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3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17화
위키 홀릭 (3)
쏴아아아.
바닷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해변가.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고 있던 강우는 주문한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딸랑.
그때, 청명한 방울소리가 작은 커피숍 안에 울려 퍼졌다.
“어서 오세… 헙!”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에게 자본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려던 점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2미터에 가까운 덩치에 근육질 몸.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사내가 점원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히, 히익!”
화들짝 놀란 점원이 움찔 몸을 떨었다.
“뜨끈한 으메리카노 하나 주이소.”
“예? 아, 예! 사, 사이즈는 어떤 거로 드릴까요?”
“흐흐흐. 가장 큰 사이즈로 부탁하오.”
구수한 발음으로 커피를 주문한 사내는 험악한 인상과 맞지 않게 공손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잠시 후 진동벨을 받아든 사내는 카페의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게 얼마 만이오! 반갑소! 강우 형… 님?”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봤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사내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소년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창가 쪽 자리에 앉은 소년, 강우는 가볍게 혀를 차며 눈을 흘겼다.
“문제가 있어서 몸이 작아졌다고 통화로 얘기했잖아.”
“하, 하하!! 그래도 이 정도로 쪼그라들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소!”
“그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말투는 여전하구나.”
“나 무협지 좋아하오!”
“어쩌라고.”
강우는 오랜만에(진짜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만난 강태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잘 지냈냐?”
“그러엄! 형님 덕분에 잘 지냈소!”
강태수는 자리에 앉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사악한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세계를 지켜낸 거 아니오!”
“…….”
들뜬 목소리로 외치는 강태수를 바라보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지구를 침입한 구천지옥의 악마들을 죽이고, 세계를 구원한 영웅은 공식적으로는 김시훈으로 알려져 있었다.
바알을 죽이고 세계를 구원한 것이 강우라는 사실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으음. 형님은 못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 강태수도 3년 전 서울에서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소.”
“아, 그러고 보니 너도 가디언즈였지.”
“그때 딱! 대피 명령이 떨어져서 도망가고 있을 때 우연히 형님이 악마의 수장과 싸우는 모습을 본 거요! 그래서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 형님이 하셨던 일이었구나 싶었지!”
“그랬구만.”
어, 잠깐만.
‘그러면 내가 악마 모습으로 변한 것도 본 거 아니야?’
김시훈이나 차연주 등 그와 친한 이들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강태수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악마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때 형님에게 돋아 있던 날개랑 뿔….”
씨발, 역시 본 건가.
제기랄.
뭐라고 해야 하지.
뭔 개소리를 해야 등에 날개가 돋고 뿔이 있는 걸 납득시킬―.
“캐쉬템이오?”
이 새끼 병신인가?
“…어, 그래. 거금 들여서 특수 제작한 장비다.”
“크으! 어쩐지!! 어디서 구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엄청 멋있었소! 막 불도 활활 타오르고!!”
싸나이의 로망은 역시 날개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는 강태수를 바라보며,
“…….”
강우의 표정이 검게 썩어 들어갔다.
‘이 새끼 원래 이렇게 멍청한 놈이었나?’
차분히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흐릿한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서로 연락 안 한 지 엔간히 오래됐어야지.’
아마 한국에서 활동하는 악마교를 정리하고 일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강태수와는 점차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크으으!! 여윽시 크피는 으메리카노지!”
카운터에 가서 커피를 받아온 강태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커피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맥주처럼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 예전의 기억이 살짝 돌아왔다.
“흐흐. 그러고 보니 형수님은 잘 계시오?”
주문한 커피를 탈탈 털어 마신 강태수가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물었다.
“당연히 잘 지내고 있지. 곧 결혼도 생각 중이야.”
“히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풋풋했었는데 벌써! 내가 형님이랑 형수님은 따악~ 보자마자 천생연분인 걸 알았소!”
잔뜩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처음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때는 시훈 형님과 설아 형수님이랑 같이 게이트도 가고 좋았었는데… 시훈 형님과 같은 파티였다는 건 지금도 일생의 자랑거리요!”
태수는 투박한 손으로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흥분에 찬 표정과 달리, 과거를 추억하는 그의 표정에는 감추지 못할 씁쓸함이 서려 있었다.
“…….”
괜히 더 시끌벅적하게 떠는 태수를 바라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저 씁쓸함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태수도 쭉 키워볼 생각이었지만.’
강우가 처음 태수의 재능을 발견했을 때, 설아를 지킬 수 있는 든든한 탱커로 키워보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얼마 가지 않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김시훈이 나타났으니까.’
강태수의 재능도 분명 뛰어난 것이었지만 김시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아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김시훈은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줬으니까.
‘의외라면 설아가 의외였지.’
김시훈은 보는 순간 전율이 이를 정도로 그 재능을 느꼈지만, 한설아의 경우는 강우도 예상하지 못한 세라핌의 영혼이라는 변수 덕분에 김시훈 못지않은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되니 강태수는 자연스럽게,
‘혼자 남겨졌지.’
다른 두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게 됐다.
파티를 짜면 오히려 김시훈과 한설아의 발목을 붙잡는 게 되어버릴 정도로.
“흐하하하! 그렇게 어두운 표정 하지 마소. 나도 그 두 사람과 계속 같이하기엔 한창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태수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비유하자면 같은 날 게임을 시작한 세 명이 너무 랭크 차이가 심해져서 더 이상 같이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았으니까.
아니, 차라리 게임이었다면 실력 차이가 명확하다고 해도 웃으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과는 다르지.’
이곳에서는 전투에서의 한 번의 실수가, 실력의 차이가 생명과 직결된다.
뒤떨어지는 동료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것은 훈훈한 선행이 아닌 파티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머저리 같은 짓이다.
‘무지한 선의는 악의나 다를 바 없으니까.’
강우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이 강태수도 가만히 뒤처져 있지는 않았소! 얼마 전에 가디언즈에서 정식으로 단장급으로 승격도 시켜줬다니까!”
강태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오. 축하한다, 야.”
강우는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태수를 바라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가디언즈에서 단장 직위를 차지할 정도면 정말 엄청난 실력이 없으면 안 됐다.
“가디언즈에서 단장급이면 월드 랭커에 들 수 있는 거 아냐?”
“으음. 예전 기준으로 하면 그렇지만 지금은 차이가 좀 있소.”
“아, 그런가.”
격변의 날 이후로 벌써 10년 가까이가 흘렀다.
당연히 플레이어의 평균 레벨은 시간이 흐른 만큼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그래도 최소 상위 랭커는 됐을 테니.’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중에서 상위 랭커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실력자는 극소수였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물론 김시훈, 한설아와 같은 탈 인간급과 비교하면 민망한 경지지만, 그건 그 둘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일반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강태수도 엄청난 실력자에 속한다.
강우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단장급이면 좀 바쁘지 않냐? 이렇게 대낮에 백수를 만나고 있어도 괜찮아?”
“아, 이번에 시훈 형님이랑 같이 좀 특수한 임무를 맡아서 말이오. 이게 딱 짚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좀 여유가 생겼소.”
특수한 임무.
그 단어에 강우의 눈이 빛났다.
“위키 홀릭 조사?”
“흐흐. 형님도 역시 알고 있었구려.”
“워낙 독특해야지.”
강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오늘 우리 집 가서 임자랑 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
“벌써 들어갈 생각이오?”
“밖은 위험하니까.”
위키 홀릭이 활동하게 된 이후로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형님 몸을 보니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소. 이럴 거면 차라리 형님 집으로 찾아뵐 걸 그랬소.”
“요즘 집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바닷바람도 좀 쐬고 싶어서 여기로 불렀어.”
“흐흐. 형수님에게 아주 꽉 잡혀 살고 계시는가 보오.”
“어… 음. 그렇지.”
이곳저곳(검열빔) 꽉 붙잡혀 생활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이만 가자.”
바닷가 근처에 있는 작은 커피숍을 나온 강우는 태수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오오! 저 아파트 전체가 형님 거란 말이오?!”
잡담을 나누며 걸어가던 도중 강우가 사는 초고가 아파트를 본 태수가 입을 쩍 벌렸다.
아파트 전체를 집처럼 소유하고 있다니.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다고 해도 엔간하면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엉. 내부를 개조해서 온천이나 수영장, 당구장, 볼링장 뭐 이런 것들도 있어.”
막상 만들었지만 온천 말고는 딱히 사용하지 않는다.
발록과 김시훈이 볼링을 치기라도 하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테니.
“부, 부럽소!!”
“흐흐. 너도 월급 빵빵하지 않냐?”
“끄응. 그래도 저런 아파트를 살 정도는 아니오.”
태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우우우우웅!!
아무런 전조(前兆)조차 없이 주변이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
“이, 이건!”
강우와 태수의 표정에 다급함이 서렸다.
그와 동시에,
[망가진 율법(律法)의 아이들이여.]찬란한 황금 갈기를 지닌 거대한 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런 씨발!!’
5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황금 사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위키 홀릭’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마주한 강우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혀, 형님!”
“나도 알아!”
태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철컥. 척!
그의 손목에 찬 시계가 상반신 전체를 가리는 새하얀 방패로 변했다.
태수의 뒤에 선 강우는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싼 황금빛 결계를 만졌다.
‘제기랄.’
쥐꼬리만한 심연의 마기를 손에 집중에 결계를 후려쳤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육체가 파괴되지 않아서 마해를 사용해서 부수는 것도 불가능해.’
자해(自害)를 하는 것도 마해가 ‘위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위키 홀릭 쪽에서 자신을 공격할 의사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서 신격을 지닌 위키 홀릭을 죽일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문제를… 맞혀야 해.’
까드득.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면 문제를 내겠다.]위키 홀릭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꿀꺽.
마른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본명은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 대표작으로는 ‘마릴린 멀로’가 있다. 1960년~1980년대에 활동한 팝 아트의 거장이며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사회의 인식과 달리 현대미술에서 예술적으로, 대중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인 이 사람은 누구이며 또한 어떤 명언을 남겼는가?]“…어?”
들은 대로 난센스 퀴즈가 아닌, 수능에서나 나올 법한 문제가 나왔다.
강우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알 것 같은데?’
마릴린 먼로를 만든 팝 아트 계의 거장.
미술에는 쥐꼬리만큼도 관심 없는 그였지만, 하도 유명한 탓에 들어 본 적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앤디… 앤디….”
강우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고민에 잠겼다.
그때,
-쿠웅!!
“흐하하하하!! 이거 참 괜히 걱정했잖소!!”
강태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야,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제발.
“답을 말하겠소!”
아니 이 새끼가.
“그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지!”
짝!
시원스럽게 손뼉을 쳤다.
자신에 가득 찬 태수의 모습에 강우의 눈빛이 변했다.
‘어? 혹시?’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당당할 수가 없는데…?
강우는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태수를 돌아보았다.
태수는 방패조차 내려놓은 채, 우렁찬 목소리로 답을 말했다.
“일단 똥을 싸라!”
아니 씨발, 갑자기 똥을 왜 싸.
“그러면 유명해질 것이다!”
당연히 유명해지겠지 이 병신 새끼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앤디 에스―홀이 남긴 명언이요!”
“아니 씨발.”
가장 좋아하긴 불알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적어도 이름은 맞춰야 할 거 아냐 이 새끼야.
“하하! 어떻소!”
[……]찬란히 빛나는 황금 갈기를 지닌 사자가 이쪽을 응시했다.
강우는 다급히 손을 뻗었다.
“야, 야야! 잠깐만! 내가 맞출게! 조금만 시간을…!”
[틀렸다.]판사가 죄를 선고하듯 단호한 목소리.
[그대들은 아카르트 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그와 함께,
찬란한 황금빛 물결이 강우와 태수의 몸을 휘감았다.
“야 이―”
황금빛 물결에 휩싸이기 직전,
왜 답이 틀렸냐며 어리둥절해하는 태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개빡대가리 새끼야아아아아아악!!!”
처절한 절규와 함께 강우와 태수의 몸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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