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54
54화>
“…….”
당혹스러운 행동이었다. 위나델은 동생의 눈을 바라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아퀴스는 손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왈라이카를 힐끗했다. 고개를 살그머니 뒤로 물리고서 조금 수그러든 기세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널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미워했어.”
“알아.”
“그런데 고작 사과 한 번 받았다는 이유로 날 풀어 준다고?”
“……꼭 그 이유만은 아니야. 원래부터 넌 오래 붙잡아 둘 생각이 아니었어.”
그 대답에, 아퀴스의 입에서 ‘와…….’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개를 비스듬하게 비튼 소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5살 꼬맹이처럼 순진한 이복누나의 눈을 바라보며 일렀다.
“너, 저 검은 용이 날 왜 가둬 놨는지 전혀 모르는구나?”
“……그건 무슨 소리야?”
“하기야 순진해 빠진 누나라면 당연히 못 알아챘겠네. 아마 용께서도 굳이 알릴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고.”
말본새를 유순하게 바꾼 아퀴스의 푸른 눈에서 만족과 들뜸 비슷한 것이 어른거렸다.
뒤로 한 뼘 더 물러난 소년이 말했다.
“나 안 나갈 거야.”
“뭐?”
“아직은 안 나갈 거라고. 여기서 지내는 것도 그럭저럭 나쁘진 않아서.”
“…….”
도무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위나델은 미간을 좁히고서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복동생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절그렁, 다시 한번 사슬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조용한 눈으로 위나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퀴스가 중얼거렸다.
“살아 있으니까…….”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머금고서 또 한 번.
“지금은 그거면 됐어.”
그때,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왈라이카가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위나델을 끌어와 곁에 바싹 붙이면서 말했다.
“말하는 거 보니까 쟤는 여기 더 있고 싶나 보다. 일단 놔두고 가자.”
“어, 아빠?”
“뭐, 그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밥 나오지, 기온 적당하지, 안 씻어도 청결 상태 유지되지. 손발에 사슬 좀 묶여 있는 것만 빼면 여기 생활도 꽤 안락하거든.”
“으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퀴스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사실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까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생긋 웃어 보이는 걸 보면.
쟤를 시큐엘라에게 보내는 건 좀 나중에 생각하자 이른 왈라이카가 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위나델이 떠밀리듯 등을 돌렸을 때,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인사처럼 떨어졌다.
“또 와야 돼, 누나.”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고.”
왠지 등 뒤의 동생은 태평하게 손을 흔들고 있을 것 같았다. 위나델은 미묘한 기분으로 대부를 따라 단독 창고 밖으로 나왔다.
창고 문을 꾹 닫은 왈라이카가 생각했다.
‘얘기 들었을 때부터 보통이 아닌 놈이라 생각하긴 했는데, 예상보다 더 미친놈이네.’
이제 곧 11살이 되는 나이라 믿기 어렵게 영리하고, 눈치 빠르고, 정신세계가 꼬여 있다.
하긴 저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맨정신으로 혈육을 죽이려 들었겠느냐마는.
보아하니 위나델을 싫어하던 마음은 거의 사라진 모양인데, 그게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발화한 것 같다.
아무튼 기분 나쁜 꼬맹이였다. 왈라이카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위나델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아빠?”
“우리 딸, 정말 고생하면서 컸구나…….”
위나델은 갑작스러운 포옹이 당황스러운 눈치였으나 대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미친 가문에서 이토록 올곧고 선량하게 자라 준 대녀가 대견하고 또 대견했다. 아이의 등을 토닥여 준 왈라이카가 말했다.
“그럼 다시 집에 갈까?”
“그,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요? 혹 아퀴스는 괜찮다 쳐도, 어머니께서는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
아이는 이 상황에서도 시큐엘라가 염려되는 모양이다.
왈라이카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내가 이따 따로 와서 편지라도 쓰게 시킬게.”
“편지요?”
“응. 시큐엘라한테 부칠 거. 아들 편지를 받으면 시큐엘라도 조금은 안심하지 않겠어?”
위나델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왈라이카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까지 온 김에 아르카스토도 한 번 보고 가야겠다.”
“아버지를요?”
“응. 어제보다 정신을 조금은 차렸을지 궁금해서.”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하지만 위나델의 신경을 아퀴스에게서 떼어 내기엔 나쁘지 않은 환기였다.
불편하면 너는 같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다정하게 이른 왈라이카가 반대편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위나델도 대부를 따라 발을 놀렸다.
익숙한 구조를 지나쳐 아르카스토가 구금되어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고작 하루 전에 살피고 갔었으니 특별한 차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왈라이카는 대충 얼굴만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잔뜩 쌓인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
뚜벅뚜벅 걷던 까만 구두가 가만히 멈췄다.
왈라이카와 손을 잡고 걷던 위나델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안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고요했다. 잘 정리되어 쌓인 물건들도, 미묘하게 서늘하게 느껴지는 안쪽 공기도.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어둑한 안쪽을 꿰뚫어 보던 왈라이카의 입술이 짜증스럽게 비틀렸다.
‘이건 또 무슨…….’
어떻게 된 일이람.
왜 철창에 아르카스토가 없어?
이곳 물류 창고는 왈라이카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제작한 공간이다.
장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라 보안을 최고로 철저하게 했다. 존재 자체가 기밀이고, 위치를 아는 사람이 양손에 다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게다가 마법은 또 몇 겹이나 걸어 놓았었나.
원래도 마법이 걸려 있던 공간에 아르카스토를 수감하면서 종류를 추가했다. 그중 하나는 걸려 있는 마법 중 무엇이라도 하나 해제되면 곧장 그에게 알람이 오는 종류였다.
그러므로 아르카스토가 철창을 빠져나갔다면, 알람 마법 하나만큼은 발동했어야 옳았다.
‘일단 이 안에 아직 있는지부터……’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용에 비해 오감이 둔한 아이는 아직 이변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카스토가 철창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가 불안해할지도 몰랐다. 왈라이카는 대부가 왜 멈춰 섰는지를 몰라 멀뚱히 저만 쳐다보는 위나델에게 말했다.
“딸,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무슨 부탁이요?”
“잠깐 싸부 좀 불러 줄래?”
곧 의식의 주인이 바뀌었다. 연륜이 담긴 금빛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왈라이카는 무슨 말을 하는 대신 은밀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감각 공유 좀 왜곡해 봐.’
위나델에게 둘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감각을 왜곡하여 아이에게 전달하는 건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함께 지켜본 파베는 지금 상황이 꽤 다급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공유 차단 동의를 구할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아쉬운 기분으로 오감 전달을 섬세하게 조정하고 왜곡했다.
왈라이카가 입을 열었다.
“아르카스토가 사라졌어.”
“……뭐라고? 마법을 다섯 겹은 쳐 놨었잖느냐.”
“그러니까 말이야. 적어도 알람 연락은 왔어야 했는데.”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왈라이카가 마력을 일으켰다. 마나를 넓게 퍼뜨려 혹시라도 아르카스토가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생명 반응 따위는 없었다. 왈라이카의 미간 주름이 굵어졌다.
“말했는진 모르겠는데, 여기 마법으로 공기 순환시켜서 환기구도 없거든?”
“그래. 그랬지.”
“방해 마법 때문에 특정 구역이 아니면 이동 마법 자체가 안 먹히고, 다른 곳에서 내부로 침입해 들어올 때도 무조건 중앙 구역으로 좌표가 강제돼. 출입은 마법 표식을 새긴 인장으로만 가능한데 이 인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 봤자 라니아까지 해서 넷밖에…… 와, 이거 진짜 황당해서 뒤통수가 얼얼하네.”
뱉는 숨에 헛웃음이 섞였다. 이마를 짚으며 키득키득 웃은 왈라이카가 말했다.
“여기 마법도 다 내가 걸었어.”
“그래, 안다.”
“물론 절대 뚫리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공들인 마법이 아니긴 했는데…… 대마법사쯤 되는 인물이 아니라면 파훼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단 말이지.”
실제로, 두어 마법은 파베라 해도 흔적 없이 뚫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150년 전의 본신이었다면 어렵잖게 해제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리고 벌어진 상황 앞에서 이번 사건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논하는 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목을 꺾어 제자를 올려다본 파베가 일렀다.
“출입 기록부터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구나.”
“……그래.”
“인장을 받은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근처를 수색해야겠지. 사실 이 정도 보안을 뚫을 수 있는 자라면야 이미 먼 곳으로 도망쳤을 것 같다만.”
확실한 건, 아르카스토 혼자서 이곳을 탈출하진 못했으리란 사실이었다.
가진 정령 친화력을 거의 빼앗기고 반쯤 미쳐 있던 자였다. 따로 마법을 배우지도 않았으니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누구였을까?”
턱을 받쳐 쥔 왈라이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르카스토를 탈출시켜서 이득을 볼 사람이 별로 없어. 예전 크로슈 놈들인가 싶긴 한데 그중 절반은 감옥에 갇히거나 금제에 걸렸지. 그리고 나머지 절반 중에서는 여길 뚫을 만큼 유능한 인재가 없단 말이야.”
빛이 다른 오드아이가 총기를 품고 번득인다.
“그렇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지. 내부에 힘이 부족하다면 외부에 손 벌리는 방법이 있으니까. 당장 왕실이라면 어느 정도 능력이 됐을 거야. 물론 이쪽은 동기가 너무 약하지만…….”
그 뒤로도 왈라이카는 빠르고 낮은 말을 몇 분이나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전령새를 띄워 날려 보내고서 말했다.
“싸부.”
“오냐.”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떤 궁금한 것?”
익숙한 황금빛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응시한다.
왈라이카는 소중히 여겨 마지않는 눈동자에 대고 조용히 물었다.
“범인이 아르카스토를 빼돌린 이유가, 싸부 때문이면 어떡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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