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스승 옆에 서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세르비투스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애써 외면했다.
왈라이카는 헛기침을 어색하게 몇 번 한 다음, 급한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마법 쓰는 것조차 깜박한 채 계단을 오르는 중에도 심장은 끊임없이 쿵쿵 거세게 뛰고 있었다.
평소엔 있는 줄도 모르던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처럼.
그날 오후 내내, 왈라이카는 2층 서재에 처박혀서 사부를 피했다.
사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 바보 같은 상태를 들켜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어린애 말 한마디에 이 꼴이 뭐람. 정신 차려, 왈라이카.’
제 뺨을 짝짝 치면서 꾸짖어 보았으나 상태는 그리 호전되지 않았다.
지금도 위나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주 깊은 물에 빠졌다 겨우 수면으로 나온 것처럼.
‘민망해서 그런 거겠지. 스승과 제자 관계일 뿐인데 엄마, 아빠라는 성애적인 관계로 엮이니까 어색해서.’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어색해서. 민망해서.
왈라이카는 사부가 립시산에서 잠들기 전까지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을 반추해 보았다.
음침한 엘프 자식은 툭하면 사부 옆에 달라붙어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스킨십을 해대곤 했으나, 그와 사부 사이는 친가족처럼 담백했다.
아마 사부는 그를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이나 일찍 낳은 아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지. 사부는 부모나 누나 같은 존재니까.’
파베 크로슈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왈라이카는 9살이었다.
마을에서 겉도는 부모 없는 아이.
위대한 블랙 드래곤은 금빛 눈을 빼면 평범한 마을 처녀였던 어머니에게 씨만 뿌리고서 떠났고, 어머니는 인간의 몸으로 용의 피를 다 감당하지 못하여 왈라이카가 5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비범한 혈통의 왈라이카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양쪽 눈의 색이 달라 이질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아이는 태어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걸음마를 뗐고, 2살이 되었을 때는 막힘없이 글자를 읽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4살 무렵엔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었으니 평범한 촌무지렁이였던 사람들이 소년을 경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당시의 어렸던 왈라이카는 그들의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아무리 용의 피를 이었다 한들 고작 4살짜리 아이였다. 몸에 흐르는 피의 반절은 다른 이의 애정과 온정을 갈구하는 인간의 것.
왈라이카는 어머니와 달리 자신을 겁내고, 멀리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 어설프게 다가가다 거부당하고 서러워했다.
그 상처와 아픔이 원망으로 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파베 크로슈가 그 마을에 우연히 방문했을 때, 왈라이카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골이 파여 있었다.
‘꼬마야. 밥은 먹었느냐?’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듣자 하니 네 아버지가 검은 용이었다더구나. 너도 마법을 잘 쓴다지?’
‘저리 가라니까!’
파베 크로슈는 당시 17살밖에 안 되던 어린 나이에도 상냥하고 다정했다. 인간 가족 따위 없이 정령들과 함께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구김살 없는 애정이 넘쳤다.
사실은 애정에 굶주려 있던 왈라이카가 끝내 거부하기에는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스무 살도 안 된 주제에 늙은이 같은 말투를 쓰는 이상한 소녀에게 결국 맘을 열고야 말았다.
‘……저기, 파베.’
‘응, 왈리.’
‘파베는 언젠가 여기를 떠날 거지?’
‘계속 여기서 살 순 없겠지. 세상을 여행하는 중이니까.’
‘…….’
떠나지 말라 말하고 싶었다. 이 차가운 마을에서, 제게 유일하게 따뜻한 사람으로 머물러 달라 매달리고 싶었다.
그때 머뭇거리던 뺨으로 따뜻한 체온이 닿았다. 아이의 양 뺨을 감싸 저와 눈을 맞추게 만든 소녀가 말했다.
‘왈리.’
‘응.’
‘내가 여기 남는 것 대신, 네가 나를 따라오는 건 어떻겠느냐?’
‘……어?’
‘보아하니 네 마법을 이끌어 줄 스승도 필요할 것 같더구나. 너만 좋다면 내가 마법을 가르쳐 주마.’
‘……!’
그리고 아이가 새롭게 얻은 스승을 따라 마을을 떠나던 날. 쭈뼛쭈뼛 눈치를 보던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빵이며 양젖, 낡은 장화 따위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왈라이카를 미워한 게 아니었다. 그저 다가가기 어색해 멀리했을 뿐.
마법 사부가 생겼으니 잘되었다고, 앞으로는 마법을 잘 제어해서 훌륭한 마법사가 되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간 몰라서 놓쳤던 온정이 담겨 있었다.
아이는 앙금을 털고 마을 사람들과 작별했다. 그리고 파베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었지.
“그래, 우리는 가족이야.”
왈라이카가 스스로를 질타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덩굴을 뻗치려 하는 마음에 대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선을 넘지 말라고.
‘혹시, 혹시 아주 조금쯤 다른 감정이 싹텄다 해도…….’
그건 없던 것이어야 한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150년 동안 잃었던 가족이 드디어 돌아왔다. 마침내 모두가 모여 예전의 관계를 회복했다.
어렵사리 되찾은 일상이었다. 여기에 제 욕심으로 파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여태까지 해 왔던 대로 행동하자.’
어차피 지금은 이 마음이 정말 이성적인 애정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적어도 제 마음이 어느 쪽인지 확실해질 때까지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옳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왈라이카는 드디어 진정된 마음으로 1층에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아래로 내려오는구나. 할 일이 그렇게 많아?”
“…….”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저를 맞이하는 사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다시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왈라이카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각났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한번 위층으로 도망쳐 버리고야 말았다.
‘아, 진짜 미치겠네. 왜 이러는 거지?’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다. 왈라이카는 거의 나는 듯한 속도로 계단을 오르며 제 상태에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잽싸게 복도를 가로질러 제 방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의 복병을 맞이하고서 석상처럼 얼어붙고야 말았다.
깜박하고 있었다. 자신의 방 안에는 백 점도 넘는 스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천재 화가 그란트 밀리어드가 영혼을 담아 그린 생생하고 사실적인 파베 크로슈들이 방 안의 모든 벽에 붙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위로 방금 제게 말을 걸던 사부의 얼굴이 겹쳐졌다. 심장이 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왈라이카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벽에 머리를 박았다.
‘이거 설마…….’
나, 정말로 사부를 좋아하는 건가?
세르비투스가 그렇듯, 사부를 가족이 아니라 이성으로 좋아하는 거야?
이번엔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이 바로 나오질 않았다. 왈라이카는 벽에 붙이고 있던 이마를 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왼쪽 벽면에 붙어 있는 가장 커다란 초상화를 응시한다.
살짝 휜 금색 눈, 어깨 뒤까지 부드럽게 늘어진 남색 머리칼, 느슨한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
지난 150년의 공백을 제외하면 9살 때부터 30년도 넘게 봐 왔던 얼굴이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얼굴.
그리고 나는…….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여리게 치미는 어떤 충동을 무시하며, 왈라이카가 낮게 중얼거렸다.
복잡한 심경으로 제 이마를 짚은 채 생각했다.
‘어쨌든 이 방에 있어선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당장은 사부 얼굴 안 보이는 곳에 있고 싶으니까…….’
답은 아주 쉽게 나왔다. 전령새를 불러내 ‘급한 사무가 있어 밖에 나갔다 오겠다’는 메시지를 새겨 넣은 왈라이카가 마력을 발했다.
다음 순간. 해가 진 저녁에도 퇴근하지 못한 채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던 라니아는, 갑자기 나타난 직장 상사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어? 수장님?”
“아, 라니아. 아직 여기 있었네?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
갑자기 나타난 상사의 양심 없는 물음에 라니아의 암적색 눈썹이 불퉁하게 휘었다.
지금 도와줄 일 없느냐 묻는 저 상사가 연락 불통으로 잠수를 탄 덕분에, 자신이 아직까지 남아 잔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와줄 거 없어?’라……. 입양 절차 끝났다는 말만 잠깐 전하고 오겠다며 근무지 이탈하셨던 분이, 7시간 만에 돌아와서 ‘도와줄 거 없어?’라고 묻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
아, 그랬었지……?
“거기에 ‘아직 여기 있었네?’라고요? 네 번이나 전령새를 보냈는데 대답이 없어서 수장님 할 일까지 다 하고 있던 부하 직원에게 그게 할 말입니까?”
“……내가 다 잘못했어.”
‘엄마 아빠’ 소리에 너무 놀란 나머지 일을 하러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왈라이카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안경 뒤 매서운 눈매로 그런 상사를 노려보던 라니아가 말했다.
“잘못한 거 아셨으면 본래 해야 했던 일을 하십시오.”
“응.”
“다 할 때까지 퇴근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힘없이 대답한 왈라이카가 탁자에 잔뜩 쌓인 일거리를 집어 들고 처리하기 시작했다.
뾰족한 눈초리로 그런 상사를 감시하던 라니아도 이내 본인이 맡은 업무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갔다 싶었는데…….
“으, 아니야. 아니라고!”
“…….”
멀쩡히 파이카 경매장의 물품 목록을 검수하던 왈라이카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꽥 내질렀다.
저건 또 뭐 하자는 짓일까. 라니아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이상한 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뒤늦게 제가 한 짓을 깨달은 왈라이카는 수석 보좌관과 눈을 맞추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 잠깐 부끄러웠던 과거 일이 생각나서…….”
“일에 집중하십시오.”
“응. 미안해. 제대로 할게.”
그러나 제대로 하겠다는 왈라이카의 말은 실천되지 못했다.
그 뒤로도 발작적인 혼잣말이 몇 번이나 이어졌던 탓이다.
결국 짜증을 이기지 못한 라니아가 펜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눈으로 입꼬리만 말아 올리며 말했다.
“일 방해하러 오셨습니까?”
“그게…….”
“이딴 식으로 할 거면 그냥 나가세요. 도움 하나도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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