괴물 중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존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외계의 존재일 가능성이 크겠네.’
만약 올림포스나 아스가르드와 같은 지구의 신이 물질계에 현신한 거라면 가이아 쪽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맞혀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서 위키 홀릭이 ‘아카르트 님의 천칭이 기울고 있다’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는 정보도 있었어요.”
“아카르트라… 처음 듣는데.”
아카르트라는 이름은 처음 듣지만, 저 정보로 인해 한가지 얻을 수 있는 사실은 있었다.
‘위키 홀릭은 누군가의 수하라는 거지.’
신격을 지닌 괴물을 수하로 둘 수 있을 정도의 존재.
‘한동안 잠잠하더니 슬슬 다시 시작하려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지구에 침식한 외계의 존재가 신격까지 지니고 있다면.
심지어 그 신격을 지닌 괴물이 누군가의 수하라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발록한테 위키 홀릭이 출몰했던 지역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전해.”
“예, 마왕님.”
리리스는 강우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스르륵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우는 쯧, 혀를 찼다.
‘내가 직접 조사하고 싶지만.’
그 상대가 신격을 지닌 괴물이라면, 지금 상황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제길.”
강우는 작아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낮은 욕설을 중얼거렸다.
육체의 재구성으로 인해 힘이 제약당하고 난 이후 이렇게 답답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우우웅.
그때, 주머니 속에 넣은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확인하니, 처음 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광고일 리는 없는데.’
자신의 번호는 리리스의 정보 통제로 인해 광고나 보이스 피싱 같은 귀찮은 전화가 절대 걸려오지 않는다.
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강우 형님!! 지이이인짜 오랜만이요! 이번에 시훈 형님을 만났는데 형님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했소!!]누구냐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