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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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오랜만에 숙면한 파베와 조금 쉰 왈라이카는 거실에서 후처리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구석에서 잔뜩 토라진 실피드를 발견했다는 것은 소소한 뒷이야기.
드물게 성의 있는 태도로 정령왕을 달랜 파베는 그를 일단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위기는 어떠하냐?”
“다행히 여론은 잘 잡았어. 내가 그동안 인간들이랑 문제없이 잘 지냈잖아? 왈라이카가 저렇게 심하게 움직인 걸 보면 크로슈가 큰 잘못을 한 모양이라는 의견이 많더라고. 거기다 그간 그쪽에서 은폐해 왔던 잘못 떡밥 열심히 풀었으니 분위기는 우리 쪽에 아주 유리해.”
“크로슈 반응은?”
“나한테 계속 전령새 연락 보내는 거 씹는 중이고…… 크로바티에 있는 애들 풀어서 분위기 염탐하고 있는데 아주 초상집이래. 갑자기 친화력이 사라져서 하던 사업들에도 차질 장난 아니라던데?”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벌어졌는데 혼란을 수습해야 할 가주마저 없으니 얼마나 난장판이 됐을지 대충 알 만했다. 파베는 고소한 기분으로 킥킥 웃었다.
“그나마 물이랑 불 친화력은 아직 안 사라져서 어떻게든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샐리온 할배랑 엘라임 누님 정령계에서 돌아오면 끝이고…… 가문의 기반이 사라지고 나면 뒤가 어떻게 될진 안 봐도 뻔하지. 생각보다 잘 버틴다 싶으면 가서 등 한 번 떠밀어 주면 그만이고.”
허공에 미는 시늉을 한 번 해 보인 왈라이카가 히죽 웃었다.
“그쪽 망하게 할 방법은 너무 많으니까 위나델 결정 따라서 후속 계획 짜면 될 것 같아. 어떻게, 지금 그 사안까지 정해 놓을까?”
“아가한테 물어보자꾸나.”
파베는 위나델에게 관련 내용을 상의할 마음이 있는지를 물으러 내려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깨어 있던 위나델이 졸고 있었다.
‘아가, 위나델. 많이 피곤하니?’
-우응…….
시조의 부름에 겨우 눈을 뜬 위나델이 눈꺼풀을 껌벅였다.
파베는 아이가 정신 차리길 기다렸다가 직접 계획을 상의하겠느냐고 물었다. 배시시 웃은 위나델이 대답했다.
-네. 제가 할게요.
곧 두 사람의 의식이 반전되었다. 왈라이카가 대녀의 유순한 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인사했다.
“잘 잤어, 우리 딸?”
“네에……. 아빠……도 잘 주무셨어요?”
“난 원래 며칠에 한 번만 자서 어젠 안 잤어. 그래도 컨디션은 좋은 편이야. 아빠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조금씩 또랑또랑해지는 금빛 눈엔 긴장과 의욕이 함께 녹아 있었다.
왈라이카는 마법으로 딸기가 든 다쿠아즈를 불러와 아이 앞에 놓아 준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에서 얘기 들었겠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짜려면 네 선택이 필요해.”
“으음, 정확히 어떤 선택요?”
“일단 거기 있는 것부터 한 모금 마시고 하자. 방금 일어났는데 단 거 먹어서 목마르지?”
어느새 시원한 딸기 셰이크가 다쿠아즈 그릇 옆에 놓여 있었다. 고개를 살짝 까닥여 보인 아이가 커다란 유리컵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빨대를 입에 문다.
쭈우욱.
얼음이 사각거리는 셰이크 표면에 올린 우유 크림과, 그 위에 산뜻하게 올라간 검보라색 블랙 베리가 느릿느릿 아래로 낮아졌다.
셰이크 수위가 내려가자 베리 옆에 데코로 올린 연녹색 처빌이 기울어지다 하얗고 폭신한 크림에 반쯤 묻힌다.
“와아…….”
더운 계절을 잊게 만들 만큼 시원하고 신선한 맛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흡족한 얼굴로 그런 아이를 바라보던 왈라이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결정해야 할 건 ‘너 홀로 있는 일인 가문으로 남을 것인가, 다른 인원을 더 받을 것인가’야.”
“네에.”
“그리고 다른 이를 들이기로 결정하면 가문 구성원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겠지.”
왈라이카는 위나델 혼자 가문을 이루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었다.
위나델이 더 자라서 어른이 되고, 마음 맞는 짝을 맞이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자연히 가문의 세가 불어날 것이다.
악의가 있든 없든 위나델의 상처를 방조하고 간접적으로 아이를 학대한 가해자들이다. 위나델을 중심으로 재편성될 가문에 그런 이들이 굳이 필요하다 생각지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하지만…….
‘아마 꼬맹이는 기존 크로슈의 인원 일부를 받아들이겠지.’
일인 가문으로도 혼자 잘 살던 왈라이카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으나, 위나델의 결정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것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스승과 제자는 아이의 선택에 무조건 따르기로 이미 말을 맞춘 상태였다.
그러니까.
“저는……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역시.’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 그저 크로슈에서 태어났을 뿐이잖아요. 저 때문에 가문이 무너지고 아이들이 불행하게 자란다면, 제가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어요.”
“으휴, 요 지나치게 착한 어린이 같으니라고.”
아쉬운 면이 있지만, 올곧은 선택이 대견한 것 또한 사실이다. 왈라이카는 못 말린다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아이의 은빛 머리칼을 살짝 헝클어뜨렸다.
이어 하얀 접시에 놓인 핑크색 다쿠아즈를 들어 아이의 손에 들려 주며 말했다.
“그럼, 아이들만 가문에 편입시킬 거야?”
“으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어른들 중에도 억울하신 분이 있을 거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는 일단 먹고 하라며 아이에게 턱을 까닥여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위나델은 거의 제 주먹만 한 다쿠아즈를 와작 베어 물었다.
슈거 파우더가 잔뜩 뿌려진 바삭바삭한 겉면을 이로 꾹 누르자, 쫀득쫀득하면서도 푹신푹신한 빵의 질감이 이 끝에 감겼다.
거기서 더 힘을 주니 재료를 아낌없이 때려 넣은 진한 버터크림과 크림 속에 작게 잘라 넣은 딸기 조각들이 빵 바깥으로 넘쳐흘렀다.
위나델은 목구멍에 닿을 것처럼 듬뿍 새어 나온 크림을 혀로 밀어내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지?”
“우웅, 네에.”
“셰이크도 마셔. 옳지, 잘한다.”
음료를 쭉쭉 들이켠 아이가 컵을 내려놓았다. 컵 안쪽 유리를 타고 느릿하게 미끄러지는 분홍색 거품을 잠시 바라보던 왈라이카가 입을 열었다.
“아마 네가 원하는 대로 가문을 재편하려면 불편한 상황이 꽤 많을 거야. 너는 이제 고작 11살이고, 심지어 가문에서 쫓겨난 적도 있지. 아무리 싸부랑 내가 뒷배가 되어 준다고 해도 가주로서의 네 입지는 상당히 불안정해.”
“아무래도…… 그렇겠죠?”
“네게 은혜를 입은 주제에, 상대는 툭하면 네 자리와 권위를 깎아내리려 들 거야. 뒤에서는 너를 비웃고 무시하겠지.”
“그건 괜찮아요.”
아이가 구김살 없이 빙그레 웃었다.
“비웃음받는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익숙하니까 그런 건 상관없어요.”
“위나델.”
“절 비웃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는 아빠랑 파베 님이 곁에 있어 줄 거잖아요. 라니아 언니도요.”
“…….”
가장 믿는 사람들이 내 손을 잡아 준다면 그것으로 괜찮아.
그리고 앞으로 최선을 다해 가문을 바꾸어 나간다면, 그 진심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닿지 않을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대책 없는 생각인 것도 같지만 위나델은 일단 그렇게 믿고 부딪쳐 보고 싶었다.
혹 깨지고 부서져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되더라도, 처음 한 번쯤은.
“성가신 부탁 드려서 죄송해요.”
“…….”
“그래도, 그렇게 해 보고 싶어요.”
스승의 빛을 이어받은 황금안에는 꼿꼿한 고집이 담겨 있다.
차가운 환경 속에서 주눅 든 채 소심하게 자란 주제에, 이 아이는 종종 놀라울 만큼 대범하고 굳센 면모를 보이곤 했다.
제게 피를 물려 준 150년 전의 조상이 그러했듯이.
“딸이 하고 싶다면 아빠로서 어쩔 수 있나. 해 달라는 대로 해 줘야지.”
“와!”
아이의 입이 환하게 벌어졌다.
잔뜩 고집을 세운 주제에, 정말 허락받을 줄 몰랐다는 듯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픽 웃음이 샜다.
그는 다시 한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가문 구성원의 일부를 흡수하는 방향으로 계획 짜 볼게.”
“네. 고마워요.”
“그런데 그전에, 꼭 밟아야 할 절차가 하나 있거든?”
“……뭔데요?”
동그란 눈에 걱정과 긴장이 찰랑찰랑 차오른다.
왈라이카는 토끼 같은 위나델의 모습에 또다시 웃으면서 안심하라는 듯이 일렀다.
“관계 정리.”
“으음?”
“너랑 나, 대부 대녀 관계 확실하게 공증받아야지. 아직 신청서 접수 안 시켰거든.”
“아아!”
아이가 입을 동글게 벌리며 감탄성을 흘렸다.
그랬다. 계획이 끝나기 전엔 ‘위나델라 크로슈’의 이름으로 신청서를 넣을 수 없었던지라, 접수를 계획 후로 미루어 뒀던 터였다.
이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위나델이 살아 있다 밝혀도 되는 시기가 되었으니 보류해 뒀던 일을 끝맺어야 했다.
“직접 안 가고 약식으로 처리할 수 있긴 한데, 아무래도 정석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반룡이 눈을 접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성직자 증인도 세우고, 의식도 제대로 치르자. 식 예약해 놨어.”
“…….”
대부모-대자녀 관계는 서류 심사 통과만으로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굳이 식을 치르는 건 그 관계를 기념하고 싶은 사람들이 따로 돈을 들여 준비하는 것.
예비 대부의 세심한 마음 씀에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위나델은 물기가 살짝 고인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선 왈라이카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고맙, 습니다.”
“어?”
“아주 많이 고마워요…….”
뜻밖의 반응에 잠시 당황했던 왈라이카는, 이내 웃음을 회복하고서 허리를 조금 숙였다. 아이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와, 우리 딸이 나를 먼저 안아 준 건 처음이네.”
“…….”
“고작 식 하나 준비한 대가로는 차고도 넘치는걸. 일기에도 적어 놔야겠는데?”
위나델 속에 머물던 파베가 ‘일기 따위 귀찮아서 쓰지도 않던 놈이 헛소리는.’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흐뭇한 얼굴을 했다.
가슴 따뜻한 풍경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예비 부녀는 다음 날 수도 레지아로 서류를 접수하러 가자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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